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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계급 문화는 있는가?

[편집자 주] 지금도 일부 좌파들은 머리 염색 등을 “[미국] 제국주의의 문화”라며 거부감을 나타내곤 한다. 스탈린주의의 민족문화론·민중문화론의 잔재인 이런 태도가 어떤 문제를 안고 있는지 살펴본다.


오페라와 시는 종종 지배계급의 취미로 치부됐다. 그러나 문화와 계급의 관계는 복잡하다. 또, 이 문제는 사회주의자들이 무시해도 되는 문제가 아니다. 예술의 문제는 종종 혁명 정치에서 중심이 돼 왔다. 린지 저먼이 마르크스주의 전통을 검토하고 마르크스주의 전통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타당한지 살펴본다.

문화에 관한 토론은 언제나 우리 주변에 넘쳐난다. 그러나 문화를 둘러싼 어려운 문제들에 대해서 예상할 수 있는 답변들이 이미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한 가지 답변은 문화를 정치적 타당성이라는 관점에서 판단하는 것이다. 그래서, 예컨대, 만약 어떤 영화나 책이 여성을 폭력의 희생자로 묘사하면 그것은 좋은 작품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와 반대로, ‘진보적인’ ― 유색인종 차별이나 여성 차별에 반대하는 ― 태도를 보이고 있는 예술 작품은 본질적으로 좋은 것이라는 것이다.

또 다른 중요한 문제점은 예술이 계급 사회의 병폐들과 계급 사회 내의 관계들을 완벽하게 반영한다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특히 ‘중간 계급’ 예술(때때로 모든 예술)에 반대하는데, 이것은 이런 예술이 노동 계급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많은 주장들이 이런 생각과 연관돼 있다. 하나는 모든 ‘고급 예술’ ― 특히 비싼 관람료를 내는 극장 예술, 오페라, 갤러리 들 ― 을 계급 의식적인 노동자들이 거부해야 하는 배타적이고 중간계급적인 것으로 여긴다. 이런 생각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은 TV 드라마, 록 음악, 축구와 경주 같은 ‘노동 계급 문화’를 ‘고급 문화’와 대치시키는 것이다.

이런 주장들의 문제점은 이런 주장들이 아무 쓸모가 없다는 데 있다. 이런 주장들은 “나는 베토벤을 좋아하지 않아” 같은 주관주의와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만 알고 있어”와 같은 일종의 속물주의에서 비롯한다. 그러나 우리는 다양한 수준의 예술과 문화를 이해하고 감상하는 것의 중요성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우리가 사회 전체를 더 깊이 이해하게 할 뿐 아니라 사회와 그 속의 개인들 모두의 발전 수준을 측정하는 데 도움을 준다.

바로 이 때문에 위대한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문화 문제에 결코 무관심한 적이 없었으며 그들 가운데 일부 ― 특히 마르크스·엥겔스·트로츠키·그람시 ― 는 많은 시간을 들여 그런 문제를 다룬 글을 썼다. 그들은 특정 종류의 예술을 감상하는 데서 시작했다. 마르크스 자신은 문화를 사회 발전의 지표이자 인간 업적의 정점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문화 이론에 가장 위대한 공헌을 한 사람은 트로츠키였다. 그는 언제나 예술을 기계적인 방식으로 파악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문화를 “사회 전체나 적어도 지배 계급을 특징짓는 지식과 능력의 유기적 총합”이라고 묘사했다. 따라서 문화는 사회와 연관돼 있는 동시에, 그 사회를 뛰어넘으려는 시도라고 말할 수 있다. 특정 형태의 예술은 특정 사회의 산물이며 그 사회와 동떨어져서 평가될 수 없다.

“쾰른 대성당의 건축 설계도는 토대와 아치의 높이를 측정하고 본당 중회석 세 개의 치수와 기둥의 치수와 위치 등을 결정하면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중세의 도시가 어떠했는지, 길드나 중세의 가톨릭 교회가 어떠했는지 모르면 쾰른 대성당을 결코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마르크스는 예술이 사회의 발전을 반영하는 방식을 설명하면서 이와 비슷한 주장을 했다. 서사시나 그리스 비극은 여전히 예술적인 흥미 거리가 되겠지만, 세계를 훨씬 더 합리적으로 이해하게 해 주는 과학 연구가 이루어지고 인쇄기와 전신이 존재하는 사회에서는 더는 우세한 예술 형식이 될 수 없을 것이다.

“그리스인의 상상과 그리스 예술을 만들어 낸 자연관·사회관이 자동 기계, 철도, 기관차, 전신의 시대에 가능할까? … 모든 신화는 상상 속에서 그리고 상상을 통해서 자연의 힘을 지배하고 통제한다. 따라서 인간이 자연의 힘을 지배하게 되자마자 신화는 사라져 버린다. 여신 Fame이 프린팅 하우스 스퀘어(Printing House Square)와 어떻게 나란히 존재하겠는가 …

“… 아킬레스가 화약이나 총탄과 나란히 존재할 수 있겠는가? 아니면 일리아드가 인쇄기와 경쟁할 수 있겠는가? 노래 부르기, 암송하기, 뮤즈들이 인쇄기가 등장함에 따라 불가피하게 사라질 수밖에 없으며 따라서 서사시의 필요 조건들이 사라질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자본가 계급이 생산하는 예술과 문화는 이러한 사회 발전의 반영이고 마르크스 시대에는 그 전 어느 때보다 훨씬 빼어난 예술 작품들이 생산됐다. 부르주아지, 즉 새로운 자본가 계급은 옛 중세 사회의 태 내에서 발전했다. 이들은 실제로 정치 권력을 장악하기 전에 이미 몇 세기에 걸쳐 어마어마한 힘과 부를 발전시켰다. 도시, 대학, 인쇄술의 발전은 모두 성장하는 부르주아 문화의 증거였다.

부르주아의 문화적 산물은 방대했다. 르네상스 회화와 건축, 셰익스피어의 희곡, 밀턴의 시, 공연 음악의 발전. 그럼에도 부르주아 문화가 그 성과를 구축하고 세련되게 하며 발전시키는 데는 수백 년이 걸렸다.

부르주아 문화의 정점은 계몽주의의 등장부터 위대한 프랑스 대혁명을 거쳐 유럽 전역에서 구질서에 대항한 1848년 혁명까지 약 1백년 간의 시기로 잡을 수 있다.

이 시기는 부르주아 발전의 정점을 반영한다. 계몽주의라는 이성적이고 과학적인 사상으로 무장했으며 이미 영국·프랑스·미국에서 구질서를 전복한 자신감 넘치는 혁명적 계급은 이제 자신의 정치적·경제적 성장에 걸맞은 문화를 생산할 수 있는 부와 권력을 가지게 됐다.

그 산물 중에는 특히 부르주아 혁명가인 베토벤의 교향악, 스콧·발자크·디킨스와 점차 등장한 러시아 작가들의 위대한 소설들, 성장하는 도시들의 고전 건축들이 포함됐다. 그 문화는 자신감 넘치는 세계관을 표현했다.

1848년은 전환점이었다. 물론 그 후에도 여전히 훌륭한 부르주아 예술은 나왔다. 그러나 부르주아지가 더는 혁명적 계급이 아니게 된 때는 결정적으로 바로 이 때부터였다. 그들은 옛 봉건 질서를 싫어했으나 노동 계급의 혁명을 훨씬 더 두려워했다. 그래서 그들은 점점 더 소심해져 자신들이 이미 알고 있는 것에 집착하고 봉건 질서와 타협하면서 완전히 성숙한 부르주아 혁명이 발전하지 못하도록 막았다.

일단 새로운 자본가 계급이 더는 혁명적이지 않게 되자, 그들의 세계관도 산산조각나기 시작했다. 최상의 예술 가운데 일부는 점점 새로운 자본주의 세계를 경축하는 게 아니라 그에 반대하면서 나왔다. 20세기 초의 모더니즘 운동은 이러한 일관성 부족을 반영하는 기법들을 발전시킴으로써 이 조각난 세계를 이해하려 했다. 이 운동 속에는 많은 요소들이 들어 있었다. 어떤 이들은 자본주의가 이룬 기술 발전을 찬양하는 경향을 갖고 있었고 또 다른 많은 예술가들은 체제 전체에 도전하려 했다. 특히 러시아에서는 1917년 혁명의 영향으로 많은 모더니스트들이 선명한 사회주의 예술이라는 사상에 몰두하게 됐다. 그들은 예술을 갤러리와 극장에서 떼어내 평범한 사람들이 누릴 수 있게 하는 기법들을 시도했다.

많은 사람들은 자본가 계급이 혁명을 성공시키기 전에 자신의 문화를 발전시킨 것과 마찬가지로 노동 계급도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신들의 문화를 발전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것은 부르주아 예술과 완전히 반대편에 서는 것을 뜻했다.

러시아 혁명 과정에서 러시아 미술가들과 작가들 사이에서 일어난 ‘프롤레트쿨트’ 운동은 과거의 예술은 노동 계급에게 완전히 쓸모 없는 것이라며 거부했다. 1918년 프롤레트쿨트 첫 대회에서 한 연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프롤레타리아 의식이라는 짐을 진 채 새로운 삶에 들어서고 있습니다. 그들은 우리에게 부르주아 문화의 성취라는 또 다른 과중한 짐을 지우고 싶어합니다. 그리 되면 우리는 과중한 짐을 진 낙타처럼 조금도 나아가지 못할 것입니다. 부르주아 문화라는 낡은 쓰레기는 죄다 내던져 버립시다.

과거에 대한 거부는 당시가 혁명적 파고의 절정이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어느 정도는 이해할 만한 것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은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노동자들이나 노동자들에게 공감하는 사람들이 만든 진정한 노동 계급 예술을 발전시키고 훨씬 더 많은 노동자와 농민 들이 이것을 누릴 수 있다는 생각도 포함돼 있었다.

그러나 레닌은 프롤레트쿨트를 강력하게 비판했고 트로츠키는 더 심도 있게 비판했다. 트로츠키는 새로운 노동자 국가가 발전해서 사회주의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노동자 국가가 과거의 성과 위에서 건설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것은 기술 발전과 과학 연구를 혁명에 이롭게 이용하는 데 적용됐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관점을 부르주아 예술과 문학에도 확장시켜 그것이 인간 존재와 사회 발전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과거의 성과를 거부하는 것은 인류 문화 전체와 사회주의 혁명 전에 예술가들이 성취한 모든 것을 거부함을 뜻했다. 게다가 트로츠키는 심지어 노동자 국가에서조차 ‘프롤레타리아 문화’를 발전시키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트로츠키의 논점은 이렇다. 첫째, 그는 노동 계급 전체의 문화 수준이 아직 매우 낮기 때문에 노동 계급은 현존하는 부르주아 문화에 바탕을 두고 점진적으로 증진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이것은 특히 러시아에서 진실이었는데, 많은 러시아 노동자들은 거의 문맹이었고 노동자 문화 조직들의 수준은 독일보다 매우 낮았다. 그러나 심지어 가장 발전한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노동 계급은 지배 계급이나 중간 계급이 누리는 많은 문화적 혜택을 박탈당하고 있었다.

둘째, 노동 계급은 ― 트로츠키는 혁명 성공 몇 년 뒤에 이 글을 썼다 ― 자신의 문화를 발전시킬 여유가 없다. 이것은 혁명 전후 모두에 진실이다. 혁명 전에는 착취 체제가 노동자들을 공장에서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게 하고 여가 시간에는 완전히 지쳐 있게 만들고, 혁명 뒤에는 혁명을 성공적으로 지키고 확산하는 데 노동자 국가의 물적·인적 자원을 대부분 투여해야 하기 때문이다.

“혁명은 새로운 사회를 위한 토대를 마련한다. 그러나 혁명은 계급 투쟁, 폭력, 파괴, 절멸이라는 옛 사회의 방법들을 사용해서 그렇게 한다. 만약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인류는 자신의 모순 때문에 망가졌을 것이다. 혁명은 사회와 문화를 구했지만 가장 무자비한 수술이라는 방법을 통해서 그렇게 했다.”

‘프롤레타리아 문화’라는 개념에 대한 트로츠키의 셋째 반대는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 사이의 근본적인 차이에 있다. 초기의 자본가 계급은 수백 년 동안 자신의 문화·제도·부·권력을 발전시켰다. 프롤레타리아에게는 그럴 기회가 없다. 프롤레타리아는 본질적으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재산·부·권력을 갖고 있지 않다. 프롤레타리아는 물질적 생산 수단과 함께 정신적 생산 수단도 박탈당해 있다.

노동 계급은 사회의 부를 생산하지만 자신의 노동 생산물과 분리돼 있다. 이러한 사태를 끝장내고 사회의 부와 사상을 통제하기 위해서는 체제 전체에 맞서 투쟁하고 사회의 구 소유자들에게서 통제력을 빼앗아야 한다. 이러한 혁명적 변화 과정에서 노동 계급은 자신도 변화시킨다.

따라서 노동 계급이 혁명을 부분적으로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왜냐하면 이런 상태에서는 노동 계급이 정신적·물질적 생산 수단을 여전히 빼앗긴 상태일 것이므로). 또는 자본주의 사회 안에서 노동 계급 문화라는 고립된 섬을 창출할 수도 없다.

자본주의의 혁명적 전복이라는 과업이 너무나 막중하기 때문에, 가장 기본적인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모든 노동자들의 자원이 필요하다. 프롤레타리아 문화는 혁명 직후에 진정한 의제가 되지 못한다.

그렇다면 노동자 혁명이라는 즉각적 과제가 완수된 사회주의 사회에서는 어떠한가? 트로츠키는 노동자들의 이익을 지키기 위한 노동자 국가가 더는 필요하지 않게 돼 [국가가] 점차 소멸하는 과정에서만 프롤레타리아 문화가 성취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사회의 문화적 산물은 어느 한 계급의 산물이 아니라 인류가 집단적으로 노력한 성과일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프롤레타리아 문화가 아니라 인류의 문화일 것이다.

초기에 프롤레트쿨트 운동은 혁명이 직면한 어려움들과 후진국에서 일어난 혁명이 제기한 엄청난 역사적 문제들을 전혀 진지하게 평가하지 않는 과도 좌익주의적 태도를 취했다. 그러나 초기 열정은 언제나 계속되지 않았다. 이러한 과도 좌익주의는 대부분의 예술가들이 고통받은 문제 ― 노동자들에게서 고립 되는 것 ― 와 결합해, 프롤레트쿨트는 직접 혁명에 복무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 예술을 모두 거부하는 데로 나아갔다.

1920년대 후반에 프롤레트쿨트나 이들과 연관된 사상들은 획일성을 강요하는 데 이용됐고, RAPP(프롤레타리아작가연합)는 트로츠키주의를 공격하는 데 이용됐다. 나중에 관료의 이익에 봉사하는 데 적절한 도구가 못 되자 RAPP 자신이 공격받게 됐지만 말이다. 1930년대 초에 ‘사회주의 리얼리즘’은 시대의 명령이 됐다. 그것은 부르주아 고전 예술의 패러디 형식을 빌어 스탈린과 소련 관료를 찬양하는 일종의 궁정 예술이었다.

트로츠키는 1930년에 시인 마야코프스키의 자살과 관련해 다음과 같이 썼다.

“‘프롤레타리아 문화’를 위한 투쟁 ― 단 5년 만에 모든 인류의 성과를 ‘완전 집산화’하라는 명령과 비슷한 ― 은 10월 혁명의 시작 때부터 공상적 이상주의의 성격을 지녔으며, 바로 이 점 때문에 레닌과 이 계통의 작가들이 이를 거부했다. 최근에 이것은 단순히 예술에 대한 관료적 명령 체계이자 예술을 메마르게 하는 도구가 돼 버렸다.”

오늘날 우리는 이런 다양한 이론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트로츠키 시대 못지 않게 많은 논쟁이 있는데 말이다. 이것은 우리가 단지 ‘고급 문화’만을 감상할 수 있다거나 꼭 오페라를 보러 가야 한다거나 혁명을 기다려야만 한다는 뜻일까? 노동자들이나 그들을 지지하는 사회주의자들이 함께 이야기할 만한 가치가 있는 예술을 생산하는 것은 불가능할까? 그리고 사회주의자들은 부르주아 예술의 정점 뒤에 발전해 온 모든 종류의 매체를 거부해야 할까?

명백히 이런 견해들은 모두 어리석을 것이다. ‘최고의 부르주아 문화’ 시기 뒤에 나온 예술을 거부하는 것은 예술에 대한 편협한 해석으로 나아갈 수 있다. 실제로 그 뒤 가장 훌륭한 예술 작품 중 일부가 체제에 반대하면서 존재해 왔다. 예컨대 브레히트의 희곡, 제임스 조이스의 소설, 피카소의 회화 작품들처럼 말이다.

많은 노동자들이 예술을 생산하는 데 참여해 왔고, 지금도 그러고 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이들이 노동자라면 이들은 매우 자주 노동계급의 생활 방식이나 집단성을 모두 포기해야 한다. 그러나 그들이 발전시키는 것 ― 창조적인 글쓰기, 회화, 다양한 형식의 음악 등 ― 은 종종 매우 중요했다. 그러나 이러한 개인들의 행동이 ‘노동 계급 문화’를 이루지도 않고 이룰 수도 없다.

트로츠키의 말처럼 “심지어 노동 계급의 가장 소중한 성과조차 프롤레타리아 문화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은 매우 경솔한 일이다.” 자본주의에서 이러한 노동자들은 여전히 극소수에 그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지위 때문에 그들은 가장 유력해질 수 있는 세계관을 발전시키기 힘들 것이다. 이것은 오직 혁명 과정을 통해서만 성취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중요한 기여를 할 수 있는 사회주의자나 헌신적인 예술가가 있을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예술은 여전히 수많은 사람들의 진정한 필요 ― 계급 사회가 거부하거나 억눌러 온 이해와 감정들 ― 를 표현한다. 그것은 예술의 ‘생산자’와 ‘소비자’ 둘 다에게 사실이다. 그리고 자본주의 자체의 모순 때문에 매우 많은 예술가들이 적어도 체제에 불만을 품게 되거나 때로는 훨씬 더 급진적이게 된다.

예술이 인간의 열망을 표현하는 동시에 점점 더 상품이 되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급진주의가 표현될 수 있는 모순이 생긴다.

그러나 이러한 급진주의는 오직 자본주의 사회라는 한계 안에서만 전개될 수 있다. 세계를 변화시키는 데 헌신하는 예술가들은 반드시 그것을 자기 예술의 중심으로 삼지 않으면서도 세계를 변화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사회주의자 예술가들은 선전 위주에 빠지지 않으면서 자신의 사상을 전달할 수 있는 형식을 사용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들이 내세우는 등장 인물들은 자신이 확신시키고자 하는 정치적 메시지를 뛰어넘는 깊이와 힘이 있어야 한다. 예컨대 〈비즈니스 애즈 유주얼(Business as Usual)〉 ― 밀리턴트 그룹의 정치가 압도적으로 우세했던 ― 이나 마이크 리(Mike Leigh)의 〈커다란 희망(High Hopes)〉[1982년 새처 시대 런던을 신랄하게 비판한 영화 ― 옮긴이] 같은 영화는 모두 실패했는데, 왜냐하면 좌파 사상을 전달하는 방식이 우스꽝스럽기 때문이다.

선전 중심주의를 피하기 위해서, 특히 가장 성공적인 소설들 가운데 일부는 아주 반동적인 관점을 지닌 등장 인물을 개발해 우리가 사는 사회의 모순을 표현하고 많은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예컨대 도리스 레싱(Doris Lessing)의 첫번째 소설 《초원은 노래한다(The Grass is Singing)》에서 주요 등장 인물은 로디지아(현 짐바브웨)에 사는 가난하고 억압받는 백인으로, 그는 흑인 하인 때문에 정신적 고통에 시달린다. 1930년대의 헌신적인 트로츠키주의자 소설가인 제임스 패럴(James T Farrell)은 자신의 소설 《스터즈 로니건(Studs Lonigan)》에서 주요 등장 인물을 좌파 정치와 집단 행동을 거부하는 여성 차별론자이자 유색인종 차별론자로 설정한다.

오늘날 예술 생산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점점 더 열악한 환경에 직면하기 쉽다. 보조금 삭감, 기업 후원의 증가, 무언가 새로운 시도에 대한 보수주의, 모든 측면에서 예술의 상업화.

그 결과는 대부분 평범한 것이다. 그러나 그들 분야에 널리 퍼진 관습에 진정으로 도전하고 무언가 새로운 것을 보여 주는 예술적 성과들도 소수 있다. 심지어 책이 잘 팔리는 소설가 ― 예를 들어 줄리언 반스(Julian Barnes)나 마틴 에이미스(Martin Amis) 같은 사람들 ― 조차 때때로 반체제적인 기미를 보이기도 한다. 반제국주의 소설가인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께스와 살만 루시디는 훨씬 더 강력한 사례다.

혁명 조직과 사회주의 정치는 문화라는 문제에 대해 작지만 중요한 구실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이 뜻하는 바는 단순히 누가 문화를 소비하는가를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우리가 문화를 이해할 수 있다는 생각(수백만 명이 ‘Neighbors’를 보니까 거기에 뭔가 문화적 가치가 있을 것이라고 말하는 태도)을 거부하는 것이다. 자본주의 안에는 문화적 조류에 포함되지만 사회에 대한 통찰을 발전시킨 것이 아니라 소외의 산물인 여러 종류의 활동들이 있다. 이런 범주에는 예컨대 빙고·도박·스포츠가 들어간다.

그리고 재즈든 오페라든 서로 다른 예술 형식들에서 본질적으로 진보적이거나 반동적인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예술은 형식적인 측면을 뛰어넘는 요소들, 특히 그것이 우리 사회와 그 속의 개인이 어떻게 행동하는가에 대한 통찰력과 이해를 심화시켜 주는지 여부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 이런 태도는 우리가 오늘날과 직접 관련 없는 특정 형태의 예술을 좋아하거나 이해하게 해 준다.

마지막으로, 이런 주장들은 현대 예술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환원론적 관점을 뛰어넘는 것을 뜻한다. 예술이 우리에게 정치를 직접 말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새로운 예술이 그것을 잘 한다면 매우 흥미롭다. 최근[1991년 ― 옮긴이 주]의 희곡 두 개, 미셸 셀레스테(Michele Celeste)의 〈대통령 목매달기(Hanging the President)〉와 더못 볼저(Dermot Bolger)의 〈아서 클리어리를 위한 비가(悲歌)(A Lament for Arthur Cleary)〉는 각각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사는 가난한 백인의 심리나 아일랜드의 이민과 가난 문제를 정치 팸플릿보다 훨씬 더 잘 설명하고 있다.

예술에 대한 마르크스주의 이론은 이러한 발전에 바탕을 두고 점진적으로 형성해야 하며 정치와 예술 사이에서 협소하고 기계적인 연관을 찾으려는 경향을 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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