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 체제가 낳은 재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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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 체제가 낳은 재난
김태훈
지난 8월 두 차례 불어닥친 집중 호우와 태풍은 2백여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전국에서 수재민 9만여 명을 낳았다.
수많은 평범한 사람들이 고통받고 죽어 갔지만, 이 나라 정부는 자기 나라 국민들을 보호하는 데 완전히 무능함을 드러냈다. 같은 기간 “1백 년 만의 대홍수”를 맞은 독일은 재산 피해 규모가 한국보다 훨씬 컸지만(16조 원), 인명 피해는 19명뿐이었다.
김대중 정부는 “사람의 힘으로는 막을 수 없는 불가항력적 천재였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9월 10일 국회 앞에서 벌어진 수재민들의 시위 배너에는 “천재지변 X 인재지변 O”라고 적혀 있었다.
우선 순위시장 경제의 뒤바뀐 우선 순위가 평범한 사람들을 죽게 만들었다. 남대천이 범람해 살던 집이 물에 잠긴 한 강릉시 주민은 이렇게 말했다.
“55년 동안 남대천 옆에서 살았다. 올해보다 비가 더 많이 온 적도 많았지만 지금껏 아무 일 없었는데, 강릉시가 7년 전부터 남대천에 인공 둔치(체육 공원) 공사를 시작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인공 둔치를 만들면 그만큼 강폭이 좁아져서 홍수에 취약하기 때문에 강바닥을 파서 깊이를 깊게 해주는 시공법을 써야 한다.
그러나 예산을 아끼겠다고 외부의 흙을 퍼다 강을 메웠다. 결국 강릉시와 건설 회사가 돈 몇 푼 아끼려다 많은 사람을 죽게 만들었다.”강릉시만이 아니었다. 무기 구입에는 수조 원씩 쓰는 정부가 국민들의 안전에는 무관심했다.
이번 수해에 무너진 경부선 감천철교는 일제 시대 때 놓인 다리다. 그래서 1999년에 철도청은 “철근 없이 콘크리트 덩이로만 돼 있어 대단히 위험하다. 교각 대다수를 보수 공사해야 한다.” 하고 정부에 예산을 신청했다.
그러나 정부는 신청한 예산을 대폭 삭감했고, 결국 9개 교각만 보수 공사를 했다. 그 결과 9개 교각을 제외한 대부분이 이번 태풍에 엿가락처럼 내려앉았다.
공무원 노조원들의 말을 들어 보면 매년 수해 때마다 정부가 “수해는 어쩔 수 없는 천재”라고 변명하는 것이 완전한 거짓말임을 잘 알 수 있다.
“애초에 이 나라 정부는 돈을 아끼기 위해 상하수도관을 최고 4백 밀리미터 강수량까지만 소화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비가 4백 밀리미터 넘게 오면 대책이 없다. 게릴라성 폭우는 한 번 오면 시간당 1백5십 밀리미터는 보통이다. 수해는 일상사가 될 수밖에 없다.”수해 복구에서도 정부는 말만 요란할 뿐 성의가 없다. 김대중 정부는 수해 복구보다 군사 훈련을 더 중시한다. 8월 16일 경남도청은 “수해 복구를 위해 도내 20개 시·군을 19∼24일에 있을 2002 을지 연습에서 제외해 달라”고 정부에게 요구했다. 그러나 정부는 그 중 8개 시·군만 빼고 나머지를 모두 훈련에 참가시켰다. 경남도청 공무원 직장협의회 홈페이지에는 “왜 침수 지역 주민들을 내팽개치고 전쟁 연습을 해야 하는가?” 하고 공무원 노동자들이 항의하는 글들이 빗발쳤다.
반면, 평범한 사람들은 이웃의 아픔을 함께하려고 자원 봉사에 나섰다. 하루 평균 1만 명이 수해 지역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정작 이들을 일손이 필요한 곳에 적절히 배치해 줄 공무원은 턱없이 부족해, 자원 봉사자들은 보통 반나절씩 기다려야 한다. 설상가상으로 일부 구청은 6·13 지방 선거 이후 구청장이 민주당에서 한나라당으로 바뀌면서 공무원들을 강제 전환 배치해 공무원 노동자들이 업무 파악을 제대로 하기도 전에 이번 수해를 맞았다. 자원 봉사자들은 “공무원들이 동네 지리를 몰라서 작업 배치를 못한다. 지리에 익숙한 공익근무요원들이 작업 배치를 대신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안타까워 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태풍과 집중 호우 자체가 “기업들의 무분별한 환경 파괴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광운대학교 환경공학과 유경선 교수가 지적한 대로 “1904년부터 최근까지 집중 호우 발생 빈도는 완만하게 증가하다 1980년대 들어 뚜렷하게 증가했다. 1990년대 들어서는 강수량도 함께 증가하고 있다.…집중 호우 이면에는 기상 이변이 있고 기상 이변의 배후에는 보다 큰 지구 온난화가 있다.” 실제 “올해 남해의 해수면 온도는 26∼27도로 평년보다 1∼2도 높았고, 이는 태풍 루사에 수증기를 대량 공급했다.”(〈조선일보〉, 9월 1일치)
분노
기성 정치인들에 대한 수재민들의 분노는 엄청나다. 언론은 좀처럼 보도하지 않았지만, 수해 지역을 방문한 정치인들은 곳곳에서 “기념 촬영하러 왔느냐?”는 수재민들의 항의에 부딪혔다. 정몽준은 강릉 중앙시장에 갔다가 “국민 세금 빨아먹는 개자식”이라는 욕을 먹었고, 영동 지역을 찾아간 민주당 한 의원은 수재민들과 함께 밥을 먹다가 분노를 참지 못한 한 주민이 밥상을 뒤엎는 바람에 허둥지둥 도망쳐야 했다.
9월 10일 국회 앞에서 열린 경남 의령군 정곡면 수재민들의 집회는 분노의 분출이었다.
“우리를 대변해 달라고 국회에 보내봐야 소용없다. 정치인들은 우리의 피를 빨아먹고 사는 놈들이다. 그들은 우리를 벌레만도 못하게 생각한다.”“우린 전 재산을 다 잃었다. 도와 달라고 올라 왔는데, 경찰을 시켜 막다니 너무 한다. 지금 우리 고향에는 수해 복구할 일손이 부족해서 걱정인데, 경찰들은 대체 여기서 뭐 하는 건가?”김대중은 수재민들의 분노에 밀려서 수해 지역 전체를 특별 재해 지역으로 지정해야 했다. 그러나 정부의 보상은 턱없이 부족하다. “특별 재해 지역으로 지정되면 피해 복구 비용 본인 부담분이 면제된다”는 정부의 말은 거짓말이다. 정부는 복구 비용 ― 그것도 정부가 일률적으로 정한 ― 의 40퍼센트만 지원한다. 나머지 60퍼센트는 ‘융자’로 수재민들에게 빌려주는 것이다. 수재민들은 “살던 집이 침수되면 사실상 전 재산을 잃어버린 건데, 정부의 지원은 고작 2백만 원이다. 사실 별 의미가 없는 돈이다.” 하고 한탄한다.
매년 그랬듯이 올해 수해도 역시 인재였다. 자본주의의 무분별한 환경 파괴는 기상 이변을 일으켰고, 이윤 체제의 뒤바뀐 우선 순위는 피해를 확대했다. 국가 기구의 무책임한 태도는 수재민들을 두 번 죽이고 있다. 정부는 “추석 전에 모두 복구할 것”이라고 했지만, 복구 작업에 동원된 한 병사의 말처럼 “복구 작업은 석 달을 예상하고 있다. 수재민들에게 추석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