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슈미르 - 미국의 전쟁이 부른 또 하나의 야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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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슈미르 - 미국의 전쟁이 부른 또 하나의 야만
이수연
각각 60여 기와 48기의 핵탄두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인도와 파키스탄 두 나라가 점점 전쟁 일보직전으로 치닫고 있다. 아프가니스탄을 상대로 한 미국의 보복 전쟁은 서남아시아의 불안정을 증폭시켜 그 지역에서 전쟁 위협을 고조시켰다. 지난해 12월 13일 인도에서 국회 의사당 폭탄 테러 사건이 발생하자 인도 정부는 그 배후 세력으로 파키스탄의 지원을 받는 이슬람 무장조직들을 지목하고 실제로는 파키스탄을 겨냥한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올해 1월 11일에 카슈미르 곳곳에서 인도군과 친파키스탄계 이슬람 무장조직 사이에 교전이 벌어져 17명이 사망했다. 인도령 잠무 카슈미르와 파키스탄령 아자드 카슈미르를 나누는 이른바 ‘통제선’을 따라 포격전이 계속되면서 이미 5만여 명이 피난을 떠났다.
1947년 인도의 독립과 파키스탄 국가의 창설 이래로 양국은 50년 넘게 카슈미르를 둘러싸고 충돌을 거듭해 왔다.
구실
냉전 시기에 인도는 겉으로는 비동맹·중립 노선을 표방했지만, 실제로는 옛 소련 진영과 군사적·경제적 연계를 맺고 있었다. 이에 맞서 파키스탄은 그 지역에서 유일하게 인도의 군사력에 필적할 만한 강대국인 중국과 제휴했다. 1970년대 초에 중국이 미국과 가까워지면서 미국·중국·파키스탄의 동맹은 더욱 강화됐다.
옛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한 1979년에 미국이 파키스탄 군부 독재 정권을 이용해 아프가니스탄의 무자헤딘 게릴라들을 지원하면서 두 나라의 유착은 절정에 이르렀다. 그러나 1989년에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끝나고 1991년에 소련이 해체되자, 파키스탄은 미국에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됐다. 미국은 파키스탄의 군부 정보기관인 ISI를 통해 탈레반의 성장을 지원하긴 했지만, 군부 독재의 뒤를 이어 집권한 파키스탄의 민간인 지배자들은 더 이상 미국의 주목을 끌지 못했다. 1990년대 들어 미국의 빌 클린턴 행정부는 주요 “신흥 시장”으로 부상한 인도 쪽으로 점점 더 기울었다. 1998년 5월 인도와 파키스탄의 경쟁적 핵무기 실험 뒤에 미국은 양국에 경제적·군사적 제재를 가했다. 그러나 미국의 제재는 파키스탄에 더 큰 타격을 주었다. 그러다가 지난해 9·11 테러 사건이 터졌다. 그러자 파키스탄의 군사 독재자 페르베즈 무샤라프는 미국의 대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지원하는 것말고는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했다. 무샤라프는 IMF 차관을 비롯한 미국의 아낌없는 원조로 보상받았다. 하지만, 전쟁 결과는 파키스탄에 유리하지 않았다. 파키스탄과 경쟁 관계에 있는 인도·이란·러시아의 지원을 받고 있는 북부동맹이 아프가니스탄을 지배하게 된 것이다.
한편, 카슈미르 문제에서 미국이 인도의 손을 들어주기는 했지만 인도 지배자들은 내심 불안해 했다.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계기로 미국과 파키스탄의 관계가 급속히 호전된 것이다. 인도는 카슈미르에서 파키스탄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탈레반이 훈련시키고 파키스탄 군대가 지원하는 급진 이슬람 게릴라들의 공격은 인도 총리 아탈 비하리 바지파이에게 그럴 듯한 구실을 제공했다. 미국의 부시 행정부가 “테러와의 전쟁”을 밀어붙이면서 그랬던 것처럼, 바지파이는 인도를 테러의 피해자로 보이게 하려 애썼다. 이런 상황에서 12월 13일의 인도 의사당 테러 공격은 바지파이에게는 선물이나 다름없었다. 인도와 파키스탄의 갈등이 전면전으로 치달을지는 두고 봐야겠지만, 그 지역에서 위험하고 낭비적인 무기 경쟁이 격화될 것임은 분명하다. 결국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은, 그렇지 않아도 두 핵무기 보유 국가의 충돌 위협에 시달리던 그 지역을 더욱 불안정하게 만들었다.
카슈미르
인도와 파키스탄의 분쟁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이 희생된 카슈미르 지역의 인구는 약 1천2백만 명이다. 그 중 9백만 명은 남부의 잠무 카슈미르에서, 3백만 명은 북부의 아자드 카슈미르에서 산다. 잠무 카슈미르를 점령하고 있는 인도군의 탄압이 너무나 가혹해서, 인도에 편입되기를 바라는 카슈미르인조차도 등을 돌릴 정도였다. 이런 탄압에 맞서 급진 이슬람 게릴라들이 살인·납치·폭파를 자행하기 시작한 것은 옛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개입이 끝난 1989년부터였다.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승리한 뒤에 파키스탄 군부는 지금까지 세 차례에 걸친 인도·파키스탄 전쟁에서 모두 패배했던 치욕을 되갚고 싶었다. 그래서 그들은 카슈미르의 이슬람 게릴라들을 적극 지원했다.
인도 지배자들은 무자비한 탄압으로 대응했다. 1990년 초에 잠무 카슈미르 주지사로 부임한 자그모한은 도시 ‘환경 미화’라는 명목으로 무슬림이 거주하는 빈민가를 불도저로 밀어 버렸다. 자그모한은 팔레스타인인들을 억압하는 이스라엘 경찰을 칭찬하면서, 카슈미르를 힌두교도가 완전히 지배하는 곳으로 만들려 했다. 수많은 청년들이 게릴라 혐의로 연행되고 고문당하고 때로는 살해당했다. 경찰의 발포로 수백 명의 시위대가 희생됐다. 시민적 자유는 일절 말살됐고, 사람들은 아무 데서나 잡혀가 신문를 받거나 살해당했다. 국제사면위원회(앰네스티 인터내셔널)에 따르면, “잠무 카슈미르의 야만적인 고문은 상상을 초월한다. 고문당한 사람들은 평생 불구의 몸으로 살아야 한다.” 하지만 이런 탄압은 힌두교도들에게도 고통을 안겨 주었다. 10만 명 이상의 힌두교도들이 폭탄 공격을 받게 될까 봐 두려워 카슈미르를 떠나야 했다.
게릴라 투쟁이 시작되고 나서 6년이 지난 1995년에 정신 이상자는 1989년보다 20배나 많아졌다. 인도가 영국의 식민 지배 방식과 똑같은 방식으로 카슈미르를 통치하는 한 그 지역에는 평화가 찾아오지 않을 것이다. 카슈미르인들이 인도의 점령에 맞서 싸우는 것은 완전히 정당하다.
하지만 파키스탄의 지배자들이라고 해서 더 나은 것도 아니다. 그들은 카슈미르 민중의 권리를 위한 것이 아니라 카슈미르의 파키스탄 편입을 위해 무장조직들을 만들고 지원해 왔다. 파키스탄 정부는 또 발루치스탄이나 북서 변경주, 아자드 카슈미르 같은 자국 내 소수 집단들을 탄압해 왔다. 이슬람교의 일파인 시아파도 탄압 대상이다.
이데올로기 효과
인도와 파키스탄의 지배자들은 모두 카슈미르의 독립은 아예 고려조차 하지 않는다. 둘 다 카슈미르의 영유권을 주장하면서 한치도 양보하지 않는다.
인도가 카슈미르를 포기할 수 없는 이유는 그 지역이 인도의 북부 방어선에서 전략적 요충지이기 때문이다. 히말라야의 북서쪽 끝에 위치한 카슈미르 계곡은 인도를 침공하는 북쪽 침입로가 될 수 있다. 스리나가르가 무너지면 다음 차례는 델리다.
그러나 인도가 진정으로 두려워하는 것은 중국이나 러시아이지, 파키스탄이 아니다. 1962년에 인도는 중국과의 국경 분쟁에서 패배해 카슈미르의 북동쪽 끝 지역(라다크)을 중국에 빼앗겼다. 오히려 파키스탄은 인도에 큰 위협이 되지 못한다. 인도의 인구는 파키스탄의 7배, 생산력은 8배, 화력은 5배 이상이다. 핵무기를 고려하더라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카슈미류 지역이 파키스탄에 중요한 것은 전략적 위치 때문이 아니다. 인도가 침공할 때든 러시아나 중국이 파키스탄을 침공할 때든 카슈미르는 특별히 중요한 통로가 아니다. 인도가 파키스탄을 침공하려 한다면 약 2천9백 킬로미터에 달하는 국경선 어디서든 쉽게 공격할 수 있다. 카슈미르가 파키스탄에 중요한 것은 주로 이데올로기 때문이다. 파키스탄의 지배자들은 “힌두교도의 지배”에서 “무슬림”을 구출하기 위해 파키스탄 국가가 존재한다고 공언하면서, 인도가 카슈미르를 계속 지배하는 것은 참을 수 없는 모욕이라고 주장한다. 그런 모욕을 국내의 권력을 유지하고 정당화하는 데 이용한다. 그들은 카슈미르를 점령하고 있는 인도군과 힌두교도의 위협이 계속되고 있으므로 파키스탄의 종교적·사회적 통일을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대중의 지지를 얻으려 한다. 인도의 힌두 민족주의자들에게도 카슈미르 분쟁은 동일한 효과를 낸다. 즉, 무슬림을 적대시하면서 무슬림과 힌두교도 노동자들을 분열시키는 것이다. 지금 인도에 거주하는 무슬림의 수는 파키스탄의 무슬림보다 더 많다. 1947년 독립 전에 인도의 무슬림은 모든 사회 계급에 걸쳐 존재했지만 지금은 억압당하는 소수로 전락해, 힌두 민족주의자들에 의해 주기적으로 희생양이 되고 있다. 1998년에 극단적인 힌두 민족주의 정부가 들어선 이래로 인도에서도 카슈미르 분쟁의 이데올로기적 측면이 점차 중요해졌다. 인도의 집권당인 바라티야 자나타당(인도인민당)은 오는 2월에 우타르프라데시 주의 선거를 앞두고 있다. 1억 6천만 명이 거주하는 우타르프라데시 주는 인도 최대의 주일 뿐 아니라 인도인민당의 핵심 근거지이기도 하다. 인도인민당은 인종 차별을 이용해 국내의 저항을 비켜가고 무슬림에 대한 폭력 사태를 조장하고 있다. 의사당 테러 사건 전에 인도인민당의 지지율은 바닥을 헤매고 있었다. 그들이 카슈미르를 포기하거나 카슈미르에서 퇴각한다면 선거에서 참패하기 십상이다. 그것은 아샘이나 펀잡 같은 다른 지역의 분리주의 운동들을 더한층 가속시키는 결과도 낳을 것이다.
파키스탄의 무샤라프는 1999년 10월에 집권하면서 2002년 10월 민정 이양을 약속했었다. 그러나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파키스탄 군부가 만들고 키워 온 탈레반 정권을 붕괴시키는 결과를 낳음으로써 군부 내에 불만 세력을 만들어 냈다. 이제 탈레반 정권은 사라졌고 무샤라프는 미국과 인도의 압력 외에 정권 유지를 위해서라도 전투적인 이슬람 조직들을 단속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서 강경 이슬람 무장조직 활동가들을 대거 체포하고 있다. 다른 한편, 그는 카슈미르 분쟁에서 더욱 강경한 입장을 취해야 한다는 압력에도 시달리고 있다. 그러지 않으면 군부 내에서 그의 입지는 더욱 좁아질 것이고, 2년 3개월 전에 나와즈 샤리프 총리를 쫓아냈던 군사 쿠데타가 재발해 자신을 권좌에서 몰아낼 수도 있다. 오늘날 카슈미르의 민중에게 자유와 평화를 보장할 수 있는 유일하게 진보적인 대안은 힌두교도와 무슬림, 인도와 파키스탄 민중 간의 우애와 단결이다. 지금 카슈미르 통제선 양쪽에서는 평범한 사람들이 그 지배자들 대신 대가를 치르고 있다. 인도와 파키스탄 사이에 전면전이 벌어진다면 그들의 고통은 더욱 커질 것이다. 카슈미르를 차지하기 위해 서로 싸우는 인도나 파키스탄 가운데 어느 한 편을 드는 것이 아니라 자국 지배자들에 대항해 싸우는 것이야말로 카슈미르 민중의 진정한 대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