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수엘라 RCTV 방송 면허 갱신 불허:
‘언론 자유’ 침해 아닌 방송 공공성 강화 조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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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상원과 유럽연합 의회, 칠레 상원에서 차베스 정부의 결정을 비판하는 결의안이 통과됐을 뿐 아니라 ‘국경 없는 기자들’이나 휴먼라이츠워치 같은 NGO들도 이번 조처를 비판했다.
그러나 차베스 정부가 RCTV의 방송 면허 갱신을 불허한 이유는 RCTV가 정부를 비판했기 때문이 아니라 벌금 미납 등 6백여 건에 이르는 방송법 위반 행위 때문이다. 이렇게 법률 위반으로 방송이 폐쇄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미국의 연방통신위원회(FCC)도 1969년 이후 TV 방송국 세 개를 법률 위반 혐의로 폐쇄한 바 있고, 영국에서도 1992년에 템스TV가 방송 면허를 박탈당한 적이 있다.
사실, RCTV는 차베스 집권 전에도 이런저런 범법 행위 때문에 여러 차례 문을 닫은 적이 있다. 1976년에 편향적 보도 때문에 사흘 동안, 1980년에 선정적 프로그램 때문에 36시간 동안, 이듬해 포르노 방영 때문에 24시간, 1989년에 담배 광고 때문에 24시간 폐쇄됐고, 1991년에는 프로그램 방영 중단 처분을 받은 적도 있다.
그리고 이런 범법 행위 중 압권은 2002년 4월 군사 쿠데타 가담 행위이다. 당시 미국의 후원을 받는 베네수엘라 우익들이 쿠데타를 일으켰을 때 RCTV는 정부군이 평화적 시위대를 공격한 것처럼 필름을 조작하고, 시청자들에게 반정부 시위 참가를 선동하는 광고를 끊임없이 내보내고, 쿠데타 주모자들을 방송에 출연시켜 선전·홍보 기회를 제공하고, 차베스가 사임했다는 허위 보도를 내보내는 등 노골적인 쿠데타 지지 활동을 했다.
그러나 차베스를 지지하는 민중이 거리로 뛰쳐나와 죽음을 무릅쓰고 투쟁해 쿠데타를 좌절시키고 차베스를 권좌에 복귀시켰을 때, RCTV는 하루 종일 옛날 영화나 만화 따위를 방영하며 언론 본연의 임무를 외면했다.
이런 방송이 쿠데타 실패 뒤 당장 폐쇄되지 않고 그 뒤 5년 동안이나 존속하며 끊임없이 반정부 선전·선동을 지속할 수 있었다는 것이 오히려 놀라운 일이다.
또, 이번 조처로 RCTV 방송국 자체가 폐쇄되는 것도 아니다. RCTV는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 공중파 방송을 하지 못할 뿐이고, 위성·케이블·인터넷 방송은 여전히 계속할 수 있다.
사실, 이번 조처는 소수 특권층의 사유물 구실을 하던 공중파 방송에 대한 대중의 접근 기회를 확대해서 비록 불충분하나마 방송 민주화와 공공성 강화에 기여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조작
지금 베네수엘라에서는 국민의 60퍼센트 이상이 정부를 지지하는데도 대다수 언론 매체는 노골적으로 반정부 성향을 드러내는 역설적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베네수엘라 정보통신부 통계를 보면, 2006년 6월 현재 TV 방송국 81개 가운데 79개(97퍼센트), 라디오 방송국 7백9개 가운데 7백6개(99퍼센트), 신문사는 1백18개 전체가 민간 언론 매체다.
특히, TV 방송 시장의 90퍼센트를 장악한 4대 민간 방송(RCTV·글로보비젼·텔레벤·베네비젼)과 주요 신문들이 모두 정부를 상대로 “심리전”을 벌이고 있다. 또, RCTV의 소유주인 억만장자 마르셀 그라니에르는 베네수엘라 전역의 지역 방송국 40개를 소유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RCTV의 공중파 방송 면허가 갱신되지 않았다고 해서 베네수엘라에서 언론의 자유가 제약될 것이라는 우려는 그야말로 기우이거나 불순한 의도가 있는 호들갑일 뿐이다.(베네수엘라에서는 반정부 세력들이 RCTV 방송 면허 갱신 불허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를 이용해 모종의 사회 혼란과 소요 사태를 일으키려 한다는 소문이 널리 퍼져 있었다.)
차베스는 오히려 RCTV 같은 언론이 “훌륭한 저널리즘과 표현의 자유”를 위협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RCTV한테서 회수한 채널 2를 지역사회 매체에 배정해서 방송의 민주화를 증진하고 무엇보다 “지금까지 거의 제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사람들에게 통신 권력을 돌려주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