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진의 마르크스주의 경제학 에세이:
신자유주의 ‘금융화’ 모델의 붕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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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19일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화로 부도 위기에 몰린 미국의 5대 투자은행 베어스턴스를 JP모건이 헐값에 인수하고, 이를 위해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3백억 달러의 구제금융을 제공하면서,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발 세계경제 위기가 진정되고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베어스턴스 인수를 전환점으로 최악의 국면은 지나갔다든가, 신용 경색이 바닥을 쳤다는 것이다.
시장주의 주류 경제학자들은 이번 금융 위기의 핵심이 금융시장을 지배하는 정서가 갑자기 “탐욕”에서 “공포”로 바뀌면서 “신뢰 위기”가 발생한 데 있다며, 이와 같은 신뢰가 회복되면 위기가 해결될 것으로 본다.
그러나 이와 같은 “신뢰 위기”론은 ‘펀더멘탈’의 위기로서 현재 위기의 본질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본격적인 위기는 오히려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보는 것이 맞다. 왜냐하면 이번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발 신용 경색은 단순한 금융 위기가 아니라, 지난 1980년대 이후 새로운 자본축적 체제로 간주되거나 혹은 기대돼 온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 모델의 총체적 붕괴의 시작을 알리는 사태이기 때문이다.
위기가 신용과 금융 부문에서 끝나지 않고 실물 부문으로 광범하게 확산·심화되고 있다는 조짐은 이번 위기의 진앙지인 미국에서 가장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는 경제의 ‘펀더멘탈’ 상태를 가장 잘 나타내는 이윤과 고용·소비 지표들에서 확인된다.
지난 3월 28일 미국 상무부 발표를 보면, 미국 법인 이윤 총액의 전년대비 증가율은 2006년 13.2퍼센트에서 2007년 2.7퍼센트로 급감했는데, 이는 2001년 불황 이후 가장 낮은 증가율이었다. 특히 미국 법인이 국내 영업으로 벌어들인 이윤은 2007년 3퍼센트 감소했는데, 이는 2001년 불황 이래 처음이었다. 2007년에는 비금융법인의 이윤이 3.7퍼센트 감소했을 뿐만 아니라, 금융법인의 이윤도 1.7퍼센트 감소했다. 미국의 금융법인 이윤이 감소한 것은 1998년 롱텀 캐피털 매니지먼트(LTCM) 부도 사태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펀더멘탈’의 위기
또, 지난 4월 4일 미국 노동부는 3월 비농업부문 신규 일자리수가 전월대비 8만 개 감소해 5년 내 최대의 감소 규모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이로써 미국의 일자리는 지난 1~3월 모두 23만 개가 사라졌다. 3월 미국의 실업률은 5.1퍼센트를 기록해 전달(4.8퍼센트)보다 크게 높아졌다.
미국 상무부는 2월 소비지출이 전달(0.4퍼센트)에 이어 0.1퍼센트 늘어나는 데 그쳐 소비지출 증가폭이 최근 1년 내 최저치를 경신했다고 발표했다. 2008년 1분기 미국의 소비지출은 0.5퍼센트 증가하는 데 그쳐 1991년 불황 이후 가장 적은 증가폭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와 함께 미시간 대학은 지난 3월 28일 3월 미국의 소비자신뢰지수를 69.5로 하향 조정했는데, 이는 지난 1992년 이래 최저 수준이었다.
게다가 이번 금융 위기의 직접적 도화선이 됐던 미국 주택가격 거품의 붕괴 과정이 아직 계속되고 있다. 지난 3월 25일 발표된 미국 주택가격지수를 보면, 미국의 주택가격은 지난 1년 동안 10.7퍼센트 저하했으며, 앞으로 최소한 10퍼센트 더 저하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이는 앞으로도 계속 모기지의 연체, 이와 연계된 MBS(모기지담보증권), CDO(부채담보부증권), CDS(신용디폴트스와프) 등 신용 파생금융상품의 부도와 비유동화, 이에 따른 신용 경색, 금융 위기, 은행 위기가 계속될 것임을 시사한다.
이번 금융 위기는 단순한 ‘유동성의 위기’가 아니라 지난 1970년대 이후 시작된 실물 부문 이윤율의 장기 저하에 기원한 ‘지급불능의 위기’를 배경으로 한 것이며, 이러한 위기를 ‘금융화’라는 ‘가공자본’의 창조를 통해 모면 또는 지연하려는 시도가 최종적으로 파탄났음을 보여 준다.
겨우 7년 사이에 금융거품이 두 번이나 거대한 규모로 팽창했다가 폭발했다.(2001년의 닷컴 주가 거품의 팽창과 폭발, 2007년 주택가격 거품과 이와 연계된 각종 신용 파생금융상품 거품의 팽창과 폭발) 이는 ‘금융화’를 통한 경기 진작의 약발이 더는 먹혀들지 않게 됐음을 보여 준다. 요컨대 ‘금융화’ 모델의 파산 또는 ‘금융 주도 축적체제’의 붕괴이다.
지난 1980년대 이래 20년 정도밖에 지속되지 못하고 파탄을 맞이한 ‘금융화’ 또는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 현상을 두고, 케인스주의자들을 비롯한 일부 진보진영은 ‘자본주의의 새로운 발전단계’이니, 또는 ‘21세기 자본주의의 새로운 축적 체제의 성립’이니 운운했다. 이는 자본주의 발전의 모순적 장기 동학을 이해하지 못한 근시안적 분석의 한계를 잘 보여 준다.
케인스주의자들은 이번 위기를 신자유주의 규제 완화, 금융 자유화가 초래한 결과라고 주장하면서 금융 부문에 대한 재규제와 금융 감독의 강화를 해법으로 제시한다. IMF 총재인 스트로스 칸조차 “정부 개입에 대한 필요가 점점 분명해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또 조지 소로스는 재규제 강화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시장근본주의”와의 단절을 주문한다.
금융 거품
‘금융화’, 특히 MBS, CDO, CDS 등과 같은 채무의 ‘증권화’ 또는 신용 파생금융상품의 확산을 통한 ‘가공자본’의 팽창이 최근 금융 위기를 촉발하고 확산시킨 요인인 것은 맞다.
그러나 이와 함께 지난 세기말 이후 미국 자본주의를 비롯해 세계자본주의를 1970년대 이후 장기불황 속에서도 그럭저럭 끌고 온 메커니즘이 바로 이와 같은 ‘금융화’ 혹은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였다는 사실도 지적돼야 한다. 즉, ‘금융화’는 위기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이며, 제2차세계대전 이후 20~30년 동안 지속된 케인스주의적 국가 주도 고도축적의 한계에 대한 자본의 대응 전략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이번의 금융 위기는 케인스주의적 축적 전략의 한계와 모순이 입증된 후 ‘금융화’ 전략이 끌고 왔던 자본축적 체제가 더는 갈 곳 없는 막다른 골목에 봉착했음을 의미하는 사태다. 즉, ‘금융 주도 축적체제’의 파산으로서, 자본의 대응 전략의 총체적 파산으로 간주될 수 있다.
닷컴 주가 거품, 주택가격 거품, 신용 파생금융상품의 거품이 꺼지고 난 후, 21세기 자본주의는 다른 어떤 새로운 거품에 기대서 연명할 수 있을까? 석유와 같은 원자재와 곡물에 대한 투기와 이들 가격의 거품이 대안적 축적 모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물론 지난 5백 년 자본주의 역사에서 입증된 자본주의의 놀라운 자기 변신 혹은 혁신 능력과 자기 적응을 통한 생존 능력을 감안할 때, 이번 세계경제 위기가 세계자본주의의 최종적 파국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속단하기는 힘들다. 무엇보다 자본은 노동대중에 대한 착취 강화와 영구군비경제·전쟁을 통한 자본가치의 파괴에 의거해 수익성을 제고하는 ‘고전적’ 생존 수단을 갖고 있다.
그러나 최근 ‘피크 오일’의 임박 등에서 보듯이, 자본주의는 금융거품의 주기적 형성과 폭발 및 노동대중에 대한 착취 강화와 자본가치 파괴를 통한 수익성 제고에 의존해 축적 위기를 봉합할 수밖에 없는 내재적 한계뿐 아니라, 화석 자원의 고갈과 생태 위기라는 외부적 한계에도 봉착하고 있는 듯하다.
자본주의의 미래는 그 어느 때보다 암울하다. 자본주의를 근본적으로 폐지하고 민주적 참여계획경제로 시급히 전환해야 할 이유다.
정성진 경상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마르크스와 한국경제》, 《마르크스와 트로츠키》의 저자이고, 《반자본주의 선언》, 《칼 맑스의 혁명적 사상》 등의 역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