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니를 찾아서> (심상국 감독, 92분):
우리가 연대해야 할 수많은 ‘로니’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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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가 한국을 뒤덮은 직후 1990년대 후반 더운 여름날 저녁이었다.
독서실을 나서 자전거를 세워둔 뒤 공중전화 박스에서 막 뒤를 돌아서던 찰나, 어두운 길 가의 배경과 크게 다르지 않은 얼굴색을 한 큰 눈의 사내가 순서를 기다리고 서 있었다.
나는 너무 깜짝 놀라 자전거를 움켜쥐었다. 그는 한국의 신도시 가구공단 어딘가에서 긴 시간 일하고 가족과 전화 통화하려는 평범한 ‘이주’ 노동자였다. 나는 처음엔 놀랐지만 집으로 가는 길에 이내 미안해지고 말았다. 그렇게 수년이 지난 뒤 한 남자를 알게 됐다.
마흔을 훌쩍 넘긴 이 남자는 방글라데시에서 온 ‘조비’였다. 그는 일산 가구공단에서 1990년대 중반부터 일을 했다고 한다. 명랑한 성격의 이 남자는 나보다 신도시에 거주한 지 더 오래된 우리 이웃이었다.
내가 그를 알기 한참 전부터 이주노동자들은 많은 곳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탄압이 거세지던 2000년대 초반 명동성당 등에서 이주노동자들은 눈물겨운 투쟁을 벌였다.
이 투쟁에 그도 함께했다. 먹고살기 힘든 자본주의 사회의 경쟁 논리에 쫓기기만 했던 나에게 조비와 같은 이주노동자들과 떠듬거리며 함께 맥주 한 잔 마시며 나누던 토론은 얼굴색 따위는 우리에게 중요하지 않은 문제라는 것을 알게 해 줬다.
몇 년 뒤 조비는 장물인 줄 모르고 산 오토바이가 교통경찰의 단속에 걸리면서 화성외국인‘보호’소에 ‘수감’됐고 그 뒤 ‘추방’됐다.
영화 속 로니도 그런 사람 중 한 명이다. 일부 한국 노동자들은 이주노동자를 ‘일자리를 빼앗고, 잠재적으로는 범죄와 테러’를 일으킬 우범자로 바라본다. 인호도 그런 인물이다. 그는 무뚝뚝하고 자존심 세고 고지식한 ‘한국의 국기’인 태권도 사범이다.
이주노동자들을 단속하는 방범 활동을 하던 중 역전에서 액세서리를 팔던 로니의 좌판을 뒤집으면서 그 둘의 인연이 시작된다. 줄어드는 원생들을 모으기 위해 ‘국가대표 초청 태권도 시범대회’를 열던 자리에서 인호는 로니와 맞붙어 한방에 나가떨어진다. 이 일로 원생도 줄고 그의 자존심도 바닥에 떨어졌다.
이제 인호에게 모든 ‘머피의 법칙’에 로니가 있었고 이때부터 로니를 찾아 나선다. 로니를 찾기 위해 그의 친구 뚜힌과 티격태격하면서 미운 정도 들지만, 이주노동자들에게 갖고 있던 불편함과 편견, 짜증과 적개심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급기야 불법체류 중인 이주노동자들이 있는 곳을 출입국관리소에 고발하기에 이른다. 로니에 대한 정보를 알기 위해 그곳을 찾은 뚜힌은 단속을 피해 건물에서 뛰어내리다 다리를 다치고 만다.
‘로니를 찾아서’ 방글라데시로 떠난 인호의 마지막 모습에서 나는 10여 년 전 나의 모습을 본다. 이주민을 향한 내국인들의 편견과 적개심의 눈빛이 수많은 ‘로니’들을 괴롭혔을 것이다.
나는 ‘로니’를 찾아 떠나는 대신 평범한 그들과 연대하고 함께 싸우기를 택했다. 한국 사회의 허울 좋은 ‘단일민족 신화’ 이데올로기는 ‘다문화 가정’이 늘어나 이미 구태가 된 지 오래다. 그러나 지배자들은 앞에서는 ‘다문화 가정 캠페인’을 벌이지만, 뒤로는 이주노동자들의 권리를 거침없이 파괴한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의 적이 아니라 친구다. 힘든 삶에서 나오는 적개심은 그들이 아니라 우리 사이를 분리 지배하려는 지배자들을 향해야 한다.
오늘도 나는 음식점에서 재중동포를, 시골마을 농촌에서나 길을 가다가 흔하게 이주노동자와 외국인을 만난다. 우리 주변의 수많은 ‘로니’와 ‘뚜힌’과 연대하는 게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