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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 속에 국가보안법의 발톱을 세우는 이명박

2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청계광장에 모여 분노의 촛불 행렬을 이룬 5월 3일, 국가정보원(국정원)은 대통령 업무보고 자리에서 “간첩·보안 사범 수사를 강화”할 것을 강조했다. 이명박은 “안보와 국익에서 눈에 보이는 성과를 내야 한다”고 주문했다.

지금 이들이 말하는 ‘안보’와 ‘간첩 수사 강화’는 무엇을 겨냥하는 것일까?

〈조선일보〉는 한 공안당국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쇠고기 시위’에 ‘반미 단체’들이 참가하고 있다며 광우병국민감시단과 한미FTA저지범국민운동본부 소속 단체들 — 민주노총, 전교조, 참여연대, 다함께 등 — 을 거론했다. 이 단체들을 골라내서 공격해야 한다는 점을 암시한 것이다.

2006년 간첩단이라고 조작·매도당했던 이른바 ‘일심회’ 마녀사냥 당시에도 〈조선일보〉는 효순·미선 압사 항의 운동, 탄핵 반대운동 등이 모두 ‘북한의 지령’에 의한 것이었다며 그 운동 참가자들을 모욕한 바 있다.

군사독재 시절, 정권에 대한 정당한 비판을 입막음하는 단골 무기로 사용되던 국가보안법이 이명박 정부에서도 변함없이 정권의 무기로 사용될 가능성이 크다.

모욕

이명박 취임 후 두 달 동안 학교 ‘자율화’, 등록금 폭등, 물가 상승, 공공서비스 사유화, 의료보험 민영화 등으로 쌓여 왔던 불만이 광우병 쇠고기 문제로 폭발하고 있다. 이 상황에서 이명박 정부는 국가보안법을 휘둘러 정부의 부당한 정책에 앞장서서 반대해 온 진보단체들을 탄압해 운동을 위축시키려 할 수 있다.

지난 역사에서도 공안당국은 정권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특정 단체나 개인에게 ‘친북·반미’ 딱지를 붙이고 사회의 위험인물인 양 마녀사냥하고 속죄양 삼아 왔다.

정부와 공안당국은 일부 좌파가 억압적 독재국가인 북한을 ‘사회주의’라고 착각해 지지한다는 점을 악용해 마녀사냥을 정당화해 왔지만, ‘간첩’과 ‘친북’은 핑계였을 뿐이다. 국가보안법을 이용한 마녀사냥을 통해 진보진영 전체를 매도하고, 사상에 대해 자유롭게 토론하지 못하게 막고, 국가의 탄압을 정당화하는 효과를 노린 것이다.

군사독재 시절 ‘간첩’ 누명을 쓰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지만 수십 년이 지나 모두 무죄로 밝혀진 〈민족일보〉 조용수 사건, 인혁당 재건위 사건 등은 말할 것도 없고 소위 ‘민주화’된 시대에도 국가보안법은 늘 정권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잠재우고 사회분위기를 우익이 주도하게 만드는 구실을 해 왔다.

노무현 정부 하에서 벌어진 대표적인 ‘간첩’ 사건인 송두율 교수 사건과 이른바 ‘일심회’ 사건 때 공안당국과 보수언론들은 이 사건 관련자들이 무시무시한 대남공작원인 것처럼 부풀려 사회 분위기를 얼어붙게 하고 진보단체들을 고립시키려 했다. 그러나 이 사건들은 나중에 혐의의 대부분 또는 상당 부분이 무죄로 판결됐다.

따라서 이명박 정부가 부르짖는 ‘보안사범’ 수사 강화는 바로 반이명박 운동을 겨냥한 것이라는 점을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런 본질을 이해해야 나와 사상이 다르거나 ‘친북’이라는 등의 이유로 마녀사냥의 희생자를 방어하는 데 주춤거리는 잘못을 막을 수 있다.

이명박에 반대해 거리로 나선 사람들은 이명박 정부의 국가보안법을 이용한 탄압에도 함께 맞서 싸울 준비를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