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아교육법 제정 촉구 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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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8일 12시 여의도 63빌딩 앞 한강 둔치에서 ‘유아교육법 제정 촉구 대회’가 있었다. 이 날 집회에는 전국에서 모인 유아교육과 교수·학생 들을 비롯해 공·사립 유치원 원장과 교사 2만여 명이 참가했다. 이 날 집회에는 전교조와 교총 소속 유치원 교사들이 모두 모여 유아교육법 제정을 요구했다.
유아기는 인간 형성의 전 요소들이 결정되는 대단히 중요한 시기다. 이 시기에 유아들에게 제공되는 양질의 공교육은 미래 세대를 탄탄하게 길러 내는 가장 효과적인 투자이다. 교육의 출발선인 유아 교육부터 양질의 공교육이 제공돼야만 평등 교육을 실현할 수 있다.
유아교육법 제정은 만 3∼5세 유아를 위한 유아학교를 설립해 유아 교육을 제도적인 정규 교육으로 인정하는 것과 궁극으로 만 5세 아동의 전면 무상 교육 실현이 그 핵심 내용이다.
유치원 교육이 시작된 지 1백 년이 지났는데도 관련 법조차 만들어지지 않은 것은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현재 유아들에게 주어지는 국가의 지원은 초·중등 교육과 비교도 안 되는 미약한 수준이다. 우리 나라 유아 교육 예산은 교육부 전체 예산의 1퍼센트(3천5백억 원)밖에 되지 않아 학부모들이 유아 교육에 부담해야 하는 사교육비는 무려 5조 6천억 원에 달한다.
새우깡 세 개
이 날 연단에 선 한 학부모는 뿌리 교육이 흔들리고 있는 현실에 분통을 터뜨리며 “교사들은 일선으로 돌아가 교육부 관료들을 더 못살게 만들어야 한다” 하고 말해 집회 참가자에게서 통쾌한 박수를 받기도 했다.
김대중 정부는 유아교육법 제정을 대선 공약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1997년과 1999년 두 차례에 걸쳐 국회에 상정됐다가 2000년 5월 제15대 국회 폐회와 함께 공수표가 됐다. 여기에는 교육인적자원부와 보건복지부의 이기주의와 이해집단 간의 대립, 정부 당국자 간의 견해차, 정치권의 미온적 태도 등 복합적인 이유가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더 미루고 양보할 수 없다.
강남에서는 유기농 쌀밥에 해외로 봄소풍을 가는 귀족 영어 학원이 우후죽순처럼 들어서고 있는 반면에, 같은 서울 땅 가난한 동네 어린이집에서는 새우깡 세 개를 간식으로 내놓는다. 가난하고 평범한 맞벌이 노동자의 아이들은 아침 7시에 등원해 여덟평 안팎의 교실 안에서 서른아홉 명의 친구들과 함께 12시간을 보낸다. 교사는 밤 10시 퇴근이 일상이고 휴일은 ‘사랑’과 ‘헌신’이라는 미사여구로 반납해야 하는 일이 허다하다. 정규 수업이 끝나면 ‘특기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이제 갓 네돌을 지난 아이들에게 받아쓰기를 불러 주고 구구단을 외게 한다. 수당 한 푼 없이 한 달 꼬박 일해 받는 월급 봉투에는 고작 70만 원이 들어 있다.
나이키와 나이스
출발부터 이토록 철저하게 불평등하다. 흔히 인생을 마라톤에 비유한다. 하지만 시작부터 나이키 신발에 쿨맥스 셔츠를 입은 선수와 맨발에 일백 퍼센트 면티를 입은 선수는 그야말로 ‘쨉’이 안 된다. 하다못해 나이스 신발이라도 줘야 땀띠 나도록 뛰어 게임 시늉이나마 할 수 있다. 그래서 지금 유아교육법 제정은 공교육으로 가는 기초 마련을 위해 무엇보다 절실하다.
노무현은 당선을 앞두고 유아교육법 제정을 약속한 바 있고, 현재 국회에는 민주당 이재정과 한나라당 김정숙 의원이 각각 지난해 12월과 올 4월 대표 발의한 유아교육법안이 제출돼 있다.
교육 부문에서 전교조 마녀사냥과 네이스 시행 등을 통해 이미 ‘막 갈 만큼 간’ 노무현 정부가 우리 미래 세대들의 출발점, 평등 교육 실현을 위한 유아교육법 제정에서만큼은 ‘원칙’과 ‘상식’에 어긋남 없는 정상적인 판단을 내려 주기 바란다.
전현정(‘유치원 교사
·전국 유아교육 대학원생 연합’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