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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배한 혁명》(크리스 하먼 지음, 풀무질):
독일 혁명에 대한 유일한 책

독일의 지도적 사회주의자 칼 리프크네히트는 카이저[독일 황제]의 궁전 창문 너머로 군중에게 다음과 같이 연설했다.

“‘자유의 날이 밝았습니다. 저는 모든 독일인의 자유로운 사회주의 공화국을 선포합니다. 우리는 모든 독일인에게 손을 내밀며 세계 혁명을 완수하자고 호소합니다. 세계 혁명을 원하는 분은 손을 들어 보십시오.’ 수천 명이 손을 들었다.”

1918년 11월 독일 혁명의 유쾌한 나날들은 그랬다. “4년 간의 전쟁 때문에 피 흘리고 굶주렸던 사람들이 이제 무장한 병사들과 붉은 깃발들을 따라 교외에서 도심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구(舊)질서는 일소됐고, 왕정은 무너졌다. 이렇다 할 권력을 가진 기구는 노동자·병사 평의회뿐이었다.

그러나 하먼이 보여 주듯이, “낡은 질서를 무너뜨리는 것과 새로운 질서를 확립하는 것은 별개 문제였다.” 그 뒤 5년 동안 독일은 혁명적 열정과 반동적 공세 사이를 오락가락했다. 노동자들은 두 차례나 ― 1920년 카프 무력정변 뒤에, 그리고 1923년에 ― 권력 장악 직전까지 갔다. 그러나 그 때마다 그들의 희망은 좌절됐다.

1982년에 초판이 나왔고 1997년에 재판이 발간된 이 흥미진진한 책의 중심 주제는 독일 혁명이 패배한 이유를 설명하는 것이다. 많은 냉소적 비판가들의 주장과 달리, 독일 혁명의 패배는 불가피하지 않았다. 사회주의 혁명의 객관적 조건은 존재했다. 그러나 주관적 조건이 존재하지 않았다.

결정적인 물음은 이렇다. 좌파 단체들은 급진화한 수많은 노동자들을 이끌고 권력을 장악하기를 원했는가? 또는 그럴 수 있었는가?

좌파 단체들 가운데 가장 영향력 있는 단체는 사회민주당(SPD)이었다. SPD는 당원이 1백만 명이었고, 선거에서 4백50만 표를 얻었고, 90개의 일간지를 발행했고, 수십 개의 클럽과 수백 명의 상근자를 거느리고 있었다. 또, 마르크스주의 언사를 늘어놓았다. 가히 무슨 일이든 이룰 성 싶었다.

그러나 혁명의 열기라는 시험에 빠지자 SPD는 혁명적 변화의 전망보다는 낡은 자본주의 질서를 선호했다. 이 점은 이미 1914년에 분명히 드러난 바 있었다. 제1차세계대전이 터지자 SPD는 지배계급과 같은 편에 섰던 것이다.

1918년 11월에 혁명이 분출하자 SPD는 노동자 대중에 대한 지도력을 유지하기 위해 좌경화해야만 했다. 그래서, 왕정을 구하려 애쓰던 SPD는 갑자기 공화국을 선포해야 했다.

그러나 SPD는 독일 전역을 휩쓸며 점차 성장하는 혁명적 소요가 자신의 진정한 적(敵)이라고 보았다. 그래서 노동자들을 무장시키지 않고 오히려 구질서의 군대인 자유군단(Freikorps)을 지원했다. 자유군단은 머지않아 좌파들을 상대로 일련의 살인 테러를 감행했다.

제1차세계대전

SPD와 혁명적 좌파 사이에는 독립사회민주당(USPD)이 있었다. 1917년에 SPD에서 분열해 나온 USPD도 말로는 좌파적 언사를 늘어놓았지만 실제로는 자본주의 의회 내의 행동을 원했을 뿐이다.

USPD 같은 정당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항상 존재하기 마련이고, 대중 투쟁의 시기에 수많은 노동자들은 처음에는 그런 정당을 지지할 것이다. 노동자들은 그들의 말을 믿을 것이고, 혁명이라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을 그들과 공유할 것이다.

하먼이 입증하듯이, 여기서 핵심 문제는 개량주의 정당들이 자신들을 배신했음을 노동자들이 깨달았을 때, 잘 조직되고 규율 있고 경험 많은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의 조직이 노동자들에게 대안이 될 수 있을 만큼 강력한 존재인가 아닌가 하는 것이다.

독일에서는 1918년 11월에 로자 룩셈부르크와 칼 리프크네히트가 이끄는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이 3천 명쯤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개량주의·중도주의 단체들과 별개로 조직된 적이 한 번도 없었고, 혁명적 위기가 발생한 지 몇 주 뒤인 1918년 12월에야 독일공산당(KPD)이라는 독자 정당을 건설했다.

그래서 KPD의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고, 당원들은 응집력 있고 일관된 지도력을 제공할 수 없었다. 예컨대 1919년 1월에 KPD는 가장 열렬한 지지자들이 SPD의 도발에 때 이른 봉기로 대응하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봉기가 실패하자 SPD는 자유군단이 활개치도록 내버려두었고, 자유군단은 룩셈부르크와 리프크네히트를 비롯한 지도적 활동가들을 대거 살해했다.

그 뒤에도 5년 동안 사회주의자들에게는 많은 기회가 있었다. 하먼은 그 때마다 계급 세력 저울을 설명하고 ‘주관적 조건’, 특히 당원 약 20만 명의 정당으로 성장한 KPD의 영향력과 전술을 분석한다.

오판

가장 흥미로운 것은 투쟁의 주요 고비마다 하먼이 KPD의 전술을 자세히 살펴보는 부분이다. 하먼은 다음과 같은 쟁점들을 검토한다. 사회주의자들은 언제 옛 노동조합을 떠나 새로운 노동조합을 결성해야 하는가? 수많은 노동자들이 행동을 요구하고 있을 때 행동하지 않으면 어떤 비극적 대가를 치르게 되는가? 어떤 상황에서 공세로 나아가고, 어떤 상황에서 수세를 취해야 하는가? 의회에 참여할 것인가 말 것인가?

하먼은 그런 전술적 결정들이 혁명의 성패를 좌우한다는 것을 보여 준다. “계급 전쟁은 한 가지 점에서 여느 전쟁과 마찬가지다. 즉, 특정 시점의 절대적 계급 세력 저울만이 전쟁의 결과를 좌우하는 것이 아니라 지도자들이 적군의 강점과 약점에 맞게 자신의 군대를 지휘할 수 있는지 없는지에 따라서도 결과가 좌우된다는 것이다. … 한 순간의 오판(誤判) 때문에 승리의 문턱에서 혼란과 붕괴의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

독일 혁명에서 오판이 거듭된 이유는 흔히 KPD 지도부가 과거의 실수를 만회하려고 오버하다가 자신감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결국, 독일·러시아와 유럽 전역에서 노동자들의 자신감이 떨어졌고, 나치즘과 스탈린주의로 가는 길이 닦였다.

《패배한 혁명》은 역사를 위한 역사책이 아니라 미래를 위한 역사책이다. 따라서 세계를 변혁하고 싶은 사람들은 모두 이 책을 꼭 읽어 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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