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과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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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과 정치
김인식
축구는 세계적으로 인기 있는 ‘대중 스포츠’다. 수많은 사람들이 세계 3대 프로 축구 리그인 프리미어 리그
언뜻 보기에 김대중의 숨통을 바짝 죄고 있는 권력 기관들의 부정 부패와 월드컵은 아무 관련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김대중에게는 이 둘이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김대중은 월드컵에 대한 열광이 권력 기관들의 부패에 대한 대중적 반감을 누그러뜨려 주기를 바란다. 그 때문에 권력 기관들의 부패에 대해 세 번이나 “죄송하다”며 고개 숙였던 1월 14일 연두 기자회견에서 김대중은 “한국 월드컵 팀이 이번만은 좋은 성적을 올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월드컵의 창시자 줄 리메는 “축구야말로 계급이나 인종의 구분 없이 모두를 한 마음으로 만들어 세계를 행복한 한 가족으로 단합시켜 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월드컵의 역사는 각국 지배자들이 월드컵을 억압 수단으로 적극 활용해 왔음을 보여 준다. 1962년 칠레의 호르헤 알레한드라 정권은 경제 위기가 낳은 인플레와 생활 수준 하락에 반발하는 격렬한 파업을 무마하는 데 월드컵을 이용했다. 1966년 영국의 해럴드 윌슨 노동당 정부는 출범한 지 2년도 안 돼 아래로부터의 저항에 직면했다. 윌슨 정부는 국민들이 온통 자국의 월드컵 우승에 관심이 쏠리는 틈을 타 임금을 동결했다. 윌슨은 자국의 승리 군단을 대중적 분노의 방패막이로 내세웠다. 1976년 쿠데타로 집권한 호르헤 비델라 아르헨티나 군사 정부는 1978년 부에노스 아이레스 월드컵을 국제적 이미지를 개선하는 데 적극 이용했다. 군사 정부는 아르헨티나의 우승이 군부에 대한 국민적 반감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승부 조작까지 했다. 군사 정부가 준결승전에서 페루를 매수해 아르헨티나는 결승전에 진출할 수 있었고 결국 우승했다. 펠레는 월드컵이 이렇게 억압 통치를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전락하는 것에 항의해 1970년 멕시코 월드컵을 끝으로 월드컵에 출전하지 않았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1971년쯤 해서 나는 조국의 실정에 대해 진실의 일부나마 알게 됐습니다. 고문, 살인, 실종 등. 나는 군부가 나라를 다스리는 동안은 브라질 대표 유니폼을 입고 싶지 않았습니다.”월드컵은 국가 대항전이다. 각국 지배자들은 월드컵을 이용해 “국민적 단결”을 호소하고 민족주의
FIFA, 월드컵, 다국적 기업
월드컵을 주관하는 국제축구연맹
월드컵은 단순한 축구 경기가 아니라 거대한 상품이다. FIFA는 2002년 월드컵 공동 개최국 가운데 하나인 일본의 다국적 기업들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JVC, 후지, 캐논은 1994년 미국 월드컵의 공식 후원 업체들이다. 소니는 1998년 프랑스 월드컵 결승전 때 마케팅 독점권을 따냈고, 덴쯔는 국제스포츠레저
이들 기업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축구 규정을 바꾸고 경기 수를 늘린다. 1994년 미국 월드컵 때, 방송국들은 0대 0 무승부가 되면 국내 시청자들이 TV 시청을 외면할까 봐 걱정했다. 그래서 더 많은 골이 터질 수 있도록 골대 크기를 늘렸다. 심지어 광고주들의 광고 시간을 늘리기 위해 전후반 경기를 4쿼터 경기로 바꾸자는 제안도 나왔다. 공식 협찬사들의 이윤을 위해 월드컵 출전국 수가 확대됐다. 애초 16개 국이던 본선 진출국 수가 지금은 32개 국으로 늘어났다. 경기가 많아지면 기업체들의 광고 시간이 늘어나 공식 후원사들의 주머니는 두둑해지겠지만, 선수들은 부상의 악몽에 시달린다. 많은 경기를 치러야 하므로 그만큼 부상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세계적인 축구 스타 호나우두
훌리건
‘안전한’ 월드컵을 위해 경기장에서 난동을 부리는 훌리건을 철저하게 단속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지배자들은 이런 분위기를 이용해 훌리건을 마녀사냥한다. 대부분의 훌리건은 실업자나 노동 계급 사람들이다. 비통한 삶에 대한 분노가 경기장 난동으로 표현되는 것이다. 훌리건이라는 용어도 1960년대 초 영국 보수당 정권 하에서 사회복지 축소, 빈부격차 심화에 반발한 실업자와 빈민들이 축구장에서 울분을 터뜨리며 난동을 부리는 일이 잦아지면서 비롯했다. 폭력은 때로 인종주의나 제국주의 이데올로기의 형태를 띠기도 한다. 이것을 이해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지배자들은 늘상 “우리”의 삶을 어렵게 만드는 주범이 “다른” 나라나 “다른” 인종이라고 떠들어 댄다. 월드컵이나 국제 대회 같은 국가 간 대항전 때 언론들은 “우리” 팀이 상대 팀을 무찔러야 한다고 목청을 높인다. 그러다 보니 패배한 팀의 응원단들은 상대 팀 응원단들에게 폭력을 휘둘러 분풀이한다. 따라서 지배자들이 훌리건의 경기장 폭력을 비난하는 것은 순전한 위선이다. 지배자들은 단지 비난만 하는 게 아니라 때로 더 커다란 폭력으로 대응한다. 1986년 멕시코 월드컵은 경기장 폭력을 막는다는 구실로 경기장 밖에 탱크를 대기해 놓았다.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때 영국과 네덜란드 경기에서 폭력 사태가 발생하자, 이탈리아 정부는 6천 명의 경찰을 투입해 수많은 사람들을 짓뭉개 버렸다. 그러나 경기장 난동은 전혀 사라지지 않았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때는 영국과 튀니지가 맞붙은 마르세이유와, 독일과 유고슬라비아가 겨룬 랑스에서 폭력 사태가 벌어졌다. 훌리건의 경기장 난동은 가난한 사람들의 억눌리고 소외된 현실을 왜곡되게 반영하기 때문이다. 물론 훌리건의 난동이 가난한 사람들의 현실을 바꿀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