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선거, 진보 진영의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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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선거, 진보 진영의 도전
김인식
끊임없는 부패 추문은 여권의 선거 전망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민주당이 대중의 환멸과 비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당 ‘쇄신’을 시도하는 상황에서조차 비리의 사슬 고리는 끊이지 않고 있다. 최근의 부패 스캔들에는 핵심 권력 기관들(청와대, 검찰, 국정원, 경찰 등)이 연루돼 있다. 그만큼 김대중 정권은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집권당의 부패는 다가올 선거들에서 결정적 변수가 될 전망이다. 여기에 대중 교통, 의료, 교육 등 공공 서비스의 악화가 추가될 것이다. 결정적으로, 사기업화와 정리해고가 낳은 노동 대중의 불만은 김대중 정부의 ‘정권 재창출’을 가망 없는 목표로 만들고 있다. 1997년에 노동 대중은 김대중 정부의 정권 장악에 중요한 구실을 했다. 지금 한때 김대중에 투표했던 사람들은 김대중과는 다른 진보적 또는 좌파적 대안을 모색하고 있다. 2002년은 이 나라의 모든 정치 세력들에게 전장터가 될 것이다. 한나라당은 민주당의 실패와 인기 하락으로부터 반사 이익을 챙기려 할 것이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10·25 재선거에서 승리했다는 이유로 대중의 경계 대상이 되는 모순된 처지에 있다. 많은 사람들은 한나라당의 수구적 성격을 혐오한다. 민주당과 한나라당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고 있는 자민련도 또 다른 수구 정당이다. 모든 주요 우파 정당들은 똑같은 문제를 안고 있다. 김대중 정부의 지지도 하락은 다름 아닌 현 정부의 친시장 정책에 대한 누적된 반감과 환멸의 결과다. 그런데 김대중의 친시장 정책은 다른 모든 우파 정당들이 공유하고 있는 정책이다. 좌파들은 김대중 정부에 대한 반감 정서와 저항 분위기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 민주노동당의 선거 도전은 이 전략의 중요한 일부가 될 수 있다. 선거가 가까워질수록 김대중 정부에 대한 심판의 목소리는 더욱 거세질 것이다. 노동조합 투사들, 민중 운동가들, 시민단체 활동가들, 단일 쟁점 운동가들, 수많은 평범한 노동자들이 앞으로 이 논쟁에 빨려들 것이다. 노동자 운동 내 주요한 논쟁 가운데 하나는 민주당 정권과는 다른 대안을 어떻게 건설할 것인가 하는 점에 맞춰질 것이다. 이것은 지난 몇 년 동안 사회 저변에 도도하게 흐르고 있는 정치적 급진화의 물결이 제기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좀더 직접적으로는, 1999년 말 위대한 시애틀 시위 이후 좌파들의 의제를 지배해 온 반자본주의 급진화 문제와 관련돼 있기도 하다. 워싱턴, 미요, 멜버른, 프라하, 예테보리(고덴부르크), 제노바, 브뤼셀로 이어진 반자본주의 시위는 현대 자본주의의 탐욕스러운 신자유주의 정책을 반대했다. 김대중은 신자유주의 정책의 전도사를 자임했다. 따라서 평범한 사람들의 신자유주의 반대 정서는 불가피하게 김대중 정부의 신자유주의 옹호와 충돌을 빚게 된다. 그 동안 노동자 운동은 김대중 정부의 우선 순위에 도전했다. 아래로부터의 저항은 2002년 두 차례 선거(지방자치단체 선거와 대통령 선거)에서 김대중 정부에 대한 선거적 도전이라는 형태를 취할 가능성이 크다.
대중 투쟁과 선거
김대중 정부에 도전하는 데서 파업과 대규모 시위 같은 대중 투쟁이 가장 훌륭한 수단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이런 투쟁을 통해 광범한 노동자 층이 정치화 과정을 겪을 수 있다. 투쟁의 규모가 클수록 정치적 파급 효과와 영향 또한 심대하다. 그런 투쟁에 참가했던 일부는 근본적이고 급진적인 대안을 찾으려 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많은 노동자들은 투쟁에서 제기된 쟁점들을 해결하기 위해 여전히 선거에 의존하려 하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노동자들의 모순된 의식 때문이다. 노동자들의 모순된 의식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들이 처한 모순된 사회적 지위 때문에 생겨난다. 노동자들의 집단적 노동은 사회적 생산의 기초다. 노동자들의 노동이 없다면 우리 사회는 단 일주일도 제대로 굴러가지 않을 것이다. 그런만큼 노동자들에게는 사회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는 엄청난 잠재력이 있다. 자본주의의 운명은 노동자 계급의 정치적·경제적 행동에 달려 있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생산수단을 이용할 수 있는 권리가 없다. 임금 수준, 노동 시간, 노동 형태, 노동 조건을 주로 고용주들이 결정한다. 고용주들에게 노동력을 팔아야만 한다는 사실 때문에 노동 시장의 변덕에 직면해 노동자들은 자기 자신을 무기력하다고 여긴다. 즉, 자기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수 없다고 느끼는 것이다. 이것이 노동 계급의 머리 속에 존재하는 모순된 의식의 근원이다. 그리하여 대중의 의식에는 사회를 변화시킬 필요가 있긴 하지만 그런 변화는 체제가 설정한 경제적·정치적 제도 안에서 일어나야 한다는 생각이 공존한다. 그 때문에 노동자 집단이나 한 노동자의 머리 속에서 대중 투쟁과 선거는 모순을 겪지 않고 얼마든지 공존할 수 있다. 심지어 심대한 사회 변혁 시기에조차 대중은 여전히 선거를 주요한 사회 변화의 수단으로 여기기도 한다. 1918년 러시아 제헌의회 선거와 1968년 프랑스 총선거처럼 말이다. 한편, 선거는 계급 투쟁이 벌어지는 결정적 장소는 아니지만 계급 투쟁을 부분적으로 반영한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선거에 관심을 갖는다는 것은 계급 이익의 충돌이 선거에 반영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선거는 계급 투쟁이 벌어지는 (덜 중요한) 하나의 무대라 할 수 있다.
선거는 계급 세력 저울을 반영하는 축소판이기 때문에 선거는 사회 위기에 대한 정치적 책임과 위기를 극복하는 데 필요한 행동과 조직 형태를 둘러싼 논쟁을 불러 일으킨다. 이 논쟁에 노동자들을 끌어들여 노동 계급의 조직과 의식을 강화하는 데 선거를 얼마간 이용할 수 있다. 결정적으로, 노동자들이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불만을 치료하기 위해 선거에 기대는 한 우리는 선거에 적극 개입해 우리의 주장에 귀를 기울이는 청중을 발견해야 한다. 이럴 때 우리가 그런 쟁점들을 다루고 그들과 함께 활동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일 것이다.
좌파적 도전
아마 많은 사람들은 기성 정치에 너무 환멸을 느낀 나머지 투표하지 않을 것이다. 2000년 4월 총선 투표율은 총선 사상 최저인 57.2퍼센트를 기록했다. 그만큼 기성 정치에 대한 대중의 불신이 크다. 우리는 이런 사람들과 접촉해야 하며 좌파의 대안이 기성 정치인들과 매우 다르다는 것을 보여 줘야 한다. 또, 어떤 이들은 민주당의 ‘개혁적’ 버전(예컨대 노무현이나 김근태 등)을 지지할지도 모른다. 대중의 의식은 갑자기 도약하지 않기 때문이다. 마르크스는 “죽은 세대의 전통은 마치 악몽처럼 산 사람들의 마음을 떠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옛 것은 사라졌지만 새 것이 아직 등장하지 못했거나 미성숙한 상황에서는 더더욱 그럴 것이다. 이런 상황이 민주당이 아닌 좌파적 대안보다는 민주당 내 ‘개혁적’ 버전을 상대적으로 현실적인 것처럼 비쳐지게 할 수 있다. 때문에 민주당에 대한 반감이 민주노동당에 대한 광범한 지지로 곧장 연결되지 않을 수 있다. 그럼에도 대중이 민주당의 ‘개혁적’ 인물들에게 기대를 거는 것은 이 사회에 모종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믿음을 얼마간 반영하는 것임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민주당의 ‘개혁적’ 인물들이 별볼일없다는 것과 그들을 지지하는 대중의 정서는 반드시 구별해야 한다. 우리는 이런 사람들과 함께 활동하면서 민주당의 ‘개혁적’ 버전이 아니라 진보 진영이 사회 변화를 위해 더 나은 수단이라는 주장을 해야 할 것이다. 이 점에서 2000년 미국 대통령 선거는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 줬다. 미국에는 사회민주당이 존재하지 않는 데다 노동조합도 허약하다. 그러나 미국에서조차 아래로부터의 도전이 오돗이 기성 정치 체제 안으로 흡수되지 않았다. 랠프 네이더의 녹색당은 선거 캠페인 과정에서 반자본주의 시위대의 요구들을 담았다. 그 결과 양당 체제가 확립된 미국에서 랠프 네이더는 2백80만 표를 얻어 전국적으로 3퍼센트의 지지를 획득했다. 그는 약 10개 주에서는 5퍼센트 이상의 지지를 얻었다. 또, 야생동물 보호 구역에서 원유 시추를 위한 석유 회사들의 굴착 권리가 쟁점이 되고 있는 알래스카에서는 10퍼센트의 지지를 얻었다. 비록 사표 논리의 압박을 받았지만, 네이더의 득표는 미국인들이 느끼고 있는 대안에 대한 갈증을 보여 줬다. 민주노동당은 2000년 총선에서 민주당도 한나라당도 아닌 좌파적 도전의 잠재력을 언뜻 보여 줬다. 당시 민주노동당은 21명의 후보를 내 22만 3천여 표를 얻음으로써 후보자를 낸 지역에서 13.1퍼센트(전체 득표율 1.18퍼센트)라는 비교적 높은 평균 득표율을 올렸다. 특히, 노동자 밀집 지구인 울산과 창원에서 30퍼센트를 득표했다.
2002년은 좌파들에게 시험대이자 기회가 될 수 있다. 지금 노동 대중은 김대중 정부를 심각하게 불신할 뿐 아니라 우파 정당인 한나라당의 부상을 잔뜩 경계하고 있다. 두 주요 정당은 대중으로부터 불신받고 있다. 다가올 선거에서 민주노동당이 최대한 많은 표를 얻어 두 정당에 대한 좌파적 반대를 시위할 필요가 있다. 한때 김대중과 민주당에 투표했다 환멸을 느끼고 등을 돌린 사람들은 새로운 대안을 갈망하고 있다. 우리는 이런 사람들을 끌어당길 필요가 있다. 그들에게 우리와 함께 김대중 정부에 맞서 싸우자고 설득할 필요가 있다. 물론 함께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함께 활동하려 애써야 한다. 우리는 전 세계적으로 새로운 급진화 물결이 요동치는 시기에 살고 있다. 2002년 양대 선거는 광범한 급진화 물결 가운데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할 것이다. 우리는 이런 급진화 속에 있어야 한다. 그래야 성장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퇴보할 것이다. 성장을 위해 우리는 지금 상황에 걸맞은 활동 방식을 채택할 필요가 있다. 오늘날의 정치 상황은 좌파가 고립을 강요받는 침체기가 아니다. 지금은 우리가 대중의 관심사를 정확히 포착해 참을성 있게 대화한다면 비교적 많은 사람들을 우리 주위에 끌어당길 수 있는 시기다. 그러러면 주 1회 정기 모임과 정기 판매에만 전적으로 의존할 게 아니라 “다함께” 회원 개개인들이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활동하고 그들과 함께 운동을 건설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다 보면 그 중 일부 사람들은 우리의 정치와 관점을 토론하고 싶어할 것이다. 그럴 때 〈다함께〉를 판매하면 된다. 그 반대로 〈다함께〉 구독자만을 우리의 청중으로 한정하는 것은 “다함께”의 외연 확대에 장애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