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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제국주의의 위기

[편집자] 이 글은 존 리즈가 ‘맑시즘 2007’에 참가한 뒤, 한 회합에서 연설한 것을 녹취한 것이다. 존 리즈는 영국 ‘전쟁저지연합’의 창립자 가운데 한 명이고, 사회주의노동자당(SWP)의 중앙위원이다.

[2003년에] 미국이 이라크를 침략한 목적은 중동 지역에 친(親)시장·친(親)미 성향의 안정적 근거지를 확보하려는 것이었다. 미국에게 이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였다. 왜냐하면 중동의 핵심 동맹국 중 하나였던 이란을 1979년 [혁명으로] 잃은 뒤 미국의 확고한 동맹국은 이스라엘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믿을 만한 동맹국 중 하나였던 사우디아라비아에 대한 신뢰도 1990년대를 거치며 태반이 무너졌다. 따라서 미국은 9·11을 활용해 어떻게든 이라크를 확보해야 했다.

그러나 이라크 침략은 결국 미국에게 재앙이 됐다. 핵심적 이유는 군사적 점령과 이라크 재건 계획이 모두 미국의 경제적 약화로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군사 면에서, 미국은 [1991년] 제1차 걸프전쟁 때 사담 후세인을 축출하기 위해 사용한 군대의 절반만을 [2003년 이라크 전쟁에] 투입했다. 따라서 미국은 전쟁 뒤 이라크 대중의 저항에 취약할 수밖에 없었다.

경제 면에서, 이라크 경제를 재건하기 위해서는 국가 주도의 재건이 필요했는데 신자유주의 교의와 미국의 경제적 약화 때문에 재건은 시장에 내맡겨 졌고 그 결과는 재앙이었다.

미국이 이라크에서 그나마 성공한 것은 적대적인 대중을 서로 이간질시켜 지배하는 전략이었다. 미국은 고전적 식민주의 전략을 이용해 이라크 대중을 이간질시켜 서로 싸우게 만들었다. 쿠르드족을 이용해 수니파와 싸우게 만들고 더 나아가 시아파와도 싸우게 만드는 것이 침략 계획 자체에 포함돼 있었다.

미군 점령 치하에서 수립된 초기 꼭두각시 정부는 ‘서로 이간질시켜 각개격파하는’ 전략에 따라 구성됐다. 미국에게는 이 전략이 너무 성공적인 것이 오히려 문제였다. 미국이 촉발한 이라크 대중 간 반목은 미국의 통제를 완전히 벗어났다.

이라크 수렁의 뜻밖의 결과들

앞으로 1년에서 1년 6개월 사이에 미군이 철군을 시작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철군 여부와 상관없이 미국의 원래 목표인 안정적 친시장·친미 정부의 출현은 당분간 이라크에서 불가능하다.

이라크에서 미국의 패배는 뜻밖의 결과들을 가져 왔다.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중동에서] 이란의 지위가 급상승한 것인데, 사실 이 과정에서 이란이 스스로 한 일은 거의 없다.

미국에게 이것은 매우 중대한 전략적 문제이다. 왜냐하면 미국의 이라크 침략 목적이 혁명 이후 이란의 영향력 강화에 대항할 안정적 근거지 확보였는데, 오히려 이란의 영향력 강화를 도운 꼴이 됐으니 말이다.

미국이 이란을 공격하고 싶어하는 것은 명백하다. 미국이 직접 나서든 이스라엘을 통해서든 적어도 이란의 핵시설 폭격이라도 하길 바란다. 그러나 이라크 수렁에 빠진 미국 정부가 국내에서 정치적으로 힘든 싸움을 벌이고 있는 마당에 이란 공격을 강행하기는 쉽지 않다.

지난해 여름에 미국 정부는 이 문제의 해결책을 찾은 듯했다. 이스라엘이라는 미국의 대리인을 통해 이란의 대리인이라 여긴 레바논 남부의 헤즈볼라를 공격했다. 그러나 이 전쟁에서 이스라엘이 패하자, 이란을 겨냥한 이 공격은 [미국에게] 재앙이 됐다. 전쟁의 패배로 중동에서 이스라엘의 지위는 과거 어느 때보다 약화했다. 그래서 현재 미국은 이란의 부상과 이스라엘의 약화라는 매우 심각한 전략적 위기에 봉착했다.

현재 미국은 몇 가지 방식으로 이 위기를 극복하려 하고 있다. 먼저, 미국은 이스라엘을 도와 팔레스타인을 약화시키려 노력하고 있다. 또, 레바논의 내분을 부추겨 헤즈볼라를 약화시키려 하고 있다. 이란 공격에 대한 국내의 정치적 반발을 극복하기 위해서도 애쓰고 있다.

그와 동시에, 미국은 중동 이외 다른 지역의 갈등들을 무시하거나 봉합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예컨대 북한에 대한 태도를 바꾼 것도 중동에 집중하기 위해 다른 지역의 갈등을 봉합할 필요에서 비롯했다. 사실 미국이 내일 당장 이란에게도 비슷한 제안을 내놓지 못할 이유가 없다. 미국이 북한을 매수해 핵 프로그램을 무마했듯이 말이다. 그러나 미국이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은 이란에 대한 미국의 이해관계가 다르기 때문이다.

베네수엘라도 비슷한 상황이다. 차베스가 운신의 폭이 넓어진 것은 중동 민중의 저항 덕분이었다. 사실 차베스는 1973년 칠레의 [살바도르] 아옌데 정부 이래 미국이 라틴아메리카에서 자신의 이익을 관철시키는 데 가장 심각한 위협이다. 그러나 적어도 아직까지 미국은 아옌데에 대한 대응과는 다르게 차베스에게 대응하고 있다. 말로는 위협하더라도 당장 혼란 조성 계획을 실행하거나 반군을 조직하고 있지는 않다. 미국이 두 개의 전선에서 동시에 전투를 벌이기를 원치 않기 때문이다.

‘테러와의 전쟁’은 제국주의의 특정 단계

미국이 중동을 제외하고 유일하게 관심을 기울이는 지역은 아프가니스탄이다. ‘테러와의 전쟁’과 이데올로기적으로 밀접히 연관돼 있기 때문이다. 유럽 각국 정부들은 이라크에서 발을 빼면서도 미국과의 동맹을 유지하기 위해 아프가니스탄 분쟁에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 이들은 탈레반에 맞선 전쟁이 [이라크 점령보다] 이데올로기적으로 정당화하기 더 쉽고 군사적 승리 가능성도 더 크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테러와의 전쟁’ 논리는 현대 제국주의 체제에 깊이 뿌리박고 있고 이라크 상황과 관계없이 지속될 것이다. ‘테러와의 전쟁’도 냉전과 마찬가지로 제국주의의 특정 단계이자 상시적 구조이다.

따라서 반자본주의 정치는 반제국주의 정치를 포함해야 한다. 냉전 때 매카시즘과 반공산주의가 그랬듯이, 오늘날 국내 정치에서도 제국주의 정치가 중요한 요소로 작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슬람 혐오와 시민권 공격이 대표적 예들이다. 따라서 반전 운동과 반전 정치는 우리 정치에서 중요한 영역으로 남을 것이다.

특히, 현재 이라크와 나아가 아프가니스탄도 미국 제국주의가 “테러와의 전쟁”에서 패배하고 있는 약한 고리이다. 미국은 이라크에서 패배하고 있기 때문에 전략적 과제인 이란에 대한 개입을 뒤로 미룰 수는 있어도 회피할 수는 없다.

따라서 이라크에서 미국의 패배, 이란의 부상, ‘테러와의 전쟁’이 불러 온 국내적 변화는 앞으로 오랫동안 우리에게 가장 핵심적인 문제가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당장은 아닐지라도 이것이 주요 제국주의 열강 간의 충돌로 이어질 가능성도 예의 주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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