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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화에 맞선 발전 파업

사유화에 맞선 발전 파업

김태훈

화력 발전소를 국내 대기업이나 외국 자본에게 팔고 그들로부터 전기를 사서 쓰는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한길리서치 2002. 3. 17〉오늘(3월 17일)로써 발전 파업이 21일째로 접어든다. 투쟁 경험도 없고, 이제 막 민주노총에 가입한 신생 노조가 정부와 언론, 사장들 전체를 상대로 이렇게 잘 싸우리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발전 노동자들은 3월 10일 전국 5개 거점에서 기습 결의 대회를 진행해 결속력과 건재함을 과시했다. 김대중 정부는 철도·가스·발전 노동자들이 벌인 사유화 저지 동맹 파업에 적잖이 당황했다. 사상 초유의 동맹 파업은 김대중의 사유화 정책에 브레이크를 걸었다. 파업 돌입 다음 날인 2월 26일 민주노총 노동자 13만 명이 시한부 연대 파업에 합류했다. 사유화 철회 요구가 부문과 업종을 뛰어넘어 모든 노동자들의 열망임을 보여 준 것이다. 파업 돌입 첫날 가스 노조가 파업을 중단했다. 다음 날 발전 노동자들은 산개 전술에 따라 서울대 농성장을 나와 조별로 흩어졌다. 2월 27일 새벽 철도 노조가 파업을 중단함으로써, 사유화 저지 파업은 어느 정도 진정되는 듯했다.

그러나 산개 이후 쉽게 무너지리라 예상했던 발전 노동자들의 파업이 계속되자 김대중은 조바심을 내고 있다.

현상금 5백만 원

김대중 정부는 경찰력을 총동원해 발전 노동자들을 마녀사냥하고 있다. 24명의 발전 노동자들이 공개 수배됐다. 이들에게 각각 5백만 원의 현상금이 걸렸다. 그러나 경찰은 이들 24명만 쫓고 있는 것이 아니다. 파업중인 발전 노동자라면 무조건 강제 연행해 “복귀 서약서”를 강요한다.

더욱 어처구니없는 것은 경찰이 노동자들을 연행해서 사측에 넘겨 주고 있다는 것이다. 경찰이 발전소 회사측의 용병 구실을 하고 있는 것이다.

전체 조합원 5,609명 가운데 13.6퍼센트인 763명이 사측에 의해 고소됐다. 게다가 사측은 파업중인 조합원 전체에게 재산 가압류 신청을 하려고 한다.

5천3백여 명의 파업 노동자들 전체가 수배자처럼 쫓기고 있다. 노동자들은 옷을 갈아입지 못해 대부분 겨울 복장을 하고 있어, 손쉽게 경찰의 표적이 되고 있다. 여수에서는 사복경찰이 영장도 없이 가족들이 사는 아파트 20여 가구를 수색했다. 발전 파업이 “불법”이라며 길길이 날뛰던 정부가 불법 행위를 버젓이 자행하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경찰은 노동자들을 연행하기 위해 조계사 대웅전 법당 안에까지 난입했다.

국민적 합의?

김대중 정부는 “2000년 12월 국회에서 전력 사유화 법안이 여야 만장일치로 통과되었으니 국민적 합의를 거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국회에서 통과된 것은 ‘전력산업구조개편촉진에 관한 법률’이다. 이는 민영화를 위한 환경 조성을 위한 예비 입법이자, 한전 분할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을 뿐이다.”(〈한겨레〉, 3월 11일치) 발전 노동자들도 “우리는 사유화 법안을 합의한 적이 없다”고 말한다. “오경호[2000년 당시 한국전력 노조 위원장]가 합의한 것이지, 우리[조합원들]가 합의한 것이 아니다. 오경호는 파업한다고 조합원들 모아 놓고 경찰력 투입을 요청한 자다. 이런 자가 합의한 것을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이나?”“여야가 합의해서 만장일치로 통과시킨 게 ‘국민적 합의’인가? 발전소 매각으로 피해를 볼 대다수 서민들은 국민이 아니란 말인가?”

거점과 연대 파업

발전 노동자들의 파업이 장기화하면서 연대의 움직임도 늘어나고 있다.

‘가족대책위’의 활동은 눈부시다. 가족들은 발전소·사택·지역 도심 등에서 대체인력 투입을 저지하기 위한 피켓팅과 파업 지지 집회를 열며 투쟁하고 있다. 3월 6일 을지로 훈련원 공원에 모인 1천여 명의 가족들은 “우리 남편들이 아니라 권노갑을 구속하라”, “부정부패 비리정권 김대중은 퇴진하라”고 소리 높여 외쳤다.

〈한겨레〉 신문 광고란에는 발전 노동자들의 파업을 지지하는 지지 성명서들이 쇄도하고 있다. 공장, 대학, 거리에서 발전 노동자들을 지지하는 서명·모금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3월 18일∼19일에는 한국수력원자력 노조가 연대 파업 여부를 놓고 찬반투표를 벌인다.

수력원자력 노동자들까지 파업을 벌인다면, 전력 공급이 중단될 수도 있다. 그 때문에 정부는 필사적으로 투표 자체를 막고 있다.

민주노총도 “정부가 23일까지 대화를 통해 사태를 수습할 것을 강력히 촉구하며, 만약 대화를 통한 해결을 묵살하고 강경 탄압으로 전력 대란을 자초한다면 민주노총 지도부의 파업 결정과 동시에 총파업 투쟁에 결연히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무엇보다 발전 노동자들은 재집결을 준비할 필요가 있다. 조별 산개로는 조합원들의 자신감이 무한정 유지되기 어렵다. 한 발전 노동자는 재집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교섭은 어떻게 돼 가는지, 다른 조합원들은 다들 잘 있는지, 모두들 불안해 한다. 산개가 오래 지속되면서 조합원들은 경찰의 탄압에 무방비로 노출되고 조금씩 지쳐 간다. 이제 다시 모여야 한다. 마지막으로 우리 힘을 보여 줘야 한다. 이기든 지든 한군데 모여서 승부를 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