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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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상품이 아니다》 - 조제 보배, 프랑수아 뒤푸르 [대담자 질 뤼노], 울력
김용민
1999년 시애틀 시위의 대성공 이후 반자본주의 운동은 꾸준히 성장해 왔다. 그와 함께 이 운동의 탄생과 성장에 기여한 주요 인물들이 반자본주의 운동의 상징적 대변자로 등장했다.
조제 보베는 바로 그러한 인물들 가운데 하나다. 그는 1999년 동료 농부들과 함께 프랑스 미요시의 맥도날드 매장을 공격한 일로 유명해졌다. 그 뒤, 보베는 많은 반자본주의 투쟁에 참가해 왔다. 2000년 여름 미요시에서 맥도날드 매장 공격 사건에 대한 공판이 열렸을 때 무려 10만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시위와 토론 그리고 축제가 한데 어우러진 대중 행동에 참가했다.
이 책은 조제 보베와 ‘농민연맹’―프랑스의 급진적 소농 단체―의 동료 지도자인 프랑수와 뒤푸르를 인터뷰한 내용으로 이뤄져 있다.
그들은 유럽연합의 공동농업정책 같은 정책들이 하는 구실, 또 특정한 농업 방식, 즉 대기업들이 지배하는 농업 방식이 어떻게 형성돼 왔는지 상세하게 설명한다. 또, 유럽의 농업 생산을 증대시키기 위한 시도들이 점점 더 농업 생산의 토대 자체를 침식하고 환경을 더욱 파괴해 왔음을 폭로한다.
더 많은 생산을 최고 목표로 삼는 ‘생산주의’가 농업을 지배한 결과, 갈수록 더 많은 항생제가 가축들에게 사용되고 있다. 생태 균형을 무시한 단작 재배와 제초제·화학 살충제의 지나친 사용 때문에 토지는 생명력과 자정 능력을 상실한 채 메말라 간다. 떨어진 토지의 지력을 회복하기 위해 더 많은 화학 비료가 사용돼야만 한다. 정화되지 않은 가축 분뇨, 농업 폐기물, 화학 비료, 화학 살충제, 제초제 등이 땅 속으로 스며들어 지하수를 오염시킨다. 광우병과 유전자 조작 식품에 내재된 위험은 예측조차 할 수 없다. 결국, 이러한 과정의 최종 피해자는 먹이 사슬의 맨 꼭대기에 있는 인간이다.
이 모든 대가를 치렀지만 대다수 농민들의 삶은 거의 나아지지 않았다. 반면, 화학 살충제와 제초제, 화학 비료, 종자(씨앗)를 지배하는 소수의 거대 다국적 농화학 기업들(몬산토가 대표적이다)은 막대한 이득을 얻고 있다. 이들은 이러한 악순환이 중단되지 않도록, 즉 사람들의 반감과 위기 의식에도 자신들의 이윤 획득이 중단되지 않도록, 갖은 방식으로 각국 정부와 국제 기구에 압력을 행사한다. 사회와 대기업들과의 관계 속에서 고찰한 유전자 조작 식품과 관련된 과학자들의 구실에 대한 주장들도 매우 설득력 있다.
보베와 뒤푸르는 세계화에 반대하는 더 넓은 운동들에 대한 논의에 바탕을 두고 주장을 펼치면서, 시애틀과 미요 등에서 벌어진 투쟁의 중요성을 말한다. 보베는 시애틀 시위가 “새로운 저항의 시기가 시작되고 있다는, 오랜 기간의 실패와 이전 세대의 침묵 이후에 정치가 다시 일어서고 있다는 인상을 주었다”고 증언한다.
저자들은 몇 ≠?독특한 생각도 드러낸다. 예컨대, 보베는 “마르크스주의적 계획의 대안”으로서 19세기 아나키스트인 “바쿠닌의 정신을 이어받”고 있음을 분명히 한다. 또, 그는 1960년대 말부터 1970년대까지 프랑스에서 등장한 ‘자주 관리’ 운동이나 스페인 내전 당시 ‘전국노동연맹’이 조직한 토지와 공장의 ‘자주 관리’ 경험도 언급한다.
그러나 보베는 이러한 사례들이 지닌 명백한 헛점들, 즉 그것들이 실패로 끝났다는 사실은 전혀 검토하지 않는다. 스페인의 몬드라곤 같은 ‘자주 관리(또는 협동 조합)’ 운동의 현대판 시도들도 성공하지 못했다. 이들은 세계 시장에서(심지어 국내 시장에서조차도) 갈수록 주변화하거나 수익성 악화에 직면해 이윤 논리에 굴복하곤 했다.
소규모 생산자들의 협동조합들은 기껏해야 자본주의 시장에서 작은 틈새 시장을 얻을 수 있을 뿐이다. 사실 그보다는 대규모 생산자들과 거대 다국적 기업들과의 경쟁 속에서 완전히 밀려나거나 도태될 가능성이 훨씬 더 높다.
보베는 또 반자본주의 운동 안에서 나오미 클라인 같은 사람들이 하는 주장들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그는 오늘날의 반자본주의 운동에 “혁명적 이상은 없”으며, “그런 것은 이제 끝났고 그렇기에 희망이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정당’에 대해서도 강한 거부감을 드러낸다.
그러나 보베가 인터뷰한 지 채 3년이 지나지 않은 지금, 반자본주의 운동의 성장과 함께 사회의 근본 변혁에 대한 전망이 좌파들 사이에서 다시금 제기되고 있다.
그럼에도 보베와 뒤푸르의 인터뷰는 생생하고 열정적이다. 반자본주의 운동 내의 쟁점과 논쟁 들에 대한 보다 풍부한 이해를 원하는 누구나 이 책을 읽어 봐야 한다.
《촘스키, 누가 무엇으로 세상을 지배하는가》 - 노암 촘스키, 시대의 창
조승희
이 책은 프랑스의 두 언론인 드니 로베르와 베로니카 자라쇼비치가 노엄 촘스키와 인터뷰한 것을 펴낸 것이다. 1970년대 말 나찌의 유태인 학살을 부정한 리옹 대학 교수 로베르 포리송이 해임됐을 때, 촘스키가 탄원서에 서명한 것이 엄청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그 후 촘스키는 포리송 사건이 표현의 자유 문제임을 밝히는 짤막한 글을 썼는데, 어이없게도 그 글은 ‘가스실 학살’을 부정하는 포리송의 책 서문으로 이용됐다. 그 글에서 촘스키는 포리송의 주장을 혐오한다고 말했는데도 말이다. 그 뒤 프랑스에서 촘스키의 책은 좀체 출판되지 않았다. 이것을 개탄한 두 언론인은 프랑스에서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촘스키의 사상을 총체적으로 소개할 책을 출판하기로 마음먹었고 결국 이 책이 나왔다.
프랑스 사회에서 포리송 사건으로 가려진 촘스키의 진가를 드러내 보여 주겠다는 두 언론인의 바람은 이뤄졌다.
촘스키는 인터뷰에서 여러 주제를 넘나들며 신자유주의 세계화·미국 지배자들의 탐욕·기성 언론을 준엄하고 신랄하게 폭로했다. 촘스키는 다국적 기업·국가·국제 기구가 어떻게 서로 긴밀하게 연결돼 있고 상호 의존적인지 구체적으로 논증한다.
“권력의 중심은 부자 나라들에 있습니다. … 거대한 다국적 기업들, 금융 기관과 국제 기관이 공동의 이익을 위해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거대한 네트워크를 맺고 있습니다. … 세계무역기구 WTO는 민주주의를 억압하는 전쟁 무기와 다름없습니다. 세계무역기구의 목표는 기업의 경영자들에게 더 많은 권한을 부여하자는 것이니까요.”
촘스키는 당시(1999년) “인권 보호”를 내세워 발칸 반도에 폭탄을 투하한 미국의 위선에 철퇴를 내리쳤다. 그의 말대로 “오히려 폭격은 인종 청소를 가속화시켰”다. 그는 결국 문제는 “누가 발칸 반도를 지배할 것이냐?”였다고 핵심을 찌른다.
촘스키는 경제적 전쟁과 군사적 전쟁이 서로 어떻게 연결돼 있는지를 모든 생생하게 보여 준다. 또, 그런 전쟁을 주도하는 선진국의 국민 전체에는 이득이 되느냐 하는 문제가 남는데, [당시 클린턴 정부 시절] “그래도 미국 경제가 성장과 풍요의 시대를 누리고 있지 않으냐” 하는 질문에 그는 단호하게 그렇지 않았다고 답변했다. “지금처럼 불평등이 심화된 때가 없었습니다. 사회보장도 최악의 수준까지 떨어졌습니다. 게다가 노동시간도 끊임없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 클린턴 행정부 아래에서의 성장이 대부분 국민의 땀에서 나왔습니다. … 상위 0.5퍼센트는 더 부자가 되었습니다. …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부유하고 풍요로운 나라입니다. 비교할 나라가 없습니다. 그런데 임금은 유럽에 비해 낮고, 노동시간은 모든 산업국가 중에서 가장 깁니다. 유급 휴가가 없는 유일한 나라이기도 합니다.” 하고 지적한다.
“그런데 미국과 유럽은 민주주의 사회가 아니냐”는 질문을 받자 공식 이론이 말하는 민주주의는 “국민이 당사자가 아니라 방관자에 머무는 체제”라고 응수했다. 지배 계급은 언제나 얌전하게 있어야 할 대중이 정치 토론에 끼어들거나 행동에 나서는 것을 ‘과도한 민주주의’라고 진단하면서 이런 ‘위기’를 극복하려면 “절제된 민주주의의 교육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지배자들은 “대중이 온순하고 무관심한 대중으로 돌아갈 때에야 진정한 민주주의가 회복될 수 있다”고 본다고 촘스키는 꼬집었다.
또, 그런 점에서 “‘제3의 길’은 이런 문제들에서 국민의 관심을 돌리려는 미사여구에 불과”하다고 비판한다. “‘제3의 길’은 유권자를 속이고 유권자가 다른 생각을 못하도록 휴머니즘이란 가면으로 치장한 정략일 뿐입니다.”
촘스키는 “대중이 저항하고 싸워서 때때로 승리를 거둘 때에야 진정한 변화가 있을 뿐”이라고 강조한다. 특히, 노동자 계급의 조직화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그는 다국적 기업의 세계화 과정에 대해 주저하지 않고 비판하지만 운동과 민주주의의 세계화는 우리에게 도움된다고 옳게 보았다.
물론, 1970년대 이전과 지금의 자본주의를 비교할 때 자본주의 본성 자체가 변한 듯 과장하는 약점도 있다. 그는 1970년대 이전의 자본주의의 본성이 ‘생산적’인 반면 지금은 압도적으로(95퍼센트 이상이) ‘투기’를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촘스키는 금융자본의 비정상적 성장 때문에 “자본주의는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고까지 말한다.
그럼에도 단 두 시간 동안 한 인터뷰를 담은 이 책에서 우리는 뜨거운 쟁점들에 대한 촘스키의 통찰력과 거침없는 전투성을 흠뻑 느낄 수 있다.
승영
새로운 R세대가 등장하고 있다. 이 세대는 현실에 뛰어들어(rush) 저항하고(resistance) 마침내 혁명(revolution)을 이루겠다는 세대다. 이것은 나이로 구별하는 세대가 아니다. 더 나은 사회를 바라며 투쟁하려는 모든 사람을 뜻하는 말이다.
《R통신》은 손석춘 씨가 ‘R세대’에게 인터넷으로 보낸 편지들을 모아 놓은 책이다.
저자는 수십 년 동안 언론 운동을 해 왔다. 저자는 보수 언론이 정권과 결탁해 민중을 어떻게 탄압해 왔는지 증언한다. 1980년 수구 언론들은 광주 항쟁에 참가한 민중을 폭도와 난동자로 몰아세웠다. 반면, 학살자들은 새 시대의 기수로 추켜세웠다.
1996년 보수 언론들은 사회에 저항하는 학생들을 마녀사냥하는 데 크게 한 몫 거들었다. 당시 〈조선일보〉는 시위에 참가한 학생들을 ‘김정일-김일성 부자의 쇠파이프 특공대’라고 매도했다. 학생들에게 “철퇴를 내려라”는 섬뜩한 사설까지 실었다.
손석춘 씨는 이 책에서 보수 언론들이 정권, 어용 지식인들과 어떻게 결탁하는지 생생하게 폭로한다. ‘부자신문’들은 군사 독재에 아부하던 교수들의 칼럼 한 편에 수백만 원의 원고료를 지급한다. 민주당은 출입 기자들에게 수십만 원씩 촌지를 뿌렸다.
《R통신》에는 답장을 보낸 사람들의 사연들이 많이 소개돼 있다. 그 사연에는 이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불만, 아픔, 고민이 담겨 있다.
“고학을 해서라도 대도시 유학을 하겠다고 호소했지만, 저에게 기회는 오지 않았습니다. … 다니던 회사에서 자리잡힐만 하니 대졸 친구들을 데리고 오더군요. … 저는 팽 신세가 되었답니다.” 한 고졸 노동자의 편지는 우리를 분노케 한다.
새롭게 사회를 바꾸기 위해 나선 사람들의 이야기도 있다. 중학생이 〈중앙일보〉에 분노해 쓴 편지도 있다. 수십 년 동안 자기를 속인 언론에 분노해서 언론 개혁 운동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사람의 사연도 볼 수 있다. 친구와 같이 운동에 나서길 바라면서 고민을 털어놓은 진지한 활동가의 글도 있다. 여중생 사망 사건을 자기 학생들에게 알리려 노력하는 교사의 고민도 읽을 수 있다.
“군사 독재같은 뚜렷한 적이 없잖아요?” “운동은 ‘옛날 얘기’ 아닌가요?” 이렇게 묻는 벗들에게 손석춘 씨는 사회에 저항하라고 당당히 얘기한다. 그는 세계 평화를 위협하는 미국과 반민주 세력이 아직 엄존하고 있으니 당당히 싸우라고 말한다. 신자유주의로 고통받는 민중이 있으니 싸울 이유가 충분히 있지 않느냐며 학생 운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함께 싸우라는 충고도 잊지 않는다.
우리는 가끔 소수라는 것 때문에 힘들어 한다. 그렇지만 최근 촛불 시위에서 보듯 사람들은 사회에 불만을 품고 있다. R세대 대열이 늘고 있다. 저자의 말처럼 우리에게는 지금 쓸쓸해 할 이유가 더는 없다.
이 책에는 우리가 언론·정치·사회에 대해 자주 만나는 논점들이 있다. ‘언론은 중립적인가?’ , ‘박정희가 경제를 살렸는가?’ 등 저자는 이런 질문들에 명확하고 구체적으로 답한다. 저자의 답변은 가슴에 와 닿으면서 날카롭다.
이 책의 부제가 “젊은 벗에게 띄우는 손석춘의 러브레터”다. 저자는 사회에 저항하다 마녀 사냥 당한 ‘마녀’들을 사랑한다고 말한다. 《R통신》은 운동에 참가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에게 영감과 용기를 줄 것이다. 운동에 참가한 경험이 적거나 없는 사람에게는 사회에 대한 신선한 고민거리와 답변을 던져줄 것이다.
한규한
최장집 교수는 대통령 자문 정책기획위원장으로 초기 김대중 정부에 참여했다가 〈조선일보〉의 마녀사냥에 희생돼 중도하차한 인물이다.
그런 그에게 우익 언론이 퍼뜨리는 천편일률적인 냉전 수구 이데올로기에 여론이 이끌리는 모습은 매우 끔찍한 일일 것이다.
그의 새 책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는 한국 사회가 왜 그토록 보수적인지 ‘민주화’ 이후에도 왜 사회는 나아지지 않았는지 해명하려 노력하고 있다. 보수 정당 체제에서 정치는 노동자·서민 들과 유리된 채 정치 엘리트들의 ‘일상사’가 돼 버렸다. 민주화 이후 빈부격차는 더욱 심해졌고, 재벌의 힘은 국가의 통제력을 넘어서게 됐다. 교육은 계급을 더욱 구조화하고 있고, 서울로 모든 것이 집중하는 현상도 심각해졌다. 이 책은 김대중 정부의 ‘개혁 없는 개혁주의’에 대한 대중의 환멸을 반영하고 있다. 동시에 파산한 김대중식 개혁, “민주주의와 시장의 병행 발전”이라는 ‘제3의 길’식 주장에도 미련과 아쉬움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한국에서 민주화가 보수적 정치 질서로 귀결된 것은, 1987년 6월 항쟁을 예로 들면, 민주주의 이행이 광범한 사회의 요구와 개혁 의제를 배제한 채, 정치 엘리트들 간의 협약으로 정치 경쟁 절차와 관련한 문제를 민주화하는 데 그쳤기 때문이다. 6·29 선언 뒤 정치 협상은 제도권 엘리트 간의 정치 게임이었지 운동 세력이 참여한 협상은 아니었다. 여야 8명이 참여한 정치 회담은 민주화 운동을 대변한 국민운동본부를 배제하고 참여 범위를 극도로 제한한 구체제 엘리트들의 ‘원탁회의’였다.
저자는 “한국 사회 최대 균열이 여야 사이의 갈등이라고 보지 않는다. 그것은 사회적 이슈와 괴리된 채 벌어지는 그들끼리의 권력투쟁에 불과하다.” 하고 말한다. 그가 보기에 이것은 한국민주주의 위기의 징표이기도 하다.
상대적으로 높은 대선 투표율과 달리 지난 2000년 16대 총선에서 상위 세 정당이 유권자에게 얻어낸 지지는 41.7퍼센트였다. 투표를 안 한 사람이 더 많다는 얘기다. 즉, 한국 사회 최대 균열은 ‘사회적 기반이 없는 정치 체제’와 비투표자 사이의 균열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상황이 한국만의 특징은 아닌 듯 하다. 물론, 한국의 정치 구조가 좀더 폐쇄적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정치 엘리트들의 별 차이 없는 정책 대안과 민중의 정치적 소외는 단지 한국의 상황만은 아닌 것 같다. 1999년 시애틀 시위가 미국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기만성을 극적으로 폭로했듯이 현재의 자유주의적 민주주의 체제는 ― 미국이든 서유럽이든 ― 대중의 요구를 담아내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대중은 투표에 기권하는 것뿐 아니라, 좀더 적극적으로는 거리에서 자신의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고 있는 것이 아닐까?
저자의 대안은 자유주의적이다. 이 점이 이 책을 매우 공허하게, 적어도 모호하게 만든다. 저자는 노동을 배제한 정치와 시민 사회를 비판한다. 저자는 노동을 배제하지 말아야할 이유가 “사회 통합”을 위해서라고 말한다. 그러나 ‘사회 통합’이 ‘민주주의’ ‘공공선’을 위한 것이라고 모호하게 말한다.
저자의 약점이 가장 분명히 드러나는 곳이 제6장 ‘민주화 이후의 시장’이다. 여기서 그는 권위주의 산업화에서의 시장과 ‘민주적 시장’ 사이에 무엇인가 커다란 질적 차이가 있는 것처럼 주장하기도 한다. 요컨대 “정치 시장에서만 권위주의적 독점 구조가 존재한 것이 아니라, 경제 시장에서도 독점과 배제가 지배적 원리가 됨으로써 투명성과 공정 경쟁이라는 시장 경제 본래의 특징이 발휘될 수 없었던 것”이라는 말이다. 그가 바라는 ‘민주적 시장 경제’는 대체로 독점을 배제한 투명성과 공정 경쟁으로 요약할 수 있다. 별로 새롭지 않은 이 주장은 시장 경제가 독점을 강화하고 불공정한 경쟁을 그 자체의 특성으로 한다는 점을 의도적으로 무시한 것이다. 또, ‘권위주의적 시장’을 ‘개혁’하려 하는 ‘자유주의적 시장 개혁’의 흐름들이 현실에서는 저자도 비판하는 신자유주의로 수렴돼 왔다는 점을 지나쳐서는 안 된다. ‘권위주의적 시장’과 ‘민주적 시장 경제’ 사이에는 만리장성이 없듯이 ‘민주적 시장 경제’와 ‘신자유주의 시장근본주의’ 사이에도 건너지 못할 강이 흐르는 것이 아니다.
이 책이 지난 50년 간의 정치사를 묘사하면서 우리 사회가 왜 그토록 보수적인지 드러낸 부분은 매우 뛰어나지만, “산업화와 더불어 성장한 노동 계급의 힘”을 과소평가한 나머지 전망은 매우 비관적이다. 저자가 “지금 우리는 권위주의와 접맥되었던 냉전반공주의, 기술관료주의, 시장근본주의 등 민주주의의 기반을 잠식하는 여러 형태의 힘, 조류들과 대면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날 민주화를 가져왔던 강력한 운동의 힘은 대체로 해체되거나 약화된 상태이다.” 하고 비관하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사실, 중도 좌파나 자유주의 관점에서 볼 때 민주주의는 전 세계적으로 위기일 것이다. 예컨대 프랑스 대선에서 극우와 극좌파로 사회가 빠르게 양극화한 것은 중도 좌파나 자유주의자들에게는 두려운 일일 게다. 그러나 지금은 위기이자 동시에 기회의 시대이기도 하다. 자유주의 관점에서 볼 때 부르주아 대의민주주의의 파행은 언제나 위기지만, 좌파의 관점에서는 동시에 새로운 민주주의의 가능성이다.
물론, 저자는 한국 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해 새로운 진보 정당이 성장하는 게 중요하다는 점을 배제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이를 위해 대통령 선거에서 결선투표제를 도입하거나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를 강화하는 제도적 장치의 마련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최소한 이것을 이루기 위해서라도 저자의 결론처럼 “자유주의와 공화주의의 사상적 자원으로부터 도움받는”것보다는 계급 정당과 계급 정치를 발전시키는 것이 훨씬 분명해 보인다.
한은솔
《맨발의 겐》은 역사상 유일하게 두 번이나 핵폭탄을 떨어뜨린 미국의 범죄를 다루고 있다. 세계평화를 걱정하는 양 북한의 핵개발을 자못 엄숙하게 꾸짖고 있는 미국은 반세기나 앞선 1945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핵폭탄을 투하한 바 있다.《맨발의 겐》은 당시 히로시마를 체험한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만화책이다. 원자폭탄이 터질 당시 초등학교 1학년이었던 나카자와 케이지는 아비규환의 히로시마에서 기적적으로 살아 남았다. 피폭후유증으로 당뇨병을 앓는 그는 소수의 권력자들이 부추긴 전쟁과 미국이 떨어뜨린 원자폭탄으로 인해 평범한 일본인들이 어떻게 고통을 겪었는가를 겐이란 소년을 통해 그려낸다.
1945년 히로시마 상공에서 낙하산에 매달려 유유히 떨어진 원자폭탄은 순식간에 도시 전체를 파괴했다. 원자탄이 폭발하며 내뿜은 수 천 도의 열선은 사람들의 피부를 엿 녹듯 녹아 내리게 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녹아 내린 피부가 땅에 끌리지 않도록 팔을 쳐든 채 유령처럼 거리를 배회했다. 폭발 후 뒤따르는 강력한 폭풍으로 사람들이 통째로 날아가 나뭇가지 여기저기에 꽂히는가 하면, 유리파편이 온몸에 촘촘히 박혀 움직일 때마다 소름끼치는 유리소리를 냈다. 뜨거운 불길을 피해 강물로 뛰어든 사람들은 화상으로 오그라든 근육 때문에 헤엄치지 못하고 이내 익사해버렸다. 강물 가득 화상으로 뭉그러진 시체들이 둥둥 떠다녔다. 지옥과 같은 당시의 참상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나카자와 케이지의 그림은 공포감과 함께 분노를 불러일으킨다.
원폭의 재앙은 여전히 살아남은 자들을 그림자처럼 따라 다녔다. 방사능비(일명 ‘검은비’)를 맞았거나 원자폭탄 폭발당시 방사능에 노출되었던 사람들은 백혈병이나 암에 걸리고 이름 모를 질병으로 고통 속에 죽어갔다. 패전한 일본을 점령한 미국은 원폭 피해자들을 연구 표본으로만 여겨 당장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나 환자들을 방치한 채 자신들이 터뜨린 핵폭탄이 인간의 몸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를 조사하는 데에만 이용했다. 게다가 미국은 자신들이 보기에도 피해상황이 너무나 끔찍했던지 원자폭탄 투하에 대해 공개적으로 발설하지도 못하게 했다. 누구든 원폭에 대해 공개적으로 얘기를 하려면 일단 목숨을 걸 각오를 해야 했다.
겐은 무고한 민간인들에게 핵폭탄을 떨어뜨린 미국을 용서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전쟁을 일으켜 수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고통에 빠뜨린 일본의 지배자들 또한 용서할 수 없다고 울부짖는다. 소수의 권력자들은 대중들의 의지와 무관하게 전쟁을 일으켰다. 자칭 ‘신’이었던 천황은 신의 국민들은 죽지 않는다며 국민들을 호도하고 전쟁터로 내몰았다. 전쟁이 벌어지는 동안 민주주의는 극도로 억압되었으며 사람들의 생활은 매우 궁핍했다. 전쟁을 반대하는 목소리를 낼라치면 겐의 아버지처럼 ‘비국민’의 딱지가 붙여졌고 가족들 모두 온갖 종류의 폭력에 시달려야 했다. 일본이 패전하자 ‘비국민’이란 딱지를 붙이며 전쟁을 부추겼던 자들이 ‘평화주의자’ 시늉을 하며 다시 승승장구했다. ‘인간선언’을 한 천황은 처벌받기는커녕 반성조차 하지 않았다. 수많은 사람들을 희생시킨 전쟁에 대해 책임지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오히려 전쟁 와중에 권력과 부를 누렸던 자들은 전쟁이 끝난 후에도 계속 권력과 부를 누렸다.
여전히 한 줌도 안 되는 사람들의 이익을 위한 전쟁몰이가 한창이다. 핵공격이란 말도 서슴없이 튀어나온다. 나카자와 케이지는 겐이 보여준 인간애야말로 야만적인 전쟁을 막을 수 있는 힘이라고 말한다. 소수의 이익을 위한 전쟁을 온갖 대의명분으로 포장하여 무고한 사람들을 죽이고 핵공포를 부추기는 냉혈한들과 맞서려는 사람들은 겐으로부터 많은 용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