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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치사 논쟁으로 보는 우크라이나 역사와 러시아 제국주의

러시아어는 특정한 장소에 있음을 나타낼 때 전치사 в(v, 브)혹은 на(Na, 나)를 쓴다. 러시아어를 배운 경험이 없는 독자들을 위해 간단히 설명하자면, 전치사 в는 주로 국가, 지명 혹은 특정한 장소 안에 있음을 나타낼 때 활용한다. 예를 들자면 한국(Корея), 중국(Китай), 일본(Япония) 등과 같은 국가명, 서울(Сеул), 부산(Пусан) 같은 도시명 등에는 주로 전치사 в가 사용된다. 전치사 на는 조금 더 협소한 의미를 가지는데, 주로 섬(제도, 군도), 반도, 지방 혹은 특정한 장소 위에 있음을 나타낼 때 활용한다. 필리핀 제도(Филиппины)나 한반도(Корейский полуостров) 등이 на와 쓰이는 대표적인 어휘들이다.

앞서 언급한 작동 원리를 생각해 보면 당연히 국가명인 우크라이나(Украина) 역시 전치사 в와 사용되어야 할 것 같다. 하지만 러시아 연방정부가 정한 공식 표기법은 на Украине로 전치사 в가 아닌 на가 올바르다고 하고 있다. 도대체 우크라이나 국명에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우크라이나’는 어디서 온 걸까?

‘우크라이나’라는 용어가 처음으로 쓰인 것은 키예프 루스(러시아,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민족의 공통조상으로 알려진 민족)에서로, 학계는 적어도 12세기부터 이 용어가 사용되었던 것으로 본다. 학계 다수설에 따르면 ‘우크라이나’라는 지명은 동일하게 표기된 ‘우크라이나’(U는 ’~근처에, ~외박에’를, Kraj는 ‘지방, 지역’을 의미한다)라는 단어에서 기인한다. 저명한 러시아어학자인 안드레이 잘리즈나크 교수가 자신에 책에서 설명한 바에 따르면, 당시 이 단어는 ‘공국 전체 주변 지역을 둘러싸고 있는 가장자리에 있는 외부 영역’을 뜻했다. 쉽게 말하자면 ‘우크라이나’라는 단어는 키예프 공국과 다른 루스 공국간 다양한 국경 지역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쓰였다. 잘리즈나크 교수가 주장한 ‘우크라이나’의 어원에 대한 설명이 다소 신뢰성이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독자들이 있을 것 같아 덧붙이자면, 이 설명에 대해서는 저명한 우크라이나 학자들인 오델리안 프리차크, 미하일 그루셰프스키, 이반 오빈코 등과 더불어 다수의 서구 학자들도 동의하는 바이다.

‘우크라이나’라는 용어가 탄생하고 거의 18세기까지 ‘우크라이나’는 뚜렷한 경계를 가진 특정한 지역과 관련 없이 ‘국경의 땅’ 정도의 의미로 사용돼 왔다. 예를 들어 ‘우크라이나’라는 용어는 12세기 기독교를 아직 받아들이지 않은 국경지역의 러시아인들에 관해 쓴 러시아어 고서에서 “…. 오늘날 그들은 국경의 땅에서(우크라이나에서) 그들의 저주받은 신 페루나, 호르스, 모코시 그리고 빌람 등을 위해 기도하며 은둔하고 있다.”(“…и ныня по украинам их молятся проклятому богу их Перуну, Хорсу и Мокоши и вилам, но творят акы оттай”)와 같이 쓰이며 그 뜻을 유지했다.

시간이 지나 루스계 집단 대부분이 루스 차르국(러시아 제국의 전신) 아래로 통일되고 루스 차르국이 폴란드-리투아니아와 국경을 맞닿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국경지역이 된 드네프르지역(현 루간스크주, 도네츠크주, 자포리지예주, 드네프로파블로프스크주 등)은 다른 ‘우크라이나’ 지방과 비슷하게 국경지대의 역할을 수행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는 잦은 전쟁으로 인한 민족 융합, 루스 차르국이 이웃 국가들과 겪었던 분쟁, 폴란드-리투아니아의 지배를 받던 일부 우크라이나계 국가들과의 교류 등 다양한 이유로 모스크바의 루스족과는 분명히 구분되는 ‘우크라이나’ 민족으로 조금씩 분리되어 갔다.

러시아 아래에서의 우크라이나 민족 억압

19세기에서 20세기 동안 러시아 제국은 범슬라브 민족주의를 자신의 영향력 확대를 위한 이데올로기로 활용하고자 우크라이나·벨라루스·러시아를 ‘하나의 민족’이라는 개념으로 묶어두려 했다. 이는 우크라이나어에 대한 연구나 교육에 대한 탄압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제국주의적 탄압은 역설적이게도 억압받던 우크라이나 민중이 자신을 중앙 러시아인들과는 다른 무엇이라는 정체성을 더욱 발전시키는 데 기여한다.

러시아 제국과 독일 제국이 피터지게 싸우던 제1차세계대전 시기, 볼셰비키와 러시아 인민의 혁명 승리로 러시아는 독일과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을 체결하고 종전을 맞게 된다.

러시아 제국의 영토였던 우크라이나 역시 독일 제국의 괴뢰국으로서 독립해 첫 우크라이나계 민족국가인 ‘우크라이나 인민공화국’이 된다. 하지만 당시 우크라이나 인민 공화국은 그 국호와는 전혀 다르게 ‘인민’이 통치하는 국가가 아니었고, 오히려 멀쩡히 굴러가던 노동자 국가인 당시 소련을 분쇄하고자 하는 백군의 영향력 아래에 있는 상황이었다. 이에 소비에트 정부가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의 폐기를 결의하고, 1920년 붉은 군대를 통해(당연히 우크라이나인도 다수 포함되어 있었고, 우크라이나 민중의 지지를 받았다) 키예프를 해방, 우크라이나 지역을 노동자들이 통치하는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이 수립된다.

유감스럽게도 레닌 사후 스탈린의 반혁명이 성공해 소련이 더 이상 노동자 국가가 아니게 되자,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공화국은 전 소비에트 연방의 산업기지 혹은 곡물수탈기지로서 착취당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 스탈린에 의해 홀로도모르(스탈린주의 소련이 도시 중심의 중공업 발전을 위해 농촌이 대부분이던 우크라이나 지역의 농업 생산물을 모조리 징발해 우크라이나 외로 반출하면서 곡창지대였던 우크라이나 지역에 대규모 아사자가 발생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가 일어나며 중앙정부에 대한 우크라이나 민중의 분노는 더욱 커져만 갔다.

러시아의 제국주의적 야망의 상징으로서의 ‘우크라이나’

이러한 역사적 맥락으로 인해 러시아어 화자들에게 단일된 민족국가를 구성하지 못했던 우크라이나는 러시아(혹은 스탈린주의 소련)의 일개 지방 정도로 인식되고 있었다. 러시아어에서도 우크라이나를 가리킬 때 국가를 수식하는 в가 아닌 на가 사용되었다.

소련이 붕괴한 1991년, 우크라이나 민중은 러시아와 구분된 우크라이나 민족국가를 구성하고자 했고 실제로 우크라이나 정부가 진행한 독립투표에서 투표자 중 92퍼센트가 독립에 찬성하면서 모스크바로부터의 독립이 이루어졌다. 마찬가지로 소련 붕괴 후 러시아 국가는 우크라이나와의 국교 수립을 위해 대사관을 설치하였으며 이때 우크라이나를 국가로 인정, 이를 표기하기 위한 전치사를 러시아 연방차원에서 공식적으로 в로 지정하게 되었다.

러시아가 소련 해체의 혼란을 수습하고 그 제국주의적 팽창 야욕을 다시금 드러내는 오늘날, 우크라이나를 수식하는 전치사는 독립 당시와는 달리 다시금 на로 변경되었다. 우크라이나의 러시아어 화자들은 반발했고 여전히 우크라이나에서는 우크라이나를 수식하는 전치사를 в로 사용하고 있다. 러시아어 화자가 많은 우크라이나를 지칭하는 전치사를 우크라이나 민중과 심지어는 러시아 민중의 의견 수렴도 거치지 않고 정부가 독단적으로 변경한 것이다. 러시아 정부의 일방적인 문법 규칙 변경은 너무나 상식적이지 못했다. 러시아의 공식 입장은 ‘역사적 용례를 살펴볼 때 на가 타당하다’라는 것이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제국주의적 행태를 소수 민족 억압 정책이라고 볼 순 없지만, 전치사 논쟁은 우크라이나를 자신의 제국주의적 영향력 아래에 두려는 러시아 지배계급의 야망을 상징한다. 러시아가 최근에 벌이고 있는 우크라이나 침공이나(푸틴은 침공 초기 우크라이나 민족이 러시아의 일부라는 역사관을 대놓고 드러내기도 했다) 과거 러시아 제국의 영토였다는 이유로 크림반도를 강탈한 사건 등 러시아의 제국주의적 행보는 모두 이를 증명하고 있다.

정리하자면, 러시아 정부의 의도적인 전치사 표기 방식 변경은 러시아어 화자들로 하여금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일개 지방쯤으로 인식하도록 만들고 지배자들이 우크라이나에서 벌이는 제국주의적 행보를 합리화시키기 용이하도록 만드는 밑밥 뿌리기인 것이다.

계급과 언어

흔히 언어를 계급을 초월해 모두의 합의가 반영된 사회적 소통 수단 정도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물질적 토대와 계급 관계는 분명히 언어에 영향을 미친다. 우크라이나 전치사 논쟁이 이를 보여 준다. 언어라는 수단을 통해 대중의 의식에 제국주의적 이데올로기를 심고자 하는 지배계급의 술수를 간파해야 하는 이유이다. 이를 위해서는 제국주의적 이데올로기의 근원인 자본주의를 분쇄해야 한다. 우리 모두 함께하자.

언어의 본질이나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에서 언어에 대해 더 분석해 보고 싶다면 2008년 이기웅 경북대 노어과 교수가 쓴 글(마르크스주의와 언어)을 참고해 봐도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