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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경제의 신화를 들춰낸 경제학자 케인스

세계 경제와 한국 경제의 위기가 계속되면서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이자 전 세계은행 부총재 스티글리츠, 전 경제부총리 조순 서울대 명예교수, 장하준 케임브리지대학교 교수 등 비주류 친자본주의 경제학자들은 물론 독일 좌파당 지도자 오스카 라퐁텐, 또한 수전 조지와 월든 벨로 같은 저명한 반신자유주의 운동가들도 존 메이너드 케인스(1883∼1946)의 사상에서 해결책을 찾으려 하고 있다. 유철규·신정완·이병천 교수들도 케인스 학파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케인스는 자본주의 역사상 가장 심각한 공황기였던 1930년대에 자본주의를 혹독하게 비판하는 글들을 썼다. 그가 자본주의를 비판한 건 자본주의를 구출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결코 사회주의자가 아니었다. 그는 마르크스주의에 매우 적대적이었다. 그는 권세가 집단에 속했다. 특권층 자녀들이 다니는 사립기숙학교 이튼 스쿨에서 중등교육을 받았고, 권세가들의 추천을 받아야 선임되는 케임브리지대학교 특별연구원이었고, 주식시장 투기를 해 꽤 돈을 벌기도 했다.

케인스는 경제가 금융시장에 따라 좌지우지되는 불합리함을 비판했다. "마치 거품이 그렇듯이 투기꾼들이 기업의 견실한 흐름에 아무 해악을 못 미칠지라도 기업이 투기의 소용돌이 속에서 거품으로 변하면 상황은 심각해진다. 나라의 자본이 카지노의 움직임이 낳는 부산물로서 성장하면 일이 잘못되기 쉽다."

선진 공업국들의 실업률이 거의 30퍼센트에 육박했던 1933년에 케인스는 이렇게 말했다. "윤택해지는 것이 '이익이 되지'않는다는 이유로 우리는 계속 가난한 채로 있어야 한다. 궁전을 짓는 것이 불가능해서가 아니라 그렇게 할 '경제적 여유가 없다'는 이유로 우리는 오두막에서 살아야 한다. … 전후 영국에서 실업수당으로 지급한 돈이면 우리의 도시들을 세계에서 인간이 이룩한 가장 위대한 업적으로 만들 수도 있었다. … 우리의 경제 체제 때문에 우리는 기술 진보가 제공하는 경제적 부를 이룰 가능성을 최대한 이용하지 못하고 있다."

케인스는 오늘날 '신자유주의'로 일컬어지는 경제정책의 이론적 기초(신고전파 경제학)를 일부 깨부쉈다. 신자유주의자들은 정부와 노동조합이 개입하지만 않으면 자본주의는 결코 불황에 빠지지 않을 것이고 언제나 완전고용을 이룩할 것이라고 말한다. 이 주장의 전제는 재화의 수요(사람들의 재화 구매 능력)가 재화의 공급과 항상 일치한다는 것이다. '과잉생산'같은 일은 절대로 일어날 수 없다고 한다.

이런 주장은 저축이 언제나 투자로 돌려진다는 가정에 바탕을 두고 있었다. 그러나 케인스는 그 가정을 비판했다. 일부 사람들이 저축한다 해도 다른 사람들이 투자를 위해 그 돈을 빌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본가들은 대부분 사업상의 모험을 감수하기는커녕 장차 이윤을 더 많이 얻을 수 있다고 확신할 때만 투자한다. 불황이 닥칠지 모른다는 걱정이 들면 그들은 투자를 취소하기 쉽다. 그리 되면 상품은 팔리지 않게 되고, 그 상품을 만든 기업들은 손해를 보거나 파산해 노동자들을 해고하게 된다.

1930년대 초 전 세계 지배자들은 경제 위기에 직면해 노동자 임금 삭감이 이윤을 회복시켜 경제를 위기에서 끌어내는 길이라면서 임금 삭감과 금리 인상 정책을 채택했다. 오늘날 임금 인상을 강력히 억제하고 있는 노무현 정부도 비슷한 주장을 하고 있다.

케인스는 이를 맹비난했다. 개별 기업은 노동자 임금을 삭감함으로써 이윤을 높게 유지할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자본가들이 그렇게 한다면 노동자 임금은 전반적으로 낮아진다. 그리 되면 노동자들은 그들이 생산하는 상품을 살 수 없게 된다. 그러면 경제는 위기의 악순환에 돌입한다. 가장 약체인 기업들부터 파산하게 되고, 실직 노동자들은 더 많아진다.

시장은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는 것이 아니라, 만성 실업과 투자 부진의 원인이 된다. 케인스는 이렇게 썼다. "유연한 임금 정책을 통해 완전고용 상태를 지속시킬 수 있다는 생각은 전혀 근거가 없다. 경제 체제는 이런 식으로 자동 조절될 수 없다."

그가 옳았음이 1930년대를 겪으면서 입증됐다. 지배계급의 금리 인상과 임금 삭감 정책은 공황을 더 심화시켰다.

오늘날 케인스주의자들은 국가의 경제 개입을 통해서만 시장이 만들어내고 있는 파괴를 막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안타깝게도 그들은 케인스 이론의 약점들도 되풀이하고 있다. 케인스는 한결같이 자본주의에 충성했고, 경제 위기에 대한 그의 해결책은 단편적이고 불충분했다.

그는 공황이 닥치자 금리 인하를 정부에 요구했다. 금리가 인하되면, 생산에 참여하지 않으면서 은행에 맡겨둔 돈으로 풍족하게 사는 부유한 '금리 생활자'에게 가는 돈이 적어진다. 케인스는 금리가 낮아지면 자본가들이 은행에서 돈을 더 많이 빌려 신규 투자를 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 되면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을 더 많이 고용하게 되고, 그러면 재화 구매도 늘어나게 돼 경제는 불황에서 탈출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자본가들이 경제 불황을 우려하고 있을 때는 금리가 인하된다 해도 돈을 빌리지 않을 것이다. 예컨대 1930년대 초에 금리 인하만으로는 새로운 투자 순환이 일어나지 않았다.

케인스는 정부 자신이 돈을 빌려 경제의 수요를 증대시키는 데 써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런 일은 1930년대 말에 제2차세계대전이라는 조건 하에서 막대한 무기 생산이 이뤄지고 나서야 비로소 효과를 냈다.

1970년대에 케인스주의 정책들은 위기를 막지 못했다. 당시에 각국 정부는 경제를 부양하기 위해 돈을 퍼부었다. 하지만 자본가들은 생산을 증대시키지 않았고, 노동자들을 더 많이 고용하지도 않았다. 모든 생산부문을 지배하는 소수 대기업들이 물가를 인상해 스태그플레이션(경기 부진과 물가 인상이 동반하는 현상)을 일으켰을 뿐이다.

그러나 케인스 자신은 경제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훨씬 더 급진적인 길을 힐끗 보여 주었다. 그는 1936년에 출판한 저작 《고용, 이자 및 화폐의 일반 이론》(비봉출판사)의 몇 대목에서 "완전고용을 보장하는 유일한 수단"으로 "얼마간 포괄적인 투자 사회화"를 요구한다. 이것은 노동자들을 대량 해고하고 서민 대중에게 필요한 재화를 생산하지 않으려 하는 기업들을 정부가 인수하는 것을 암시한다.

1998년 'IMF 경제공황'때 사회주의자들은 정리해고가 급증하고 있는 사태에 직면해 그러한 정책을 주장했다. 자본가들이 사회를 위해 생산하지 않으려 한다면 그들의 생산 통제권을 박탈해야 한다. 파산 위기에 놓인 사기업을 공기업화하면 기업주의 재산과 그 기업의 이윤을 세금으로 징수할 수 있고, 원자재를 구입할 수 있고 계속 노동자들에게 임금을 줄 수 있다.

임금 삭감 없는 노동시간 단축을 통해 일자리를 훨씬 더 많이 만들 수 있고 나아가 사회적으로 유용한 재화의 시장도 확대할 수 있다.

이러한 조처들은 기업주들의 이윤과 재산을 잠식하며 그들의 경제 지배를 위협한다. 그들은 저항할 것이다. 자신들의 돈을 해외로 빼돌리고 심지어는 33년 전 칠레에서처럼, 그러한 좌파적 개혁 조처들을 실행하려는 정부를 전복하려 할 것이다.

바로 이 때문에 대중 투쟁이 필요하다. 특히 노동자들은 대량 해고 위협에 직면한 공장을 점거하고 지배자들의 정책에 도전함으로써 아래로부터 이러한 조처들을 강제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조처들은 노동자들의 처지를 즉시 개선해 줄 것이다. 또한 이러한 조처들은 자본주의를 전복하는 혁명적 투쟁을 수반할 수 있다.

케인스는 결코 이러한 결론에 도달하려 하지 않았다. 게다가 '정설적'케인스주의자들(제2차세계대전 이후 1970년대 중엽까지 주류 경제학으로 득세했던 조류)과 '신'케인스주의자들(오늘날 그레고리 맨큐로 대표됨)은 "투자 사회화" 주장을 케인스가 몇 차례 단편적이고 불충분하게 언급했을 뿐이기 때문에 별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케인스처럼 아래로부터의 투쟁에 비우호적인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반면, '급진적'케인스주의자들(수전 조지, 월든 벨로, 라퐁텐 등)은 "투자 사회화"를 비교적 진지하게 받아들인다. 하지만 그것을 위로부터 실행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들은 서구 사회민주주의나, 심지어 옛 동구와 일부 제3세계의 국가통제주의 경제를 지지했다.

사회주의자들은 이들 사회화·공공성 지지자들과 함께 한미FTA 반대 등 반신자유주의 공동전선을 건설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