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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전 노조원 밀착 취재 - “우리는 새로운 투쟁 세대”

발전 노조원 밀착 취재 - “우리는 새로운 투쟁 세대”

다함께 공동취재기자단

3월 12일 〈다함께〉 기자 네 명은 파업 15일째인 발전 노동자들을 만났다. 발전 노동자들은 파업의 정당성을 알리는 시민 홍보전을 막 시작하려던 참이었다. 봄옷 차림의 발전 노동자들은 오랜만에 만난 동료들과 반가운 악수를 건넸다.

“발전 파업 정당하다, 발전 매각 중단하라.”는 구호를 외치며 시민들에게 유인물을 나눠 줬다. 시작한 지 10분쯤 됐을까 경찰 두 명과 지하철 관리자가 나타났다. 유인물 배포는 중단됐다. 경찰에 대한 노동자들의 경계심이 큰 것은 사실이지만 위축돼 보이지는 않았다. 한 노동자의 말처럼 “처음에 교통 법규 위반 딱지를 떼는 짭새만 봐도 움찔했다. 그래서 괜히 골목길 돌아가고 했는데 이제는 당당하다. 우리는 범법자가 아니다. 무서워할 필요 없다.”장소를 이동해 다시 유인물 배포를 시작했다. 시민 홍보전을 하는 발전 노동자들의 모습은 다양했다. 시민들에게 말 한 마디 못 하고 신문을 건네는 노동자가 있는가 하면 시민들이 쓰레기통에 버린 신문을 다시 주워 담는 노동자도 있었다. “아까 선전전 할 때 누가 쓰레기통에 버렸다. 꺼내려고 했는데 누가 신문에 침을 뱉었다. 눈물이 나서 죽는 줄 알았다.” 처음에는 어색해 하던 발전 노동자들이 홍보전을 끝낼 시간이 다가오자 오히려 구호를 더 외치자고 제안했다. 그 동안 분회별로 흩어져 지냈기 때문인지 노동자들은 홍보전이 끝나자 많이 아쉬워했다. 경찰의 검문을 피해 뒤풀이 자리로 이동했다. 어떻게 지내셨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대한 대답은 다양했다. 등산을 했다는 노동자, 양로원과 기도원 등에서 봉사 활동을 했다는 노동자, 심지어 비닐하우스나 염전에서 일했다는 노동자도 있었다.

오랜 파업으로 피곤해 보이기는 했지만 피로는 조합원들의 굳은 각오를 누를 수 없었다. 발전 노동자들은 특히 가족들이 함께 싸우고 있다는 사실에 많은 힘을 얻고 있었다. “경찰하고 싸울 때 우리보다 더 잘 싸운다니까. 저번에 명동성당 갔을 때 그 사람들(가족대책위) 보니까 장난이 아니더라고. 난 그 사람들 때문에라도 복귀할 수 없다니까. 가족들끼리 서로 누가 복귀했는지 감시하고 있다는군. 그 사람들 때문에 지금 집에 가고 싶어도 못 가는 사람들이 있다니까.”“엊그제가 애 졸업식 날이었는데 전화가 왔어. 졸업 사진을 찍어야 하는데 카메라에 고장 표시가 뜬다고. 그래서 나더러 가르쳐 달라는 거야. 버럭 화를 냈지. 내가 그걸 여기서 어떻게 가르쳐 주냐고. 평소에는 내가 카메라를 고치고 만졌으니까. 결국 졸업 사진 한 장도 못 찍었지 뭐.”“봄옷으로 갈아입으려고 10일 만에 집사람을 만났다. 내가 늦둥이 아들 녀석을 보고 싶어할까 봐 데리고 나왔는데 아들이 서먹서먹해 해서 놀랐다. 한 시간쯤 지나니까 아빠라고 하면서 재롱을 피우더라.”

첫 경험

화제가 파업으로 옮겨가자 발전 노동자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이번 파업이 끝나고 복귀하면 아마 사무실 분위기가 달라질 것이다. 과장이나 간부들도 우리와 같은 조건에서 일하면서 승진해 그 자리에 있지만 그들은 파업을 해 보지는 못했다. 우리는 그들과 다르다. 발전에서 우리는 새로운 세대라고 할 수 있다.”“예전에 다른 사업장에서 파업하면 불편하다고 떠들어 대는 언론의 말을 순진하게 믿었다. 근데 이제는 아니다. 노동자들이 오죽하면 파업하겠냐. 동질감을 많이 느꼈다. 노동자들은 역시 뭉치는 게 힘이라는 것을 알았다.”“그 동안 난 회사에서 일하면서 ‘나는 하찮은 존재구나’ 하고 생각했다. 복귀 전화를 받을 때마다 여전히 내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드니 자신감이 생긴다. 솔직히 해고시키겠다는 협박도 별로 두렵지 않다. 처음 파업 들어가기 전에는 갈등도 많았다.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까? 정말 우리 같은 사람들이 파업을 할 수 있을까? 파업 선언을 했을 때 만감이 교차했다.” 산업자원부 장관 신국환은 파업이 일어나도 최소한 1개월은 정상적으로 전기를 공급할 수 있다고 큰소리쳤다. 과연 그럴까?“작업 자동화가 많이 됐기 때문에 손이 많이 가는 일은 줄었다. 그러나 사고가 터지면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 없다. 비행기가 이륙한 이후 착륙도, 방향 전환도 하지 못하는 상황이 현재의 발전소다. 사장들은 한 달분의 전기를 비축해 놓았다고 하지만 포항제철이나 현대자동차 같은 큰 기업들은 전력이 딸릴 것이다.”“설사 전기가 계속 공급된다 하더라도 파업이 장기화되면 전력의 질이 형편없어진다. 전력의 질은 곧바로 제품의 질에 영향을 미친다. 반도체 미세 공정이나 섬유공장에서 원하는 두께의 실을 뽑을 수가 없게 된다.” 또 다른 노동자는 이렇게 말한다.

“예전에 일본 동경에서 3시간 전기 공급이 안 돼 난리가 났다. 재난 손실액이 엄청났고, 도난 사고, 강간, 폭력 범죄가 장난이 아니었다. 지금 작은 발전소는 문제도 아니다. 금방 고칠 수 있으니까. 하지만 삼천포처럼 큰 발전소는 한 번 고장나면 정상화하는 데 적어도 9일 이 걸린다. 화력은 쇠가 식을 때까지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속수무책이다.”술자리가 무르익자 김대중 정부에 대한 불만이 고조됐다. 특히 TV 토론회나 언론을 통해 이미 국민적 합의로 통과된 법을 반대할 수 없다는 정부측 주장을 듣고 조합원들은 기가 막혀 했다.

“발전 사유화 법안 공청회에 노조원 50여 명이 참여했다. 패널로 나온 사람들은 사유화를 찬성하는 사람들이었다. 며칠 전 토론회를 보니 그런 공청회가 사유화에 대한 공식적인 여론 수렴 과정이었다고 말하더라. 의약분업 문제가 불거질 때 김대중의 ‘국민과의 대화’를 봤다. 김대중은 의약분업의 실패에 대한 질문에 ‘잘 몰랐다. 전문적인 지식이 없었다.’고 말하더라. 이 말을 듣고 생각해 보니 사유화 이후 전기 요금이 오르면 ‘잘 몰랐다. 전문적인 지식이 없었다.’하고 말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더라.”“전 위원장 오경호가 죽일 놈이지. 2000년 12월 3일 본사에 모여 있을 때 파업을 했어야 했다니까. 그 때 위원장이 조합원 불러다 놓고 경찰 투입까지 요구했다니까. 국민적 합의를 통해 통과된 법이라고? 우리는 국민 아닌가? 우리는 합의한 적 없어. 당시 위원장이 직권조인했지. 위원장이 우리한테 합의 내용을 물어 본 것도 아니라니까.” “박통도 아니고, ‘국민의 정부’라더니 달라진 게 없어. 김대중이 서민을 위한다기에 믿고 찍어 줬더니 입으로만 서민 위하지 대가리는 썩었어. 머리 속에는 신자유주의뿐이야. 김대중이 정리해고 받아들이고 구조조정 밀어붙여 노동자들을 해고했잖아. 또, 노동 강도가 증가했지. 1995년 이후 아직까지 신입 사원을 안 받았다니까. 줄일 수 있을 만큼 팍 줄여놓고 말이야. 김대중한테 배신감 느낀다.”파업 승리를 위해 노동자들은 연대 파업을 절실히 바라고 있었다.

“사실, 철도한테 섭섭했다. 철도가 핵심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이해한다. 조금 있으면 원자력도 파업에 들어간다는 소식을 신문에서 읽은 것 같다. 반갑다. 물론 이 싸움 우리 혼자만으로도 계속하겠지만 많은 노동자들이 함께 일어서서 우리를 등에 업고 바꿔 줬으면 좋겠다.” 뒤풀이가 끝나가자 발전 노동자들은 처음 우리를 경계하던 것과 달리 오히려 다시 만날 수 없느냐고 거듭 물어 보았다. 우리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 보기도 했다. 파업이 끝나면 꼭 다시 보자는 말을 잊지 않았다. 발전 노동자들은 못내 아쉬워하며 어둠 속으로 삼삼오오 총총히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