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적은 국내에 있다”
〈노동자 연대〉 구독
심상정 비대위는 “주적은 국내에 있다”는 93년 전 독일사민당 급진파 지도자 칼 립크네히트의 말과 정반대로 주적을 북한 당국인 양 착각하고 있다. 물론 일반적으로 말해 민주노동당이 북한 체제를 비판한다면 그것은 당연한 일이다. 수십만 명이 굶어죽고, 아동 영양실조가 만연해 있는 반면, 핵무기를 개발하고, 그 지도자의 아들들은 스위스 등지의 국제학교에서 공부하고, 민주적 권리와 노동기본권도 용인되지 않는 사회를 노동자 정당이 비판하지 않으면 그것은 이상한 일이리라.
그러나 비대위는 구체적으로 두 당원에 대한 보안법 적용을 비난하고 그들의 석방을 요구함으로써 남한 당국을 비할 데 없이 훨씬 더 강력히 비판하고 민주노동당 운동에 대한 남한 당국의 개입 즉각 중단을 요구해야 했다.
또, 북한보다 미국 제국주의 비난에 더 열을 올려야 했다. 노움 촘스키나 하워드 진, 브루스 커밍스 등 세계 유수 지식인들이 그렇듯이 말이다. 가령 북핵 문제에서도, 북한의 핵개발을 부추긴 것이 미국의 제국주의적 압박임은 홍현익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이나 미국 언론인 존 페퍼 같은 자유주의자들도 지적하는 바인데, 민주노동당 비대위가 침묵하는 것은 전혀 좌파답지 않다.
사실, 심 비대위의 ‘공헌’은 민주노동당 내 PD(평등) 파들이 ‘좌파’라는 신화를 순식간에 날려 버리고 있다는 점에 있다. 지난 1월 8일 당 게시판에 올린 “‘종북’, 패권주의, ‘제2창당’론에 대한 다함께의 입장”에서 이미 우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당 확대간부회의의 비대위안을 지지하는 것은] ‘자주파’에 반대해 일시적으로 뭉친 갖가지 이질적인 조류와 집단, 개인들이 제시하는 당의 미래에 대한 상이한 비전이 과연 무엇으로 판명나는지 대중에게 입증될 기회를 주는 것[이다.]” 실로 3주 만에, 심상정 비대위를 지지하는 PD는 민중민주주의가 아니라 사회민주주의의 다양한 변형에 불과한 것으로 판명나고 대중에게 입증되고 있다.
1989년 봄 문익환 목사와 임수경 씨가 방북했을 때 당시 인민노련 등 대부분의 PD 파들은 이들에 대한 혹심한 마녀사냥과 국가 탄압에 맞서기를 회피했다. 물론 지금처럼 이러저러한 이유를 대며 말이다. 당시 인민노련 지도자 노회찬은 5년 뒤 김일성 조문 파동과 서강대 총장 박홍의 주사파 발언 파동 상황에서 우익과 공안세력의 마녀사냥에 추임새를 넣었다.
대체로 마녀사냥의 제물, 속죄양은 광범한 대중에게 그다지 매혹적이지 않은 집단이나 개인인 경우가 흔하다. 나치 박해의 생존자 마르틴 니묄러 목사의 유명한 시구(詩句)는 고통스러워 불확실해진 목사의 기억 때문에 몇 가지 상이한 버전이 있는데, 그 중에는 나치가 여호와의 증인들을 잡으러 왔을 때 자신이 침묵했음을 후회하는 것도 있다. 오늘날 한국의 양심적 병역 거부 문제에서도 그렇지만, 여호와의 증인의 신앙이나 사상이 문제가 아니라 친제국주의 국가가 문제다.
이슬람 공포증이나 무슬림 혐오도 마찬가지이다. 이슬람을 획일적으로 보는 것이 문제이지만, 원리주의적 이슬람조차 미국의 중동 억압과 수탈 문제에서 분리해 바라보면 미국 제국주의라는 엉뚱한 편에 서게 된다.
심 비대위는 자신이 지금 어느 편에 서 있는 건지 잠시 멈추고 돌아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