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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진의 마르크스주의 경제학 에세이:
베이징의 마르크스

요즘 올림픽 열기로 뜨거운 베이징에 《국부론》의 저자 아담 스미스를 불러낸 지오바니 아리기의 신간 《베이징의 스미스》(Verso, 2007)가 해외 진보 학계에서 상당한 화제를 낳고 있다. 아리기는 이마누엘 월러스틴, 안드레 군더 프랭크(얼마 전 사망)와 더불어 세계체제론의 대표적 이론가로서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져 있다.

아리기의 대표작 《장기 20세기》(1994)에서 제시된 헤게모니 국가의 주기적 교체론은 우리나라에서도 일부 ‘PD’ [계열] 논자들이 이른바 “일반화된 마르크스주의”의 핵심 부분을 구성하는 “역사적 자본주의”의 문제설정으로 수용하고 있다. 그래서 많은 국내외 진보 학자들은 아리기가 《장기 20세기》 이후 13년 만에 펴낸 이 신간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러나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말은 이 책에도 해당되는 것 같다. 우선 튀는 제목(이는 아리기 자신이 밝히듯이 마리오 트론티가 쓴 《디트로이트의 마르크스》(1971)를 흉내낸 것이다)부터 잘못됐다.

중국 = 비자본주의적 시장경제?

아리기는 이 신간에서 오늘날 중국 사회가 “비자본주의적 시장경제”라고 주장한다. 오늘날 중국 사회가 마르크스의 《자본론》의 세계(자본주의)가 아니라,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의 세계(시장경제)라는 것이다.

아리기에 따르면, 자본주의는 착취와 불평등, 팽창주의와 “강탈에 의한 축적”(accumulation by dispossession)을 고유한 특징으로 하는 것에 반해서, 시장경제는 호혜, 평등, “소유에 의한 축적”(accumulation by possession)을 원리로 한다. 그래서 아리기는 자본주의에 비해서 시장경제는 바람직한 사회 체제라고 본다. 아리기가 보기에 나쁜 것은 자본주의이지 시장경제가 아니다.

또, 아리기는 오늘날 자본주의를 대표하는 국가가 미국이라면, 시장경제를 대표하는 국가는 중국이라고 주장한다. 이로부터 아리기는 21세기 들어, 특히 이라크 전쟁 이후, 미국 자본주의의 세계적 헤게모니가 “최종적 위기”를 맞이하고, 시장경제 중국이 세계의 중심으로 급속하게 부상하는 것은 역사의 진보라고 주장한다. 나아가 아리기는 중국과 같은 “비자본주의적 시장경제”를 21세기의 진보 세력이 참조해야 할 현실적인 대안 모델로 제시한다.

《베이징의 스미스》 전체 논지가 근거하고 있는 핵심 가설은 시장경제와 자본주의의 구별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구별은 아리기가 창안한 것이 아니라 사회사가 브로델이 《물질문명과 자본주의》에서 제시한 구별을 차용한 것이다.

그런데 마르크스의 경제학비판 체계에서는 이러한 구별은 찾을 수 없다. 물론 스탈린이나 일부 마르크스주의자들(예컨대 만델)도 브로델-아리기의 “비자본주의적 시장경제”에 해당되는 이른바 “단순상품생산”(simple commodity production)이라는 체제가 자본주의 상품생산 체제의 성립 이전에 존재했었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마르크스 자신은 그 어디에서도 “단순상품생산”이라는 개념을 사용한 적이 없다.

마르크스는 역사적 체제로서 자본주의를 노동력의 상품화에 기초한 일반화된 상품화폐경제=시장경제로서 간주했으며, 자본주의와 구별되는 시장경제의 체제적 성립 가능성을 어디에서도 주장한 적이 없다.

또 현실 역사에서는 시장경제가 일반화되어 하나의 독자적 사회 체제로 성립할 경우 이를 자본주의라고 말한다. 현실 역사에서 시장경제가 자본주의와 별도로 하나의 독자적 사회 체제로 실존한 적은 없다. 사실, 21세기 자본주의의 핵심적 특징인 세계화라는 것도 시장경제의 전지구적 확장, 즉, 상품화, 시장화, 경쟁력 논리의 전면적 관철에 다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브로델-아리기처럼 시장경제와 자본주의를 자의적으로 구별할 경우, 자신들의 의도와는 달리, 자본주의 체제 자체에 대해서도 비판할 수 없게 된다. 실제로 아리기는 오늘날 중국에서 자본주의의 착취적‍·‍억압적 현실과 모순에 대해 눈감고, 이를 “비자본주의적 시장경제”라고 미화한다.

우리가 보기에는 1980년대 이후 오늘날에 이르는 중국 경제의 전개 과정에서 마르크스가 《자본론》에서 정식화한 자본주의의 운동법칙이 역사상 그 어떤 나라에서보다 훨씬 더 명료하게 작동하고 있다.

예컨대 마르크스가 자본주의의 운동법칙으로 정식화한 자본의 유기적 구성의 고도화 경향, 이에 기인한 산업예비군의 누진적 증가와 “자본주의적 축적의 절대적 일반적 법칙”, 즉 한편에서 고도축적과 다른 한편에서 빈곤화의 경향(양극화), 이윤율의 저하 경향이 1980년대 이후 중국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에 관해 실증적 논의는 이정구 씨의 최근 논문을 참조할 수 있다)

오늘날 중국은 데이비드 하비가 “중국적 특색을 갖는 사회주의”라는 중국 지배계급의 공식적 체제 규정을 비꼬아서 표현했듯이, “중국적 특색을 갖는 신자유주의”라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오늘날 중국은 아리기가 주장하듯이, 21세기 인류의 대안으로서, “비자본주의적 시장경제”를 제시하거나, 또는 “비동조화”(decoupling) 명제가 주장하듯이, 최근 서브프라임 모기지 위기 이후 격화되고 있는 세계경제 위기를 진화할 수 있는 어떤 안전판을 제공할 것 같지 않다. 오늘날 중국은 고도축적에 따른 대내적 모순과 글로벌 불균형을 격화시키고, 세계 원자재 가격 앙등, 세계적 생태 위기를 격화시키면서, 오늘날 세계경제 위기를 더 큰 규모로 폭발시킬 화약고가 될 가능성이 높다.

만약 오늘날 중국이 21세기 대안을 제시한다면, 그것은 아리기가 상상하듯이 세계 다른 나라들이 본받아야 할 “비자본주의적” 대안 체제라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지난 20세기 초 러시아처럼 자본주의의 불균등결합발전의 모순이 최고도로 격화 응축되는 세계자본주의의 “가장 약한 고리”, 즉 반(反)자본주의 노동자혁명이 폭발할 확률이 가장 높은 나라라는 의미에서일 것이다.

우리는 상업주의와 국수주의, 유교와 공자가 전면적으로 부활하고 있는 베이징 올림픽의 이면에서 이른바 아담 스미스가 꿈꾸었던 평등과 “근면경제”가 아니라 “마르크스의 유령”이 어른거리는 초과착취와 불평등, 경쟁과 축적, 강탈과 제국주의의 논리로 점철된 자본주의의 현실을 목도한다. 이와 같은 중국 자본주의의 현실을 분석하고 대안을 강구하기 위한 틀은 아리기가 애호하는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이 아니라 여전히 마르크스의 《자본론》이 될 수밖에 없다.

화약고

아리기는 우리나라 ‘PD’ 논자들 사이에서는 자신들이 멋대로 지어낸 “일반화된 마르크스주의”의 핵심 이론가로 간주되지만, 우리의 고전 마르크스주의 전통과는 아무런 공통점도 없다. 《장기 20세기》와 마찬가지로 《베이징의 스미스》 어디에서도 가치법칙과 계급투쟁에 관한 마르크스의 문제설정은 찾아볼 수 없다.

아리기는 《베이징의 스미스》 책 전체를 도리어 현대 자본주의의 거시동학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적 분석의 현재적 도달점이라고 할 수 있는 로버트 브레너의 《혼돈의 기원》(1998)을 비판하는 데 할애한다. 그러나 적지 않은 쟁점에도 불구하고 독자적인 마르크스주의 공황론을 구성하고 이에 기초하여 원자료를 정치하게 분석하고 있는 《혼돈의 기원》에 비해, 잡다한 2차 자료의 짜깁기와 견강부회 일색인 《베이징의 스미스》는 학술적으로도 수준이 비교가 안 된다.

어쨌든 아리기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능력 정도는 갖추었다면 자신의 책 제목부터 《베이징의 마르크스》라고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

※ 정성진 경상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로 《마르크스와 한국경제》, 《마르크스와 트로츠키》의 저자이고, 《반자본주의 선언》, 《칼 맑스의 혁명적 사상》 등의 역자이다. 정성진 교수는 다함께가 주최하는 ‘맑시즘2008’에서 ‘오늘의 세계 경제 위기, 1930년대식 대공황이 재연되는가’라는 주제로 연설한다.(8월 16일(토) 오전10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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