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스 캘리니코스 인터뷰:
“반전 운동을 다시 한 번 전 세계적 운동으로 만듭시다”
〈노동자 연대〉 구독
미국의 조지 부시 정부는 계속 이란에 전쟁 위협을 가하고 있습니다. 이 위협이 실제로 전쟁으로 이어질까요?
저는 미국이 당장 이란을 침략할 준비가 돼 있지 않다고 봅니다.
이것은 부분적으로는 부시 정부가 아직 이라크 증파를 진행중이기 때문입니다. 부시 정부는 새로운 이라크 전략을 성공시키는 데 집중하려 합니다. 이란 침략은 주의를 분산시킬 것입니다.
또, 부시 정부는 정치적으로 곤경에 처해 있습니다. 상하원이 내년을 이라크 철군 시한으로 정한 것은 부시에게 상당한 압력으로 작용할 것입니다. 부시 정부는 법무부 장관이 연루된 대규모 정치 스캔들에 시달리고 있기도 하죠.
따라서 이런 이유들 때문에 저는 지금이 부시 정부가 이란을 공격할 적기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란 침략 위협이 진정한 위협이 아니라는 말은 아닙니다. 부시 정부는 이라크에서 실패해 곤경에 처해 있고, 무슨 짓을 해도 문제에 부딪힐 것입니다. 만약 부시 정부가 후퇴하고 타협한다면, 중동에서 미국의 지위가 약화할 수 있고, 특히 이란의 세력이 더 강해질 것입니다.
만약 부시 정부가 이란 공격을 포함해서 폭력적인 위기 타개책을 찾는다면, 이는 더 큰 패배를 부를 수 있습니다. 따라서 부시 정부는 쓸 수 있는 대안이 죄다 나쁜 대안인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부시 정부는 미군 증파가 효과를 거두고 있다고 홍보하고 있습니다. 과연 부시의 이라크 전략이 성공할 수 있을까요?
부시의 증파가 성공하고 있다는 증거는 없습니다. 물론 바그다드에서 폭력 사건 수가 줄었다는 보도가 있습니다. 그러나 미군의 힘을 감안할 때 이는 특별히 놀랄 만한 일은 아닙니다.
많은 이라크 저항세력이 ‘미군과 전면 충돌하기보다 조용히 기다렸다가 미군 수가 줄어들면 다시 활동해야지’ 하고 판단했다면, 이는 매우 합리적 대응입니다. 저는 이라크 게릴라들이 이런 생각에 따라 행동하고 있다고 봅니다.
사드르와 지지자들은 이미 그렇게 행동해 왔습니다. 그들은 미군이 사드르시티로 진입하는 것을 허용했고, 미군과 충돌을 피했습니다. 언론들은 많은 마흐디군 최고 지도자들이 이라크를 떠났다고 보도했습니다. 잠시 동안 숨어 있겠다는 전략이죠.
다른 한편, 일부 수니파 저항세력들은 미군을 강하게 공격했습니다. 그런 공격의 일부는 매우 효과적이었습니다. 따라서 지금 이라크 상황은 상당히 모순돼 있습니다.
저는 16만 명의 미군이 이라크 상황을 극적으로 반전시킬 거라고 믿지 않습니다. 점령군에 대한 이라크인들의 적개심이 워낙 크기 때문입니다.
네오콘들은 부시가 애당초 많은 군대를 보내지 않았다고 비판하지만, 미국은 베트남에 60만 명을 파병하고도 패배했습니다.
이런 전쟁에서는 정치적 동역학이 매우 중요합니다. 만약 점령군이 현지 주민들에게 상당한 지지를 얻어 게릴라들을 고립시키지 못하거나 현지 주민들을 분열시키지 못한다면 점령군은 패배할 것입니다. BBC의 최근 여론 조사를 보면, 이라크인의 절대 다수가 점령군에 반대합니다. 따라서 저는 최근 증파가 성공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알렉스 캘리니코스의 칼럼 ‘미군 증파로도 전황은 달라지지 않고 있다’ 참조]
최근 미국 민주당은 부시 정부의 이라크 정책에 반대하는 여러 가지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민주당은 과거 미국의 각종 제국주의 정책을 직접 실행한 정당이기도 합니다. 민주당이 과연 이라크 전쟁을 멈추는 구실을 할 수 있을까요?
민주당은 자본가 정당이며, 미국 제국주의의 제2당입니다. 민주당의 지도적 인물들은 처음부터 이라크 전쟁에 지지 표를 던졌습니다.
다만 그들은 지금 이라크 전쟁에 대한 대중의 분노를 이용하려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미국 제국주의에 충성하고 책임 지는 하수인이 되고자 합니다. 이 두 가지를 모두 충족시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실제로 민주당은 분열해 있습니다. 특히 이번 표결을 둘러싸고 민주당 하원의원들이 심각하게 분열했습니다. 소수는 이라크 전쟁에 강하게 반대하고 타협에 반대합니다. 이들은 반전 운동의 입장인 즉각 철군을 지지합니다. 반면, 민주당 우파들은 군 최고 통수권자인 부시의 권한을 약화시키는 데만 관심이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당이 이번 표결에서 승리한 것은 상당한 성공입니다. 그러나 민주당은 왜 전쟁 비용 지원을 중단하는 더 쉬운 방법을 택하지 않을까요? 그들은 그럴 수 있는 헌법적 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실제로 1970년대 중반 인도차이나 전쟁 당시 선례가 있습니다. 당시 의회는 공군이 인도차이나를 폭격하는 데 필요한 비용의 지원을 중단시켰습니다.
현재 민주당이 그럴 의사가 없음은 명백한 듯합니다. 민주당의 유력 대선후보인 힐러리 클린턴은 이라크 전쟁을 지지했을 뿐 아니라 지금 철군 입장을 지지하지도 않습니다. 힐러리는 미군을 주요 도시에서 철수시키고 비교적 소규모 병력을 최전방이 아닌 군사기지들에 집중시켜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다시 말해, 힐러리는 이라크 점령의 지속을 지지합니다. 힐러리의 대안은 전 국방부 장관 도널드 럼스펠드의 원래 목표와 같습니다. 이는 민주당이 반전 정당과 얼마나 거리가 먼지를 보여 주는 단적인 예입니다.
최근 미국에서 반전 운동이 부활한 반면 이탈리아에서는 문제에 부딪혔습니다. 국제 반전 운동의 현재 상황과 앞으로의 과제를 말씀해 주십시오.
세계 반전 운동은 불균등한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2003년 2월 15일 시위는 진정한 지구적 반전 행동이었습니다. 이는 이라크 침략 초기인 2003년 3∼4월까지 유지됐습니다.
그러나 반전 운동은 세계적 운동으로 지속되지 못했습니다. 특히 유럽의 주요 반전 단체들은 옛 평화 운동 출신입니다. 옛 평화 운동은 냉전기 핵무기 반대 운동에서 등장했고, 주로 평화주의적 정서를 갖고 있었으므로 제국주의 문제에 정치적으로 대응한 경험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 운동은 제국주의 열강이 민주주의와 인권의 미사여구를 동원해 전쟁을 벌이고 흔히 이슬람의 깃발을 들고 투쟁하는 사람들에 맞서 싸우는 복잡한 상황에 대처하는 능력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유럽 대륙의 옛 평화 운동 출신 반전 운동 지도자들은 “바그다드가 함락됐으니 전쟁도 끝났다”고 말했습니다.
여기에다 나라마다 반전 운동을 약화시킨 특정한 정치적 이유가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 사례는 미국과 이탈리아의 사례입니다.
2004년에 대다수 미국 반전 활동가들은 존 케리[당시 민주당 대통령 후보]를 지지했습니다. 케리가 이라크 전쟁을 지지하며 선거운동을 했는데도 말입니다. 따라서 케리를 지지한 것은 실수였습니다. 그리고 케리가 선거에서 패배하자 반전 운동의 사기가 크게 저하했습니다. 지난 6∼9개월 전부터야 미국 반전 운동은 부활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지난 몇 달 동안 매우 중요한 몇몇 활동들이 있었습니다.
이탈리아의 반전 운동은 유럽에서 가장 컸습니다. 그러나 정당과는 독립적이고 자율적이어야 한다는 이탈리아 반자본주의 운동의 미사여구에도 이탈리아 반전 운동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재건공산당과 민주좌파당(DS)[각각 옛 이탈리아 공산당 좌파와 우파의 후신]이었습니다. 따라서 이들 정당이 [프로디의] 중도좌파 정부에 입각한 후 한편으로는 베를루스코니 정부의 결정을 실행해 이라크 주둔 이탈리아 군대를 철군시켰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아프가니스탄 주둔 이탈리아 군 병력을 증강시키자 이탈리아 반전 운동은 혼란에 빠졌습니다. 그 결과 3년 전에는 1백만 명 이상이 반전 시위에 참가했지만 얼마 전에는 겨우 3만 명만이 참가했습니다. 아주 큰 타격을 입은 것이죠.
반전 운동의 규모를 지속시킨 나라의 반전 운동은 우리 시대가 당면한 전쟁의 성격을 이해했습니다. 이 전쟁이 단지 영토를 차지하려는 부시의 탐욕 때문이 아니라 미국 제국주의의 장기 전략에서 시작됐음을 이해한 것입니다. 이런 정치적 이해가 있었을 때 반전 운동의 규모를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그런 정치적 이해만으로는 불충분합니다. 그와 동시에, 종파적이지 않은 광범한 공동전선을 통해 운동을 실제로 건설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제국주의 이론을 아는 사람들 중 상당수는 종파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운동을 건설한다는 관점이 없었습니다.
따라서 전 세계 반전 운동의 상황은 불균등합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먼저 각자의 나라에서 반전 운동을 지속적으로 건설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다른 나라 반전 운동의 부활을 고무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운동이 실제로 다시 한 번 전 세계적 운동이 되도록 말입니다.
미국 제국주의가 이라크 전쟁으로 위기에 처하자 일부 제국주의 열강이 이 기회를 활용해 독자적 활동을 펼치려 합니다. 이것은 제국주의 국가 간 경쟁이 고전적 제국주의 시대와 같은 양상으로 회귀하고 있음을 뜻합니까?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합니다. 전 세계에서 미국을 제외하고 가장 중요한 경제들인 유럽·일본·중국의 사례를 봅시다.
이들 국가의 지배자들 어느 누구도 공개적으로 미국에 도전하고 있지 않습니다. 물론 유럽연합에는 그러고 싶어하는 사람도 일부 있지만 유럽연합은 이 문제에서 내부적으로 분열해 있죠. 특히 독일에서 미국과 영국에 우호적인 우파 인사가 집권하자 유럽에서 대서양주의자의 영향력이 2∼3년 전보다 좀더 강해졌습니다.
둘째, 일본의 사례를 보면, 잘 알다시피 일본 지배자들은 미국 제국주의와의 동맹 관계를 매우 중시합니다. 일본 지배자들은 이 동맹 관계를 이용해 헌법에서 평화 조항을 삭제하고 자위대를 강화하는 것을 정당화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현재 일본 제국주의의 강화는 미국 제국주의에 대한 도전보다는 오히려 동맹 관계 강화를 통해 진행되고 있습니다.
중국 지배자들은 나중에 미국과 충돌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서두르고 싶지 않습니다. 그들은 지금은 경제를 발전시키고 전 세계적으로 동맹을 건설하는 데 집중하고 싶어합니다.
최근 미국 제국주의에 가장 적대적인 국가는 러시아입니다. 일례로, 푸틴은 최근 연설에서 미국의 행동을 강하게 비난했습니다. 최근 러시아 경제가 성장한 것은 사실입니다. 이는 주로 석유와 가스 가격이 치솟은 결과인데, 그 덕분에 에너지 공급자로서 러시아의 지위가 강해졌습니다. 러시아 지배계급은 러시아의 경제적 지위가 강화하자 더 자신감을 갖게 됐고, 푸틴은 러시아 국가를 재편해서 정치적·경제적 권력을 국가의 수중에 집중시켰습니다. 푸틴은 지정학적으로 좀더 독립적인 방향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러시아가 미국에 도전하는 것을 당장의 전략으로 삼은 것 같지는 않습니다.
즉, 주요 자본주의 열강 사이에서 미래에 심각한 경쟁 관계로 발전할 중요한 갈등들을 볼 수 있지만, 이들 열강의 지배계급 어느 누구도 미국 제국주의와 ‘균형’(국제 외교 전문가들이 쓰는 표현이죠)을 맞추고 이에 맞서는 동맹을 건설하려 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이것이 현재 상황입니다. 5년 뒤에는 상황이 완전히 달라질 수도 있습니다. 이라크에서 실패한 미국 제국주의 권력 의 한계가 드러나자 많은 국가들이 미국 제국주의와 독립적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를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일부는 미국 제국주의에 맞서 무엇을 해야 할지를 고민하겠죠. 많은 사람들이 이 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아직 노골적인 경쟁과는 거리가 멉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