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발성과 의식적 지도는 양립할 수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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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시위 참가자들은 방송차나 확성기로 행진 대열을 지휘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여기에는 누군가 ‘지도’(또는 주도)를 하면 필연적으로 대중의 자발성이 훼손된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물론 촛불시위의 주요 특징 중 하나인 대중의 자생성은 경이로울 정도다. 무엇보다, 대중의 자생성은 촛불시위가 “배후 세력”의 “사주”에 의한 것이라는 이명박과 조중동의 어리석은 주장을 통렬하게 논박한다. 그리고 이것은 대중 자신이야말로 사회 변화의 진정한 창조자임을 보여 준다.
그러나 ‘순수한’ 자생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촛불시위를 망원경을 통해 보면 확실히 대중의 자생성이 두드러진다. 그러나 현미경을 통해 관찰해 보면 곳곳에서 의식적 지도의 요소를 발견할 수 있다.
현미경
이미 수많은 개인들이 연단에서 그리고 거리 행진 과정에서 운동의 진로와 효과적인 거리 행진에 대해 주장하고 있다. 경험, 비판, 주도성의 요소들이 이 운동의 내적 동력을 창출하고 있는 것이다.
또, 광우병국민대책회의가 시위 날짜·시간·장소를 정하고 정부의 거짓 선전을 비판하며 경찰 탄압 대처 요령을 제시(지도)하는 것도 필요한 일이다.
이 처럼 운동에 방향을 제시하고 승리를 위한 효과적인 방법을 제시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다. 투쟁에 나선 수많은 사람들이 민주적 논의를 통해 합의된 방향에 따라 힘을 모은다면 그 효과는 막강할 것이고 우리의 승리를 앞당길 수 있다. 그래서 이명박 정부는 광우병국민대책회의 활동가 10명에게 2차례나 출두요구서를 보내며 탄압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서로 배우고 토론하며 자생성과 의식적 지도를 결합시켜야 한다.
방송차나 확성기를 이용해 경찰 방해에 휘둘려 우왕좌왕하지 않고 수만 명을 효과적으로 이끌려는 시도를 극소수가 ‘물리력’으로 저지하려는 것이야말로 비민주적일 뿐 아니라 운동이 더 효과적으로 나아가고 힘을 결집하는데 장애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