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우는 있어도 위아래는 없다》 - 박노자, 한겨레신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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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우는 있어도 위아래는 없다》 - 박노자, 한겨레신문사
김어진
‘북유럽 탐험’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한국 사회뿐 아니라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진지한 고발장이다.
지은이는 한국 사회를 노르웨이 사회와 대조해 비판한다. 이것을 보노라면 한국 사회를 빨리 고쳐야 한다는 생각이 머리 속을 압도한다.
노르웨이에서는 대학 교수나 버스 운전 기사나 모두 능숙하게 영어를 구사한다. 누구나 돈 안드는 공립학교에서 질 좋은 영어 교육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목숨 바쳐 토플·토익 점수를 올려야 하고 심지어 영어 발음 교정을 위해 혀 수술까지 권유받는다. 학생, 교수, 교직원이 대학 운영에 동등하게 참여하는 노르웨이 대학과 위계 질서와 연줄로 얽혀 있는 한국 대학도 분명 대조된다.
그러나 저자는 노르웨이를 이상화하는 것을 경계한다. 노르웨이는 군사·안보 분야에서 친미적이다. 노르웨이 내각은 전문 군인 5백 명을 미군에 합류시켜 아프가니스탄 침공을 지원했다. 저자는 노르웨이가 인본주의를 내세우면서도 이스라엘의 핵무기 개발을 은근히 지원해 온 것이나, 1967년의 ‘6일 전쟁’ 때 노르웨이 주요 정치인들이 이스라엘을 도울 의용군을 보내자고 호소한 사실을 폭로하고 있다.
저자는 또, 노르웨이 대기업뿐 아니라 북유럽 대기업이 합리적 경영을 외치면서 제3세계에서 초착취 노동을 강요하는 사실을 낱낱이 폭로한다. 그들은 ‘효과적인 경영’을 위해 회사 안에 여자 화장실조차 설치하지 않고, 하루에 11∼12시간 일을 시키며 한 달에 고작 20∼30달러의 월급을 주는 게 보통이다. 노르웨이에서 주유소를 7백 개나 운영하는 다국적 에너지 기업 셸에 대한 생생한 폭로도 있다. 셸의 나이지리아 석유 지배를 규탄하고 “석유는 우리의 저주”라는 명언을 남기며 사형당한 저명한 작가이자 환경 투사, 저항 운동가였던 사로위와의 처절한 삶도 소개돼 있다.
저자가 주로 비판하는 것은 현대 사회의 인종주의와 폭력성이다. 노르웨이는 세계 약탈의 주범은 아니지만 ‘틈새 이득’을 노리는 ‘공범’이라고 말한다. “민족 내에서 갈등을 조장하는 유대적인 노동 운동을 깨끗이 없애버려야 한다.” 하고 주장한 노르웨이의 파시스트 크비슬링이라는 인물은 독일 나찌의 후예였다(그래서 노르웨이에서는 한국의 친일파를 ‘한국의 크비슬링들’로 지칭한다). 또, 1940년대와 1950년대 노르웨이 정부와 언론은 아시아계 여성들에게 의무적으로 불임수술을 시켜 ‘열등 인종의 번식’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근 노르웨이 극우 청년단체 회원들이 노골적으로 흑인이나 아시아계 사람들을 공격하는 일도 빈번히 일어나고 있다.
특히 지은이는 강대국의 전쟁이야말로 가장 야만적인 폭력이라고 고발한다. 저자는 인권을 운운하며 무고한 생명을 죽이는 서방의 위선을 폭로한다. 저자는 묻는다. 왜 미국은 이라크보다 군사 예산이 다섯 배나 많고 최근 20년 동안 1천2백 명 이상을 죽여 최고의 사형 집행율을 기록한 나라인 사우디아라비아에는 침묵하느냐고. 1930년대부터 독점 이권 계약을 따낸 미국의 엑슨과 스탠더드 오일 등이 참여한 합작회사 알암코 같은 다국적 기업이 과연 인권을 사랑하느냐고. 저자는 1999년 세르비아 민간인들을 죽인 나토의 폭격을 전쟁이라고 하지 않고 곧잘 ‘바밍 캠페인’(bombing campaign)이라고 부르는 서방 언론도 교활하기는 마찬가지라고 꼬집는다.
물론, 그의 책 곳곳에는 몇 가지 논쟁점들이 있다. 저자는 마르크스주의가 서구 중심적이라고 가정하고 있는 듯하다. 그는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150년 전에 영국 침략자들이 ‘인도를 수천 년 동안 계속된 역사적인 잠에서 깨워 진지한 역사의 무대로 끌고 나왔다’는 등 유럽인들의 세계 지배를 일면 긍정시”했다고 말한다.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1850년 이전에 프랑스의 알제리 지배나 영국의 인도 지배를 긍정적으로 본 것은 사실이다. 이것은 봉건제가 여전히 지배적이던 상황에서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노동계급을 창출한 자본주의를 더 진보적이라 여긴 결과다. 그러나 1850년 이후부터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위와 같은 생각을 버렸다. 더구나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영국의 지배에 저항한 세포이 반란이 일어났을 때 그 반제국주의 투쟁을 열렬히 지지했다.
모든 민족주의를 야만적이라고 동등하게 취급하는 것도 논쟁의 여지가 있다. 푸틴의 대러시아 민족주의와 “제국주의 침탈로부터 자기를 방어하는” 체첸의 민족주의를 똑같이 취급할 수는 없지 않는가?
결정적인 의문점이 있다. 앞에서도 지적했듯이 저자는 자신이 노르웨이 사회를 이상화하는 것을 경계한다고 여러 차례 강조한다. 그렇다면 저자는 왜 노르웨이에는 좌우만이 있고 위 아래, 즉 계급 분단은 없다고 말할까?
저자가 지적했듯이 사회주의 좌익당이 노동당의 우경화에 대한 대안 세력으로 등장한 사실이야말로 노르웨이 또한 계급 양극화라는 전세계적인 분위기에서 예외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 아닐까? 저자는 “신자유주의 칼바람이 스칸디나비아까지 휩쓸기 시작한 요즘, 사회주의 좌익당의 지방선거 공약 중에서 가장 값진 걸로 평가받는 것이 비정규직 양산 결사 저지”라고 말한다. 비정규직이 늘어나는 사회에 정녕 위 아래가 없을까?
그럼에도 이 책에는 읽어볼만한 내용들이 많이 담겨 있다. 다국적 기업에 대한 폭로, 유럽의 더러운 인종주의 역사, 노르웨이의 역사, 오슬로 협정의 한계에 대한 논리적인 지적, 자본주의와 군대 제도, 노르웨이 반전 시위의 현황, 아프카니스탄 난민을 태운 탐파 호의 비극, 미국의 대북 압박에 대한 경계, 오태양 씨와 나눈 편지 내용 …. 더욱이 그의 섬세한 감수성은 그가 고발하는 폭력적이고 야만적인 이 사회와 너무도 대조되고 있다.
장준석
유엔은 세계 31개국이 현재 물 부족 사태에 직면했다고 보고했다. 10억 명이 넘는 사람들이 깨끗한 식수를 공급받지 못하고 있다. 더욱 비참한 것은 기본 권리인 물조차 불공평하게 분배된다는 것이다. 서구에서 갓 태어난 아기와 남반구의 부유한 집에서 태어난 아기는 깨끗한 물이라고는 구경조차 할 수 없는 남반구에 사는 보통 아기들보다 평균 40∼70배나 많은 물을 소비한다. 월드워치연구소에 따르면, 가나에서는 소득 상위 20퍼센트 가정이 하위 20퍼센트 가정보다 12배나 많은 물을 사용하고 있다. 인종과 계층으로 영역을 넓혀보면 물에 대한 특혜는 더욱 놀랍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은 백인 농민 60만 명이 관개용수의 60퍼센트를 사용하는 데 반해, 흑인 1천5백만 명은 물을 거의 공급받지 못한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인구 중 약 1천5백만 명은 물을 얻기 위해 적어도 1킬로미터나 떨어진 곳으로 가야만 한다. ‘국제 물 정책(Water Policy International)’에 따르면, 남아프리카공화국 여성들이 물을 긷기 위해 하루 동안 걷는 길이를 모두 합하면 달을 16회 왕복하는 거리와 맞먹는다!
더 심각한 문제는 기업 활동 과정에서 발생하는 물의 감소 현상과 오염 문제다. 예컨대 IBM, AT&T, 인텔 같은 컴퓨터 제조업체들은 제품을 생산하면서 엄청난 양의 탈이온수를 사용해 물을 고갈시킨다. 화장품에서 살충제까지 매우 다양하게 사용되는 폴리염화비페닐(PCB)은 1그램만으로도 물 10억 리터를 생물이 살아갈 수 없을 정도로 오염할 수 있다. 펄프·제지 공장은 제조 과정에서 엄청난 양의 물을 끌어갈 뿐 아니라 염소 표백 과정에서 다이옥신·퓨란 등의 치명적 화합물을 마구 흘려보내 지표수와 지하수를 한꺼번에 오염한다. 이들 기업에게는 이윤이 최상의 가치다.
오늘날 세계 물 산업은 상위 10대 기업이 점령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공룡 기업인 비방디와 수에즈는 세계 물 시장의 70퍼센트를 독점하고 있다. 두 기업은 세계 2백20여 국가로 시장을 확대하며 공공의 재산인 물을 거둬들이고 있다. 코카콜라·펩시콜라 등은 세계 곳곳에 기반을 두고 물을 상품화·사유화하고 있다. 이 기업들은 세계 곳곳의 물을 합법적으로 가져가기 위해 각 나라 정부와 국제 기구에 로비한다. 수에즈는 미국 내 자회사를 통해 1999∼2000년 선거 기간에 14만 1천1백50달러의 정치 헌금을 기부했다. 10년 전인 1989년에는 당시 프랑스 그르노블 시장이던 알랭 카리뇽에게 선거 자금으로 1천9백만 프랑을 기부했다.
세계은행(WB), 세계무역기구(WTO), 국제통화기금(IMF) 등 국제 기구들은 기업들이 물 수출을 용이하게 하는 데 중요한 구실을 한다. WTO는 물 상품이 국가간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도록 관세·비관세 장벽을 없애준다. IMF는 개발도상국의 외채를 탕감해 주는 대가로 상하수도를 사기업화하도록 강요한다.
저자들은 물은 삶에 없어서는 안 될 요소이기 때문에, 누구나 물을 사용할 권리가 있고 기업이 물을 통제해 상품화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국제 사회가 이윤에 따라 움직이거나 세계은행의 자금 지원을 받는 모델이 아닌, 새로운 모델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저자들이 내놓는 대안은 ‘생명수 헌법’, ‘전국 물 보호법’ 등의 법안을 제정해 물을 보호하고, 지역별로 ‘물 관리 위원회’를 둬 주민들이 직접 관리하는 것이다. 이것은 물을 대량으로 소비하고 오염하는 거대 기업들의 이윤 추구에 제동을 걸려는 시도다. 이것은 물 공급·관리의 사회적 통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아쉽게도 저자들은 체제 전체가 아니라 특정 지역의 통제만을 제시한다. 그러나 지역적 통제만으로는 전 세계를 무대삼는 다국적 기업과 국제 기구들의 횡포에 효과적으로 맞서기 힘들다.
이런 약점에도 이 책은 다국적 기업과 국제 기구 들이 어떻게 물을 오염하고 상품화하는 지 생생하게 폭로하고 있다.
《1968년의 목소리》 - 로널드 프레이저, 박종철 출판사
조승희
이 책은 로널드 프레이저가 구술사에 능한 9명의 협력자들과 함께, 1968년 당시 학생 활동가 2백30명과 인터뷰를 해 당시 투쟁들을 재현하겠다는 야심찬 기획 작품이다. 로널드 프레이저의 시도는 성공했다. 프레이저는 그 흥분되는 나날들에 벌어진 학생 반란의 느낌을 정말로 잘 포착해 냈다. 집단적 도전과 이니셔티브가 낳은 혁명적이고 해방적인 경험. 프레이저와 그의 협력자들은 ‘68년의 사람들’의 입을 통해 이것을 담아냈다. 이 책은 사람들이 투쟁의 경험을 통해 어떻게 변하는지 알 수 있게 해 준다.
“내가 결코 잊지 못할 순간이었습니다. 갑자기, 자발적으로 거리에 바리케이드를 세우고 있었습니다. 그들 가운데 다수는 그것이 처음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모든 억압된 감정을 해방시켰으며 축제 같은 정신으로 스스로를 표현했습니다. 수천 명의 사람들이 서로 의사 소통할 필요를 느꼈고 서로 사랑하기를 원했습니다. 그 날 밤으로 인해 나는 영원히 역사에 대해 낙관적인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 다니엘 꽁방디, 1968년 투쟁 당시 학생 지도자(26쪽)
“1968년 5월에 대한 나의 가장 생생한 기억이 [무엇이냐고요]? 모든 이들이, 새롭게 발견한 말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즉 누구와 무엇이든 말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5월 그 한 달 동안의 대화 속에서 사람들은 5년 동안 공부한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극장은 끊임없는 논쟁의 장이 되었습니다. 노동자들이 와서 참가했습니다. 그들이 부르주아 문화의 신전에 발을 디딘 것은 그 때가 처음이었습니다. 그들 가운데 일부가 1936년의 민중전선 시기에 점거했던 경험에 대해 말했습니다.”―르네 부리고, 프랑스 앙제르 고등 농업 학교 학생(25쪽, 303쪽)
당시 파리, 런던, 벨파스트, 베를린, 뉴욕 등 대중 행동이 벌어지는 곳이면 어디서든 하루 24시간 내내 토론이 벌어졌다.
이 책의 빼어난 점은 전체 운동의 일부인 수많은 개인들의 정치적 자각과 현실 참여 과정을 묘사한 것이다. 각각의 이야기들은 매우 다양하고 독특하지만 버클리에서부터 벨파스트에 이르기까지 공통된 주제가 흐른다. 바로 집단 행동의 과정에서 일어난 개인의 변화다.
“내 언행은 아주 착실했고, 아주 전통적이었고, 아주 겁먹은 것이었고, 매우 중간 계급적이고 품위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나는 6개월 전이었다면 아주 끔찍하게 생각했을 이런 일들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거대한 사람들의 물결 한가운데 있었습니다. … 놀라울 정도로 해방적이었습니다. … 동시에 그것은 정치투쟁이었습니다. 컬럼비아에서만이 아니었습니다. 베트남에서는 빌어먹을 전쟁이 진행 중이었고, 민권 운동도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1968년은 나에게 세계를 열어 주었을 따름입니다. 그리고 참여한다는 사실은 내가 다시는 일종의 자기 견책 혹은 공포를 가지고 외부의 것을 바라보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의미했습니다.”―마이크 왈라스, 1968년 4월 뉴욕의 컬럼비아 대학 점거자(27쪽)
혁명에서 사람들은 체제의 야만성에 대한 분노를 표현한다. 그와 동시에, 혁명은 자유 ― 개인의 자유 ― 에 관한 것이다. 그리고 개인의 자유는 집단적 힘과 떼어낼 수 없다.
[베트남] 전쟁이 미국과 서유럽에서 대중을 동원한 주요인 가운데 하나였다는 점에서 1968년은 지금 전쟁과 야만의 시대에 사는 우리에게 큰 영감을 준다.
안타깝게도 이 책에는 심각한 정치적 약점도 있다. 프레이저는 이 책에서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직접 말하지는 않지만, 그가 인터뷰한 사람들 중 일부가 그랬듯이 혁명은 공공연히 지지하던 데서 모호한 급진 개혁주의로 후퇴한 듯하다. 그는 이 책 후기 요약에 공산주의청년연합-마르크스레닌주의(UJC-ml)의 전지도자 로베르 랭아르의 논평을 써 놓았다. “뜨로츠끼주의자 및 마오주의자 들과 마찬가지로 우리 대열 내에 있었던 환상은 권력 장악이었습니다. 아무도 그것을 더 이상 믿지 않습니다.”(494쪽) 그는 또 프랭크 바다케의 주장 ― 1968년에 미국 민주사회를 위한 학생연합(SDS)이 자신의 궁극 목표를 자유주의 개혁에서 혁명으로 선회한 것은 실수였다 ― 에도 동의하는 듯하다.
이런 후퇴의 결과, 그는 1968년의 중요한 유산을 단순히 “더 많은 민주주의, 더 커다란 민권, 더 많은 자유 … 여성, 생태주의자, 소수 민족, 문화적 소수자 등등의 요구”의 나열로만 본다.
이런 허약한 결론 때문에 그는 ‘68년의 사람들’을 통해 당시 분위기를 재현한 선동적 내용을 여러 방식으로 제한하고 왜곡한다. 이것은 프레이저가 자신의 기록을 학생들로 제한하는 데서 나타난다. 물론, 1968년에 학생들이 아주 중요했다는 것은 아무도 부정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 해의 투쟁들을 순전히 또는 주로 학생들의 투쟁으로만 보는 것은 완전한 오류다.
베트남인들의 구정 공격은 학생들이 개시한 것이 아니다. 마틴 루터 킹이 암살당했을 때 미국 전역의 1백67개 도시에서 게토를 불태운 것도 학생이 아니었다. ‘5월 사건’을 전체 운동의 정점으로 만든 것은 세느강 좌안에서 벌인 거리 시위가 아니라 노동자 1천만 명이 벌인 총파업이었다. 체코슬로바키아 프라하의 봄과 구 소련의 체코슬로바키아 침공에 맞선 저항에 학생뿐 아니라 훨씬 더 광범한 사람들이 참가했다. 이것은 북아일랜드 투쟁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이탈리아에서 1969년 ‘뜨거운 여름’에 학생들의 투쟁과 노동자들의 반란 사이에는 직접적인 연계가 있었다.
이 점을 무시한 채 학생들에게만 초점을 맞춘 것은 단순히 균형이나 이해력 부족의 문제가 아니다. 학생들만으로는 혁명을 일으킬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므로, 만약 1968년이 순전히 학생들만의 사건이었다면 자본가 권력에 대한 도전으로서의 중요성은 엄청나게 축소될 것이다.
학생들을 출발점으로 삼다 보니 그런 국제적 반란이 왜 일어났는가에 대한 설명도 조리있게 하지 못한다. 개인의 경험에 대한 기록은 솜씨있게 골라 나열하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묘사하는 데 매우 효과적일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일이 왜 벌어졌는지를 설명하진 못한다. 이것은 마르크스주의적 분석가들이 해야 할 일이다.
김어진
한국 사회 변혁의 진정한 중심 세력인 한국 노동자들은 언제 태어났고 어떻게 나이를 먹었을까?
이 책은 한국 노동자들이 어떻게 노동 세계에 적응하고 자신들의 새로운 노동 경험을 이해하려 노력했는지에 관한 보고서다. 총 8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일제 시대부터 최근까지 노동자 운동의 경험을 다루고 있다. 저자는 한국 노동자 운동의 특수성의 뿌리가 어디에 있는지를 밝히고자 한다.
저자는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빠른 압축적 프롤레타리아트화를 경험했다고 말한다. 유럽에서 1세기에 걸쳐 이뤄진 노동자화에 버금가는 변화가 한국에서는 한 세대 만에 일어났다. 1963년부터 1985년까지 거의 20년 사이에 임금 취득자 수는 7배가 늘었다.
저자에 따르면 산업 팽창과 함께 급속하게 배출된 노동자들의 경험에는 중요한 특징이 있다. 우선, 지은이는 높은 교육 수준과 공간적 집중 현상을 지적한다. 실제로 1974년에 거의 47퍼센트의 생산직 노동자들이 중등 교육을 받았고 1984년에는 반숙련 노동자의 59퍼센트가, 숙련 노동자의 90퍼센트가 고등학교 교육을 마쳤다. 또, 산업 노동자들은 주요 공업 도시에 집중돼 살고 있다. 저자는 이 점이 특히 태국 같은 다른 동아시아 나라와 구별되는 점이라고 지적한다.
또, 저자는 교육, 군대, 가족이(특히 가족) 노동자들이 새로운 노동 환경에 적응하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데서 결정적인 구실을 했다고 지적한다. 예컨대 “청년기의 오랜 군대 생활은 한국 남성들이 그와 비슷한 형태로 통제”되도록 했고 “노동자들은 학교에서 공식적인 권위에 복종하고 시간 관념 등 관료적 환경 속에서 일하는 데 필요한 기본적인 행위 습관을 배우게 했다.” 가족은 “순종적이고 부지런하고 끈기있고 또한 노동자들의 시민권에 무감한 노동력으로 사회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저자의 이런 분석은 규율을 강조하는 감리교의 문화가 영국 노동자들이 노동 규율을 익히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E. P 톰슨의 지적과 흡사하다.
한국 자본주의의 발전은 수많은 노동자들의 땀과 피와 죽음을 딛고 선 결과다. 저자는 공장에서 이루어진 노동 착취의 잔인성을 많은 노동자들의 수기를 들어 다채롭게 드러내고 있다. 자신을 젖소나 기계보다 더 못하다고 비유하는 노동자들의 일기는 1978년부터 1980년 사이에 매년 1천4백2명의 노동자들이 작업장에서 산재로 죽었다는 통계만큼이나 끔직하게 다가온다. 1976년의 산업재해율은 일본의 15배에 이른다.
저자는 1980년대는 한국 노동자들한테결정적으로 중요한 시기였다고 말한다. 이것은 1987년 노동자 대투쟁을 한국 노동 운동의 경험에서 결정적인 분기점으로 보는 일반적인 시각과 궤를 같이 한다. 그러나 저자는 1980년대와 1970년대의 연관성을 강조한다. 특히 경공업에 종사하던 여성 노동자들의 투쟁을 상당히 강조한다.
저자는 1970년대 청계피복노조, 1972년 원풍모방, 동일방직의 공장 노동자들이 회사 노조를 무너뜨리고 자주적 노조를 건설했던 투쟁은 순교자적인 활동이나 다름없었다고 말한다. 특히 이 시기에 가톨릭노동청년회, 도시산업선교회 이 두 개의 교회 조직이 노조 활동가와 어떻게 결합해서 민주노조를 건설했는지 자세하게 그리고 있다.
그런데, 어떤 요인들이 한국 여성 노동자들이 초기 노동운동 단계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도록 이끌었을까? 왜 교회가 그들에게 관심을 보였을까? 그 한계가 1980년대에 어떻게 드러나게 됐는가?
1980년대에 학생 운동가들이 대거 배출된 배경은 무엇이었을까? 왜 교회에 대한 의존이 사라지게 됐을까? 광주 항쟁이 낳은 노동자와 학생 들의 급진화 분위기와 “반미 의식, 마르크스주의, 집단 행동을 통한 급진적인 사회 변혁 이념, 종속 이론 같은 급진적 사회 변혁 이념의 등장”은 어떤 관련이 있을까? 이 책은 위의 질문들에 대체로 일목요연하게 잘 답하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은 몇 가지 논쟁점을 제기한다. 저자는 계급을 의식이나 문화 현상으로 규정하는 E.P 톰슨의 견해를 따르고 있다. 그래서 저자에 따르면 계급은 “있다가도 없는 현상”이다. 그는 계급을 객관적인 경제 관계로 보는 마르크스의 견해를 일면적이라고 비판한다. 그는 6장 ‘노동자 정체성과 의식’에서는 한국 노동자 계급을 분석할 때에는 “계급이라는 코드와 지위라는 코드를 둘 다 봐야 한다”고도 말한다(그는 “마르크스와 베버의 결합”을 주장하기도 한다). “공돌이 공순이로 표현되는 용어는 육체적 노동을 멸시하는 한국 사회의 의식이 반영된 결과고 … 설움과 부끄러움 등이 한으로 응축된 것이 바로 인간적 대우를 해 달라는 절규로 표현”되는데 이것이야말로 한국 노동자 운동이 전투적일 수 있었던 배경이고 특수성이라는 것이다. 단지 계급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신분적 차별 현상이 낳은 의식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저자가 한국 노동계급 의식의 특수성이라 말하는 ‘한’을 특수성으로 일컬을 수 있을지, 계급과 구별되는 모종의 다른 원인이 낳은 결과인지는 의문이다. 노동자들의 ‘한’도 따지고 보면 생산수단을 소유하지 못하고 생산과정을 통제하지 못하는 노동계급의 처지에서 비롯한 것이 아닐까? 낮은 임금과 형편없는 복지 혜택이 낳은 계급적 불만 아닐까?
이 책에서 1970년대와 1980년대 초까지 노조 활동가와 지식인 들의 활동에 관한 설명 등은 다채롭고 재미있다. 또, 한국의 노동계급 형성과 노동자 운동 과정에 대한 다양한 통계와 사실 들이 보기 좋게 잘 정리돼 있다.
한국의 노동자 운동에 관한 저자의 전망은 낙관적이다. “한국의 노동계급은 강한 연대의식과 점증하는 정치적 자신감을 획득한 계급이다. 세계 경제의 현추세 그리고 그와 연관된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변화는 … 맹렬한 노동저항과 계급연대를 되살려 좀더 응집력있는 노동계급을 만들 수 있다.”
그런 노동계급과 함께 미래를 개척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은 읽어볼만하다.
《글로벌 미디어와 자본주의》 - 에드워드 S 허만, 로버트 W 맥체스니, 나남
김덕엽
언론은 전쟁을 흥미롭고 매력적인 게임으로 묘사할 뿐 전쟁의 참상을 알리는 데 인색하다. 언론은 매일 전쟁 논리를 업데이트하지만 반전 시위는 단신 처리한다.
전쟁 시기 정부가 언론을 통제할 때조차 언론은 정부 정책에 반기를 들기는커녕 국제적 반전 여론을 고립시키는 데 분주하다. 에드워드 S 허만과 로버트 W 맥체스니는 《글로벌 미디어와 자본주의》에서 이런 언론을 두고 “전쟁을 파는 데 도움을 주는 선전 합창단”이라고 꼬집는다.
“1990∼1991년의 걸프전쟁 동안에도, 그 이전보다 훨씬 더 광고의존적이고 집중화된 미국의 상업방송사들이 정부의 선전 서비스에 더욱 밀접하게 짜맞추어졌다. 이들은 가혹한 검열체계에 대해서도 단지 부드러운 불만만을 표시하였으며, 잘못된 선전적 주장들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저자들은 198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미디어가 어떻게 상호작용을 하는지 뿌리부터 대안까지 자세히 다룬다.
위성과 케이블 기술의 발달은 텔레비전 채널 수를 엄청나게 늘렸다. 그러나 늘어나는 채널과 넘쳐나는 방송 시간이 우리에게 필요한 정보로 채워지진 않는다. 이 책의 저자들이 잘 지적하듯이 언론은 한 손에 신문과 다른 한 손에 리모콘을 든 수용자들을 “시민이 아닌 소비자”로 취급한다. 프로그램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는 여전히 미디어 소유자와 경영진에게 있다. 우리는 “시장의 지배자들이 제공한 것들 가운데에서만 ‘자유 선택’할 수” 있다.
특히, 저자들은 이윤을 좇는 미디어에서 ‘언론의 공공성’이 약해지는 것을 우려한다. 1980년대 신자유주의 정책은 미디어를 시장이 지배하도록 강제했다. 공영방송의 기능은 “상업방송이 원치 않고 기피해 온 공공 서비스 의무조항을 덜어 주는 것이었다. 자신을 위해 남겨진 그 작은 틈새에서조차, 공공방송은 시사에 과도하게 편중되어 있다는 보수 진영의 꾸준한 공격 대상이 되었다.”
미디어 기술 발전은 미디어를 독점한 몇몇 기업이 전 세계 안방을 지배할 조건을 만들었다. 이제 정부는 미디어 다국적 기업이 국경을 넘나들며 장애물 없이 시장을 개척하고 점령하는 데 손발 구실을 한다.
미디어 시장을 지배하는 기업 열여섯 개 중 열 개 이상이 미국에 본거지를 두고 있다. 저자들은 미국에 본거지를 둔 다국적 언론사들을 중심으로 자본주의에서 전 지구적 미디어들이 하는 구실을 폭로하고 분석한다. 저자들은 지구적 미디어의 핵심 기능을 ‘세계 자본주의의 새로운 전도사’로 본다. 전 세계 언론을 좌우하는 거대 미디어 기업과 이 미디어 기업을 경제적으로 압박하는 광고주들은 미디어를 자유시장을 선전하고 미디어 수용자들이 “기업 지배를 자연스럽고 호의적인 것으로 간주”하게 만드는 시장 나팔수로 만들었다.
몇몇 사람들은 인터넷과 디지털 기술의 발전이 미디어 거대 기업들의 독점력을 허물어뜨리고 좀더 평등하고 민주적인 새로운 미디어 시대를 열 것이라 기대한다. 그러나 “시민들은 국가 간섭 없이 새로운 신문사를 세울 권리를 향유한다. 그렇지만 시장은 그러한 권리를 거의 형식적인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어느 누구나 웹사이트를 만들 수 있지만, 수용자들에게 소구하고, 또한 외부의 미디어 자원을 끌어들이는 값비싼 미디어 기업들의 웹사이트와 경쟁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돈과 시간이 필요하다.” 이 책 4장은 인터넷 민주주의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냉정히 현실을 분석할 수 있는 여러 관점들과 근거를 제시한다.
허만과 맥체스니는 이윤을 좇아 ‘언론의 공공성’을 내팽개치는 미디어가 아닌 민주적 미디어를 구축하기 위한 싸움이 대안임을 주장하며 이 책을 끝맺는다. 시장이 지배하는 세상을 옹호하고 장밋빛으로 그리는 언론에 맞서는 싸움은 결국 “보다 공평하고 민주적인 경제를 위한 다툼의 일부가 될 수밖에 없다.”
허먼과 맥체스니의 말마따나 “전지구적 시장 체계는 자유 민주적 유토피아를 가져오지 못하였으며, 역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오히려 반대로 경제적 양극화, 민족 분쟁, 민주주의의 마비 현상은 급격하고 실질적인 사회·정치·경제적인 변혁 가능성을 제시한다.”
역자들은 이 책이 누구나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쉽고 친절하다고 평한다. 그러나 번역이 매끄럽지 않아 쉽게 읽히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이 책은 허먼과 맥체스니의 탁월한 미디어 분석을 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