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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율주의자와의 토론

자율주의자와의 토론

반자본주의 운동은 전쟁과 국가 탄압이라는 도전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루카 카사리니(Luca Casarini)와 앨릭스 캘리니코스가 이 문제를 논의한다.

루카 카사리니는 이탈리아 ‘투테 비안체’ 운동의 유명한 활동가다. 앨릭스 캘리니코스는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의 지도적 당원이자 반신자유주의 단체 ‘글로벌라이즈 리시스턴스’ 소속 활동가이다.

앨릭스 캘리니코스 : ‘투테 비안체’와 국제사회주의 경향에 속하는 사회주의자들 사이에 두 가지 공통점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프라하에서 분명하게 드러났고 제노바에서는 상당히 다른 방식으로 나타났습니다. 첫째로, 우리는 새로운 투쟁과 저항의 시기에 들어서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둘째로, 우리는 전통적인 좌파와는 다른 방식으로 운동을 조직하고 싶어합니다. 전쟁이 사태를 더욱 심각하게 만들긴 했지만 이미 그 전인 제노바 시위 당시에 전 세계에서 운동 전략을 두고 논쟁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나는 우리의 공통점이 무엇이고 차이점은 무엇인지 그리고 서로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 논의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루카 카사리니 : 지금 ‘투테 비안체’는 전과 다른 방식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가진 수단과 목적을 혼동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에게 수단은 자율주의자들이 말하는 네트워크 건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자율주의자들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갔습니다. 1970년대와 1980년대의 정치적 경험이 이제 한계에 도달했다는 결론을 내렸기 때문입니다.

패러다임과 언어를 바꾸고, 투쟁 방식뿐 아니라 다른 정치 세력과 연관 맺는 방식을 바꾸려는 시도에서 ‘투테 비안체’의 경험은 중요했습니다.

제노바에서 ‘투테 비안체’는 목표를 달성하긴 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부분적인 목표일 뿐입니다. 우리의 주된 목표는 충돌이 과거에도 존재했고 앞으로도 늘 존재할 것이라는 생각을 시민 사회에 심어 주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지 충돌 문제를 제기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사람들 사이에서 더 커다란 합의를 이끌어 내는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사파티스타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자신을 확장해 합의의 폭을 넓혀야 한다는 교훈을 배웠습니다. 이를 위해 우리가 발전시킨 것 중 하나가 시민 불복종 개념입니다. 즉, 한데 불러모으고 충돌이라는 문제를 제기하지만 동시에 어느 정도 합의를 얻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런 불복종을 실행에 옮기는 것입니다. 우리는 직업 군인도 아니고 또 사람들이 무조건 따라야 하는 전위도 아닙니다. 불복종이라는 이 원칙은 다른 사람들이 채택해 재생산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네트워크들에 참여해 그 내부에서 네트워크를 발전시키려고 노력한다는 점에서 구 좌파와 다른 방식으로 활동해 왔습니다. 우리는 네트워크 속에서 헤게모니를 장악하거나 전위 세력이 되고자 하는 낡은 방식을 버렸습니다. 우리가 사람들을 설득할 때 취하려는 방식은 개입하고 논쟁하는 실천입니다.

제노바 시위 이후 ‘투테 비안체’는 새로운 단계에 들어섰습니다. 사실, ‘투테 비안체’는 더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제노바 시위는 우리가 더 이상 흰옷을 입지 않게 된 중요한 전환점이었습니다. 흰옷을 입지 않아도 사람들이 우리의 슬로건, 우리의 전망과 사상을 받아들인다는 점이 명백해졌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탈리아사회포럼이라는 연합체 내에서 ‘불복종’이라고 부르는 새로운 영역을 창조하려 합니다. 우리는 이 새로운 영역을 시민 불복종이 아니라 사회적 불복종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사람들의 주의를 환기시키려 하는 것들 중 하나가 불법의 문제입니다. 모든 대중 운동은 어느 지점에서는 불법의 문제에 직면하게 됩니다.

앨릭스 캘리니코스 : 우리는 마르크스주의 전통의 핵심 요소들이 오늘날의 상황에도 여전히 타당하다고 믿고 있습니다. 우리가 마르크스주의의 타락한 스탈린주의적 왜곡이라고 보는 것과 노동계급의 자기 해방 개념이라는 마르크스 자신의 핵심 정치 사이에는 매우 뚜렷한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가 투쟁에 개입할 때 우리는 자주적인 활동이 결정적인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사람들이 자기 힘으로 싸우도록 고무합니다. 나는 바로 여기에 우리와 ‘투테 비안체’ 사이에 뚜렷한 공통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아직 해결되지 않은 고전적인 문제들도 있습니다. 일단 두 가지를 말해 보겠습니다. 하나는 국가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지도 문제입니다. 제노바는 자본이 아무리 세계화하고 분권화했다 할지라도 궁극적으로는 여전히 중앙집권화한 권력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과 국가의 군사적 양상을 분명히 보여 주었습니다. 당신은 연설이나 저작에서 ‘다중’(multitude), ‘탈집중화’(분산 또는 분권화), ‘차이’ 등 안토니오 네그리와 마이클 하트의 최근 저작인 《제국》에 나온 개념들을 자주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항의 탈집중화한 네트워크적 성격을 강조하다 보면 우리가 해야 할 일 중 하나가 중앙집권화한 권력과 싸우는 것이라는 점을 잊어버리게 됩니다. 물론 테러리즘처럼 제외해야 할 해결책도 있습니다. 적색 여단의 역사 전체는 국가 권력이 얼마나 강력한지를 보여 주었습니다. 아마도 당신이 군사적 해결책을 추구했다면 분쇄됐을 것입니다. 하지만 국가에 맞서 어떻게 싸울 것인지는 레닌과 로자 룩셈부르크 시대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둘째로, 지도 문제를 얘기해 보겠습니다. 당신이 전위가 되고 싶지 않다고 말할 때 그것은 당신에게 전위가 무엇을 뜻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당신이 말하는 전위라는 것이 노동 계급 운동을 선거 운동의 재료쯤으로 여기는 공산당식 태도나 노동 계급은 그 존재를 알지도 못하는데 스스로 노동 계급의 전위라고 자처하는 다른 극좌 조직의 예를 뜻하는 것이라면 당연히 우리는 거부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투테 비안체’는 어떤 의미에서는 전위 구실을 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사람들이 당신에게 기대할 뿐 아니라 당신의 제안을 따른다고 말했습니다.

어떤 운동이든 의견 불일치가 있고, 대중 매체와 지배 계급의 영향을 어느 정도 받는 세력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운동 내에서도 투쟁이 존재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우리 사회주의노동자당(SWP)은 용어가 연상시키는 부정적 관념 때문에 전위 운동을 자칭하지는 않습니다만, 정치적 지도라는 사상을 거부하지 않습니다.우리가 말하는 지도는 운동 내에서 그 운동이 가야 할 방향에 대해 정치적 주장을 하는 것을 뜻합니다. 이것은 사람들에게 뭘 하라고 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들과 토론해서 우리와 함께하게 되는 것을 뜻합니다. 나는 이러한 문제에 대해 공개적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당신이 예컨대 ‘투테 비안체’ 같은 구실을 운동 내에서 하게 된다면 당신은 책임을 져야 할 뿐 아니라 사람들도 당신을 바라보며 무언가를 기대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루카 카사리니 : 먼저 지도와 전위에서 시작해 보기로 하죠. 고전적 마르크스주의 전통에 따르면 당연히 해야 하지만 우리가 하지 않는 일 중 하나는 모순을 이용해 사태를 불안정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현 단계는 그런 수준을 넘어섰습니다. 우리는 이 운동 안에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할 일은 우리의 생각이 결실을 맺게 하는 것입니다. 또, 우리는 운동에서 배울 것이 있다는 점도 매우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지도에 관해 얘기한다면 새로운 맥락에서 말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정당의 지도라는 맥락에서 지도를 말하는 것이라면 우리는 매우 구체적인 대상을 다루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실험하고 있는 새로운 조직 형태인 네트워크의 맥락에서 지도를 얘기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사뭇 다른 것입니다.

나는 네트워크가 단일한 중심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네트워크는 많은 중심들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네트워크는 일시적으로 중심을 가지면서 나머지 네트워크에 영향을 미치고 네트워크 내의 최상의 요소들을 중심으로 끌어들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지도를 표현하거나 지도하는 행위는 오직 일시적일 따름입니다. 무엇보다도, 그 지도가 일시적일지라도 사람들을 끌어모을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음에 틀림없습니다. 하나의 조직으로서 우리는 그 자체로 완전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반드시 네트워크를 만들고 유지해야 하며, 네트워크 안에서 작동할 수 있는 모종의 지도를 보여 주어야 하지만, 그 지도가 네트워크를 파괴해서는 안 됩니다.

또한 우리는 복잡성을 표현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너무나 분명하고 다 드러난 문제점만 가진 대중(masses) 대신에 다중(multitudes)을 결집시키는 그런 복잡성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전위주의와 대중을 극복했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약을 복용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예를 들어, 제노바 시위 때 블랙 블록(Black Bloc)은 일종의 전위주의를 표방하면서 사람들을 대중으로 취급했습니다. 당신이 이처럼 행동한다면 운동을 파괴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바로 문화적 헤게모니라는 개념입니다. 우리는 국가나 권력과의 충돌과 관련한 모든 문제들을 제기할 수 있는 이 네트워크 내에서 활동해야 합니다.

최근에 약한 사고라는 또 다른 관점이 나타났습니다. 이것은 권력과 체제로부터의 분리, 따라서 충돌에 관한 모든 가설의 종말을 뜻합니다. 이 관점은 1970년대의 패배에 대한 개량주의적 해결책이었습니다. 우리는 1970년대의 패배를 극복할 수 있는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에 대한 혁명적 해결책은 충돌이 없이는 다른 세계에 대한 희망도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시애틀에서 시작된 운동이 이 문제를 전 세계적 규모에서 제기했다고 믿습니다. 왜냐하면 이 운동이 모든 쟁점들을 바꾸어놓았을 뿐 아니라, 민주주의 문제를 다른 무엇보다 중요한 쟁점으로 제기했기 때문입니다.

세계화가 초래한 이 거대한 세계적 변화는 우리가 자국 내에서 거대한 변형 ― 예를 들어 우리의 국민국가와 세계 체제 사이의 변화 ― 에 대처해야 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제노바에서 우리가 본 것은 군사 국가나 이탈리아 국가나 또는 이탈리아 경찰이 보인 행동이 아닙니다. 사실, 우리는 그들의 행동을 보지 못했습니다. [스웨덴의] 예테보리와 마찬가지로 제노바에서도 이탈리아 국가는 세계 체제의 부속물이었을 뿐입니다. 보통 스웨덴에서 경찰은 시위대에게 총을 쏘지 않습니다. 우리는 제노바에 있던 경찰이 블레어와 부시의 허락 없이 그러한 짓을 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블레어와 부시가 방향을 잡아 주었고, 베를루스코니에게 무엇을 해야 할지 지시했다고 믿고 있습니다. 이것은 지금 전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고 있습니다. 심지어 부유한 제1세계 안에서도 일부 초국적 구조들이 국민 국가들에게 특정 정책을 강요하고 있습니다. 이런 정책들 때문에 경제 국경이나 무역 장벽이 더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대륙의 블록화나 유로화 등과 같이 세계 시장의 이런 메커니즘에 저항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는 세 대륙을 말하고 있습니다. 나프타의 미국 대륙, 유럽 대륙 그리고 아시아 대륙. 이런 식의 견해는 그 논리적 결론까지 따지고 들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세계화를 단순히 시장과 관련된 현상이나 아니면 제국주의적 다국적 국가들로의 거대한 복귀를 나타낼 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진행되는 자본주의 착취의 새로운 방법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중대한 문제를 던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고삐 풀린 자유 시장과 모든 형태의 케인즈주의의 종말인 쌔처주의 국면을 지났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자본에게 정치적 정부와 정치적 통제가 필요했던 그 다음 국면도 지났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정부 없는 시장을 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 국면은 1999년 시애틀과 함께 시작됐습니다. 열강의 지도자들이 이 세계적 변화의 행위자가 됐습니다. 우리는 제노바 시위 전부터 이 국면은 제노바에 이르러 끝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열강의 정상회담에 이어 거대한 운동이 탄생했고 이 운동 때문에 정상회담이 더는 열릴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 운동은 캘커타나 카불이 아니라 시애틀에서 탄생했습니다. 이 때문에 우리는 이 체제를 다시 한번 심각하게 재고하게 됐습니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혁명이 영국이나 미국에서 발생할 것이라고 전망했던 칼 마르크스에 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국면이 종말을 맞이한 것은 1995∼1996년부터 자유주의가 끝났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때 뉴욕 무역센터에 대한 공격이 일어났습니다. 그 이후로 완전히 새로운 국면이 시작됐습니다. 미국이 공격받지 않았다면 이 국면이 시작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왜 세계 지도자들이 세계적 정치 지도력을 창출할 필요가 있었는지는 이 세번째 국면에서 분명하게 드러났다고 우리는 생각합니다. 이 국면에서 매우 분명한 사실은 그들에게는 세계에 대한 정치적 통제나 가장 강력하고 가장 부유한 정부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가장 정당한 통제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지금 그들은 자신들을 공정한 문명으로 내세우고 싶어합니다. 공정한 문명이란 말은 윤리적 개념입니다. 현재 그들은 팔레스타인까지 포괄하는 새로운 반테러 클럽을 창설하는 데 많은 노력을 들이고 있습니다. 이것은 매우 윤리적인 구조물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실질적인 정치적 공격이자 책략이기도 합니다. 이것은 제국주의적이기보다는 제국적인 방식입니다.

앨릭스 캘리니코스 : 과거와의 연속성이 당신이 생각한 것보다는 더 많이 존재합니다. 주요 자본주의 열강이 과거 어느 때보다 더 많은 개입을 정치적으로 조율하고 있다는 사실은 절대적으로 맞습니다. 그리고 또한 최근에 특정 국민국가가 주요 자본주의 국가들 간의 카르텔을 대신해 행동한 것으로 볼 수 있는 일련의 사례들이 있었다는 사실도 분명 맞는 말입니다. 제노바에서 카바리니에리는 이탈리아 우파뿐 아니라 세계 자본주의를 대신해 총을 쐈습니다.

강대국들이 정의와 인권의 이름으로 호소하는 것으로 자신의 개입을 정당화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나는 이런 일이 시작된 때는 9·11 사건 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최초의 ‘인도주의적 전쟁’은 코소보였고, 특히 블레어가 분명하게 밝힌 생각은 경제적 세계화에는 정치적 세계화가 필요하며 주요 국가들은 그가 말하는 보편적 가치들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코소보는 블레어 말대로 보편적 가치를 위한 전쟁이었던 것입니다. 앞으로도 많은 가엾은 나라들이 보편적 가치의 이름으로 파괴될 것입니다.

나는 하트와 네그리가 《제국》에서 내놓은 분석 중에서 동의하지 않는 부분이 있습니다. 주요 자본주의 열강 사이에 아직도 존재하는 국가간 충돌의 정도를 과소평가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예를 들어, 당신은 세 지역 블록에 관해 말했습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미국이 이들 세 블록의 지도자로 자처한다는 점입니다. 미국은 유럽 통합 과정에 깊이 연루돼 있고, 또한 아시아의 아펙과 아시아-태평양 경제포럼에도 깊숙이 관여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미국이 서로 다른 세 국제 기구들을 자국 자본의 이해를 관철시키기 위한 도구로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미국은 탈개성적이고 탈집중적인 제국으로 증발해 버리지 않았습니다. 미국은 아직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자본주의 권력 중추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분명히 위기는 바로 그런 점에서 흥미롭습니다. 우리의 지배자들은 ‘무한 정의’나 ‘항구적 자유’처럼 보편적인 가치에 호소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미국의 주요 관심사 중 하나는 어떤 형태의 군사작전일지라도 미국의 국가 권력을 확인하려는 것이라는 점입니다. 부분적으로 이것은 미국이 다자간 구조에 종속되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맨해튼이 파괴되고 펜타곤이 폭탄 테러를 당한 뒤에 미국은 가능한 한 잔혹하고 무자비하게 자신의 권력을 입증해 보여야 하는 처지에 있습니다.

나는 방금 언급한 것이 현대 자본주의의 본질적인 특징을 보여 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즉, 자본가 계급 내의 충돌과 그 때문에 서로 다른 자본가 계급 분파들이 자신이 속한 국민국가에 의존해야 한다는 점이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가 서구 자본주의라는 영역을 넘어서 미국·러시아·중국 사이의 지정학적 경쟁을 살펴보면 이 점이 더욱 뚜렷하게 드러납니다. 미국 기성 체제의 여러 부분이 중국을 커다란 경제적·전략적 위협 세력으로 보고 중국을 봉쇄하고 통제하기 위한 갖가지 전략들을 내놓고 있습니다. 지금은 1914년이나 1945년 때의 제국주의 세계와는 다릅니다. 그러나 고전적 제국주의 이론의 핵심 요소는 여전히 유효합니다. 즉, 세계는 여전히 경제적·정치적 권력을 가진 서로 경쟁하는 중심들로 분열돼 있다는 점 말입니다. 따라서 그런 단계를 넘어섰다는 하트와 네그리의 주장은 우리를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 수 있습니다.

또 다른 중요한 문제인 조직과 지도의 문제를 얘기해 보기로 하죠. 나는 때때로 우리가 똑같은 것을 말하면서도 서로 다른 용어들을 사용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시애틀에서 시작된 운동에서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많은 점에서 오늘날 우리가 활동하는 방식은 불과 4∼5년 전의 방식과도 사뭇 다릅니다. 이 운동은 우리를 변화시켰고, 운동에서 배우지 못하는 정치 경향은 도태될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지도할 권리를 획득해야 하고 또 지속적으로 획득해야 합니다. 지도할 권리를 선언하거나 과거의 활동에 근거해서 지도권을 요구하는 조직이나 정치 경향은 살아 있는 운동의 일부가 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이 점에서 우리는 의견이 일치합니다.

루카 카사리니 : 나는 지도자라고 말하지 않고 지도자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당신 스스로 자처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당신에게 지도하라고 말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에게는 그런 말이 아니라 실제 행동이 더 중요합니다.

제국과 제국주의에 대한 논평은 대단히 흥미로웠습니다. 당신이 지적한 것은 대부분 다 옳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제국 개념과 모순되지 않습니다. 제국은 그 안에 제국주의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국은 하나의 실재라기보다는 경향에 가깝습니다. 이 점은 어떤 것도 더 이상 확실하지 않다는 점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예를 들어, 세계무역센터 사건 이후 케인즈주의적 대응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하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그리고 아프가니스탄 폭격 전에 먼저 국제적인 반테러 클럽이 구성될 수 있을지도 확실하지 않았습니다. 다시 말해서, 이 논쟁은 자본주의 혁명이 계속 진행되고 있고 우리는 그것을 따라잡아야 한다는 점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이번에는 일상의 정치 활동 문제로 넘어가 봅시다. 우리는 세계화를 이야기할 때 제국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대단히 유용하다는 점을 발견했습니다. 왜냐하면 고전적인 입장에서 미국 제국주의를 분석하는 사람들은 보통 전위와 대중을 믿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들은 지금의 반자본주의 운동이 개량주의 운동이라고 생각하는 바로 그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새로운 개념을 도입하는 것이 매우 유용합니다.

우리는 또한 방금 논의했던 모든 과정들 속에 커다란 모순들이 있다는 점을 보여 줄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운동을 포괄하는 보편적 사상뿐 아니라 체제에 관한 보편적 사상을 발견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제1세계·제2세계·제3세계라는 개념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고는 우리가 세계화 논의에서 또 다른 주요 쟁점인 끊임없는 세계적 전쟁이라는 문제를 다룰 때 매우 유용합니다. 지금까지 이 운동은 전쟁을 논의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이 운동은 주로 시장, 시장의 정치적 지배, 그리고 금융과 화폐에 대해서만 논쟁해 왔습니다. 이 토론들은 군대에 관한 매우 기본적인 논의를 빠뜨렸습니다.

또 다른 쟁점은 끊임없는 세계 전쟁의 문제입니다. 전쟁을 고려하지 않으면 지금까지 논의한 모든 과정들을 결합시킬 수 없습니다. 이 쟁점에 대해서 사파티스타 지도자인 마르코스가 지적한 점을 경청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는 네번째 전쟁, 즉 끊임없는 전쟁 상황으로 저강도 전쟁을 들었습니다. 이런 정식화는 현재의 전쟁 몰이를 이해하고 평화 문제를 다루는 데 대단히 유용합니다. 이런 정식화는 평화의 개념 자체를 바꾸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끊임없는 세계적 전쟁을 맞이하고 있다면 평화의 문제도 완전히 재고해야 하기 때문이고, 평화가 단순히 전쟁이 없는 상태를 의미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저강도 전쟁의 측면에서 이런 점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싶습니다.

앨릭스 캘리니코스 : 우리가 제1세계·제2세계·제3세계라는 구분을 받아들이든 말든 1989년 이래로 평화는 부유한 국가들에만 한정된 것이었고 세계의 나머지는 끔찍한 전쟁을 치렀다는 점이 분명한 사실입니다. 한 가지 예만 들어보겠습니다. 1998년 이래 콩코민주공화국은 전쟁을 겪어 왔습니다. 그 전쟁은 기본적으로 이 나라의 거대한 부를 이루고 있는 자원의 통제를 둘러싼 것이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2백5십만 명이 죽었습니다. 이들을 위한 3분 간의 묵념 같은 것은 없었습니다. 물론 맨해튼에서 일어난 사건은 굉장히 잔혹한 만행이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 사건은 세계의 나머지 지역에서 일어나던 전쟁이 체제의 중심부로 흘러넘친 순간이었습니다. 그래서 당연히 미국의 지배 계급은 이런 사건을 원래의 장소로 돌려보내서 체제의 중심을 위협하지 못하게 해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평화로운 세계에 살고 있다는 생각은 허무맹랑한 것에 불과합니다. 이 때문에 이 모든 전쟁들과 체제의 구조 사이의 관계라는 대단히 중요한 문제가 제기됩니다. 이 문제는 자본주의 세계화에 반대하는 운동에는 매우 중요한 시험대입니다. 시애틀은 코소보 전쟁 다음에 일어났기 때문에 이 운동은 처음에는 전쟁과 제국의 권력에 대한 입장을 취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지금 진정한 시험대는 효과적인 반자본주의 운동이 되기 위해서는 동시에 반제국주의 운동이 돼야 한다는 점을 이 운동이 이해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나는 지금까지 나타난 조짐들은 매우 긍정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코소보 전쟁이 시애틀 바로 뒤에 일어났다면 어떻게 됐을지는 알 수 없습니다. 경험이 쌓이면서, 특히 예테보리와 제노바를 경험하면서 사람들은 자본주의가 단지 돈뿐 아니라 총과도 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지금의 위기에 적절히 대응한다면 이 운동이 단지 지지 면에서만 아니라 정치적 이해를 심화한다는 면에서도 훨씬 강력해질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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