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편지
정치 실천에는 전망이 필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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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호 12면 ‘터키의 이라크 공격은 미국의 이라크 점령 위기를 심화시킬 것이다’라는 제하의 기사는 핵심적인 예측 문제에서 우리를 헛갈리게 만들고 있다.
기사 도입부가 “터키의 이라크 북부 침략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고 있는 반면, 기사 중간 부분에서는 “과연 터키가 이라크 북부를 당장 침략할지, 침략군이 이라크 쿠르드족 자치정부의 중심 영토까지 진격할지는 아직 알 수 없다”고 한다.
그러나 조금 아래에서는 “미국의 점령 파트너인 자치정부와 미국의 동맹인 터키군 간의 대규모 충돌이 발생할 수도 있다”며 다시 터키의 침략 가능성을 강조하고, 터키 정부를 말리려는 부시 정부에게 “우리도 9·11 이후 미국처럼 행동할 권한이 있다”라는 터키군 고위 장성의 퉁명스런 답변을 인용하고 있다.
하지만 다시 조금 아래에서는 “물론 터키의 침공이 아직 확정적인 것은 아니다” 하고 어조가 조금 바뀐다.
역사유물론자인 마르크스주의자가 어떤 사건의 전망을 내놓는 것은 필수적이다. 마치 농민에게, 상습 침수지역 주민에게, 옥외 집회 조직자들에게, 그 밖의 다양한 집단의 사람들에게 일기예보가 중요하고 일기예보는 확률론을 따르는 것처럼, 우리도 정치적 사건의 전망을 예측해야 하고 확률론적으로 그래야 한다.
확률론
터키군의 이라크 북부 공격이 과연 일상적이다시피 했던 이전의 월경(越境) 수준을 훨씬 넘는 침공 수준이 될 것인지 여부는 ‘확실하다’, ‘가능성이 매우 높다’, ‘비교적 높은 편이다’, ‘비교적 낮은 편이다’, ‘매우 낮다’, ‘거의 또는 전혀 없다’ 따위의 확률론적 언어로 표현돼야 한다.
지난 일요일 파병 연장을 둘러싼 KBS 심야토론에서 자이툰 부대의 안전 문제와 관련해 터키군의 이라크 북부 침공 가능성 문제도 한 쟁점이 된 데서도 알 수 있듯이, 정치에서 예측은 중요하다. 특히 정치 실천에서는 필수적이다. 왜냐하면 정치 실천은 자생적 운동에 단순히 동참하는 것만으로는 안 되고 전략과 전술에 바탕을 둬야 하는데, 전략과 전술은 계획에 관한 것으로, 달리 말해 설계술이기 때문이다. 계획하고 설계하려면 전망을 내놓아야, 즉 예측해야 한다. 예측을 하려면 분석을 해야 한다.
그러므로, 먼저 터키 국가가 심각하게 분열해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그 다음 왜 터키 군부와 우익은 침공을 원하는지, 그럼에도 에르도간 총리의 정의개발당 정부와의 역학관계상 그 의지를 관철시키는 것이 정말로 가능한지 등의 요인들에 대한 분석을 바탕으로 기사가 씌어져야 했다. 같은 사건에 대한 론 마굴리스의 온라인 기사와 비교되는 아쉬운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