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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를 염원한다면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를 지지하라

총기 탈취 사건이 일어나자 몇몇 대선 후보들은 그 총구가 자기를 향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감추지 못했다. 구린 데가 많은 이명박은 아예 방탄조끼를 입고 유세에 나섰다. BBK 등에 대한 국민적 분노가 총알로 날아드는 게 아닌지 두려워할 만도 하다.

그럼에도 ‘묻지마’ 지지 속에 이명박이 대세를 다지고 있는 현상은 사이비 개혁 정부들에 대한 대중의 환멸과 반감의 깊이를 헤아릴 때만 이해할 수 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집권 10년 동안 대중은 난생 처음인 일들을 여럿 경험했다. 평생직장으로만 알았던 곳에서 집단으로 정리해고 됐고, 침략전쟁 참전국이자 점령국의 국민이 됐다.

경제성장률이 그럭저럭 유지되는 동안에 대중의 소득증가율은 1990년대 7퍼센트에서 0.5퍼센트(2005년)로 곤두박질쳤다. 10명당 6명이 비정규직인 비율(55.8퍼센트)은 OECD 국가 평균(15퍼센트)의 4배에 가까운 수치이다. 1990년대 말까지 자식들의 삶이 자기보다 나으리라는 것을 의심해 본 적이 없는 수많은 사람들이, 이제는 ‘88만 원 세대’로 전락하고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영혼이라도 팔고 싶다는 자식 세대의 고통을 지켜보고 있다. 이것이 바로 대중이 노무현과 개혁 사기꾼들 쪽으로 고개조차 돌리고 싶지 않은 까닭이다.

그러나 이명박이 설사 당선하더라도, 그에 대한 지지가 사이비 개혁 세력이 추진한 전쟁과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한 반감에 기초해 있다는 사실은 이명박에게 큰 부담이다. 바로 그 전쟁과 신자유주의 정책들을 이명박이 계속 추진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가 지지를 얻은 바로 그 이유(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한 반감에 따른 심판론)로 그가 붕괴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명박도 자신에 대한 지지가 대중의 일관된 보수화에 기반을 둔 것이 아님을 알기 때문에, 이회창에게 “무늬만 보수”라는 경멸을 받으면서도 짐짓 막무가내 보수는 아닌 것처럼 가장해 왔다. 이명박 진영에 있는 조갑제 못지않은 우익들이 “무늬만 보수”를 용인하는 이유는 정권 교체를 위해 ‘산토끼’ 유인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은 ‘이명박 대세’라는 것이 얼마나 모순으로 가득 찬 것인지 보여 준다.

반전·반신자유주의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한 반감이 왜 반신자유주의를 표방하는 권영길 후보에게로 즉각 모이지 않는지 민주노동당원에게는 실망스러울 수도 있다. 그러나 아직 신생 정당이 40년 넘게 명맥을 유지해 온 양대 정당을 제치고 전국적 대안으로 선택되기는 쉽지 않다. 민주노총 지도자들이 신자유주의에 맞선 정치 투쟁을 더 단호히 벌였다면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의 사회적 영향력이 조금 더 강화됐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전히 민주노동당은 서구 사회민주주의 정당들과 비교하면 상승 가도에 있다.

이런 점을 이해한다면 실망감을 나타내기보다 ‘이명박 대세’의 모순된 상황이 만들어낼 기회에 잘 대비해야 한다. 그 첫 과제는 대선에서 민주노동당 지지를 최대한 모으는 것이다. 그것은 결코 사표가 아니다. 삼성SDI 하이비트 노동자의 촌철살인 같은 지적대로 “권영길 후보가 얼마나 표를 받느냐에 따라 자본가들은 우리들이 얼마만큼의 힘을 가지고 있는지 가늠할 것이다.”

권영길 후보가 받는 표는 반전·반신자유주의를 대변하는 표이고, 노동계급의 정치세력화를 확고하게 만들 진보의 기반이다. 권영길 후보가 말하듯이, “민주노동당은 재벌로부터 돈 받지 않았다.” 재벌과 기업주와 부자 들에게 돈 받는 당은 그것이 설사 불법 비자금이 아니더라도 재벌과 기업주와 부자 들을 먼저 생각하게 돼 있다.

계급 분단선

반면 보수층도 지켜보는 TV 토론회에서 권영길 후보는 적당히 얼버무리지 않고 “좌파 정당”임을 자임했다. 또, “노동자·농민의 목소리를 대변하겠다”고 말했고, “모든 것을 다 동원해서라도 재벌, 땅 부자, 주식 부자 들에게 세금 걷겠다”고 다짐했다. 한 패널이 “부자들이 무서워할 것 같다”고 말할 정도였다. “내각 인사 원칙은 반신자유주의”라고 했고, “한미동맹의 폐기”를 주장했다.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에게 표를 모으는 것은 새 정권 하에서 전쟁과 신자유주의에 맞선 투쟁의 진지를 구축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런 투쟁에는 강력하고 응집력 있는 정치적 지도력이 필요한데, 민주노동당이 이번 대선에서 상당한 득표를 한다면 이런 구실을 하기가 더 쉬워질 것이다.

이번 대선이 민주노동당과 진보진영에 던지는 이런 의미에 비춰볼 때, 이 중요한 시기에 민주노동당 내 의견그룹 ‘전진’의 일부 간부들이 분당 논의를 하고 있다는 얘기가 들려 오는 것은 안타깝다. 당내 세력관계상 내년 총선에서 비례대표를 내지 못할 것 같다는 판단이 계기가 됐다고 한다. 당원들을 제대로 이끌 생각보다 당권 장악에 더 관심을 기울이는 듯해 다소 씁쓸하다.

더욱 걱정인 것은 ‘어차피 분당할 것이라면 민주노동당을 강화하기 위한 활동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식의 태도가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대선 성적이 나빠야 분당 명분도 선다고 부지불식간에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설사 분당이 이유 있다 해도, 심지어 이미 분당에 착수했다 해도 이런 태도는 정치적으로 미숙한 태도다.

민주노동당 소속이 아니더라도 진보를 자임하고 노동계급 속에 기반을 둔 개인과 단체 들은 모두 권영길 후보 지지 표를 모으는 일에 동참해야 한다. 마음에 안 드는 점이 있더라도 지지를 하면서 비판해야지, 자본가 정당들과 노동자 정당 사이의 분단선을 인정하지 않는 것으로 나아가서는 안 된다.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에게 던지는 표는 권영길 개인에게 던지는 표도, 단지 민주노동당이라는 특정 정당에게 던지는 표도 아니다. 그것은 전쟁과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한 반대 의사를 표명하는 것이자, 기업주에 대한 투쟁을 경제적으로뿐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벌이겠다는 선언이고, 반전·반신자유주의 운동 건설을 위한 투자이다.

설사 단일화해도 범여권은 희망이 될 수 없다

정동영-문국현-이인제 단일화는 설사 된다 해도 진보진영의 희망이 될 수 없다.

첫째, 설사 단일화돼도 이른바 “대역전”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 문국현은 범여권과 아슬아슬하게 선을 그어온 덕분에 얻은 ‘인기’의 비결을 포기하는 셈이고(그는 “정동영의 정치적 이상”을 일부 인정했고, “낡은 정치로의 회귀”라고 비판했던 민주당과의 통합에도 문을 열었다), 백약이 무효인 신당은 역시 ‘잡탕’에 일가견 있다는 것을 재확인시킬 뿐이다. 범여 연대 대상으로 이수성 후보가 고려되고 있다는 보도에는 아연할 수밖에 없다. 김영삼 정권의 국무총리였던 이수성은 바로 한나라당의 전신인 신한국당의 상임고문을 지냈다. 게다가 그는 삼성언론재단의 이사장도 지냈다. 익히 짐작할 수 있듯이 이 기구는 “시장경제체제 기본 원리 활성화”를 목표로 삼고 있다.

둘째, 단일화는 무엇보다 한나라당과는 다른 새로운 정치를 대변할 수 없다. 2004년 총선에서 역사의 쓰레기장에 버려졌던 한나라당에게 오늘 같은 영화를 안겨 준 것은 바로 통합신당의 전신인 열린우리당의 정부였다. 지금까지 그랬듯이 범여권은 한나라당과 말로는 싸울지 몰라도 전쟁과 신자유주의를 추진하는 실천에서는 함께할 것이다. 이명박과 정동영-문국현은 이미 한미FTA 찬성 의견이 일치하고, 부유층에 세금 감면을 해 주려는 것도 똑같고, 미국의 중동 지배를 지원해 행한 파병에 대한 긍정적 평가도 같다.

따라서 정-문 단일화 지지는 한나라당 독주를 막고 싶은 선의와는 달리, 한나라당의 전쟁과 신자유주의 정책의 믿음직한 협력 파트너를 만들어 주는 것으로 끝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