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의 뿌리는 침략 전쟁과 점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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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이후 대다수 아프가니스탄 주민들에게 깨끗한 식수와 전기, 의료시설 등은 ‘사치품’이 됐다. 수도인 카불조차 하루에 2시간 정도만 전기가 들어오고, 아프가니스탄 전체의 90퍼센트는 아예 전기가 공급되지 않는다.
아프가니스탄 주민들의 평균 수명은 43세로 추락했다. 비참한 점령 상황 때문에 2006년에만 2백16만 1천명의 난민이 발생했다.(미국난민이민자위원회(USCRI))
얼마나 많은 아프가니스탄인들이 전쟁과 점령으로 죽었는지는 정확히 가늠할 길조차 없다. 국제인권단체인 휴먼라이츠워치(HRW)는 2006년에 미군이 주도한 군사작전으로 사망한 사람만 4천4백여 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
더구나, 올해 들어 미군과 다국적군이 군사 작전을 확대하면서 사상자 수가 크게 늘었다.
아프가니스탄 정부, 외국 지원기구, 유엔(UN)이 공동 작성한 〈아프가니스탄 상황보고서〉에 따르면, 이미 올해 상반기에만 3천7백 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최근에도 점령군은 동부 파크티카 주(州)에서 탈레반을 소탕한다며 학교에 있던 어린이 7명을 학살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아프가니스탄인들이 점령 세력에게 극도의 환멸과 분노를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반면, 한때 아프가니스탄인들 사이에서 신뢰를 잃었던 탈레반은 외국 점령군 축출을 내걸고 싸우면서 다시 지지를 얻을 수 있었다.
점령이 추악하고 야비할수록 그에 맞선 저항 역시 온갖 수단을 동원하기 마련이다. 오직 부당한 침략 전쟁과 점령이 끝날 때만 이 모든 비극의 뿌리를 도려낼 수 있다.
탈레반 - 제국주의의 피조물
주류 언론들은 탈레반을 “국제 사회를 위협하는 … 광신적 집단”으로 묘사한다. 그러나 그들은 탈레반이 ‘국제 사회’의 산물이란 점은 지적하지 않는다.
탈레반은 원래 이란 이슬람 정권의 영향력이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에 미치는 것을 막기 위해 미국 정부, 사우디아라비아 왕가, 파키스탄 정부에 의해 창조됐다. 사우디아라비아 왕가의 돈으로 수백 개의 마드라사[종교 학교]가 설립됐고 소련 침략과 뒤이은 내전으로 발생한 아프가니스탄 고아들이 이곳에서 공부하며 ‘탈레반[학생]’이 됐다.
그들은 사우디아라비아 왕가가 신봉하는 초보수적인 와하브파 이슬람 교리를 배웠다.
유노칼
1996년에 탈레반이 부패한 북부동맹 세력을 몰아내고 카불을 장악했을 때 미국 다국적 석유 기업 유노칼은 탈레반과 협력해 석유 파이프라인을 만들 생각이었다. 그러나 미국 지배자들은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 전체를 통치할 능력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입장을 바꿨다. 그들은 탈레반에게 아프가니스탄의 모든 비극의 책임을 떠넘겼다. 특히 탈레반의 여성 학대를 비난했다. 그러나 탈레반의 여성 학대는 사우디아라비아 왕가의 교리에서 가져온 것이다. 그러나 부시 정부는 사우디아라비아 왕가를 동맹으로 여긴다.
2001년 9·11 이후 부시 정부는 ‘테러와의 전쟁’을 빌미로 아프가니스탄을 침략했고 탈레반을 변방으로 몰아냈다. 그 대신 부패한 북부동맹이 돌아오고 전 CIA 첩자인 카르자이가 대통령이 됐다.
그러나 이들의 인권유린은 탈레반을 능가했고 결국 6년 후 탈레반은 다시 부활했다. 원래 2001년에 탈레반은 대중적 지지를 받지 못했지만 지금은 대중적 지지를 받고 있다. 아무리 끔찍한 방식을 쓰더라도 탈레반이 미국 주도의 제국주의 점령에 맞서는 무장 저항을 주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 정부 씽크탱크인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조차 “나토와 미국의 군사 작전으로 발생한 민간인 희생 때문에” 아프가니스탄인들이 차라리 탈레반과 협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부시의 ‘테러와의 전쟁’을 지지해 온 노무현과 주류 언론들은 탈레반을 비난할 자격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