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 간 갈등을 고조시킬 코소보 독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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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17일 코소보 의회가 일방적으로 세르비아로부터 독립을 선언하자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은 신속하게 독립을 승인했다.
코소보의 일방적 독립은 이 지역의 민족 간 갈등을 고조시킬 것이다. 또, 이것은 서방과 세르비아의 핵심 동맹인 러시아 사이의 ‘신냉전’을 격화시키는 위험한 결과를 낳을 것이다.
세르비아는 1999년에 나토가 주도한 전쟁의 표적이었다. 미국, 영국, 기타 서방 국가들의 전폭기들이 78회에 걸쳐 이 옛 유고슬라비아공화국의 일부를 폭격했고, 이 과정에서 교량, 공장, 발전소, 심지어 TV 방송국도 파괴됐다.
당시 미국 대통령 빌 클린턴과 영국 총리 토니 블레어는 22만 5천 명의 코소보계 알바니아인들이 실종됐고, 세르비아 보안 군대가 ‘민족청소(민족 학살)’를 자행하고 있다며 이 전쟁을 정당화했다.
그러나 민족청소의 증거는 결코 발견되지 않았다. 저명한 언론인인 로버트 피스크는 “전쟁이 시작되고 5개월 간 죽은 세르비아인들의 숫자는 나토가 폭격을 시작하기 전 5개월 동안 세르비아인들의 손에 죽음을 당한 알바니아인들의 숫자와 비슷하다” 하고 보도했다.
코소보 신임 총리 하심 타치는 전쟁 당시 코소보해방군(KLA)의 지도자였다. 그는 정적들을 암살하고 고문한 전력이 있고, 무기 구매 계약을 하면서 부정축재를 했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학살
타치와 그의 지지자들은 ‘대알바니아’를 만들고 싶어한다. 그들은 세르비아와 마케도니아의 일부 영토에도 눈독을 들이고 있다.
또, 그들은 코소보에서 세르비아인을 포함해 다른 소수민족들을 내쫓고 싶어한다. 코소보의 소수민족들은 고통스런 경험을 했고, 나토가 자신들을 보호해 주지 않을 것을 잘 알고 있다.
KLA는 원래 CIA가 테러리스트 조직으로 지명한 단체였는데, 전쟁 동안 졸지에 미국과 나토의 중요한 동맹이 됐다.
서방 전폭기들이 베오그라드를 포함해 다른 세르비아 도시들을 파괴하는 동안, 코소보에서 KLA는 나토의 공중 지원을 받으며 나토 침략을 돕는 지상군 구실을 했다.
서방은 코소보에서 세르비아 군대를 축출했고, 그 뒤 나토군이 치안을 담당하고 유엔이 코소보 지역을 통치했다.
KLA는 이 기회를 이용해서 코소보에 거주하는 세르비아인들과 로마인[흔히 집시라고 불린다]에 대한 조직적 학살을 저질렀다. 미국 기업과 정부 기관 들이 지원하는 조직인 ‘프리덤 하우스’조차 이 점을 인정했다.
‘프리덤 하우스’는 2002년에 발간한 보고서에서 이렇게 말했다. “1999년 중반에 나토군이 코소보에 주둔한 이후 반대 방향으로 민족청소가 자행됐다. … 25만 명이 넘는 세르비아인, 로마인, 보스니아인, 크로티아인, 터키인, 유대인 들이 이 지역을 떠나야 했다.”
유엔은 세르비아 측이 군대를 철수하는 대신에 코소보에게 독립국의 지위를 부여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지금 미국과 동맹국들은 약속을 어기고 코소보의 독립을 승인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코소보 주민의 다수를 이루는 알바니아인들이 세르비아 정부의 통치 아래 차별을 당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나토가 세르비아를 침략한 것은 코소보 알바니아인들에 대한 서방 국가들의 ‘인도주의적 우려’ 때문이 아니었다.
미국의 발칸 특사인 리차드 홀부르크가 인정했듯이 그것은 “나토의 신뢰성”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 미국은 자기 의지를 관철하기 위해 군대를 사용할 의지가 있음을 전 세계에 보여 주고 싶었다.
현재 1만 6천 명의 나토군이 코소보에 주둔중이다. 유엔은 통치 업무를 유럽연합에게 넘길 계획이다.
또 다른 옛 유고슬로비아 공화국 출신 국가인 보스니아는 여전히 나토의 통제 아래 있으면서 사실상 서방 국가들의 식민지가 됐다.
1990년대에 유고슬라비아가 쪼개졌을 때, 옛 공산당 통치자들은 대중의 불만을 민족주의를 통해 달래려고 했다. 이것이 민족 간 갈등을 부추겼고, 곧 전쟁과 민족청소로 이어졌다.
옛 유고슬라비아와 발칸반도는 다양한 민족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곳이다. 역사적으로 봤을 때, 그 중 한 집단에 기초해 국가를 세우려는 시도는 민족 학살을 낳곤 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지역의 좌파들이 정의와 평등에 기초한 ‘발칸반도 사회주의 연방’을 대안으로 제시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