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당 대선 전술 비판 - 진정한 “통일 좌파”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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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당 대선 전술 비판 - 진정한 “통일 좌파”를 위해
김인식
민주노동당을 중심으로 ‘범추’ 논의가 진행되고 있던 상황에서 사회당 대선기획위원회가 “통일 좌파”를 제안했다. 이 제안은 주되게 ‘노동자의 힘’ 조직을 염두에 뒀던 것으로 보인다. “통일 좌파” 제안 문서의 상당 부분을 ‘노동자의 힘’과의 관계에 할애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동자의 힘’은 사회당의 제안을 거절하는 대신 “전국공동투쟁본부”(“공투본”)를 제안했다. 사회당은 처음에는 ‘노동자의 힘’의 제안에 동의했다. 그런데 민주노동당이 “공투본” 제안을 수용하자 느닷없이 “공투본” 예비 모임의 “성격과 활동 계획이 불분명”하다는 이유로 참여를 거부했다.
사회당 지도부가 이렇듯 일관성 없는 태도를 취한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는 듯하다. 먼저, 사회당 지도부는 “좌파”를 매우 협소하고 그릇되게 이해하고 있다. 사전적 의미에 따르면, 좌파는 “부와 권력이 사회 전체에 고르게 분배돼야 한다고 믿거나, 사회주의 혹은 사회주의에 근접한 사상을 채택한 정치 단체”를 가리킨다. 그래서 “좌파는 자본주의나 보수주의 정치 사상을 지지하는 우파와 대비된다.”
물론 좌파 내에도 여러 스펙트럼이 존재할 수 있다. 예컨대, 사회 혁명을 추구하는 혁명적 좌파가 있는가 하면 체제 내 개혁만을 추구하는 좌파가 있다. 그 둘 사이에는 중도주의 좌파(중간파)가 있다. 사회당이 이런 스펙트럼 가운데 어디쯤에 놓여 있는지는 불분명하다. 사회당 자신이 이 점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반보수 투쟁의 전술적 차이를 둘러싼 논쟁은 매우 중요한 전략적 전망 차이를 함축하고 있다. 수구 보수 정당에 맞서 노무현과 모종의 연대를 추구하는 포퓰리즘은 조만간 개량주의로 발전할 가능성이 다분하다. 그래서 계급 협력 사상인 포퓰리즘에 맞서 이데올로기 투쟁을 벌이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동시에, 노동자 대중이 서구의 사회민주주의 정당 같은 개량주의의 타락을 경험하지 않았기 때문에 대다수 선진 노동자들(대부분 민주노총 소속)조차 보수에 맞선 범진보 진영의 단결을 지지하고 있는 현실을 볼 줄 알아야 한다. 현실이 이런데도, 사회당 지도부는 최대 좌파 정당인 민주노동당을 “통일 좌파”의 대상에서 제외했다.
사회당과 노동자주의
사실을 있는 그대로 말하자면, 사회당의 “통일 좌파”는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에 대당하기 위한 것이었다. 사회당에게 민주노동당은 NL, 개량주의자들, 금속연맹과 민주노총의 타락한 지도자들이 결탁해 만든 “주류 연합”일 뿐이다. 즉, 민주노동당은 “타협적이고 개량주의적 사회민주주의” 당이고, 민주노총은 계급 운동을 자제하는 구실만을 한다는 것이다. 4월 2일 민주노총 지도부의 발전 파업 배신과 이에 대한 민주노동당의 무비판적 논평이 사회당의 이런 태도를 더욱 확고하게 만든 듯하다.
“좌파는 우선 모여서 하나가 되어야만,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의]주사-국민파, 개량-중앙파를 밀어내고 공식적 대중 권력이 됨으로써 대중을 분기시켜 이 더러운 체제와 맞서는 싸움을 시작할 수 있다.”(사회당 대선기획위원회, 〈통일 좌파〉, 11쪽.)
이 참에 분명하게 시비를 가리고 가야 할 게 있다. 사회당은 민주노동당을 주사파 혹은 NL의 당으로 몰아가는 경향이 있는데, 이것은 잘못된 규정이다. 민주노동당이 NL의 당이라면 7월의 ‘범추’ 논쟁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정확히 말하면, 민주노동당은 민주노총과 진보적 지식인 다수를 중심으로 한 좌파 연합 정당이다. 민주노동당 안에는 PD 경향의 분파들과 ‘다함께’ 분파도 존재한다.
위에서 인용한 사회당의 주장은 1970년대 이탈리아 노동자주의자들과 꽤나 흡사하다. 당시 가장 유력한 노동자주의 단체였던 ‘노동자 권력’(Potere Operio : 안토니오 네그리도 이 단체의 이론가였다)은 이탈리아공산당(PCI)을 억압적인 국가 기구의 일부로, 노동조합을 단순히 계급 투쟁을 후퇴시키는 구실만 하는 것으로 여겼다. 그 때문에 PO는 1968~1969년 파업 때 등장한 노동조합이나 공장위원회에서 활동하지 않았다.
그러기보다는 노동자들을 자본으로부터 완전히 분리시키는 정책을 구사했다. PO는 노동조합과 PCI가 노동 계급 투쟁에 자본의 계획을 전파한다고 봤기 때문에, 노동자들을 이로부터 분리시키려 했다. 이것은 더한층의 자본주의 발전과 철저하게 충돌을 빚는 요구를 제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저들이 10을 양보할 것 같으면 우리는 100을 요구할 것이다. 저들이 100을 양보할 것 같으면 우리는 1000을 요구할 것이다.”
사회당도 그 비슷한 주장을 한다. “자본은 작은 권력과 돈 맛을 알게 된 상층 간부들을 각종의 희한한 수단으로 얽어매 놓고 있다.” 때문에 “현장의 주체 재형성”이 필요하다. 즉, “임금 인상 투쟁 아무리 해 봐야 노동자의 계급 의식을 고취할 수 없”으니 이런 “저열한 요구가 아니라, 전체 노동자 계급의 노동력 재생산 비용을 낮추라는 계급적 요구를 가지고 단결하여 싸울 수 있는 현장 주체로서 재조직되어야 한다.” (사회당 대선기획위원회, 〈통일 좌파〉, 17쪽.)
사회당 지도부는 전체 노동 계급의 현재 의식과 극소수 노동자의 정서를 완전히 혼동하고 있다. 일부 노동자 개인들이 “통일 좌파” 주위로 모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것을 사회 전체에 적용하려 할 때는 심각한 고립을 겪을 것이다. 결국 사회당 지도부는 자신들의 의지로 현실을 규정하고 있다.
사회주의 후보 전술과 종파주의
“통일 좌파”가 좌절된 상황에서 사회당은 제14차 중앙위원회를 통해 ‘사회주의 후보’ 전술을 채택했다. 어찌 보면, 이것은 “통일 좌파”에 내재된 논리적 결론이다.
그러나 선진 노동자 대중은 이제서야 노동조합의 울타리를 넘어 정치화의 여정을 막 시작했다. 이 과정은 결코 단선적이지 않다. 그러기는커녕 매우 불균등하다. 대선에서 민주노동당과 노무현 둘 중 누구를 선택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뜨거운 정치 논쟁 가운데 하나로 떠오르는 현실을 보라. 민주노동당이냐 사회당이냐 하는 문제는 극소수 좌파에게나 관심 있을 뿐이다.
노동자 계급과 피억압자의 다수는 사회당이 개량주의라고 비판하는 민주노동당의 공약과 정책들에 대해서조차 “지나치게 급진적”이라고 여긴다. 하물며 많은 사람들은 민주노동당과 사회당의 정치적 차이도 모른다. 무엇보다 두 진보 정당의 존재 자체를 모르는 경우도 허다하다.(물론 이것은 진보 정당을 원천적으로 배제하려는 기성 정치권과 언론의 탓이 크지만 말이다.) 원칙과 전술을 구별할 줄 아는 좌파라면 전술 문제에서는 이런 대중의 경험과 의식을 건너뛰어서는 안 된다. 소수의 좌파들에게만 입증된 것을 광범한 대중에게도 입증됐다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게다가 사회당이 주장하는 “사회주의”가 뜻하는 바가 무엇인지도 모호하다. 지난 6·13 지방 선거 때 사회당의 원용수 서울시장 후보는 “사회주의적 가치”를 강조한 바 있다. 또, 누구는 1백 명의 사회주의자가 있으면 1백 종류의 사회주의가 존재할 수 있다고도 말한다. 그런데 민주노동당도 강령에서 “사회주의적 이상과 원칙을 계승 발전”한다고 밝히고 있다. 두 당의 “사회주의”가 어떻게 다른지도 분명하지 않은 상황에서 사회당이 굳이 “사회주의”라는 ‘특별한 표지’를 내걸고 대선에 따로 출마해야 하는가.
마르크스가 말했듯이, “자기 존재의 정당성과 명예를 계급 운동과의 공통점이 아니라 운동과 자신을 구별짓는 특별한 표지에서 찾는” 태도는 종파주의다. 현 단계에서 사회당이 자신을 애써 민주노동당과 구별지으려 할수록 사회당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사회당에게는 공동전선에 대한 이해가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