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만 원 세대’와 알바:
피 뽑아서 돈 받는 게 ‘황금 알바’인 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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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돈 벌고 재미있게 일하는 대학생들의 젊은 직장 … ”
정은이 씨(가명, 서울시립대 2학년)는 6개월 동안 일한 패밀리레스토랑 아웃백의 라커룸 근처에 적혀 있던 ‘아웃백의 정신’ 문구를 떠올리며 고개를 저었다.
“완전 막노동이었어요.” 주방에서 일했던 은이 씨는 뜨거운 스프 그릇을 잡다가 손도 많이 데었고, 은이 씨보다 오래 일한 다른 대학생은 팔뚝에 온통 화상 자국이 죽죽 그어져 있었다고 한다.
“전 경험이 없어서 하루에 한 11시간? 숙련되신 분들은 아침 8시 반에 와서 밤 11시까지 일했어요. 쉴 틈이 없어요. 크리스마스 같이 사람 엄청 많은 날은 아예 1시간도 못 쉬고요.”
지독하게 바빠서 식사 시간이 서너 시간씩 미뤄지는 경우도 있지만, 손님이 없는 때가 반가운 것은 절대 아니었다. “일이 없다 싶으면 쉬고 오라고 내보내요. 그 시간은 시급에 포함 안 되는 거죠. 5~6시간 쉬고 온 사람도 있어요. PC방 가서 계속 게임하고 오는 거예요.” 일명 ‘꺾기’다. 알바생들이 잠시 한숨 돌리는 그 시간에 주는 돈도 아까워 삼켜 버리는 것이다.
성교육, 소방교육 등은 받지 않았지만 받았다고 서명했고 생리휴가도 근로계약서에만 존재했다. 매니저가 종종 10분씩 근무시간을 줄여 기록한 것 때문에 임금도 제대로 챙겨받지 못한 것 같다고 한다.
2004년 노동부 조사에서는 롯데리아, KFC, 피자헛 등 유명 외식 업체 6개사가 알바생들의 임금을 체불하고 각종 수당을 지급하지 않아 1년 동안 무려 21억 원을 꿀꺽한 게 드러나기도 했다.
마루타
유명 대기업들이 이 정도니 다른 알바생들의 처지는 안 봐도 뻔하다. 최근까지 PC방 야간 알바를 했던 22살 전모 씨는 야간 최저임금도 안 되는 시급 3천8백 원을 받고 12시간씩 밤샘 근무를 했다. 낮밤이 뒤바뀌고 자욱한 담배 연기에 가래가 끓는 등 고생이 심해 결국 두 달 만에 그만뒀다. 그가 기억하는 주변 학생들의 PC방·편의점 알바비는 모두 최저임금에 한참 못 미쳤다.
그래서 단기간에 비교적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생물학적 동등성 실험’에 지원자가 몰리기도 한다. 오리지널 약과 복제 약을 투여해 효능을 비교하는, 일명 ‘마루타 알바’다. 하루 동안 12번 피를 뽑는 날을 두 번 지나고 받는 돈은 대략 30만 원. 그야말로 “피 같은 돈”인 셈이다. 지원자를 모집하는 한 인터넷 카페의 가입자 수는 수천 명을 헤아린다. 모집 공고가 뜨기 무섭게 지원은 마감된다. 네 번 정도 참가한 한 대학 졸업반 남학생은 “온 몸의 피가 다 빠져나가는 기분”이라면서도 한 번에 많은 돈을 받을 수 있는 “황금 알바”라며 기회만 되면 또 하겠다고 말했다.
‘사회 경험’이라기엔 너무도 고달프고 가혹한 일들. 이것을 강요하는 주범은 ‘등록금 1천만 원 시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학자금 대출 이자, 치솟는 물가와 뛰는 생활비 등이다.
공대생인 강대근 씨는 4백50만 원으로 오른 등록금 때문에 처음으로 학자금 대출을 받았고 학원 강사일도 시작했다.
한 사립대 3학년인 배나윤 씨(가명)는 아예 오전 수업을 듣고 밤 늦게까지 학원 강의를 하며 다음 학기 등록금을 저축한다. 학교-학원-과제의 기계 같은 일과를 소화하며 하루를 마치고 눈을 붙일 때면 서러움이 밀려 온다.
“종일 에너지를 소진한 배터리 같아요. 자는 동안 충전이 되는 게 아니라 더 닳지 않게 잠깐 전원을 꺼 두는 거죠.” 눈을 뜨면 되풀이되는 전쟁 같은 삶, 스물여섯의 몸과 마음이 이렇게 닳아 간다. 이른 아침 등굣길 지하철, 김밥 속의 밥알처럼 들어 차 학교로 직장으로 향하는 또래들의 창백한 얼굴을 보면 늘 같은 질문이 떠오른다. “어떻게 사람들을 이렇게 살게 할 수가 있지?”
거리의 반란으로 돌파구를 마련하자
“우리는 초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아침부터 밤까지 책상 앞에 앉아 공부만 했는데, 부모나 선생이 하라는 거는 얌전히 다 했는데, 왜 이렇게 된 거야? 세상은 죽이는 스터프들, 머스트 해브 아이템으로 가득 차 있는데 왜 우리 주머니에는 그걸 살 돈이 없는 거야? 일 인당 국민소득 이만 달러라더니, 다 어디로 간 거야?”(김영하, 소설 《퀴즈쇼》)
대부분의 알바생들이 약 3천8백 원에 그치는 최저임금을 받거나 그조차 못 미치는 말도 안 되는 임금을 받는다. 노동자 평균 임금의 36.5퍼센트밖에 안 되는 최저임금은 대폭 인상돼야 한다.
얼마 전 민주노총, 참여연대 등이 참여하는 ‘최저임금연대’는 다음해 한 달 최저임금을 99만 4천8백40원으로 인상할 것을 촉구했다. 이것은 알바생들을 위해서도, 비정규직을 전전하며 몇 달치 월급을 모조리 등록금에 쏟아 부어야 하는 부모 세대 노동자들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조처다.
등록금 폭탄도 반드시 해체돼야 한다. 민주노동당은 이미 한 해 등록금이 노동자 가정의 한 달 치 평균 소득을 넘지 않게(한 학기 1백50만 원) 규제하는 안을 제시했다.
나아가 교육재정 확충을 통한 무상교육이 필요하다. 돈이 없어도 안심하고 교육받게 한다는 무상교육의 정신을 온전히 살리려면 학비 면제뿐 아니라 학업에 필요한 교재와 생활비도 국가가 지원해야 한다. 그래야 학생들이 고된 알바와 학업의 이중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무상교육
이에 필요한 거액의 재정은 삼성 이건희 같은 재벌기업주 등 소수 부자들이 부담해야 한다. 사실 “이명박 정부가 법인세 8조 원 깎아준다는 것을 안 깎아주고 여기[교육재정에] 투입하면 당장 대학등록금이 3분의 1로 떨어진다.”(정태인 성공회대 교수, 〈한겨레21〉 인터뷰특강)
부자들이 독식하고 있는 엄청난 부를 내놓게 하려면 ‘살살 타일러서’ 되진 않을 것이다. 프랑스 대학들의 학비가 거의 무상에 가까워진 것은 1968년의 반란 이후 대학 국유화 덕분이었다. 노르웨이나 스웨덴 등은 학비가 한국보다 훨씬 저렴하고 정부가 대학생들의 생활비도 일부 보조해 주는데, 노르웨이 오슬로 대학의 박노자 교수는 이 같은 ‘복지국가’ 체계도 자본가들이 “혁명의 위협을 피부로 느껴”서 확립될 수 있었다고 지적한다.(격주간 〈다함께〉 71호 ‘박노자와의 대화’)
한편, 나라를 가리지 않고 밀려드는 신자유주의 파고는 교육을 돈벌이화 하고 학생들을 저질의 일자리로 내몰며 실낱 같은 안전망마저 침식시키고 있다. 물론 이에 맞선 저항도 계속되고 있다. 프랑스, 그리스, 칠레 등에서 많은 학생들이 거리 시위와 동맹 휴업, 대학 점거를 벌여 왔고 중요한 승리를 거머쥐기도 했다.
우리도 지금 거리를 뒤덮은 반란의 물결을 돌파구로 삼자. ‘재벌천국 서민지옥’을 염원하는 이명박 정부를 무너뜨린다면, 학생들이 돈 걱정 없이 공부하고 실업의 위협 때문에 저질의 일자리로 내몰리지 않는 사회로 가는 출발이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