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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굿맨 -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 과학기술대학교 인문사회과학부 교수
세계경제포럼
세계경제포럼은 한편으로는 세계 기업 총수들의 거대한 칵테일 축제다. 정책을 결정할 조직적 힘은 실제로 없지만, 세계경제포럼은 국제 “지도자”들이 자신의 계획을 우리들에게 철저하게 설명할 공간을 만들었다. 그들 자신의 말에 따르면, “그들은 전 세계적 의제를 정의하고 추진하는 과정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우리가 사는 세계를 좌우하는 것은 그들의 의제라는 것이다.
세계경제포럼은 1971년 유럽 기업들의 연례 ‘유럽 경영자 포럼’으로 탄생했다. 1987년까지 유럽공동체
세계경제포럼은 국제적 의제를 결정하는 포럼이 되고 싶어 안달한다. 그들 자신의 신중한 의견에 따르면 세계경제포럼은 “세계의 상태를 개선하는 일에 헌신하는 기업인, 정치인, 지식인 지도자들과 그 밖의 사회 지도자들로 구성된 최상의 국제적 동반관계”이다. 198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의 확산과 기업 세계화의 결정적 발전으로 세계경제포럼은 국제 엘리트들의 결집장으로, 계급 권력을 위한 도구로 전례 없는 구실을 해 왔다. 분명 세계경제포럼은 국제적 의제를 확립할 수도, 확실히 그 결과를 좌우할 수도 없다. 즉, 세계경제포럼은 사회를 통제하는 비밀결사대는 아니다. 세계경제포럼은 그보다는 자기 의식적으로 집단적 계급 이익을 계획하는 구실을 수행하는, 사회 관계 속에 아로새겨진 계급 조직이다. 그들은 정치적 의제에 영향을 주고 쇄도하는 도전에 대응하려고 애쓴다. 이런 측면에서, 키스 반 데르 피즐
이 포럼은 놀랄만치 성공했다. 1971년 이래로 ‘국제 상황’은 많은 참가 기업들에게 극적으로 유리하게 됐다. 1980년대에 세계경제포럼의 전략은 신자유주의 의제를 밀어붙이는 것이었고, 다국적 기업 이사들과 함께 이 의제를 펼칠 계획을 세밀히 세우기 위해 OECD 나라들뿐 아니라 새롭게 산업화한 세계로 ‘간주된’ 나라들의 정치인들을 끌어 모았다. 세계경제포럼은 공적 감시에서 벗어난 사전 포럼이 됐고 신자유주의를 확산시키는 데 중심 구실을 했다. 이 모델은 1970년대와 1980년대 초에 겪은 축적 위기의 해결책으로 제시됐고 시장의 영역을 확대하는 데 매우 효과적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성공의 대가는 체제 내적인 불확실성과 불안정성이었다. 세계화한 신자유주의는 자본주의의 경계를 극적으로 재구성했다.
그 결과로, 적어도 1990년대 중반부터는 신자유주의 처방에 대한 신뢰가 땅에 떨어졌다.
신자유주의적 처방들이 실패했기 때문에 세계경제포럼의 신자유주의 계획은 긴급하게 수정됐다. 세계경제포럼은 자신의 시장 근본주의를 숨기고 현재는 기업 세계화를 위한 새로운 의제를 만들고 있다. 그것은 ‘사회적인 것’을 거부하지 않고 포용한다. 신용평가 기관과 경영자문기관, 국제관계 연구소, 비정부 기구
최근의 발전은 이런 이견을 가진 부분의 힘을 강화시켜 왔다. 1998년에 OECD가 ‘다자간 투자 협정’을 연기하고 1999년 세계무역기구
몇 년 만에 최초로 ‘반자본주의’ 저항이 자본주의의 심장부와 전 세계 무대로 돌아왔다. 이런 저항은 변혁을 통한 현재 사회의 불치병 극복이라는 가능성을 의제에 올려 놓으면서, 대안적인 지도적 원리들을 표현할 수 있는 이데올로기적 공간을 열어 놓았다. 자본주의 규율을 장려하는 게 의문시되면서,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기구들을 겨냥하고 저항은 상당한 정치적 영향력을 획득하고 있다. 이런 정치적 분위기에서 세계경제포럼 회담은 특별한 의미를 갖게 됐다. 1996년 이래로 세계경제포럼은 점점 더 전투적인 반발을 자극했고, 그에 대해 신자유주의 계획을 수정하는 것으로 대응했다. 세계경제포럼의 대응은 밀실 전략 회의를 일삼는 듯한 인상을 피하고 더 공개적으로 되려고 노력하면서 새롭게 등장하는 대안 세력의 유명한 대변자들과 관련을 맺는 것처럼 보여서 그 정당성을 재확립하려 한다. 세계경제포럼은 그래서 자신이 ‘새로운 구도를 형성하는 데서 중요한 구실’을 할 수 있다고 단언하면서 자신을 신자유주의 재평가 논쟁의 중심에 두려 한다.
이를 반영하듯, 세계경제포럼은 신자유주의 세계화에서 배제된 나라들, 그 중에서도 특히 멕시코와 남아프리카 공화국 같은 OECD 소속이 아닌 정부와 국제자유노동조합연맹
논쟁은 세계 경제의 표준이 될 만한 개정된 제도적 틀을 세우는 데에 있다. 세계경제포럼은 의제를 형성하는 데서 중심 구실을 하려 한다. ICFTU
2000년 다보스에 모인 경영진들이 클린턴의 연설 전에 보안 점검을 하기 위해 회의실을 비우는 걸 거부했다는 일화가 있다. 미국 대통령의 보안팀은 기업의 ‘항의 농성’으로 말미암아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클린턴의 연설은 진행됐다. 결국 미국 대통령조차도 기업 집단의 의지를 존중해야만 했다. 어쩌면 그는 회담장 밖에 있던 1천여 명의 시위대와 함께하면서 기업 권력에 대항한 민주주의 운동에 참여했어야 타당했을 것이다.
이번 달 말 세계경제포럼 대표 뉴욕 회담장 주변에서 유사한 시위들이 열릴 것이다. 1999년에 이 대표자들은 무역 자유화가 불가피하고 ‘지적 재산권과 외국 투자를 보호하는 자유롭고 공정한 경쟁’으로 확대되는 게 필요하다고 주장하면서 각국 정부가 다가올 WTO의 ‘밀레니엄 라운드’를 지지하도록 로비했다. 2002년 우리는 환경의 지속 가능성에 대해 많은 미사여구를 듣게 될 것이다. 세계화한 신자유주의를 정치화할 아이러니한 순간과 기회가 많이 있을 것이다.
세계경제포럼 반대에 대한 정보는 http://www.s11.org에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