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은행 부총재의 세계화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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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은행 부총재의 세계화 비판
크리스 하먼 《오늘의 세계 경제 : 위기와 전망》(갈무리),
《신자유주의 경제학 비판》(책갈피), 《민족문제의 재등장》(책갈피),
《노동자 계급에게 안녕을 말할 때인가》(책갈피),
《소련의 해체와 그 이후의 동유럽》(갈무리)의 저자
성경은 죄인 한 명이 회개하는 것이 의인 아흔아홉 명의 가치가 있다고 말한다. “자유” 시장 체제를 운영하는 중심에 있던 경제학자가 그 체제를 결코 신뢰해 본 적이 없는 사람보다 자유 시장 체제의 기능을 더 잘 비판할 수 있다.
조지프 스티글리츠는 1990년대에 미국 대통령 빌 클린턴의 경제자문위원회 의장이었고 미국 정부의 각료였다. 그 뒤 그는 세계은행의 부총재 겸 수석 경제학자가 됐다. 오늘날 그는 (흔히 “워싱턴 컨센서스”― 무엇이 개발도상국들을 위해 올바른 정책인가를 놓고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 미국 재무부가 일궈낸 합의 ― 라고 부르는) “세계화”의 현재 버전과 세계화 감독 기구들인 IMF, 세계무역기구(WTO)와 심지어 자신이 핵심 인사로 있던 세계은행을 날카롭게 비판하고 있다.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 사이의 빈부 격차는 더욱 심화되었으며, 하루 1달러 미만의 돈으로 생활하는 제3세계의 극빈자들이 점점 더 많아졌다. … 아프리카 [사람들은]… 소득이 떨어지고 생활수준이 낮아지면서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다. 지난 수십 년간 어렵게 이룩한 평균 수명의 연장은 이제 역전되기 시작했다. … 세계화가 빈곤 감소에 성공하지 못했다면 그것은 또 안정을 확보하는 데에도 성공하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아시아와 라틴 아메리카의 위기는 모든 개발도상국들의 경제와 안정을 위협했다. … 러시아[에서]… 시장경제의 도입은 약속한 결과를 보여 주지 못했다. …[번영] 대신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빈곤이 몰려왔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시장 경제는 그들의 공산주의 지도자들이 일찍이 예견했던 것보다 심지어 더 나쁜 것으로 드러났다.”(《세계화와 그 불만》, 세종연구원, 38∼39쪽.)
이 메시지가 언론의 평론가들이나 클레어 쇼트[영국 국제개발부 장관] 같은 신노동당 정치인들이 매일 떠들어 대는 말과 정반대인 것과 마찬가지로 시애틀에서 시작된 항의 운동에 대한 스티글리츠의 반응 또한 그들과 정반대이다.
“국제 관료들 ― 세계 경제 질서의 얼굴 없는 상징들 ― 은 여기저기서 공격을 받고 있다. … 1999년 미국 시애틀에서 열린 세계무역기구(WTO) 총회 때 발생한 항의 시위는 충격적이었다. 그 후 항의 시위는 더욱 강력해졌고, 분노는 확산되었다. … 수십 년 동안 개발도상국 사람들은 자국에 가해진 긴축정책이 너무 가혹하다고 판단될 경우 폭동을 일으킴으로써 자신을 드러내었다. 그러나 그들의 항의가 서방에까지 제대로 감지되지는 않았다. 새로운 것은 선진국에서 나타나는 항의의 물결이다. … 변화를 강제할 수 있는 대안이 없을 때 사람들은 반란을 일으킨다.”(위의 책, 35쪽)
스티글리츠가 한 가장 신랄한 비판은 지난 십년 동안 제3세계와 옛 공산권 국가들에서 발생한 경제 위기에 대한 IMF의 대응 방식에 집중돼 있다. 그는 이들 나라에서 IMF가 조성한 상황 때문에 불가피하게 경제 위기가 반복됐던 방식을 설명한다.
IMF는 자본의 흐름을 “자유화”해서 거대 기업과 부자 들이 자산을 이 나라 저 나라로 쉽게 옮길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게 하면 그런 나라로 자산이 흘러들어갈 것이고 따라서 그 나라의 통화 가치도 상승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은행들은 수지맞는 대출 업무에 열을 올리고, 사치품 수입은 급증한다. 그러나 높은 통화 가치 때문에 수출품 가격이 비싸져 다른 나라 사람들이 구입을 꺼리게 된다. 그리 되면 수출은 타격을 받게 되고 많은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게 된다. 갑자기 상황이 역전된다. 수입 초과 때문에 공황이 발생한다. 거대 기업과 부자 들은 자산을 해외로 빼돌리기 시작한다. 통화 가치는 하락하기 시작하고, 부채를 갚을 수 없게 된 정부는 IMF에 의존하게 된다.
IMF는 [돈을 빌려 달라는] 요청을 받을 때마다 단순한 해결책을 내놓는다. 통화 가치 하락을 막고, 이자율을 올리고, 자본의 유출입을 더 자유롭게 하고, 국유 기업을 사기업화하고, 복지를 삭감한다면, 돈을 빌려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스티글리츠가 지적하듯이, 이러한 정책들은 세 가지 효과를 낸다. 첫째, 부자와 대기업 들이 환율 하락 때문에 손해 보지 않고도 돈을 해외로 빼낼 수 있게 해 준다. 둘째, 다수 대중의 생활 조건을 황폐하게 만든다. 셋째, 상품에 대한 수요를 훨씬 더 감소시켜 위기를 자아내는데, 이런 위기는 다른 나라로 확산되기 십상이다.
“IMF의 자금 … 덕분에 그런 나라들은 서방 은행들로부터 돈을 꾼 기업들에 달러를 제공해 빚을 갚게 해 줄 수 있다. 따라서 그것은 부분적으로는 국제 은행들을 구출하는 것이다. 그런 나라의 부자들은 그 기회를 이용해 환차익을 챙기고 돈을 해외로 빼돌린다.”
이런 일은 1994∼95년에 멕시코에서, 1997년에 몇몇 아시아 나라들에서, 그리고 가장 극적으로는 1998년에 러시아에서 벌어졌다. 지금은 터키 차례가 됐으며, 아르헨티나는 이런 정책들의 결과를 가장 고통스럽게 겪고 있다.
은행가들에게 돈을 바치기 위해 고생하는 노동자·빈민
고든 브라운[영국 재무장관]이나 클레어 쇼트 같은 자들은 WTO가 제3세계 나라들의 친구인 것처럼 묘사하지만, 스티글리츠는 WTO도 신랄하게 비판한다.
“최근의 우루과이 라운드 무역 협상에서는 개발도상국이 아니라 주로 선진국이 수출하는 서비스에 유리하게 시장이 개방됐다. 미국은 그런 시장 개방이 가져다 주는 혜택을 떠벌였다. 그러나 세계은행의 계산을 보면, 무역 협정 때문에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지역 ― 의 소득이 2퍼센트 이상 하락했음을 알 수 있다.”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가? 한편으로는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 때문이라고 스티글리츠는 말한다.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는 지난 25년 동안 “케인스주의”를 대체했다. 케인스주의는 정부가 개입해 시장의 “실패”에 대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스티글리츠는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를 뒷받침하는 강력한 세력에도 주목한다. 이들은 “금융계”라는 “이해당사자들”, 즉 거대 은행들이다. 스티글리츠는 스스로 주장하듯이 “음모론자”가 아니다. 그러나 그는 IMF의 “위임 통치”가 “세계 경제의 이익에 헌신하는 것에서 세계 금융의 이익에 헌신하는 것”으로 변해 왔다고 주장한다. “자본 시장 자유화는 세계 경제 안정에는 기여하지 않았으나 월스트리트에는 거대한 새 시장을 개척해 주었다.” 바로 이런 이익이야말로 그토록 재앙적인 형태의 세계화를 초래한 이데올로기의 배후라고 스티글리츠는 보고 있다.
“IMF 프로그램 때문에 직장에서 쫓겨난 노동자들은 회의 석상에 앉을 수 없는 반면, 빚을 받아야겠다고 우기는 은행가들은 재무 장관이나 중앙은행 총재 들이 잘 대변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스티글리츠가 근본적인 사회 변혁을 추구한다거나 사회주의자가 됐다는 말은 아니다. IMF·세계은행·WTO 등 국제 금융제도에 대한 스티글리츠의 비판은 체제 전체로 확대되지 않는다. 그는 자기 같은 사람들이 금융가들의 지배력을 약화시킬 수만 있다면 자본주의 체제도 개혁될 수 있고 제대로 돌아가게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 이런 생각 때문에 그는 IMF의 방식을 무시한 몇몇 정부들 ― 말레이시아·중국·폴란드 정부 ― 을 칭찬한다. 그 중 둘은 독재 정부이며, 폴란드는 스티글리츠가 책을 쓴 이후 심각한 경제 위기로 빠져들었는데도 말이다.
현재 실업률이 20퍼센트에 이르는 폴란드에 대해서는 영국의 기업주 신문인 〈파이낸셜 타임스〉조차 이렇게 인정했다. “많은 폴란드인들은 시장 경제가 약속한 혜택에 대해서 의심하고 있다. 대중의 분노가 커지고 있다.” 사기업화, “자유화”, 세계화는 스티글리츠가 받아들일 수 있는 것들이다. 그것들이 지금보다 천천히 이루어진다면, 그리고 사람들의 복지에 신경을 쓰면서 진행된다면 말이다.
결정적으로, 그는 은행들이나 IMF와 마찬가지로 거대 비금융 기업들 ― 몬산토, 뉴스 인터내셔널, 보잉, 제너럴 모터스, 치키타 ― 도 무자비하게 인간성을 파괴한다는 사실을 결코 인정하지 않는다. 비금융 기업들에 도전하지 않은 채 금융 기업들에만 도전하는 것은 성공할 수 없다. 그리고 스티글리츠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강력하고 혁명적인 행동이 없이는 둘 중 어느 하나에도 성공적으로 도전할 수 없다.
그럼에도 이 책에서 스티글리츠는 부패하고 파괴적인 이 체제의 내면을 아주 흥미롭게 설명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