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통신 사례로 본 사유화의 재앙:
통신요금 인하가 불가능해진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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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가정마다 통신비는 가계에 적지 않은 부담이 된다. 그래서 약삭빠른 이명박이 내놓은 카드가 바로 ‘통신비 20퍼센트 인하’ 공약! 서민의 경제적 부담을 피부에 와닿게 덜어준다는 거창한 구호를 내걸고, 정부 출범 초기 서슬퍼런 인수위가 요금 인하에 나설 때만 해도 뭔가 되는 듯했다. 그러나 결과는 우리 모두가 알다시피 이명박 정부의 KO패! 통신업계는, 특히 사유화된 KT는 정부의 말 한마디에 벌벌 떨던 예전의 공기업 한국통신이 아니다.
신정부 출범 직후인 2월 29일 개최된 KT 주주총회는 ‘통신비 인하 파동’을 비웃기라도 하듯 주당 2천 원의 현금 배당을 결정했다. 통신업계의 과다 이윤과 고배당 논란은 더는 안중에도 없었다.
사유화 이후 KT의 배당성향은 50퍼센트를 넘나들었다. 2005년 61.7퍼센트를 비롯해, 2003년부터 내리 3년을 50퍼센트를 넘겼으며 2007년의 배당성향도 42.5퍼센트였다. 즉 벌어들인 돈 중 주주에게 배당한 돈이 절반을 왔다갔다한 것이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사태가 가능해졌을까? 한 때 정부가 요금 내리라면 내리고, 정권이 바뀌면 알아서 사장이 사표를 내던 게 불과 10년 전 한국통신의 현실 아니었던가.
그 비밀은 물론 우리 모두가 아는 사유화에 있다. 많은 사람들이 잊고 있지만 현재의 SKT·LG데이콤 등 모든 통신사업자는 과거 KT의 자회사였고, 지금도 KT의 회선과 장비에 의존해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통신’에 ‘통’자가 들어간 모든 사업은 과거에는 정부 업무였거나(체신부 시절) 혹은 국영기업(한국통신 시절)의 독점 영역이었다.
통신사업은 이미 1980년대 21세기 정보화 사회를 이끌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인식되고 있었다. 그래서 역대 정권들은 임기 말에 꼭 KT의 자회사 중 돈벌이가 된다 싶은 사업들을 하나 둘씩 재벌에게 넘겨줬다. 늘 특혜 시비가 끊이질 않았고 깃털 몇몇이 구속되긴 했지만 그뿐이었다.
그러던 차에 IMF 경제 위기가 닥쳤다. 이번엔 아예 한국통신을 통째로 팔기로 했다. 나라경제가 거덜난 판에 국내 재벌 중에는 한국통신을 인수할 곳이 더는 없었다. 그래서 미국에 내다 팔았다. 뉴욕 증시에 직상장했고 이를 위해 이름도 ‘케이티(KT)’로 바꿨다. 이로써 국민기업 한국통신은 의결가능 주식, 곧 배당주식의 3분의 2가 외국인 소유인 사기업 KT가 됐다.
결과는 익히 알려진 그대로다. 먼저 노동자에겐 구조조정의 광풍이 몰아닥쳤다. 한때 6만 5천 명이 넘던 KT의 정규직 노동자는 이제 3만 7천 명에 불과하다. 사회공공성을 위해 다소 과잉이다 싶을 만큼 많았던 투자는 급속히 줄어들었다. 사유화가 이루어진 2002년을 전후해서 KT의 설비투자액은 급팽창하는 매출과는 반대로 대폭 줄어 매출대비 설비투자액의 비중이 2000년 33.9퍼센트에서 2004년에는 15.3퍼센트, 2005년에는 17퍼센트 등으로 크게 낮아졌다.
돈벌이
투자 감소는 최소한의 통신 공공성을 위협하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했다. 그 대표적 사례가 2005년 2월, 경기남부·영남 지역에서 발생한 대량의 전화 먹통 사태다. 112, 119 등 사회 안전에 필요한 최소한의 통신마저 두절시킨 이 통신 대란은 사유화 이후 KT가 전화 통신망을 빠듯이 운영한 게 원인이었다.
통신 공공성의 핵심은 교환기 등 장비의 여유 용량, 즉 통신 폭주를 대비해 여유있는 통신장비 용량을 확보하는 것이다. 그런데 사유화 이후 KT는 수익 극대화를 위해 투자를 줄였다. 그 결과 통신 대란이 일어난 지역의 여유 용량은 20퍼센트를 밑돌았고 이는 곧바로 전국적인 통신 대란으로 이어졌다. 신자유주의 사유화의 첨병인 당시 정보통신부장관 진대제조차 “KT가 민영화 이후 소비자 권익보다 주주 이익을 먼저 살펴 유선전화에 대한 설비투자를 게을리 한 것도 이번 사태의 원인”이라고 지적할 정도였다.
한편 이러한 과격한 구조조정과 공공성을 위협하면서 단행된 투자 감소 덕분에 KT의 당기순익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그러나 그 과실은 철저하게 주주들의 몫이었다. 그것도 해외투자자 우위의 주주 말이다. 이것이야말로 사유화의 본질이 아니겠는가!
대통령이 공약으로 내세운 ‘통신요금 인하’는 KT가 사유화 되기 전이었던 10년 전이라면 너무나도 간단한 일이었을 것이다. 이것이 불가능해진 데에는 복잡한 이유가 있는 게 아니다. KT 사유화가 전부다. 주인이 국민에서 해외투자자로 바뀐 것뿐이다.
그렇다면 그런 사유화를 왜 했을까? 공기업의 방만한 비효율성을 제거하기 위해서라는 것이 자본의 변명이다.
그러나 우리는 자본이, 국가가 얘기하는 그 효율성이 누구를 위한 것인가를 물어야 한다. 사람들을 일터에서 쫓아내고 6만 5천 명이 하던 일을 3만 7천 명이 하도록 하는 것이 효율적인가 아니면 근로시간을 단축하는 것이 효율적인가? 인건비를 줄이고 투자를 줄여서 크게 늘어난 이윤을 해외투자자들에게 배당하는 게 효율적인가 아니면 누구나 가격부담 없이 통신에 접근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게 효율적인가?
효율
사유화는 효율성과 아무런 인연이 없다. 그것은 이윤율 하락을 겪고 있는 자본에게 안전한 투자처를 마련해 주는 것, 그럼으로써 자본의 위기를 돌파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을 제공하는 것일 뿐이다. 세계적으로는 물론 이미 한국의 일부 자본도 마땅한 투자처를 못 찾아 부동산으로, 증시로 떠돌다 못해 해외투자처를 적극 발굴하고 있는 실정 아니던가!
통신은 정보화 기술 혁신의 총아다. KT가 그 많은 인원을 구조조정으로 쫓아내고도, 또 투자액이 줄어들고 있음에도 기업을 운영할 수 있는 것은 자동화, 집중화, 광역화를 가능하게 해 준 기술 발전에 힘입은 바 크다.
그래서 우리는 이 대목에서 물어야 한다. 왜 기술 발전으로 엄청나게 노동절약적인 통신서비스가 가능해졌는데도 노동시간이 단축되는 것이 아니라 구조조정으로 노동계급의 처지가 악화돼야 하는지. 또 그런 기술 발전이 요금 인하를 통한 통신 공공성 강화로 귀결되는 것이 아니라 주주들의 배당금 확대로 귀결돼야 하는지를 말이다.
오늘날 통신은 사회의 필수재가 됐다. 특히 젊은이들에게는 공기와도 같은 존재다. 그런 만큼 통신의 ‘사회공공성 강화’ 주장이 헛구호가 되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이제 더 근본적인 질문을 한번쯤 던져야 한다. 통신이 사회구성원들에게 공기처럼 존재하려면 우리 민중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우리는 그 답을 대통령의 통신요금 인하 공약이 무산된 과정에서 찾을 수 있다. 그것은 사유화의 역코스가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