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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기고] 이명박 정부의 영어 몰입 교육 정면 반박:
인구 5백만 국가를 꿈꾸는가?

우리는 수백 년 아니 수천 년 동안 우리말, 즉 한국어를 사용해 왔다. 조선시대 양반들은 문자생활을 위해서 한자를 사용했지만, 일상생활에서 언제나 우리말을 사용했다. 일제 강점기 36년을 제외하면 우리 역사에서 그런 흐름이 바뀐 적은 거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어를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혼란의 속살을 들여다보면 두 개의 서로 다른 동기가 숨어 있다. 실생활에서 불편하진 않지만 영어 경쟁에 뒤처지는 것이 불안해서 영어를 배우려고 하는 것이 그 하나라면, 다른 하나는 영어를 통해서 달콤한 열매를 따고 싶은 욕망이다. 그 목적지는 영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는 이중 언어 사용자가 되는 것이다.

어느 한 개인이 이중 언어를 사용한다는 것과 국가 사회 전체가 이중 언어를 사용한다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다. 학교 교육을 통해서 영어를 가르치기 때문에 학생들이 영어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지만, 우리 현실에서 이 주장은 타당하지 않다.

영어는 어차피 일상생활에서 사용되지 않는 외국어이며, 학교 교육을 통해서 전 국민을 이중 언어 사용자로 만든다는 것은 가능한 실험이 아니다. 따라서 개인이 이중 언어 사용자가 되는 것과 국민의 대다수가 이중 언어 사용자가 된다는 것은 차원을 달리해서 논의되어야 한다.

현재는 이런 논의가 서로 혼돈되어 중첩적으로 존재한다. 한 개인이 이중 언어 사용자가 되고 싶고 필요에 따라서 될 수도 있다. 그 개인이 어떠한 배경을 가지고, 어떻게, 어떤 목적으로 삶을 살아가는가 하는 점은 전적으로 개인의 문제다. 그러나 우리는 사회 전체가 이중 언어 사회로 움직여 나가야 할 것처럼 호들갑을 떨고 있다.

나라마다 다른 고유한 조건과 필요

역사적으로 어느 국가나 사회가 이중 언어를 사용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자. 두 가지 이상의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구성원이 있고 이들이 서로 공존공영하기 위해서 두 언어를 허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다시 말해서 인위적인 교육을 통해 한 가지 언어만을 사용하는 사람들을 두 가지 언어를 사용할 수 있도록 국가나 사회가 의도적으로 이끌어 가는 상황은 아니다.

자연스럽게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집단이 어우러져 두 가지 이상의 언어를 사용하게 되는 것이며 집중적인 언어교육은 그런 필요성 때문에 이루어진다. 지구상에 널리 존재하고 있는 대부분의 국가들이 이런 조건 때문에 이중 언어를 사용하게 되고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필요에 의해서 다른 언어를 배우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현실이고 인간의 언어생활이다. 현실이 이러하다면 우리가 모방하고 참조할 만큼 영어교육을 성공적으로 실시하고 있는 국가는 어딜까? 이런 질문에 대해서 우리는 가끔 매우 기형적인 국가를 우리의 모델로 내세우곤 한다. 그리고 우리나라를 마치 다인종 다언어 사회로 생각하며 인구 5백만 명의 작은 나라로 착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동안 우리가 참조했으면 하는 영어교육 모델로 언급된 나라를 보면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아시아권에서 싱가포르, 필리핀, 인도나 홍콩 등은 공통적으로 미국이나 영국의 식민 지배를 받은 경험을 갖고 있다. 그들은 다민족 다언어 국가다.

그들이 영어를 잘하는 것은 이런 역사적 배경이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훌륭한 영어교육 때문에 영어를 잘 하는 것이 아니라, 영어권 제국의 식민지 지배 경험 때문에 영어를 사용했고 그래서 잘 하는 것이다. 학교는 물론 일상생활에서 영어를 배웠고 서로 소통하기 위해서 영어 없이는 살아가기 어려운 경우다. 그들에게 영어는 외국어가 아니라 생활에 필요한 언어인 것이다.

이것이 마음에 걸렸는지 이제는 우리의 영어교육 모델로 북유럽의 여러 나라들이 자주 언급된다. 급기야는 발칸의 조그마한 신생국인 마케도니아까지도 영어교육에 성공한 국가로 제시되곤 한다. 이 나라들이 영어를 강조하는 데에는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것이 있다. 이들 국가들은 공통적으로 인구나 경제 규모가 크지 않다. 소위 반듯한 내수시장이 형성될 수 없는 나라들이다. 싱가포르라고 해봐야 인구가 3백50만 명이며, 북유럽의 핀란드를 비롯한 노르웨이, 덴마크의 인구도 5백만 명 정도에 불과하다. 마케도니아도 인구 2백만 명에 불과하다. 서울시 몇 개 구를 합쳐 놓은 정도밖에 되지 않는 그야말로 아주 작은 소국이다.

우리가 의식하고 있지 못하지만, 유럽에서 인구 규모가 우리보다 큰 나라는 몇 개에 불과하다. 독일이 8천만 명, 프랑스가 약 6천만 명, 이탈리아가 5천9백만 명 정도이며 나머지는 대부분 인구 1천만 명 미만이다. 남북한을 합친다면 우리보다 많은 인구를 가진 나라는 유럽 전체에서 독일 하나밖에 남지 않는다. 영어교육에서 우리가 비교해야 할 대상은 이 국가들이지 결코 인구 5백만 명에 불과한 도시 국가나 소국들이 아니다.

영어 문제를 다루는 데 인구가 왜 중요한가? 인구 1천만 명이 되지 않는 국가들은 자신들의 언어만으로 생존하기 어렵다. 국내 내수시장만 가지고는 규모의 경제를 꾸려 나갈 수 없으며 외국 자본이 들어와야 하고 국내 기업들이 외국을 상대로 비즈니스를 하고 무역을 통해서 수출을 해야 부를 창출할 수 있다.

어디 이뿐이겠는가? 이 국가들은 자신들의 언어로 책을 발간하거나 신문사 또는 방송사를 운영하려고 해도 시장을 형성하기 어렵다. 실제로 인구 5백만 국가는 우리와 같은 수의 자국어 신문사나 방송사를 운영하거나 프로그램을 제작할 수 없는 형편이다. 몇 개의 방송사를 세워서 그들이 서로 경쟁하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해서 방송을 할 수 있는 여건이 되지 못한다. 책을 한 권 출판하려고 해도 초판으로 적어도 2~3천 부를 발행해야 하지만 그런 독자를 확보하는 것이 쉽지 않다. 그런 상황에서 자신의 언어를 고집하는 것은 효용성이 떨어진다.

그리고 이 국가들은 대부분 이중 언어 환경이다. 즉, 다민족이 어우러져 사는 나라다. 그래서 영어를 받아들여 사용하는 것이다. 그렇게 국민들을 교육시켜서 그런 정보에 노출되게 하는 것이 경제적이며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이다. 이왕이면 영어가 가장 널리 통용되고 영어로 제작된 콘텐츠가 많으니 영어를 선택한 것이다. 이들 나라들은 영어가 아니라도 언제나 다른 언어를 사용해야 하는 운명에 있는 국가들이다.

우리 실정에 맞는 영어교육 모형

이처럼 세계 여러 나라들은 각기 나름의 고유한 상황과 필요성을 인식하고 각자의 상황에 어울리는 영어교육을 시키고 있다. 영어를 경제적 또는 기능적 시각만으로 접근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영어라는 언어를 쉽게 배우지 못한 이유를 영어교육이 아니라, 사회·역사·언어·문화적 환경에서 찾아야 한다. 이런 부분을 고려하지 않고 ‘교육’과 ‘교실’이라는 틀 속에서만 영어 문제의 해법을 찾고자 한다면 그 길은 분명 실패할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 사이에 접촉이 일어나는 곳을 가 보자. 외국인들에게 유명한 이태원이나 동대문 상가에 가서 엘리베이터를 타 보면 영어는 물론 러시아어, 일본어, 또는 중국어 등으로 다양하게 표기돼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필요하다면 언어소통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 문제를 서로 해결해 나가는 것이 인간이다. 우리가 영어 없이 살 수 있었던 것은, 그리고 일상생활에서 영어를 사용하지 않았던 것은 영어가 그만큼 절실하게 필요하지 않았다는 반증이다.

영어와 더욱 빈번히 접촉하고 진정 영어를 잘해야 할 사람들은 일반인들이 아니라 소위 잘나가는(?) 사람들이다. 국회의원이 됐건 비서관이 됐건 정부의 대외 정책을 담당하는 공무원이나 다국적기업에 종사하는 사원, 영어교사나 대학의 교수들, 또는 전문직 연구원들이다. 영어를 정말 잘 구사해서 국가의 경쟁력을 키우고 국민의 이해관계를 대변하고 세계 지식 창출 대열에 어깨를 같이 하면서 그들과 경쟁하고 우리를 내세우고 그들의 정보를 빨리 흡수해야 하는 사람들은 일반인이 아니라 바로 이들이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고등학교 수준의 소위 길거리 영어가 아니라 전문 분야의 전문 영어 능력이다. 이들이 필요한 것은 영어라는 말뿐만 아니라 읽고 쓸 수 있는 능력도 포함된다. 중요한 것은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얄팍한 길거리 영어가 아니라, 전문가를 길러 낼 수 있는 특화된 교육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다.

5백만 인구가 살아남기 위해서 전 국민이 무역 세일즈맨이 되어야 하는 나라에서 영어를 배우고 영어를 필요로 하는 것만큼, 5천만 아니 7천만 명의 인구를 가진 우리가 그들과 같은 길을 따라나서지 못해서 사회 전체가 이렇게 영어에 몰입하고 안달할 필요가 있을까? 프랑스, 독일, 스페인, 이탈리아가 자신의 언어와 함께 영어를 받아들여서 전 국민을 이중 언어 사용자로 만들겠다는 발상을 하진 않는다. 이들 국가의 국민들이 영어를 공용어로 채택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다.

우리 격에 맞는, 우리 필요와 실정에 맞는 영어교육을 생각해야 한다. 영어에 덧씌워진 거품을 걷어내고, 영어 능력은 필요한 분야에만 한정해서 평가하고, 영어 능력을 요구하기 이전에 필요에 따라서 제대로 충분하게 교육시키는 방향으로 가야한다. 그것이 우리 격에 맞는 영어교육 모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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