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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옮긴이가 말하는 《탈선》

영국 철도 탈선을 소개하기에 앞서 영국 수상 블레어의 탈선을 먼저 말해야겠다. 입에 담고 싶지도 않은 이름이지만 추악한 이라크 침략 전쟁의 전범 중 하나인 그의 과거 행적을 고발하지 않을 수 없다.

블레어의 탈선

영국 철도의 분할 매각은 1995년 말부터 시작돼 1997년 4월에 완료됐다. 보수당은 철도 매각을 몹시 서둘렀다. 철도 시설 부문인 레일트랙을 헐값에 주식 시장에 상장했고, 운행 부문의 불하를 위해 막대한 정부 보조금을 사기업들에게 제공하겠다고 약속했다. 1997년 5월에 있을 총선에서 패배가 확실시됐기 때문이다. 보수당은 철도 재국유화를 주장하는 노동당이 집권하기 전에 철도 사유화를 완료하기 위해 전력을 다했다.

노동조합과 진보 진영은 노동당이 집권하면 철도 사유화를 중단하고 다시 철도를 국유화할 것으로 전망했다. 철도 산업 노동조합들은 매각을 저지하기 위해 사실상 ‘정치파업’을 매년 전개했다. 그런데 블레어 당수는 총선을 불과 한 달 정도 앞두고 발표한 선거 정책 강령에서 철도 재국유화 정책을 폐기했다. 이미 사유화가 거의 진행돼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자본가들과 절친한 블레어의 진면목이 다시 드러났다. 철도 재국유화를 기대했던 노동조합과 사회 운동 단체들의 실망과 분노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영국 철도가 완전히 사기업으로 운영되기 시작한 시기는 블레어가 집권한 시기와 일치한다. 블레어 하에서 공공 철도에 비해 2배 이상 증액된 정부 보조금이 주주들의 호주머니로 들어갔다. 그런데도 철도 산업에선 비용 절약을 이유로 유지·보수 업무가 방기되고 여러겹의 외주 하청 계약이 난무했다. 선로 시설은 무참히 황폐해졌고, 안전에 필수적인 신호 시설의 도입은 마냥 유예됐다. 마침내 1997년 7명, 1999년 31명, 2000년 4명, 2002년 7명의 승객들이 열차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철도의 모국 영국에서 벌어진 일이다. 영국 철도 대란을 야기한 책임을 묻는다면 보수당 당수 옆에 노동당 수상 블레어가 서 있어야 한다. 그는 오늘 다시 부시 옆에 서 있다.

레일트랙의 공공화

2002년 10월 3일 신자유주의 모국 영국에서 노동자와 시민 들은 남다른 감동을 느꼈을 것이다. 1996년 매각으로 공공 선로에서 탈선한 영국 철도 선로 시설 회사인 레일트랙이 공공 소유로 되돌아온 날이다. 새로 철도 시설 부문을 인수한 공단의 이름은 네트워크레일(Network Rail)이다. 이 공단은 비이윤 기구로 엄격히 정해졌고 최고 의사결정기구로 공공 철도 총회를 두고 있다. 사기업의 주주 총회와 동일한 권한을 갖는 이 총회는 승객, 시민, 노조 대표 등이 참여하는 공익 위원 60명과 철도 산업 관련업계 위원 40명 등 총 1백 명으로 구성된다.

불과 2∼3년 전까지만 해도 예상 못한 일이 현실에서 벌어졌다. 모처럼 신자유주의 국가에서 전해 온 낭보라 오히려 놀랍다. 무려 20년 만의 반전이다. 1982년 국영 화물 회사 사유화를 시작으로 통신, 가스, 항공, 석유, 철강, 수도, 전력, 석탄, 런던 지역 교통, 철도 등 기간 산업이 줄줄이 매각됐다. 이제 남은 것이라곤 체신, 런던 지하철, BBC 방송뿐이다. 그런데 어떻게 핵심 기간 산업인 철도 시설이 다시 공공화됐는가?

답은 명확하다. 시민들의 분노 때문이다. 시민들은 더 이상 사기업이 철도를 장악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집권 초부터 사유화 정책을 옹호해 온 노동당 정부도 이러한 시민들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영국 철도 대란의 원인, 경과 그리고 해법

나는 영국 철도의 사유화가 정점에 달했던 1996년 여름부터 영국에 머물렀다. 덕분에 철도 사유화를 둘러싼 영국 시민들의 공방, 노동자들의 분노, 보수당의 매각 강행, 노동당의 재국유화 공약 철회 등을 지켜볼 수 있었다. 1998년 초 한국에 돌아와 영국 철도의 사유화 과정을 꼭 우리 나라에 전해야겠다고 다짐했다. 특히, 한국 철도의 사유화 계획이 가시화되면서 더욱 그랬다.

한 동안 무능함과 게으름으로 이 바램이 무산되는구나 하던 참에 이 책을 발견했다. 당시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저자인 앤드루 머리는 영국 철도 기관사 노조에서 공보관으로 일하는 노조 간부이면서 활발한 저술 활동을 벌이는 연구자다. 저자는 철도 사유화 추진 과정, 민영철도 체제, 철도노동자의 애환, 철도 대란 사태 등을 평이하면서도 감동적으로 적고 있다. 당연히 그가 제시하는 해답은 공공 철도로 되돌아가자는 것이다.

저자는 영국 자본주의 태동에서 첫 장을 시작한다. 철도가 그 때부터 달렸기 때문이다. 이 책은 1830년 첫 열차의 기적 소리에서 2001년 철도 대란까지 철도의 궤적을 다루고 있다. 1세기 반에 걸친 자본주의 열차에 탑승해 창 밖의 자본주의와 열차 내 사유화 소동을 두루 접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2001년 10월에 출간됐다. 꼭 1년 후에 저자가 그토록 소망하던 레일트랙의 공공화도 이뤄졌다. 저자의 예지력이 영국을 넘어 우리 나라에서도 실현됐으면 좋겠다. 아무쪼록 공공성이 너무도 취약한 우리 나라에서 이 책이 조그마한 교훈과 희망을 전해줄 수 있기 바란다.

미국이 벌인 전쟁의 위선을 드러내다

《전쟁에 반대한다》

“정치·군사 지도자들은 … 끔찍한 행위들을 정당화하기 위해 이런 행위들을 기만적인 어휘들로 휘감아 위장시킨다” 지배자들의 능력은 대중을 얼마나 잘 속이느냐에 달려있다.

부시 역시 “독재자로부터 이라크를 해방시킨다”며 수많은 이라크 사람들을 학살하고 있다.

미국 정부의 거짓말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그들은 코소보의 촌락을 폭격하면서 “민간인들을 인간 방패로 사용”하고 있어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갓난 아이들이 수류탄을 숨기고 있”다는 구실로 500여 명의 민간인들을 죽인 베트남의 미라이 학살을 정당화했다.

하워드 진의 《전쟁에 반대한다》(이후)는 발칸반도, 이라크, 리비아, 베트남, 제2차세계대전 동안 미국이 저질렀던 거짓말들과 학살을 통쾌하게 폭로하고 있다.

미국이 “민주주의를 위해” 개입한 나라들 중에 단 한 곳이라도 민주주의가 이루어진 곳이 있었나? CIA가 1954년에 좌익 정부를 성공적으로 전복시킨 과테말라는 그 이후 가장 추악한 군사독재가 지배하고 있다. 칠레에서는 아옌데의 좌파정부를 무너뜨린 뒤 피노체트 장군의 공포통치를 후원했다.

레이건은 폭탄 테러를 빌미로 리비아의 트리폴리를 폭격했다. “폭탄 사건의 배후에 까다피가 있다고(이를 입증하는 증거는 하나도 없다), 그리고 트리폴리 공습의 배후에 레이건이 있다고(이를 입증하는 증거는 완벽하다) 가정한다손 치더라도, 둘 모두 테러리스트이지만, 레이건은 까다피에 비해 훨씬 더 많은 사람을 죽일 능력이 있다. 그리고 그는 그렇게 했다.”

미군은 북베트남의 ‘침략’을 물리치기 위해 베트남전을 벌인 것이며, “그들이 내일이라도 집으로 돌아간다면 우리도 집으로 갈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베트남인들은 이미 자신들의 집에 있었다. 정작 집에서 멀리 떠나와 전쟁을 치른 것은 35만의 미군, 4만 명의 한국군 뿐이었다.

하워드 진이 말하는 전쟁의 교훈은 하나뿐이다. “우리의 지도자들은 신뢰할 수 없다는 사실, 현대의 전쟁은 어쩔 수 없이 민간인, 특히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전쟁이라는 사실, 오직 굳은 결의를 지닌 시민들만이 대규모 살인을 저지르려는 정부를 저지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는 우리에게 이렇게 호소하고 있다. “실천을 하자. 자신들의 실천으로 모든 세대에 걸쳐 전쟁을 만들어낸 이들이 누구인지 말하자. … 우리의 유일하고도 진정한 방위력은 … 우리를 죽이려는 다른 나라 정부들뿐만 아니라 역시 우리를 죽이려 하는 우리 자신의 정부에 맞섬을 통해 가능하다”

장한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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