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아는 부시 일당의 다음 목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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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튜 쿡슨
부시 주변의 주요 인사들은 왜 시리아 공격을 거론하는가?
지난해 시리아는 이라크에 불리한 UN 결의안 1441호에 찬성표를 던졌다. 또, 1991년 이라크 전쟁 때는 병력 1만 7천 명과 탱크 3백 대를 파병해 미국을 도왔다.
그러나
시리아는 적어도 말로는 팔레스타인인들의 권리를 강력하게 옹호한다. 꼭 1년 전 토니 블레어가 시리아 지도자 아사드 대통령을 방문했을 때 아사드는 팔레스타인인 자살 폭탄 공격자들을
그래서 미 국무부 웹사이트에는 이렇게 나와 있다.
시리아 정부의 모순과 시리아-미국 관계의 모순을 이해하려면 시리아 정부의 계급 기반을 살펴봐야 한다.
바샤르 알-아사드가 이끄는 시리아 바트당은 1963년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잡았다. 처음에 시리아 바트당은 이라크 바트당과 동맹 관계였지만 1960년대에 갈라섰다. 바트당의 기반은 중간계급 지식인
바트당원들은 아랍 세계의 단결을 신봉하는 범아랍주의자였다. 그들은 주요 산업의 국유화와 반제국주의를 주장했다. 그러나 일단 권력을 장악한 바트당은
그들은 곧 시리아의 국경과 국익을 수호하고 확장하는 일에 더 많은 관심을 쏟았다. 범아랍 혁명이나 팔레스타인인들을 효과적으로 지원하는 일 따위는 그들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시리아의 국가적 관심사와 반제국주의
권력을 잡은 바트당은 이집트 지도자 나세르가 주창한 범아랍주의를 공개적으로 거부했다. 오히려
그렇다고 해서 중동 내 미국의 전진기지인 이스라엘과의 끊임없는 긴장이 중단된 것도 아니었다. 1967년 전쟁에서 시리아와 다른 아랍 국가들은 이스라엘에 패배했다. 이스라엘은 시리아의 골란 고원을 점령했다.
시리아 정부는 대응 방법을 놓고 분열했다. 한 분파는 시리아의 국가 안보를 철저하게 추구해야지 이스라엘과 서방에 도전하는 무모한 짓을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1970년
시리아의 현대사는 이스라엘과의 끊임없는 충돌과 팔레스타인 지지 미사여구로 점철돼 있다.
그러나 1976년 레바논 내전 당시 아사드는 레바논에 군대를 파병해, 악질적인 우익 기독교 민병대 편에 서서 팔레스타인인과 무슬림 조직을 상대로 싸웠다. 1976년 아사드의 군대는 레바논의 팔랑헤 민병대가 베이루트의 텔 알-자타르 난민촌에서 팔레스타인인 2천 명을 학살하는 것을 도왔다.
그러나 이런 전력도 부시 일당에게는 마뜩지 않다. 그들은 시리아가 이스라엘이 원하는 대로 더 비굴해지고 고분고분해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