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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에 대한 공격

민주주의에 대한 공격

김덕엽

이번 정기국회에서 테러방지법은 통과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이 법이 폐기된 것은 아니다. 김대중 정부는 임시국회에서 통과시키려 할 것이다.

테러방지법을 입법하려 한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은 시민·사회 단체들의 반대에 부딪히자 법안을 손질했다. 그리고 국무회의를 거치면서 법안은 또 한 차례 수정됐다. 테러 개념에 관한 수정 법안에서 ‘사회적 목적을 가진 개인이나 집단’이라는 구절이 삭제됐다. 그러나 ‘사회적 목적’과 ‘정치적 목적’은 뚜렷한 구별이 어렵고 ‘정치적 목적’ 없는 집회나 시위는 없기 때문에 여전히 테러의 개념은 모호하다. 또한 수정 법안은 국정원이 진두지휘권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인상을 주려고 안간힘을 쓴 흔적이 역력하다. 국정원장이 위원장을 맡도록 돼 있던 것을 국무총리가 국가대테러대책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을 지명하도록 규정을 바꿨다. 그리고 국정원의 테러 수사권을 검찰로 넘겼다.

그러나 어차피 테러 관련 수사를 하는 사람은 국정원 직원이기 때문에 국정원의 수사권 삭제는 눈속임일 뿐이다. 아무리 법안을 성형 수술한다 해도 테러방지법은 국정원에 날개를 달아 주는 법이 될 것은 분명하다. 국정원이 어떤 곳인가? 국가안전기획부 시절에는 부부싸움 끝에 부인을 살해한 사건을 ‘여간첩 사건’으로 조작·은폐한 ‘수지 김 사건’을 만든 곳이다. 졸지에 빨갱이 굴레를 쓴 김옥분 씨의 가정은 풍비박산났다. 또한 최근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조사 과정에서 1973년 ‘유럽 거점 간첩단 사건’으로 조사를 받던 최종길 교수가 중앙정보부 직원에 의해 살해됐다는 증거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당시 중앙정보부는 자살이라고 꾸며 댔다.

여러 나라의 정부들도 테러방지법과 일맥 상통하는 반테러법을 제정하고 있다. 각국의 인권 단체를 비롯한 시민·사회 단체들은 전 세계적 규모의 ‘공안 정국’ 형성을 우려하고 있다.

반자본주의 운동

언론은 9월 11일 테러 때문에 반테러법이 제정돼야 하는 것처럼 말한다. 하지만 테러가 있기 전부터 각국 정부와 보수 정당은 국민의 정치적 자유를 공격하는 법을 준비해 왔다. 지난 7월 제노바 반자본주의 시위 이후 유럽의 정부들은 ‘테러 대처’를 핑계 삼아 경찰권을 확대하고 합법적으로 시민을 감시·도청할 수 있는 법을 제정했다.

세계의 지배자들은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걸림돌인 반자본주의 운동을 공격하기 위해 ‘테러’ 정국을 이용한다. 이미 영국 정부는 급진적 반자본주의 활동가들을 ‘테러리즘 법 2000’에 의해 테러리스트라고 규정했다. 이탈리아 총리 실비오 베를루스코니는 “반세계화 운동은 테러와 일치한다”고 말했다. 또한 이탈리아 극우 정당인 북부동맹은 반자본주의 운동 조직이 “오사마 빈 라덴 테러 조직의 잠재적인 세포”라고 말하며 좌파를 테러리스트로 몰고 있다. 반테러법은 반전 운동과 반자본주의 운동을 겨냥한 반민주법이다.

미국 정부는 10월 26일 도청·감청을 확대하고 테러 활동에 가담했다고 의심되는 외국인을 기소·추방하기 전까지 구금할 수 있는 반테러법을 통과시켰다. 반테러법은 소수의 테러리스트만을 겨냥한 법이 아니다. 조지 W 부시는 이미 9월 11일 이후 1천여 명의 사람들을 구금했다. 미국 정부는 구금된 사람들에 대한 정보조차 공개하지 않고 있다. 수사당국은 테러범 색출 수사를 제3국 출신 이민자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조지 W 부시는 이들을 군사 재판하라고 지시했다. 최근 미국 정부는 보험회사의 회장을 체포했는데, 그가 테러리스트 용의자와 성(姓)이 같았기 때문이다. ‘테러와의 전쟁’은 좌파와 소수 민족 세력을 탄압하는 명분이 되고 있다. 중국은 신장 위구르 족과 티벳 족을 탄압하면서 “이들의 분리 독립을 막는 것은 세계적인 반 테러 전쟁의 일부”라고 했다. 중국 정부는 신장 위구르 자치구의 무슬림들을 모두 알 카에다와 연관이 있다며 마구 잡아들였다. 인도 집권당은 1995년 폐기된 테러분열법을 한층 강화한 테러방지법을 제정하려 한다. 인도 정부는 테러분열법을 내세워 지난 10년 간 무려 7만 5천여 명을 체포했다. 이렇듯 ‘테러’로부터 국민을 ‘보호’한다는 테러방지법은 우리를 보호하기는커녕 우리의 자유를 공격하는 법이다. 이미 30년 전 영국 보수당 정부는 반테러법을 제정했다. 보수당 정부는 1971년 8월에 3백42명의 아일랜드 가톨릭 신자들을 ‘테러리스트이거나 IRA 조직원’으로 몰아 체포·감금했다. 그러나 체포된 사람들은 사회주의자, 노동조합원, 비폭력 공민권 운동의 지도자, 평범한 가톨릭 신자 들이었다. 정작 1960년대 중반부터 자행된 가톨릭 신자 학살에 책임이 있는 왕당파 당원들은 단 한 명도 체포되지 않았다. 그러기는커녕 영국 정부는 비무장한 시위대 14명을 죽였다.

김대중이 제정하고 싶어하는 테러방지법은 군대를 동원할 수 있으므로 북아일랜드의 반테러법을 능가한다. 인권과 민주주의의 발전을 바라는 모든 사람들은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노동자, 반전·반자본주의 활동가, 시민·사회 단체 활동가 들을 ‘테러리스트’로 모는 테러방지법 제정에 반대해 싸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