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에서 촛불집회를 할 때면 근처 상가들이 간혹 눈에 들어온다. 그 가운데 바디샵이라는 코스메틱 전문 매장은 다른 가게와 달리 제3세계 어린이 교육에 관한 광고만 해 놓았다.
나는 유행에 민감한 일을 하기 때문에 더 호기심과 관심을 가졌는데, 가을·겨울 라이프스타일 트렌드 가운데 주목되는 단어는 ‘그린(Green)’이었다.
그린 트렌드로는 폐타이어를 사용한 아디다스의 신발이나 대체 에너지를 사용한 아베다 헤어제품들, 아동 무임금 노동 착취를 하지 않는다는 스타벅스의 착한 커피 등이 있는데 이런 경향은 매우 긍정적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스타벅스는 이른바 ‘착한 소비’를 하는 소비자들의 압박에 못 이겨 에티오피아에서 두 배가량 비싼 커피를 사들였다. 이런 CSR(기업의 사회적 책임) 마케팅은 비용 부담이 있더라도 기업이미지가 상당히 높아지는 이점이 있다.
그런데 공정무역이나 친환경 상품들은 일반제품에 비해 두세 배 가량 비싸다. 물론 제3세계의 착취하지 않은 노동의 임금(그 역시도 정당한 임금인지는 알 수 없으나)과 친환경적 원자재의 비싼 가격을 고려하다 보면 가격이 높아질 수밖에 없을지 모른다. 사실 이러한 CSR 마케팅 상품들은 시장가격 경쟁을 크게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항상 비싸다.
결국 그 좋은 취지의 것들이 기업들에게는 좋은 이미지를 그리고 부자들에게는 윤리적 소비자라는 프리미엄 딱지를 붙여 주게 됐고 반면 현실적으로 구매가 어려운 나 같은 서민들에게는 환경 파괴적이고 의식 없는 ‘나쁜 소비자’라고 낙인찍는 꼴만 됐다. 그린 트렌드의 긍정성이 이 체제 안에서 과연 얼마나 본래 취지를 실현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패션잡지 《보그》에 실린 34만 원짜리 친환경 셔츠를 바라보며 또 한 번 느꼈다. 자본주의체제를 유지하면서 시행되는 각종 노력들이 얼마나 모순인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