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과의 ‘개혁 연대’가 아니라 노동자 독자 정당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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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과의 ‘개혁 연대’가 아니라 노동자 독자 정당이 필요하다
김인식
[편집자 주] ‘개혁과 통합을 위한 노동연대’ 공동 대표 박태주 씨는 10월 12일치 〈한겨레〉 ‘왜냐면’에 민주노동당이 노무현과 연대해야 한다는 요지의 글을 썼다. 이 글은 박태주 씨 글에 대한 반론으로 10월 17일치 〈한겨레〉 ‘왜냐면’에 실린 글이다. 재게재를 허락한 〈한겨레〉에 감사드린다.
박태주 씨의 주장은 노무현 지지론의 노동계 버전이다.
박태주 씨의 노무현 지지론은 노동자 운동에 대한 근원적 회의와 불신에서 비롯한 듯하다 ― 저조한 노조 조직률, 기업별 노조 체계에서 비롯한 파편성, 노조 관료화 징후, 세계화와 신자유주의 공세 등. 이것은 일면적이고 인상주의적인 인식이다. 이로부터 도출된 박태주 씨의 정치적 결론은 노동자 정당이 “진보적 부르주아와 정치적으로 연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노동자 독자 정당 전략은 오히려 노동자들의 정치적 소외를 심화”시킬 것이라고 주장한다. 기성 보수 정당과 “경쟁 관계”(즉, 정치적 결별)를 맺게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박태주 씨는 “노동자 독자 정당 전략”이 등장한 이유에 대해 침묵한다. 그 동안 기성 보수 정당들은 노동자들을 정치적으로 철저하게 배제했다. 군사 독재 정부는 말할 것도 없고, “문민 정부”와 “국민의 정부” 모두 기업주들의 이익을 위해 노동자의 요구를 묵살했다. 요컨대, 기성 정당들을 지지하는 대가로 돌아올 것이 거의 없다는 노동자 대중의 역사적 자각이 “노동자 독자 정당 전략”의 배경이었다. 영국 노동자 운동이 자유당과 결별하고 1900년에 노동당을 창립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한국노총 지도부가 1997년 대선에서 김대중과 정책 연합을 했지만 그 결과는 어떠했는가? 일부 지도자들이 민주당 국회의원이 됐지만 대다수 한국노총 조합원들의 삶은 바뀌지 않았거나 더 나빠졌다. 2000년 7월 금융노조 파업과 그 해 12월 국민·주택은행 파업은 그 때문이었다. 이렇게 투쟁을 경험한 금융노조가 한국노총 산하 노조 가운데 민주노동당(“노동자 독자 정당 전략”)에 가장 우호적인 것을 우연으로 보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박태주 씨는 노동 운동에 경고하고 있다. 절반 이상의 노동자들이 이회창과 정몽준을 지지하는 현실을 잊지 말라고. 민주노동당의 선거 출마가 노무현 표를 갉아먹어 수구 보수 정당을 이롭게 한다는 비판도 함축하는 듯하다. 그러나 수구 보수 정당이 집권하더라도 그것은 말로만 개혁을 외치고 행동으로는 보수를 실천한 김대중 정부의 실패가 빚어 낸 결과이지 민주노동당의 선거 출마 때문이 아니다.
게다가 박태주 씨의 주장처럼 노무현의 노동 정책이 이회창과 “예각적으로 대립”하는 것도 아니다. 노동 정책에 관한 한 둘 사이에는 말의 차이만이 있을 뿐이다. 노무현의 정책은 재벌의 이익을 근본으로 거스르지 않는다. 이미 그는 1998년 현대자동차 파업과 2001년 대우차 파업 때 노동자들이 정리해고를 수용할 것을 요구한 바 있다. 올해 초 발전 파업 때는 발전소 매각에 대해 처음부터 끝까지 모호한 답변으로 일관했다.
박태주 씨는 자기 주장을 합리화하기 위해 영국 노동당과 자유당의 선거 연합을 끌어 낸다. 1848년 챠티스트 운동이 패배한 뒤 40년 동안 영국 숙련 노동자들의 노조 지도자들이 자유당에 의지한 것은 사실이다. 노동당 창립자인 케어 하디도 처음에는 자유당 후보로 출마했다. 그러나 자유당은 노동자 정당이 아니었다. 노동자들의 자유당 지지 대가는 공수표였다. 그래서 하디는 “자유당-노동대표위원회” 연합 소속 의원들을 “성대를 제거해 짖지 못하는 개”라고 경멸했다. 바로 이런 경험이 노동당 창당 배경이 됐다. 그리고 우리 나라 노동자들이 똑같은 것을 경험하기 시작했다.
박태주 씨는 “두꺼비가 독사에 잡아 먹힘으로써 새끼를 낳”듯이 민주노동당이 노무현과 연대해 정치적 토대를 마련하라고 주문한다. 그러나 이것은 비과학적 비유다. 두꺼비 같은 개구리목은 체외 수정을 한다. 그러니 박태주 씨의 비유 같은 생태계 현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과학적인 진실은 독사가 두꺼비를 잡아 먹게 되면 둘 다 죽는다는 것이다.
역사적인 진실은 노동자 정당이 “진보적 부르주아와 정치적으로 연대”하는 것은 결국에는 노동자 정당의 파멸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케어 하디는 노동당이 자유당과 함께하는 “정책을 계속 유지한다면 독립성을 잃어버려 자유당에 복속될 것이며 완전히 파멸할 것”이라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