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의 해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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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의 해방
김명진
사람들은 크리스마스가 종교 행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요즘의 크리스마스 축하 행사는 엄청난 상품 소비 행사이기도 하다. 미국의 경우 크리스마스 기간의 매출액이 1년 전체 매출의 40퍼센트를 차지한다.
그래서 몇몇 경건한(?) 사람들은 이 시대의 물질주의를 비판하면서, 진정한 종교적 의미로 크리스마스를 축하해야 한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지금 상황은 영성이나 도덕성을 개인의 구원의 문제로만 생각하는 기성 기독교와 관련이 있다. 기독교가 개개인의 영적 구원에만 몰두함으로써 영성이나 도덕성은 개인적인 일로 치부되고 그럴수록 개인이 추구하는 목적이나 가치는 거대한 기업들에 더 많이 좌우되게 됐다.
오늘날 크리스마스 트리와 산타클로스, 루돌프 사슴 그리고 TV나 영화 등에서 나타나는 여러 동화적 이미지와 함께 예수 탄생의 역사적 의미는 거의 무의미한 팬터지가 되어 버렸다. 하지만 복음서의 내용은 정말 종교적인 의미뿐일까? 복음서 저자들은 종교적인 의미로만 복음서를 작성했을까? 종교를 정치·경제 등과 분리하는 사고 방식은 분명 현대에 이르러 확립된 생각이다. 성서가 씌어진 고대 사회는 삶의 다양한 차원을 분리하지 않았다. 성서에는 오늘날의 “종교”에 해당하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성서를 읽는 우리들이 성서를 단지 종교적인 것으로 해석하려고 한다면 그것은 성서를 왜곡하는 것이다. 리차드 호슬리의 책 《크리스마스의 해방》(다산글방, 2000년)은 성서, 특히, 예수의 유아기 설화를 고대 사회의 맥락에서 이해하도록 도움을 준다.
예수의 유아기 설화는 신약 성서 중에서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나오는 내용이다. 호슬리는 마태와 누가의 예수 탄생 설화는 당시 로마 지배 계급의 정치 · 종교에 대항한 피지배 계급의 정치 · 종교적 의미를 담고 있다고 주장한다.
먼저 누가복음을 살펴보자. 누가복음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의 로마 사회를 좀더 자세히 살펴 봐야 한다. 누가복음에 나오는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는 당시 세상을 평정하고 전 세계에 평화를 가져다 준 “구원자”로서 칭송받았다.
아우구스투스가 악티움 해전에서 승리를 거두기 전 몇 세대 동안 지중해 동쪽 지역의 사람들은 끊임없이 계속되는 정치적 갈등과 혼란을 겪었다. 폼페이우스의 정복에 이어 동쪽으로 파르티아 제국 정벌 전쟁이 일어났으며, 다음에는 로마 전역에서 몇 십 년 동안 계속된 내전이 있었다. 로마 공화국의 분열과 더불어 주변 세계도 분열을 겪고 있었고, 악티움 전투에서 아우구스투스가 안토니우스에게 승리함으로써 아우구스투스는 이 세상에 평화와 질서를 가져온 최초의 인물이 될 수 있었다.
섭리가 우리의 삶을 최고선(最高善), 즉 아우구스투스로 장식했으며 … 또한 섭리의 자비로 인해 우리와 우리 다음 세대들에게 [구원자를] 허락하시어 그는 전쟁을 그치게 하고 모든 일에 [평화로운] 질서를 세우실 것이기에, 우리의 신의 탄신일이 그로 인한 세상의 기쁜 소식의 시작을 알리게 됐으므로 … 아시아의 그리스인들은 모든 도시에서 9월 23일에 신년이 시작되는 것으로 반포하며 … 첫 달은 씨이저의 달로 지킬 것이며, 씨이저의 탄신일인 9월 23일로부터 시작할 것이다.(존 도미닉 크로산, 《역사적 예수》, 한국기독교연구소, 2000년, 96쪽에서 재인용.)
그렇게도 열망했던 평화를 이룩한 아우구스투스를 향해서 찬사와 경탄이 쏟아졌고, 이런 분위기는 그 후 몇 세기 동안 계속됐다. 특히, 지중해 동쪽 지역에서 받은 신적인 영예는 훨씬 깊은 종교적 특징을 띠고 있었으며, 그 개념은 우주적이고 존재론적인 차원이라고 할 수 있다. 유대 문화권과 그리스 · 로마 문화권에서 정치와 종교는 분리될 수 없었으며, 구원자 아우구스투스 케사르가 함축하는 의미는 분명 종교적인 것이었다.
하지만 이런 로마의 평화는 모든 곳에서 동일하게 받아들여진 것은 아니다. 예수가 죽은 지 약 30년 후에 일어난 유대 전쟁에 대한 묘사는 피지배자들이 로마의 “평화”를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보여 준다.
뛰어난 용사들은 모두 전사하고 남은 사람들은 나이를 막론하고 길거리에서, 집안에서 학살당했다. 젖먹이 아이들을 제외한 모든 남정네들을 살려두지 않았다. 로마인들은 그 아이들과 여자들을 노예로 팔아 버렸다. 살육당한 사람의 수는 … 1만5천 명에 달했고, 잡혀간 사람들의 수는 2천1백30명을 헤아렸다.(리차드 호슬리, 《크리스마스의 해방》, 다산글방, 2000년, 69쪽.)
로마 군대는 “초토화 정책”을 체계적으로 진행했고, 진군해 오는 군대를 피해 달아나지 못한 사람들은 죽거나 노예가 됐다. 도망간 사람들도 기병대의 사냥감이 됐다. 예컨대 페레아에서 “그들이 휩쓸고 지나간 지역은 모두 대학살의 현장이 됐고, 요단 강은 시체로 메워졌다.”(앞의 책, 69쪽)로마의 “평화”라는 것이 이러한 약탈과 방화, 살육, 노예 징발 등에 기초하고 있었고, 그 평화는 예수의 유아기 설화가 형성되고 있던 유대 사회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로마 제국의 통치와 유대 민중 간의 일상적인 긴장 관계는 로마가 요구한 조세 문제가 가장 핵심이었다. 유대의 농민들은 안식년을 제외하고는 매년 생산되는 작물의 대략 12.5퍼센트를 세금으로 바쳤다. 물론 로마 황제에게 세금을 바친다고 해서 예루살렘 성전 계급에게 바쳐야 할 십일조라는 경제적인 부담이 줄어든 것은 아니었다.
게다가 외국 지배자들에게 세금을 낸다는 것은 당시 경건한 유대인들에게는 하나님에 대한 불충을 의미했다. 메시아적 왕의 전형인 다윗왕이 인구 조사를 실시했을 때도 하나님은 그를 혹독하게 벌한 적이 있었다(삼하 24장). 따라서 로마의 통치에 맞서 일어난 1세기 유대 저항 운동의 초점이 조세 문제였다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그런데 누가복음은 예수 탄생의 배경을 바로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명령에 의한 인구 조사에 두고 있다. 예수의 부모들은 이 인구 조사 때문에 다윗의 고향이며 메시아가 나올 베들레헴으로 이동하게 된다. 당시의 지배 계급은 신적 존재인 아우구스투스의 승리를 “온 세상을 위한 복된 소식”으로 경축하지만 누가복음에 나타나는 하느님의 사자는 가난한 자들과 함께하는 예수의 탄생을 “복된 소식”이라고 선포한다.
다음은 마태복음의 이야기다. 여기에서는 유대 분봉왕 헤롯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헤롯은 로마의 도움으로 유대의 왕(분봉왕)이 됐다. 당시 로마는 동방에서 세력을 넓히고 있던 파르티아 제국을 견제할 필요가 있었고, 유대를 최전방 기지로 삼으려 했다. 로마는 친로마적인 헤롯을 이용하여 그 일을 이루었다. 헤롯은 로마 군대의 도움을 받아 파르티아 제국의 지원을 받는 유대인 경쟁자를 꺾을 수 있었다. 그리고 곳곳에서 펼쳐진 강력한 저항 운동을 진압하여 “자기 왕국”을 정복했다.
헤롯은 스스로를 “로마인 숭배자” 혹은 “로마 황제 숭배자”라 부르면서 로마 황제에게 바치는 신전과 기념물들로 나라 안을 가득 채웠고 로마 황제에게 유례가 없을 정도로 온갖 선물과 기부금을 아낌없이 갖다 바쳤다.
헤롯의 무모함과 엄청난 기부금은 과시적인 행동에 익숙했던 고대인들에게조차 놀라운 일이었다. “로마 황제 자신과 아그리파는 헤롯 왕국의 영토는 헤롯의 대범함에는 못 미친다는 말을 종종 했다고 한다.”(앞의 책, 91쪽.)그렇다면 대규모 건축 사업과 기부금 등의 자원은 어디서 나왔겠는가? 헤롯 왕의 과도한 지출로 유대 소작농들이 엄청난 부담을 떠맡게 됐다. 십일조와 로마의 세금, 그리고 소작료의 양은 어마어마했으며 여기에 헤롯의 과도한 지출은 소작농들에게 추가적인 요구 사항이 됐다.
이러한 과도한 부담으로 생기는 불만이 공공연한 저항으로 발전하지 못하도록 헤롯왕은 일련의 성곽, 요새화된 궁전을 건립 또는 증축했다. 게다가 충성 서약, 감시, 밀고자, 투옥, 고문, 반대파에 대한 잔인한 보복 등을 통해 오늘날 우리가 경찰 국가라 부르는 체제를 구축했다.
이런 사실들로 미루어 보건대, 마태복음 2장 16절에 나타나는 끔찍한 유아 살해는 헤롯 치하에서 일어났을 법하다. 물론 마태복음은 한 아이가 “유대인 왕”으로 태어났는데 이는 곧 현재의 왕인 헤롯에게서 백성을 구하기 위함이라는 사실에 뿌리를 두고 있다. 게다가 헤롯 왕의 폭정을 피해 이집트로 피신했다가 이스라엘로 다시 돌아오는 예수의 여정은 포악한 왕으로부터의 탈출이라는 모세의 원형적 이야기를 나타내고 있다.
따라서 리차드 호슬리는 “예수가 선포한 하나님의 통치는 로마 황제 및 헤롯의 통치와 갈등 관계에 있으며, 나아가 그들에 대한 심판을 의미한다. 예수에 대한 재판에서 그에게 붙여진 혐의는 가짜가 아니라 진짜”(앞의 책, 229쪽.)이며, “선포된 하나님의 혁명적 행위가 종말론적 구원이 아니라 역사적 구원을 가리킨다는 것을 분명히 인식”(앞의 책, 215쪽.)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계급 사회에서 피지배 계급은 지배 계급의 사상을 완전히 수용하지 않는다. 피지배 계급은 지배 계급의 사상을 뒤틀고, 비꼬고 때론 거부한다. 하지만 지배 계급의 사상을 거부한다고 해서 곧바로 변혁적 의식과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나는 역사적 예수의 삶과 복음서 저자들이 의미했을 예수의 삶이 정치 혁명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성서의 내용과 성서학자들의 연구 결과들은 분명 혁명가로서의 예수를 거부하는 것이다. 내가 보기에 예수의 메시지는 당시 농민들이 갖고 있던 저항 의식을 좀더 급진적으로 나타내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게 타당하다.
하지만 리차드 호슬리의 책은 예수의 유아기 설화를 “신화”로 치부하려는 합리주의적 경향과 또 그것을 “크리스마스의 축제”라는 문화적 컨텍스트로 길들여 놓으려는 경향을 걷어내어, 우리로 하여금 그 이야기를 해방의 이야기 즉, 착취와 억압으로부터 민중이 해방되는 이야기로 읽을 수 있게 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