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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퇴진 운동 2023~24년 팔레스타인 투쟁과 중동 트럼프 2기 이주민·난민 우크라이나 전쟁

10월 10일 천수이볜 퇴진 운동 투쟁 보고

민주진보당 전 주석 스밍더가 지도하는 천수이볜 퇴진 운동은 대중이 직접 주도하는 운동으로 발전하지 못했다. 스밍더는 녹색 진영 고위 정치인들이 결정적 구실을 하기 바라며, 대중운동을 그들에게 압력을 넣기 위한 수단으로 여길 뿐이다. 그에게 대중은 운동의 주된 동력이지만 운동의 진정한 주체는 아니다. 이 운동의 특색은 신속한 동원, 미약한 상호작용, 투쟁의 온건함, 그리고 뚜렷한 결과를 내지 못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은 구호만 있고 토론은 없는, 시위만 있고 충돌은 없는, 열정만 있고 힘이 없는, 군중을 수단으로만 하고 주체로 하지 않는 운동이다! 10월 10일 스밍더는 1백만 명 규모의 '천하위공'시위를 조직한 후 전환점을 맞은 듯하다.

아래는 퇴진 운동의 전 과정에 참여한 '노동자민주주의'소속 한 동지의 목격과 경험을 정리한 것으로, 10일 밤의 투쟁이 스밍더의 타협과 지휘 하에 어떻게 얼렁뚱땅 수습됐는지를 보여 준다.

차도를 내주라고?

10일 밤, 동구에서 타이베이 기차역으로 행진해 돌아온 후 천수이볜 퇴진운동본부(이하 운동본부)는 사람들을 이끌고 쌍방향 차도인 충효서로를 점거하고 이 곳에서 노숙하겠다고 발표했다. 또, (천수이볜의) 대답을 듣지 않고는 절대 물러서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이 때 사람들의 사기는 매우 높았고 눈빛 또한 결연했다. 기차역 앞에 모인 일부 사람들은 전에 없던 자발성을 보여 주었다. 밤 12시쯤 거리에 진압 경찰이 나타나자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규찰대를 조직했고 경찰이 밀고 들어오자 달려가 막았다.

새벽 12시 52분쯤, 운동본부의 부지휘관 리융핑은 지휘 차량에 올라 사람들에게 "퇴진 운동의 주도자는 스밍더다. 군중은 반드시 그의 방침과 지도를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스밍더가 차도를 경찰에게 반드시 내줘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강조했고, "우리의 적은 천수이볜이지 타이베이 시민이 아니다"고 말했다. 사람들은 이 말을 듣고 매우 흥분했다. 어떤 사람은 그 자리에서 일어나 지휘 차량 위에 있는 리융핑에게 "우리는 투쟁을 하기 위해 여기에 온 것이다!"하고 소리쳤다. 많은 사람들은 "한 편의 차도를 내주면 다른 차도도 내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 날은 지난 9월 15일 70만 명이 거리 시위를 벌인 뒤 타이베이 기차역에 집결했다가 차도를 내주고는 곧 시위 대열이 해산해, 전체 운동의 기세를 급격히 떨어뜨린 상황과 비슷했다.

원래 스밍더는 '출퇴근하는 것'처럼 운동을 벌이면 안 된다고 말했고, 사람들은 이 말에 따라 낮에는 일하고 퇴근하면 곧바로 집회 장소로 달려갔고, 30여 일 동안 밤마다 집회 장소에서 노숙을 했다. 바로 천수이볜 퇴진을 위해서였다.

그러나 10일, 자정이 가까운 시간에도 1만 명 가까운 사람들이 충효서로에 집결해 있었지만 스밍더는 마잉주[국민당 주석]와의 밀실 협상 후 사람들더러 점거한 차도에서 나가라고 요구했다. 어떤 사람은 분노해서 "'출퇴근 하는'식의 투쟁은 안 된다더니 도로는 골라가며 투쟁한다는 거냐?"또, "먼저 지방을 뒤엎고, 그 다음에 중앙을 뒤엎고, 마지막엔 바로 혁명이다!"하고 고함쳤다.

대체로 현장을 지키던 대다수 사람들의 정치의식이 뚜렷이 상승했는데, 그들은 "타이베이 시민을 적으로 만들 수 있다"는 운동본부 지도부의 위협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신들이 매우 중요한 문제를 가지고 싸우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운동본부 vs 대중

더 웃긴 것은, 운동본부가 주류 매체에 자주 등장하는 '명사'들을 불러 시위대를 국복시키려 했다는 것이다. 국민당 입법의원(국회의원) 린위팡은 "우리는 한 가족이니 집안 싸움은 하지 말자"며 내부 분열은 안 되다고 말했다. 국민당 입법의원 선즈후이는 심지어 사람들을 향해 "저녁에 충효서로에서 노숙하자고 발표한 것은 잘못"이었다며 사람들에게 허리 굽혀 '사과'했지만, 사람들의 지지를 전혀 받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야오리밍[저명한 지식인이자 정치인]이 무대에 올라가서는 "누구든 동의하지 않으면 그냥 집으로 돌아가라"고 화를 내며 호통을 쳤다.

사람들이 꿈쩍도 않고 점거를 유지하자 운동본부는 속수무책이었다. 결국 운동본부는 사람들이 똑똑히 보고 있는데도 원래 점거 차도에 있던 지휘 차량을 타이베이 기차역 방향으로 몰고 가버렸다.

원래 운동본부는 이날 저녁에 충효서로에서 노숙하겠다고 발표했고, 현장에 있는 사람들에게 친척이나 친구를 참가하게 하라고 부탁했다. 많은 사람들이 오늘은 진짜라고 생각했지만 이 역시 사기였던 것이다.

최후의 해산

새벽 4시 지배자들은 더는 두고 볼 수 없었다. 완전무장한 3천 명의 진압 경찰들은 곤봉과 방패를 들고 호루라기 소리에 발 맞춰 사방에서 사람들을 압박했다. 경찰은 사람들을 에워싸 시위대와 나약한 지도부를 분리시켰다. 돌연 현장은 아주 조용해졌다. 스산하고 무거운 공기와 시위대열을 겹겹이 포위하고 있는 진압 경찰의 모습은 다시 계엄령 시절[국민당은 1947년부터 1986년까지 계엄령을 유지했다]로 되돌아간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경찰 병력은 겨우 몇 분 만에 차도에서 연좌 시위를 벌이던 사람들을 내쫓았다.

운동본부는 진압 경찰의 포위와 해산을 수수방관했다. 이것이 바로 그들이 얘기했던 [시위에서의] "사랑과 평화"였다! 지도부는 다른 지배자들의 말만 듣고 시위 대중의 말은 듣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에게 복종하지 않는 사람들과 분명한 선을 그었고 그들이 경찰에 끌려가도록 내버려 뒀다. 경찰의 포위와 해산 과정 중 지도부는 종적을 감췄다. 일찍이 천수이볜 퇴진을 위해서라면 희생도 마다하지 않겠다던 스밍더와 충효서로 점거를 주도했던 지엔시제·왕리핑[모두 민진당 전 입법의원이자 운동본부 운영위원]이 그 때 대체 어디에 있었는지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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