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이회창 투쟁, 어떻게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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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이회창 투쟁, 어떻게 할 것인가
강철구
한총련이 반이회창 투쟁을 하반기 핵심 사업 중 하나로 정했다. 이회창의 정치 활동을 감시·고발하고 이회창 대선 후보 사퇴를 묻는 대학생 투표를 진행할 계획이다.
우리는 이회창 아들 병역 비리뿐 아니라 그의 우익적 본질 때문에라도 이회창을 반대해야 한다. 이회창은 군사 독재 시절에 앞잡이 노릇을 해 권력과 부를 쌓은 자다. 과거 경력뿐 아니라 한나라당 총재로서 지난 5년간 이회창이 한 말과 행동을 보면 그가 얼마나 반통일·반민주·반노동자적인지 알 수 있다. 그는 국가보안법 개정조차 반대하고, 대북 쌀 지원을 “퍼주기”라고 비난하고, 누더기가 된 주5일 노동제조차 “시기상조”라고 말한다.
우리는 반이회창 투쟁을 지지해야 한다. 진보 진영이 당선 유력한 우익 우두머리 이회창에 맞서 싸우는 것은 이 사회의 진보를 위한 투쟁의 일부다. 또, 반이회창 투쟁은 집권 민주당에 환멸과 배신감을 느껴 이회창에게 표를 던질 수도 있는 사람들을 민주노동당 지지로 끌어들일 수 있다.
6·15 대선대연합
한총련 지도부는 “사대매국 반통일 이회창을 반드시 낙선시키”는 것을 2002년 대선 최고 목표로 제시했다. “이회창에게 단 한 표도 주지 않는다”는 말은 옳다. 그러나 이회창이 아닌 누구에게 표를 던져야 하는지가 남는다. 이회창 낙선을 노무현 지지로 풀이할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한총련은 ‘2002년 대선 방침’ 중의 “후보 전술” 부분에서 대선 기간에 “범 진보 진영의 단일 후보에 대한 적극적인 지지, 지원 활동을 전개한다”고 밝혔다. “후보 전술”에서 9월 말까지 “단일후보 선출이 어려운 상황에서는 민주노동당 후보를 중심으로 전체 민족민주운동 진영의 단결을 실현”하자고 말했다. 그러나 한총련의 “투표 전술”은 “6·15 대선대연합 실현을 위해 노력하며, 이를 위해 모든 가능성을 열어” 둔다는 것이다. “추후 공동선거대책본부 차원에서 최종 투표 방침을 결정한다”는 단서를 달기는 했으나 노무현 지지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
한총련 지도부가 추구하는 6·15 대선대연합은 냉전우익 세력에 반대해 노무현이 대표하는 자유주의 세력과 진보 진영이 단결하자는 민중전선 노선에 바탕한 것이다. 이것은 노동 운동을 부르주아 정치에 종속시키는 것이다. (이 잡지의 다른 기사 ‘인민 전선’ 참조)현재 노무현과 민주당은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 현재로서는 한나라당이 집권할 가능성이 높다. 민주노동당은 지난 6·13 지방 선거에서 1백34만 표를 획득했다. 진보 진영 후보가 얻을 득표수는 노무현의 당락을 결정할 수 있다. 그래서 한총련 지도부는 진보 진영의 독자 후보를 지지·지원해 몸값을 높인다면 선거 직전에 민주당과 정책 연합이 가능하다고 판단한 듯하다. 한총련 지도부는 대선 방침을 결정하기 위해 소집된 한총련 임시 대의원대회에서 “민족민주운동의 힘이 얼마나 결집되는가에 따라 [민주당과] 정책 연합의 수준이 결정”될 것이고 심지어는 “17개 각료 중 노동부나 농림부, 통일부 등을 민족민주진영에 할애”하는 경우 “연합 정권”도 가능할 것이라고 밝혔다. 노무현이 진보 진영의 지지를 얻기 위해 “정책 연합”이라는 미끼를 던질 수도 있다. 그러나 노무현의 거짓 약속을 믿고 노동자 운동의 정치적 독립성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 노무현과 민주당은 현존 체제를 유지하는 데 이해관계가 있기 때문에 체제의 수호자 노릇을 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노무현은 이 체제 위계 질서의 맨 꼭대기에 있는 ‘반통일세력’과 일관되게 싸울 수 없다. 반면 노무현은 대통령 당선 후 체제를 유지하고 이윤을 보호하기 위해 노동자들을 공격하고 민주주의를 후퇴시킬 것이다. 경제 위기 정도와 노동 계급이 저항하는 정도에 따라 공격의 강도는 다르겠지만 말이다. 진보 진영의 일부가 노동자·민중을 착취하고 억압할 수밖에 없는 민주당 정부와 “정책 연합”을 하거나 “연립 정권”을 구성한다면 그것은 “운동의 성과”가 아니라 노동자 운동을 배신하는 행위가 될 것이다. 민주당 정부에 개혁적 이미지만 덧칠해 주고, 노무현과 민주당을 “견인”할 수 있다는 위험한 환상을 조장하는 것은 노동자 투쟁의 칼날을 무디게 하고 진보 진영의 성장에 장애물이 될 뿐이다.
반이회창 투쟁의 주체
반이회창 연합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회창이 당선되면 공안 정국의 칼바람이 몰아치고 한반도에 전쟁 위기가 닥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 주장은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차이를 과대 평가한 반면 노동계급의 저항 능력을 과소 평가한 것이다. 지금은 노동자 운동이 상승하는 시기다. 한국의 조직 노동자들은 이회창의 우파적 공격에 저항할 수 없을 만큼 사기가 낮지 않다. 유럽에서 반자본주의 운동이 가장 강력한 이탈리아와 스페인을 보자. 우파 정권이 등장했지만 저항 운동이 성장하고 있었기 때문에, 우파 정권의 공격은 노동자들의 심한 저항에 직면하고 있다. 거대한 총파업과 거리 시위가 그 나라들을 휩쓸었다. 이처럼 설사 이회창이 집권하더라도 한국의 계급 투쟁은 더 치열해지고 노동자 운동은 더 발전할 수 있다. 반이회창 투쟁의 주체는 노동계급이다. 노동자들은 역대 독재 정권에 치열하게 저항했다. 1987년 6월 항쟁에 뒤이어 터진 노동자 대투쟁은 전두환 정권에 결정타를 가했다. 1997년 1월 민주노총의 대중 파업은 오만방자한 김영삼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고 신한국당(한나라당의 전신)의 위기를 더욱 깊게 만들었다. 정권에 맞서 싸울 수 있는 잠재력을 보여 준 1월 파업의 성과로 만들어진 당이 바로 민주노동당이다. 민주노동당은 냉전 세력에 치열하게 저항한 노동자 투쟁의 산물이다.
따라서 반이회창 투쟁은 지배 계급 일부와 연대하는 6·15 대선대연합이 아니라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이 중심이 된 진보 진영의 단결과 투쟁에 기초해야 한다.
민주노동당이 성장하는 것은 반이회창 투쟁의 주체인 노동계급의 자주적 운동 발전에 기여할 것이다. 또, 진보 진영의 자신감과 영향력을 확대할 것이다. 올 대선에서 민주노동당 후보나 진보 진영 단일 후보를 지지·지원하고 나아가 분명하게 투표하는 것이야말로 한총련 지도부가 그토록 강조하는 미국과 냉전 세력에 맞설 수 있는 “주체 역량 강화”를 이룰 수 있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