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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의 ‘제몫’은 역사에서 사라지는 것

[편집자 주] 최근 광우병 촛불집회를 왜곡보도하는 조중동(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에 대한 반감이 확산되고 있다. 2001년 4월에 발간된 〈열린주장과 대안〉 10호는 “〈조선일보〉의 ‘제몫’은 역사에서 사라지는 것”이라고 논평하고 있는데, 시의적절하다고 생각해 다시 게재한다. (2008.5.11)

극우 신문인 〈조선일보〉에 반대하는 안티조선 운동이 번져 가고 있다. 월간 《인물과 사상》을 발행하는 강준만 교수, 언론학 교수인 김동민 씨, 시인 김정란 씨, 프랑스 망명자였던 홍세화 씨 등이 이 운동을 이끌고 있다.

〈조선일보〉에 반대하는 ‘우리모두’라는 인터넷 사이트도 생겼다. 작년 3월 5일에 ‘우리모두’의 회원 500여 명은 〈조선일보〉 창간 80주년을 ‘기념’해 거리에서 〈조선일보〉 반대 서명을 받고 〈조선일보〉 사옥까지 항의 행진했다. ‘우리모두’는 10개월 만에 조회수가 폭주해 100만 명을 넘어설 정도다.

작년 8월 7일에는 〈조선일보〉의 취재·인터뷰를 거부하는 154명의 지식인 선언이 있었고 이어서 153명의 2차 지식인 선언이 있었다. 올해 3월 5일에도 404명이 참가한 ’〈조선일보〉 거부 3차 지식인 선언’이 있었다.

민주노총, 전교조, 전국연합 등 41개 시민·사회단체가 참여한 ‘조선일보 반대 시민연대’도 생겨났다. ‘시민연대’는 “수구 신문 〈조선일보〉의 … 행태가 하도 도발적이고 기괴하여 이를 더 이상 방치해둘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선언했다.

극우 신문

극우 교수 송복은 “〈동아일보〉나 〈중앙일보〉 또는 〈한국일보〉에 대해서도 시비를 걸어야(지) … 왜 유독 조선에 대해서만 그러느냐”(〈신동아〉 2000년 10월호)고 말한다.

그러나 〈조선일보〉는 단지 ‘평범한 우익 신문’이 아니라 ‘특별한 극우 신문’이다.

〈조선일보〉는 일제 하에서 친일 경제인 단체인 ‘대정실업친목회’에 의해 처음 발간됐다. 친일 매국노의 양대 거두 중 하나였던 송병준이 〈조선일보〉의 판권을 소유하고 있었다.

일제 때 〈조선일보〉는 “이봉창의 폭탄 테러에도 불구하고 천황폐하는 무사히 환궁하시었다”(1932년 1월 10일치), “천황 폐하의 생신을 경축하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겠다”(1939년 4월 29일치), “한일합방은 조선의 행복과 동양의 평화 위해 체결한 조약이다”(〈월간조선〉의 전신 〈조광〉 1940년 10월호) 등 듣기 역겨운 글을 많이 썼다.

최근 〈조선일보〉는 창간 81주년 특집에서 일제 때의 정간과 폐간 사례를 들먹이며 자기가 마치 반일 민족지였던 양 말하고 있다.

그러나, 〈조선일보〉가 일제에 의해 정간 조치를 당한 것은 박헌영·김단야 등 좌파 기자들이 근무했던 1924∼1925년에 있었던 일이었다. 좌파 기자들이 근무했던 1년 동안에 대부분의 정간 조치들이 몰려 있었고, 이 기자들은 곧 〈조선일보〉 경영진에 의해 쫓겨났다.

일제가 〈조선일보〉를 폐간시킨 것은 ‘반일’ 때문이 결코 아니었다. 〈조선일보〉는 1940년 8월 11일자 ‘폐간사’에서 스스로 “(우리가) 동아 신질서 건설의 성업을 성취하는 데 만의 일이라도 협력하고저 숙야분려(夙夜奮勵 : 이른 아침부터 밤 늦게까지 최선을 다하고 고민한다)한 것은 사회 일반이 주지하는 사실”이라고 자랑하고 있다.

〈조선일보〉 폐간을 전후로 창간한 월간지 〈조광〉의 1940년 7월호 권두언 제목은 ‘일본 제국과 천황에게 ― 성은(聖恩) 속에 만복(萬福)적 희열을 느끼며’였다.

〈조선일보〉는 이런 전력 때문에 해방 이후 특히 인쇄 노동자들의 거부로 복간되지 못하다가 점령군 미국 “군정청의 우호적 지지와 이해 있는 알선에 의하여”(1945년 11월 23일 복간사) 복간됐다.

박정희 군사 독재 때 〈조선일보〉는 1972년 10월 ‘유신’을 “가장 적절한 시기에 가장 알맞은 조치”(1972년 10월 18일자)라며 환영했다. 〈조선일보〉는 영구집권을 위해 국회 해산·대학 휴교·언론검열 등 민주주의를 유린한 박정희의 비상계엄령을 “구국의 영단’(1972년 12월 28일치 사설)이라고 칭송했다.

1980년 광주항쟁 때 〈조선일보〉는 광주 시위대들을 “폭도”로 매도하는 데 앞장섰을 뿐 아니라 전두환을 “새 시대를 열고 새 정치를 펼칠 지도자’(1980년 8월 24일치)라고 찬양했다.

이러한 아첨 덕분에 〈조선일보〉 회장 방우영은 언론사 사장으로는 유일하게 전두환 정권의 ‘국보위’ 입법회의 의원으로 참여했고, 당시 편집국장 최병렬 등 〈조선일보〉 간부들이 전두환 정권 시절 권력의 핵심부에 대거 진출했다.

전두환 정권 7년 동안 〈조선일보〉는 초고속 성장을 거듭해 매출액 1위로 뛰어올랐고, 연평균 성장률은 3백28 퍼센트나 됐다. 또, 회장 방우영은 1983년 개인소득세 납부 순위 1백 위에서 단 1년 만에 20위로 도약했다.

〈조선일보〉는 탈세·비리·부정부패의 장본인이기도 하다. 〈조선일보〉의 방씨 일가는 〈조선일보〉 사의 주식 지분을 상속하면서 사실상 세금을 한푼도 내지 않았다.

박정희 정권 때 〈조선일보〉는 코리아나 호텔을 건축하면서 일본으로부터 수백만 달러의 차관을 도입했는데, 방우영은 그 과정에서 받은 커미션으로 미국 LA 북쪽 팜데일 일대에 수만 평의 땅을 매입했다.

방상훈은 미국에 유학중이던 1973년 9월경 미국 LA 번사이드 지역에 30가구 규모의 아파트를 약 30만 달러에 구입했다. 방용훈은 1992년 1월 15일 LA에서 가장 유명한 부촌인 센트리 시티에 초호화 콘도미니엄을 가지고 있다.

〈조선일보〉의 고문인 방일영은 흑석동에 3천748 평짜리 대저택을 갖고 있다.

선명성

〈조선일보〉는 “굉장한 용기”로 “선명성을 갖춘’(송복, 〈신동아〉 2000년 10월호) 극우적 주장을 펴는 데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월간조선〉의 편집장인 조갑제는 “통일은 … 우리 국군이 평양의 주석궁에 탱크를 진주시킬 때 비로소 성취되는 것”(〈조선 노보〉 1997년 6월 5일치)이라며 전쟁광적 주장도 서슴지 않았다.

북한 핵 문제로 전쟁 일보직전까지 갔던 1994년에 조갑제는 “북한 문제를 처리하기 위해서는 자위적 선제기습도 배제하지 말아야 한다”(〈월간조선〉 1994년 3월호)고 주장했다.

심지어 〈소년 조선일보〉는 작년 6월 27일치 사설 “잊지 말아야 할 6·25 전쟁”에서 어린이들에게 냉전적 사고를 강요하면서 6·25 전쟁을 “영원히 기억하기를 당부’하기까지 했다.

〈조선일보〉는 한국의 지배계급 중 특히 친일파, 군부, 영남 출신 재벌과 정치인 등 권력의 핵심부와 친밀했다. 한국의 핵심 권력자들은 뒤늦은 자본주의 발전을 이룩한 부르주아지답게 대단히 반동적이고 우익적이다.

〈조선일보〉는 김윤환, 허문도, 최병렬, 주돈식 등 많은 장관과 정치인 들을 배출했다. 또, 〈조선일보〉는 마녀사냥을 통해 김영삼 정권 때 통일원 장관 한완상과 교육문화수석 김정남을, 김대중 정권에서는 대통령정책자문 최장집과 여당 정책위 의장 이재정 등을 자리에서 물러나게 했다.

〈조선일보〉는 지배계급 극우파에게 행동지침을 제공한다. 예컨대 〈조선일보〉의 주필 김대중이 1999년 7월 31일자에 쓴 〈이회창론〉이라는 제목의 칼럼은 “이회창 총재에게 정확한 행동지침을 제시(했고) … 이 총재는 그 칼럼 내용을 그대로 따라”(〈미디어 오늘〉 1999년 8월 12일치)했다.

〈조선일보〉는 작년에도 이회창이 연세대 강연 뒤 항의하는 학생들을 피해 뒷문으로 빠져나가자 “그런 부류와 맞서 싸우려면 적어도 기 싸움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주눅들면 안 되는 것”(2000년 9월 7일치 사설)이라고 ‘지도’했다.

〈조선일보〉는 안기부(국정원의 전신)의 나팔수 노릇도 했다. 조갑제는 1980년대부터 안기부의 수사 발표문을 손봐 주고 고급 정보를 얻어 왔다. 정형근은 〈동아일보〉 기자에게 “내가 (안기부) 재직 시절 조갑제 씨는 우리 수사 발표문도 손질해 주고 자문도 해줄 정도로 능력이 있었다.”(〈말〉 1999년 1월호)고 말했다.

〈조선일보〉를 지지하는 극우파들은 안티조선 운동이 “기본적으로 언론 탄압이자 언론 자유에 대한 부정”(〈신동아〉 2000년 10월호, 전 국회의원 이동복)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조선일보〉는 언론의 자유를 무자비하게 탄압했던 박정희의 ‘유신’을 “구국의 영단”이라고 환영했다.

1970년대에 언론의 자유를 위해 노력하던 〈조선일보〉 기자들을 해직시킨 뒤 아직도 복직시키지 않은 〈조선일보〉야말로 언론 탄압의 선두 주자다. 〈조선일보〉의 존재와 역사 자체가 “언론 자유에 대한 부정”이다. 이런 〈조선일보〉에 맞서 싸우는 것은 진정한 민주주의와 자유를 지키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