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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준의 감춰진 본질

정몽준의 감춰진 본질

정병호

월드컵 성공 덕분에 정몽준은 대권 경쟁에서 1∼2위를 다투고 있다. 그러나 아직 정몽준의 행적과 가치관 등은 제대로 검증된 바 없다. 그가 얻고 있는 높은 지지율은 순전히 노무현의 추락과 이회창 아들 병역 비리로 인한 반사이익에 불과하다.

정몽준 자신도 이 사실을 아주 잘 안다. 그래서 자신의 본질이 일찌감치 드러나 지지율 거품이 꺼질까 봐, 대선 출마 선언을 계속 미뤄 왔다. 또, 최근 정치 쟁점에 대한 의견을 분명히 말하지 않고 언제나 모호한 태도로 일관한다.

그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재벌에 대한 대중의 반감이다. 그래서 그는 한사코 ‘재벌’을 ‘대기업’으로 불러달라고 고집하는가 하면, “부자라는 실감을 별로 못하고 있습니다.” 하고 발뺌한다.

그러나 그는 재벌의 부패한 관행을 답습하는 자다. 그는 1천7백20억 원이라는 재산을 모으기 위해 액면가 5천 원짜리 현대중공업 주식을 중공업 노동자들에게 5만 2천 원에 ‘할인값’이라고 속여 팔아 2천억 원을 벌어들였다. 그리고 참여연대가 폭로한 대로, 현대중공업은 “계열사 부당지원과 현대전자 주가조작에 개입“했다. 게다가 문어발식 확장은 여전하다. 정몽준은 얼마 전 부채 9천2백억 원을 안고 있는 삼호중공업 인수 계획을 발표했다.

게다가 정몽준은 LG, 삼성, 조선일보 등 다른 재벌들과도 특별한 끈을 가지고 있다. 정몽준의 바로 윗 동서 허광수가 다리 구실을 한다. 삼양인터내셔널 회장인 허광수의 아버지는 삼성물산, 제일제당 등 삼성 계열사의 경영을 맡았고, 큰아버지는 LG건설 명예회장이었다. 또, 허광수 자신은 지난 2000년 〈조선일보〉 사장 방상훈과 사돈 관계를 맺었다.

위선

정몽준은 재벌에 대한 대중의 반감을 무마하기 위해 궤변을 늘어놓는다. 예컨대, 그는 자신이 재산이 많기 때문에 오히려 부패하지 않을 거라고 우긴다. “재벌이기 때문에 제가 대통령이 되면 기업 돈을 받지 않을 것이라는 점은 장점으로 꼽히지 않습니까.” 그러나 부패는 가난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부패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업들이 시장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이권을 노리고 정치권에 로비를 벌이는 결과다. 예컨대, 현대그룹이 김대중의 차남 김홍업에게 16억 원을 바친 것은 김홍업이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금강산 관광 사업자 선정 문제 때문이었다. 즉, 시장 경쟁은 기업과 정치 관료 사이의 커넥션을 항상 동반한다.

그런데 정몽준은 “시장을 대체할 어떠한 권위나 전문적 리더십도 존재할 수 없음을 인정하고 시장 경제 창달만이 우리 경제의 장래를 밝게 할 수 있다는 믿음을 새롭게 할 때라고 생각”하는 철저한 시장 지상주의자다.(〈동아일보〉, 2001년 1월 22일치.) 그러므로 그는 절대로 부패를 막을 수 없다.

한편, 정몽준은 마치 자신이 진보적인 양, “부자들이 진보 정당에 들어가야 한다는 주장에 공감한다.” 하고 누차 강조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진보정당과 연대할 의사를 물어 보자 “연대를 한다면 정당이 아니라 국민과 해야”한다며 본심을 드러냈다.(《말》 9월호.)정몽준은 자신의 우익적 본질을 감추고 싶어하지만, 조금씩 그 위선이 드러나고 있다. 그는 “대기업 쪽에서 내가 [대선에] 나가는 걸 걱정한다면, 내가 최소한 대기업 편이 아니라는 것이 증명되는 것 아니냐” 하고 말했다가, 주5일 근무제에 대한 찬반 의견을 묻자 끝까지 답변을 회피했다.(〈한겨레21〉 8월 29일치.) 국가보안법 문제에 대해서는, “폐지를 주장하는 분들의 숫자가 많지 않은 것 같구요. 보존 내지 개정, 이런 방향으로 가는 게 대세인 것 같아요. 월간조선이 많은 역할을 한 것 같아요.” 하고 우익에 동조했다.(《월간조선》 8월호.)최근 그는 보수 우익의 원조를 자처하는 자민련과 연대할 의사를 밝히면서, 그가 이념적으로 누구와 가까운지 드러내고 있다. 그는 김종필이 상징하는 군사 독재를 “시대가 다 연결되는 것”이라며 추켜세웠다. 정몽준의 이러한 역사관은 작년 말에 발간된 《일본에 말한다》에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그는 이 책에서 독재를 자행한 역대 지배자들에 대해 칭찬으로 일관했다. 정몽준이 말한 대로 치자면 친미 기회주의자 이승만은 “국제 정세를 잘 읽은 현실주의자”였고, 독재자 박정희는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룩했으며 나라의 발전에 크게 공헌”했다. 그리고 간선제 유지를 통해 독재를 연장하려 한 전두환은 “장기집권에 집착하고 있다는 세상의 소문과는 달리 처음 약속대로 임기가 끝나자 다음 대통령에게 전권을 인계”했고, 수천억 원대의 비자금을 챙긴 노태우 정권은 “한국 사회가 ‘보통사람의 시대’로 바뀌기 시작한 시대”를 만들었다.

노동자의 적

정몽준은 반노동자적 인물이기도 하다. 그의 막대한 재산은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의 고혈을 짜낸 대가다. 지난 30년 동안 산재 사망자 3백30여 명, 산재 사고만 1만 6천2백여 건에 달했다. 해마다 11명의 노동자들이 목숨을 잃은 격이다. 그러나 정몽준은 작업 환경을 개선하는 일에 조금도 투자하지 않는다. 오히려 작업 환경을 개선하라고 요구하는 노동자들의 저항에 무자비한 테러로 맞섰다. 특히 1989년 1월 8일 노조 지도부에 대한 각목 테러와 2월 21일 식칼 테러는 전국의 노동자들을 경악케 했다. 당시 테러에 참가한 지영복과 김진한의 양심선언대로, “1월 8일 테러 사건은 정몽준 현대중공업 회장, 정세영 현대자동차 회장 등 그룹회장단의 재가를 받아 실행에 옮겨졌다.”또, 정몽준은 해고와 손해배상 청구, 노조 총회 방해 등으로 노조 활동을 철저히 탄압했다. 그는 노동 쟁의와 관련해 노동자 1백50명을 해고했다. 그 가운데 13명이 6년에서 15년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복직되지 않고 있다. 세월이 흘러도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의 처지는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다. 올해에도 벌써 7명의 노동자가 산업재해로 목숨을 잃었다. 정몽준은 전혀 개혁적이거나 진보적인 인물이 아니다. 부패와 노동자 착취야말로 정몽준의 본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