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알튀세르와 에티엔 발리바르 등 《『자본』을 읽자》 (그린비,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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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파면 투쟁이 한창이던 올해 1월 출간된 《『자본』을 읽자》는 1965년 프랑스에서 알튀세르가 중요한 정치적 논쟁에 개입하려고(공저자들과 함께) 쓴 저작이다. 당시는 공산당들이 설파하는 매우 왜곡된 ‘마르크스주의’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 때였다.
1953년 동독과 1956년 헝가리에서 노동계급 반란이 일어난 뒤 소련 군대에 의해 진압되고, 스탈린의 후임자 니키타 흐루쇼프가 스탈린 ‘개인 숭배’를 비난한 일을 계기로 서방의 소수 좌파들은 스탈린주의가 아닌 진정한 마르크스주의를 모색했다. 마르크스의 초기 저작과 루카치의 저작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그 저작들은 인간이 생산 과정 속에서 자연과 맺는 관계, 또 다른 인간들과 맺는 관계에 초점을 맞췄다. 그 관계는 계급 사회에서 왜곡된 형태를 띠고, 사람들을 비인간적으로 만드는 효과를 낸다.(마르크스는 이를 ‘소외’라고 일컬었다.)
특히, 루카치는 《역사와 계급 의식》에서 (카우츠키 등의 제2인터내셔널 마르크스주의에 반대해) 혁명이 단지 사회의 생산력을 더 발전시키기 위한 것만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혁명은 자본주의 체제를 의식적으로 이해하게 된 노동계급이 혁명적 행동으로 인간 해방을 가능케 하는 과정이라고 루카치는 설명했다.(물론 루카치가 그 과정을 필연으로 본 것은 오류였다.)
프랑스 공산당 당원인 알튀세르는 그런 견해를 ‘인간주의적’ 마르크스주의라고 일컬었다. 《『자본』을 읽자》는 ‘인간주의적’ 마르크스주의라는 이단을 물리치고 불모의 정통 공산당 사상을 갱신하려는 시도였다. 책 곳곳에서 알튀세르는 마오쩌둥에게 호감을 보인다. 중국 지배 관료는 급속한 산업화를 추진하기 위해 당시에 가장 무자비한 형태의 교조주의를 필요로 했다.
알튀세르는 마르크스의 초기 저작들을 간단하게 일축하지 않았다. 오히려 마르크스 자신이 그런 ‘인간주의적’ 입장과 단절했고, 그 단절은 1845년 무렵에 일어났다고 주장했다. 알튀세르에 따르면, 마르크스는 그 전까지는 헤겔의 관념론 철학에 물들어 있었다. 그 이후의 마르크스는 헤겔주의로부터 “인식론적 단절”을 나타냈다고 한다.
이 주장은 《『자본』을 읽자》 출간 이래 많은 논란을 자아냈다.(그래서 나중에 에티엔 발리바르는 “이론적 단절”이라고 완화시킨 주장으로 입장을 수정했다.) 마르크스의 사상이 시간에 따라 변화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의 초기 사상은 완숙기의 사상에 통합됐고 그것의 바탕을 이뤘다. 완숙기의 저작에서 소외 개념과 인간 해방의 가능성을 제거하면 마르크스주의를 크게 왜곡하게 된다.
그런 왜곡은 알튀세르 자신의 마르크스주의에서도 드러난다. 알튀세르의 초점은 오로지 인간이 아니라 사회 구조에 있었다. 알튀세르에 따르면, 사회는 경제 층위(또는 심급), 정치 층위, 이데올로기 층위 등 서로 구분되는 일련의 층위로 이뤄지며, 사회 변화는 단순히 모순들이 축적되면서 일어난다. 모순들은 사회의 상이한 층위에서 시작돼 “단절적 통일”로 융합된다. “지배적 모순”은 사회의 어느 층위에서든 나타날 수 있고, 그 층위는 “최종 심급”에서는 경제적 과정에 의해 결정된다.
이처럼 사회를 고도의 자율성을 갖는 개별 층위들로 분리하는 것은 알튀세르의 정치에도 영향을 미쳤다. 특히, 그런 분리를 근거로 알튀세르는 스탈린의 특정 정책들을 비판하면서도, 그 근원이 서방과의 군사적 경쟁을 위해 소련 지배 관료가 추진한 급속한 자본 축적에 있음을 부인할 수 있었다.
알튀세르의 당시 ‘구조주의’에 따르면, 인간은 역사를 만드는 주체가 아니라 이데올로기에 좌우되는 원료일 뿐이고, 그 이데올로기들은 사회 구조의 산물일 뿐이다. 노동계급이 자신의 투쟁을 통해 자본주의의 작동 방식을 인식할 수 있다는 점은 전혀 인정되지 않는다. 알튀세르에 따르면, 자본주의에 대한 온전한 이해는 “이론적 실천”(그냥 이론으로 이해해도 무방하다)을 하는 마르크스주의 이론가(알튀세르 같은)만이 도달할 수 있는 것이다(학술 엘리트주의).
알튀세르의 이론은 마르크스주의의 핵심 사상, 즉 “노동계급의 해방은 노동계급 자신이 이루는 것”이라는 사상을 마르크스주의에서 제거해 버렸다. 사실 이는 이미 오래 전에 진정한 혁명적 전통을 포기한 ‘국제 공산주의 운동’의 실천과 온전히 상통하는 이론이다.
그린비 출판사가 초판 발행 60년 만에 한국에서 《『자본』을 읽자》를 완역 출간한 것은 마르크스주의 사상에 대한 관심이 조금씩 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마르크스주의 사상을 대표하는 저작의 하나로 알튀세르의 결함 투성이 마르크스주의를 선택한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