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동당 후보에게 하는 투표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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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동당 후보에게 하는 투표의 의미
최용찬
권영길 민주노동당 대선 후보의 당선 가능성이 희박한 상황에서 그에게 표를 던지는 것은 사표라는 주장이 있다. 이회창의 당선을 막기 위해 권영길이 아니라 노무현을 지지하자는 얘기다.
많은 사람들이 김대중 정권에 환멸과 반감을 갖고 있다. 현재 한나라당의 인기는 이 환멸과 반감의 일부가 오른쪽으로 이동했기 때문이다. 바로 이 때 민주노동당은 민주당에 환멸을 느낀 사람들에게 우파적 대안만이 아니라 좌파적 대안도 있음을 외치고 있다. 민주노동당에 투표하는 것은 사표가 아니다. 그것은 사회의 우경화에 맞서는 생생하게 살아 있는 표다.
분노의 표
민주노동당에 보내는 표는 보수 정치권과 특권층에 대한 우리의 분노다. 지난 수십 년 간 집권했던 우파 정부에서뿐 아니라 상대적으로 자유주의적인 김대중의 민주당 정부에서도 우리 삶은 끔찍하기 짝이 없었다.
부자들이 2천5백만 원짜리 휴대폰을 들고 다닐 때 어린이들 수만 명이 끼니를 거르고 있다. 기성 정치인들은 자신들의 특권을 유지하고 잇속을 차리려고 이 당 저 당을 오가지만, 전체 노동자의 58퍼센트를 차지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뛰어오르는 전·월세를 감당할 수 없어 5개월마다 이사다닌다.
수십억 원의 뇌물을 먹은 대통령 아들이 석방되는 날, 가톨릭 성모병원 노동자들은 실형 선고를 받았다. 검찰청사 안에서 고문으로 피의자가 살해되고 경찰은 무고한 시민을 총으로 쏴 죽였다. 구속 노동자 수는 갈수록 늘고 한총련 간부들과 사회주의자들은 여전히 국가보안법으로 수배자가 되고 수감당하고 있다.
중학생 미선이와 효순이가 미군 장갑차에 무참히 깔려 죽었지만 미국 정부와 한국 정부는 진상 규명조차 제대로 하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부시 정부는 이라크에서 전쟁을 벌이려 하고, 북한을 압박하고 있다. 한국 정부는 전쟁광 부시를 지원하려 한다.
한나라당, 민주당, 국민통합21 같은 기성 정치 세력들은 선거 때만 되면 ‘표심’을 잡기 위해 ‘서민’, ‘정치 개혁’, ‘평화’를 말한다. 그러나 이 세 당 모두 진정으로 서민들의 삶을 개선하고 민주주의를 확대하는 데 관심이 없다. 이들은 부패하고 비민주적인 특권층 권력 집단이다. 민주노동당에 투표해 이들에게 우리들의 분노를 똑똑히 보여 주자.
희망의 표
민주노동당 후보에게 투표하는 것은 진보적인 사회에 대한 희망을 한국 사회에 제시하는 것이다.
민주노동당은 누구나 평등하게, 돈 걱정 없이 치료받고 교육받을 수 있는 세상을 원한다. 그래서 부자들에게 부유세를 걷어 무상 의료·무상 교육을 실시하려 한다.
민주노동당은 모든 노동자들이 정규직이 되고 해고당할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사회를 원한다. 민주노동당은 대량 해고와 공공 서비스 질 저하를 낳는 사유화에 반대한다.
민주노동당은 모든 사람들이 기본 권리를 누리는 민주 사회를 원한다. 국가보안법과 모든 노동 악법의 폐지를 주장한다. 또, 여성과 동성애자 들이 억압과 차별 없이 살 수 있는 사회를 건설하려 한다.
민주노동당은 전쟁과 폭격의 공포가 완전히 사라지는 사회를 원한다. 그래서 전 세계 평화를 위협하는 진짜 악의 축 미국에 반대하며 그들이 저지르려는 끔찍한 전쟁에 반대한다.
민주노동당에 던지는 표는 분노를 뛰어넘어, 이윤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의 삶이 우선하는 사회가 가능하다는 희망의 씨앗이다.
연대의 표
민주노동당에 보내는 표는 다른 정당의 후보들과는 달리 단지 대통령 후보 개인에게 보내는 지지가 아니다. 민주노동당에 보내는 표는 투쟁하고 있는 노동자·민중에 대한 연대다.
11월 13일 농민 대회에 참가한 권영길 후보는 “다른 말 필요 없이 농민 여러분과 함께 붉은 머리띠 묶고 싸우겠다.” 하고 말했다. 공무원 노동자와 성모병원 노동자 들의 투쟁, 미국 정부와 전쟁에 반대하는 투쟁 등 민주노동당은 노동자·민중과 함께 투쟁해 왔다.
따라서 민주노동당에 보내는 표는 신자유주의에 맞서 투쟁하고 미국과 전쟁에 반대해 투쟁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보내는 연대다. 현재 투쟁하고 있는 사람뿐 아니라 사회의 진보를 염원하는 모든 이들에게 ‘나 역시 이 사회의 진보를 바라며 함께하겠다.’ 하고 연대의 손을 내미는 것이다.
투지의 표
민주노동당이 더 많은 표를 얻으면 얻을수록 더 큰 연대를 확인하는 것이다. 이런 연대를 확인하는 것은 어떤 정부가 들어서더라도 투쟁에 나설 수 있는 자신감을 높일 것이다.
이 사회의 진보를 이룰 수 있는 힘은 대중 행동에 달려 있다. 아무리 우파적인 정부가 들어서도 우리는 이런 연대를 바탕으로 투지를 가지고 힘차게 저항할 수 있다.
극우 아스나르가 총리인 스페인에서는 지난 6월 월드컵 기간인데도 노동자 1천만 명이 총파업을 단행했다. 이탈리아에서는 내각에 파시스트를 포함하고 있는 베를루스코니 총리에 맞서 지난 4월 노동자 1천3백만 명이 총파업을 벌였다. 11월 9일에는 세계 최대 규모인 1백만 명이 피렌체에 모여 반전 시위를 벌였다.
문제는 싸울 수 있다는 확신이다. 현재 지지율로 이회창이 당선한다면 투표율을 고려할 때 대략 국민 30퍼센트의 지지를 받는 셈이다. 나머지 70퍼센트는 그를 지지하지 않는다. 이 때 민주노동당에 보내는 표는 70퍼센트와 함께 우파에 맞서는 저항을 건설하는 디딤돌이다. 이 점은 노무현이 당선하더라도 마찬가지다.
주먹 형사와 담배 형사
민주화 운동이나 노동 운동을 하다가 연행돼 경찰서에 끌려가면 보통 형사 두 명이 한 팀을 이뤄 조사한다. 한 명은 주먹 형사인데 책상을 주먹으로 내리치고 협박하며 강압 수사를 한다. 이런 자가 구타와 모욕 등 고문을 자행한다. 다른 한 명은 담배 형사다. 담배를 권하며 이해하는 척, 도와주는 척 회유하며 조사한다. 지금 몇몇 사람들은 주먹 형사가 아니라 담배 형사에게 조사받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은 연행·구속한 모든 사람들을 석방하라고 주장한다. 한국 사회는 지금 신자유주의와 특권을 옹호하는 자들의 창살 속에 갇혀 있다. 기존 보수 정당의 세 후보 모두 신자유주의와 특권을 지키는 형사들이기는 매한가지다. 주먹 형사의 대안이 담배 형사일 수 없다. 민주노동당 후보를 지지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