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의 모순된 행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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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의 모순된 행보
정병호
이인제냐, 노무현이냐?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결과가 뜨거운 쟁점으로 떠올랐다.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돌입에 맞춰, 노무현에 관한 비평서인 《노무현 ― 상식, 혹은 희망》(행복한 책읽기)이 나왔다. 저명한 사람들이 두루 필진으로 참여했다. 시사평론가 유시민 씨는 노무현과 인터뷰를 했다. 박재동, 장봉군, 명계남, 문성근 씨 등도 노무현 지지글을 썼다. 정치평론가, 〈중앙일보〉 현직 기자, 민언련 사무총장 등도 함께 참여해 노무현이 차기 지도자가 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민주노동당 기관지 〈진보정치〉 편집위원장 이광호 씨만이 노무현을 비판했다.
모순
이 책의 필자들은 대체로 노무현이 이 사회의 많은 병폐를 치유해 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영화 배우 문성근 씨는 “‘민주주의 실천’과 ‘민족통일’”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 “지역감정”이며, 노무현이야말로 “지역통합 다수파 민주정권”을 만들어 지역감정을 없앨 수 있다고 주장한다. 민언련 사무총장 최민희 씨는 노무현이 언론문제에 있어서는 민주당 내 어느 후보보다 “개혁적”이므로 지지해야 한다고 말한다. 한편 한 노동자는 노무현이 “약자를 위해 정의로운 삶을 살아”왔기 때문에 지지한다고 썼다.
하지만 노무현에 대한 기대가 제대로 실현될지는 의문이다. 노무현의 “정치적 실천”은 일관되기보다는 모순적이다. 지역주의 타파를 주장하는 그는 1995년 부산시장 선거에서 김대중이 “지역등권론”을 주장하여 영남인들을 자극했기 때문에 자신이 패배했다는 식으로 말한다. 또한 그는 최근 공기업 사유화에 반대하는 듯한 입장을 보이곤 하지만, 한편에선 “외국인 투자 유치를 위해 대우자동차에 가서 해외매각을 적극적으로 설득했”던 것과 “김대중 정부 출범 당시에 정리해고 요건의 완화를 위해 노동자를 설득하고 다닌” 것을 자랑스럽게 말하기도 한다. 〈조선일보〉에 맞서 싸우겠다고 공언하는 그는 다른 곳에서는 “〈조선일보〉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했다.
〈중앙일보〉 현직 기자는 노무현이 “이익과 소신이 충돌할 때 소신 쪽을 택하는 정치인”이라고 추켜세웠다. 그러면서도 작년 10·25 재보선에서 민주당이 패배한 후 터져 나온 민주당 쇄신 운동 때 노무현이 김대중과 동교동계의 눈치를 보며 반대했던 것은 인기 영합이라고 인정한다. 이처럼 그의 행동이 모순적인 것은 그의 모순된 처지 때문이다. 이광호 씨가 지적하듯이 그는 “진공 속에서 정치 행위를 하는 사람이 아니다.” 노무현은 한편에선 민주 개혁에 대한 열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지지를 받고 있지만, 다른 한편에선 민주 개혁을 바라지 않는 사장들의 돈으로 운영되는 정당의 정치인이다. 그가 대권에 접근할수록 양쪽 모두에서 그를 검증하려 들 것이다. 그럴수록 노무현의 모순은 더욱 커질 것이다.
우리는 지난 4년 동안 이와 같은 모순된 처지가 낳은 정치적 결과물을 김대중 정부를 통해 보아 왔다. 김대중은 말로는 “서민의 눈물을 닦아 주겠다”고 했지만, 정작 행동은 정반대였다. 노무현이 당선된다면, 우리는 5년 동안 이와 똑같은 현실을 보게 될 것이다. 이광호 씨는 “김대중 정권의 정책 실패” 자체가 민주당에 대한 비판의 원인을 제공했다고 옳게 지적하고 있다. 그는 김대중 정권 하에서 빈부 격차가 심화됐고, 불안정 고용이 고착화됐으며, 부패는 오히려 더 만연해졌다고 비판한다. 그에 따르면, 노무현은 김대중의 철저한 계승자이기 때문에 대안일 수 없다. 민주노동당이야말로 신자유주의 경제 정책을 근본으로 바꿀 수 있다. 지난 2000년 4·13 총선에서 드러났듯이 민주노동당은 지역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잠재력도 가지고 있다. 또 민주노동당에는 노무현보다 더 소신 있고 깨끗한 인물들이 많기 때문에, “노무현 문제의 답은 민주노동당”이라는 것이다.
《노무현 ― 상식, 혹은 희망》은 노무현을 홍보하기 위한 책이다. 노무현의 장점을 과장되게 부각시키면서 그에 대한 환상을 부추기고 있다. 독자들은 이 책을 읽을 때 ‘거리두기’를 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