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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영희 교수의 국회 앞 집회 연설 - 내가 파병을 반대하는 이유

평화 국가의 위상이 위기에 처해 있는 이 시각, 며칠 동안 계속 민주주의의 승리를 위해 싸우고 있는 여러분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나는 모처럼 갖지 못했던 귀중한 이 기회에 노무현 대통령과 박관용 국회의장과 여야 국회의원들에게 경고하고 아울러 간곡히 부탁하겠습니다. 대한민국 군대를 이라크에 절대 보내지 말아야 할 이유를 분명하게 알아야 하겠습니다. 대통령과 정치인들은 분명히 다음과 같은 사실을 인식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첫째, 그 동안 미국이 이라크 공격을 정당화·합법화하려고 선전한 사항이 모두 거짓임이 드러났습니다. 이라크에서는 “대량살상무기”도 발견되지 않았고, 화학무기와 그밖에 유엔 안보리가 결정하고 제재를 가할 만한, 미국의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아무런 근거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둘째, 따라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미국의 거짓된 주장과 요구를 몇 달에 걸쳐 심의한 결과도, 그리고 현지에 파견된 조사단의 철저한 조사 결과도 아무런 증거를 발견하지 못한 이번 전쟁은 침략전쟁을 구성하게 되는 것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세계 국가들의 행동 규정을 결정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유엔 헌장, 이 모든 것을 미국은 위반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미국의 이라크 군사 공격은 명백한 침략 전쟁입니다.

또, 파병은 대한민국 헌법의 근간이 되는 유엔 헌장 정신에 위배되는 것입니다. 우리 헌법은 국제 관계에서 국제 행동은 유엔 헌장 정신에 입각해야 한다는 것을 분명하게 밝혔습니다. 또 우리 헌법에는 침략 전쟁을 부정하는 명백한 조항이 있습니다. 파병은 이것에 대한 위반입니다. 대한민국이 유엔의 결정에 의해 탄생한 국가인 만큼 유엔 정신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행동 결의가 없는 미국의 불법적 전쟁 행위에 군대를 파병하는 것은 유엔 헌장 위반이며 대한민국의 법적 뒷받침이 되고 있는 기반을 파괴하는 겁니다. 따라서 노대통령과 국회의장과, 여야 국회의원들은 분명히 대한민국의 헌법이 정한 바에 따라서 행동해야 할 것이며, 대한민국 헌법을 위반하는 것은 국가와 국민의 대표임을 스스로 부정하는 것으로 간주해야 합니다.

넷째, 우리 대통령과 국회의원들과 파병 지지 세력들은 파병이 한-미 동맹 관계에 바탕하는 것이라 말합니다. ‘대한민국과 미합중국 간의 상호방위조약’은 1954년 발효된 것으로, 이 방위조약에는 분명하게 군사행동에 대한 제한이 있습니다. 단순하게 동맹이라 해서 모든 군사행동이 허용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대학생이나 그 연배 분들인 거 같아서 대한민국의 군사 행동에 관한 한미방위조약에 관한 강의를 할까 합니다.

‘대한민국과 미합중국 간의 상호방위조약’은 그 전문에서 상호 군사 행동을 분명하게 제한하고 있습니다.

파병은 오히려 한미 방위 조약 위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두 가지입니다. 한국이 미국을 도와도, 미국이 한국을 도와도 그것은 외부의 무력 공격이 있어야만 정당화됩니다. 또, 그 지역은 태평양 지역에만 해당하는 것입니다.

노대통령과 국회의원들은 분명하게 외쳐야 합니다. 외부로부터의 명백한 군사 행동이 없었는데도 대한민국이 한미방위조약에 입각했다고 착각하고 미국의 군사공격에 지지를 보낸다면 한미방위조약에 위배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미방위조약은 평화적 수단에 의해서 해결하게끔 돼 있습니다. 우리가 무슨 평화적 수단을 다했습니까?

또, 국제 관계에서 유엔에 배치되는 방법으로 무력 위협이나 무력 공격을 삼간다고 돼 있습니다. 따라서 유엔에 위배되는 이라크 공격은 한미방위조약에도 위배되는 것입니다.

지금 이라크가 무력 공격을 해 왔습니까? 이라크 국민들이 한국 국민들에게 손가락질 하나 한 일이 있습니까?

이라크가 아시아에 있습니까? 극동 지역에 있습니까?

이라크가 선제 공격을 했습니까? (청중들:아니오!)

그렇다면 우리 대한민국은 미국의 군사 공격을 지지할 이유가 하등 없습니다. 노무현 대통령과 박관용 국회의장과 여야 국회의원들은 이제 미국과의 동맹 관계라는 허황된 논리로 파병을 결정하려 하는 이유를 국민들에게 설명해야 합니다.

다섯째, 여러분은 젊어서 베트남 전쟁 당시 상황을 잘 모를 겁니다. 대한민국 군대 35만 명이 베트남에 갔고 상시적으로 5만 명이 주둔해 있었습니다. 대한민국 군대가 미국을 지원하기 위해 베트남에 갈 때도 한미방위조약에 근거해 간 것이 아니에요. 미국은 이 조약에 근거해 대한민국 군대를 베트남까지 끌고 갈 근거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형식을 취했냐 하면 남베트남 정부로 하여금 대한민국에 독자적으로 군대 파병을 요청하게 하는 군색한 방식을 썼습니다.

미국의 요청으로 베트남에 간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멍청한 한국 사람들이 많은데, 한국이 미국 요청 없이 자발적으로 갔다고 하는 엉터리들이 있는데, 미국은 한미방위조약에 근거가 없으니까 남베트남 정부가 한국에 요청하도록 한 것일 뿐입니다. 아주 교활하고 못된 방법을 쓴 것입니다.

여섯째, 그렇다면 동맹 국가는 다른 동맹 국가의 전쟁에 무조건 참전해야 하는가? 베트남 전쟁 때 영국은 군대를 포함해 아무것도 보내지 않았어요. 그런데 미국이 하도 요청하니까 급기야 의장대 6명을 보냈습니다. 사이공 공항에 의장대를 세워 놓고 마치 영국이 미국을 돕기 위해 참전한 것인 양 쇼를 한 겁니다. 영국이야말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멸망할 것을 마셜 플랜을 비롯한 미국의 원조로 살아난 나라입니다. 미국과 같은 앵글로 색슨 핏줄인 영국은 우리 나라보다도 더욱 대대적으로 미국의 베트남전을 지원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의장대 6명만을 보냈다는 사실은 굉장히 인상적이지 않습니까?

일곱째, 국가 이익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국가 이익을 획득하는 방법은 도덕적이어야 합니다. 살인·강도의 방법으로, 남의 나라를 침범하고 남의 선량한 국민들을 해치면서 돈을 벌고, 시장을 개척하고, 석유 이권을 챙기는 것을 원하는 극우 반공주의 세력이 있습니다. 그러나 돈을 벌더라도 남을 해치지 않고 도덕적으로 해야 합니다. 강도·살인, 절도·강간·파괴·방화 이런 방법으로 번 돈이 얼마나 유익하고 국가 이익에 도움이 된단 말입니까?

여덟째, 노무현 대통령은 북한 핵 문제를 평화적으로 풀기 위해 전략적으로 미국을 지지했다고 고통스럽게 말했습니다. 그러나 한반도 전쟁 위기를 해결하고 북한에 대한 미국의 군사 위협을 해소하기 위해 전쟁을 지지했다면 이것이야말로 한심한 작태입니다.

미국이라는 나라, 특히 부시를 비롯한 공화당 세력에게는 미국의 이익이 행동 규범입니다. ‘동맹 국가의 희망이 무엇인가’ 하는 것은 부시 정권의 고려사항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한국 정부가 아양과 아첨을 떤다고 부시 정부가 전쟁을 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면 착각도 이만저만한 착각이 아닙니다. 미국은 오로지 미국의, 부시 정권의 철학과 정책과 이익만을 위해 행동하는 집단입니다.

아홉째, 한국 국민들은 민주화 운동 과정을 거쳐 높은 민주 의식과 도덕성을 갖췄습니다. 세계인들의 존경을 얻기 위해서는 파병하지 말아야 합니다. 한국은 이제 자주적이어야 합니다.

열번째, 대한민국의 전투병을 이라크 포로수용소 경비병으로 보내 달라는 요구가 있었습니다. 이 포로 수용소 경비병이야말로 훗날 전범 재판에 회부될 가장 위험한 직책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일본이 연합군 병사들을 포로 수용소에 가두었고 조선인들이 경비병 노릇을 했습니다. 전쟁이 끝난 뒤 이 가련한 조선인들이 일본의 앞잡이로 몰려서 전범 재판에 회부되어 사형당했습니다. 포로 수용소 경비는 1급 전범입니다. 아무런 죄가 없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미국의 행동 규범

열 한번째, 우리가 왜 12억 아랍 인구를 적으로 만들어야 합니까? 그럴 이유가 무엇이 있습니까? 나라의 적을 새로 만들어서 국제 외교에 지장을 입을 이유가 없습니다.

열 두번째, 국내 반공 수구 세력, 미국의 말이라면 뭐든지 무조건 따르는 일부 수구 세력을 그대로 두어서는 안 됩니다.

열 세번째, 노 대통령 자신이 취임 전과 취임 후에 미국에 대해서 할 말은 한다, 대한민국은 앞으로 미국과의 관계에서 자주적인 태도를 가지겠다 해서 여러분들은 아마 이 정권에게 표를 찍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이게 미국에 대해서 할 말을 하는 노 대통령의 모습입니까? 이것은 자기 자신을 배신하고 자기 자신을 배신함으로 해서 대한민국 국민을 배신하고 국가 위신을 떨어뜨리는 일입니다.

열 네번째, 이번에 파병하고 미국이 하라는 대로 하게 되면, 우리 국민은 미국에 더욱 예속될 겁니다. 그렇지 않아도 대한민국은 미국의 보호국처럼 취급받아 왔는데, 이번 파병은 이런 상황을 심화시킬 겁니다.

끝으로,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지지해 놓고 미국의 한반도 정책과 대북 적대 정책에 무슨 근거로 대항할 수 있습니까? 미국은 우리의 요구와는 반대로 행동할 겁니다.

노무현 대통령에게 묻겠습니다. 이러한 상황에도 미국의 이라크 침략 전쟁을 지지하고 군대를 파병해야 할 비밀 협약이 있는가? 한미방위조약 이외에 그것을 백지화하는 미국과의 비밀 조약이 있는가? 그렇다면 우리 헌법과 한미방위조약에 근거해 마땅히 그것을 무효화해야 합니다. 그리고 국민들에게 그 사실을 밝혀야 합니다. 국민은 알 권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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