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폐기장 후보지 선정 반대:
"전력대란"을 협박하며 핵발전을 강요하는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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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4일 산업자원부는 핵폐기장 후보지 네 곳(전남 영광, 전북 고창, 경북 울진·영덕)을 전격 발표했다. 정부는 1989년 이후 다섯 차례에 걸쳐 핵폐기장 부지 선정을 시도했지만 그 때마다 번번이 실패했다. 지난 번 마지막 시도는 굴업도 핵폐기장이었는데, 1년여 힘겨운 싸움 끝에 해당 부지에서 활성단층이 발견되면서 결국은 백지화됐다. 사실, 이 곳의 단층은 이미 알려져 있었다.
현재 한국의 핵발전소는 18기로, 영광·울진·월성(경주시)·고리(부산시)에 각각 6기·4기·4기·4기가 가동중이다(1만 5천 7백20MW). 전체 설비의 30퍼센트, 발전량의 40퍼센트를 담당해 나날이 핵발전소에 대한 의존율을 높이고 있다.
정부는 2015년까지 발전량의 50퍼센트를 담당하도록 비율을 높일 요량으로 핵발전소를 계속 증설해 18기를 더 가동할 예정이다. 그리 되면 수명이 연장되는 것까지 포함해 2030년에는 총 36기가 가동될 예정이다. 특히, 새로 건설되는 핵발전소는 대부분 1백40만kw급인데, 핵산업계의 계획대로라면 한 곳에 12기, 10기, 8기, 6기가 동시에 가동될 예정이다.
이번 핵폐기장 후보지 결정은 위와 같은 핵발전소 확대와 나아가 재처리를 염두에 둔 핵폐기장 추진의 시작을 알린 것이다. 정부는 2008년이면 각 핵발전소의 중저준위 핵폐기물(폐필터, 작업자들이 사용한 작업복·장갑·공구 등 방사능 세기가 낮은 방사성 폐기물)을 보관하는 임시 저장고가 포화할 것이기 때문에 핵폐기장을 시급히 건설해야 한다고 국민들을 몰아세우고 있다. 이번에 핵폐기장을 건설하지 못하면 핵발전소를 더 건설할 수 없어서 “전력 대란”이 올 것이라고 협박하는 것이다.
하지만 지난 굴업도 핵폐기장 부지 지정 실패 당시 정부는 핵폐기물의 부피를 줄이는 기술을 이용하면 핵폐기장 건설이 시급하지 않다고 스스로 밝힌 바 있다. 정부는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정치 일정을 저울질하다가 정권 인수 기간을 이용해 기습 발표한 것이다. 우라늄 채굴량이 50년밖에 남지 않아 우라늄 가격이 상승하자 재처리를 통해 플루토늄을 확보하여 고속증식로를 건설·가동할 생각으로 핵폐기장 부지 선정을 서두르는 것이 아닌지 의혹을 사고 있다. 고속증식로를 추진했던 일본과 프랑스는 이미 포기했는데, 한국의 과기부는 2006년까지 고속증식로 설계 연구에 1천2백여억 원을 투자하고 있다.
교두보
한국의 풍력과 태양광 에너지 잠재량은 아주 높다. 풍력의 경우 우리 나라 전력 소비량의 3배이고 태양광은 독일 일사량의 3배가 넘는다. 전 세계 풍력 발전 시장은 30퍼센트가 넘는 성장을 계속하고 있다. 영국과 독일은 핵발전소 추가 건설을 중단하고 단계적인 폐쇄에 들어갔으며 각각 2020년까지 20퍼센트와 2030년까지 30퍼센트 전기를 재생 가능 에너지로 충당할 계획이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여전히 핵발전소가 가장 깨끗하고 경제적이며 친환경적인 에너지라고 선전하면서(이를 광고하기 위한 원자력문화재단이 1년에 쓰는 비용이 1백10억 원이다), 재생 가능 에너지는 비현실적이라고 치부해 버린다.
세계적으로 핵발전소는 쇠락의 길을 걷고 있다. 하지만 아시아에서, 특히 한국에서는 아직도 핵발전소가 미래의 에너지로 여겨지고 있다. 핵발전소와 핵폐기장을 추진하는 한국전력공사의 자회사인 한국수력원자력주식회사는 정부 보증으로 수백억 달러의 외채를 들여 와(IMF 시기 총 6백억 달러의 외채 중 2백억 달러가 한국전력공사 외채였다) 핵발전소를 맘놓고 건설하고 있으며, 한국 사회는 1인당 5천6백kwh의 높은 전력 과소비 구조를 부추기고 있다.
KEDO가 북한에 공급해야 하는 ‘한국형 핵발전소‘도 사실은 미국 컴버스쳔 엔지니어링(CE)사의 1백40만kw급 핵발전소의 주요 부품을 짜깁기해 이를 1백만kw급으로 축소한 것이다. 이 발전소는 베트남과 우즈베키스탄, 루마니아에도 수출할 예정이다. 결국 세계 핵산업계가 한국을 아시아 진출의 교두보로 삼으려는 것이다. 이번 핵폐기장 추진은 그 시작에 불과하다.
지난 4일 후보지가 발표된 이후 서울에서는 환경 단체들 중심으로 기습 시위를 벌였다. 이번 반대 운동에 원불교가 적극 결합하고 있는데, 영광이 원불교의 성지이므로 영광 핵폐기장 반대를 위해 시작했다.
이미 예견됐던 영광과 울진은 발표와 동시에 즉각 비상대책위를 꾸리고 지난 12일과 13일에 각각 1만 3천 명과 3천여 명이 모여 집회를 했다. 특히, 울진은 앞으로 총 10기의 핵발전소가 가동될 예정인데, 지난 1994년과 1999년, 2000년에 과기처와 산자부 장관들이 공문을 보내 핵폐기장 건설 포기를 약속한 적이 있어 분노가 더 크다. 핵폐기장 후보지로 전혀 거론되지 않던 영덕과 영광 핵발전소에 피해를 입고 있던 고창에서도 대규모 집회를 준비하고 있다.
우리 나라의 핵폐기장 건설 반대 운동은 핵폐기장 위험성을 알리는 운동에서 나아가 핵발전 중심 전력 정책 자체를 바꾸라고 요구하는 운동이 되고 있다. 이번 핵폐기장 반대 운동은 지속 가능한 전력 정책을 수립하는 운동에서 중요한 고리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