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마르크스 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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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 평전》 , 프랜시스 윈, 푸른숲
“넓은 이마에 머리카락과 턱수염이 새까맣고 검은 눈이 번쩍거리는, 이 약간 땅딸막한 남자는 즉시 모든 사람의 눈길을 끌었다. 그는 학식이 아주 뛰어나다는 평판을 얻고 있었다.”
청년 마르크스를 묘사하는 이 말은 적절해 보인다.
마르크스와 안면이 있던 다른 사람은 이렇게 묘사했다. “트리어 출신의 카를 마르크스는 24살의 유력한 인물이다. 그의 뺨, 팔, 코, 귀에서는 숱 많은 털이 빽빽하게 솟아 있다. 그는 오만하고, 충동적이며, 정열적이고, 한없는 자신감에 차 있다.”
마르크스는 보통 혁명에 미친 정신병자나 아니면 전 생애를 대영박물관에서 보낸 딱딱한 학자로 그려지곤 한다. 물론 어느 쪽도 아니었다.
마르크스는 정치경제학을 연구하는 데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렇지만 그는 정열적인 정치 활동을 반복하기도 했다. 그는 1848년 민주주의 혁명을 지지하는 선동 때문에 가는 나라마다 추방당했다. 프로이센 정부가 마르크스가 편집하던 신문을 폐간하자 그는 저항하는 뜻에서 붉은 잉크로 인쇄한 신문의 마지막 호를 다음과 같이 장식하면서 끝마쳤다. “언제 어디를 가나 마지막 말은 노동계급의 해방이 될 것이다!”
1848년 혁명의 패배는 전 유럽의 노동계급에게 영향을 미친 전환점이었다. 그래서 암울하던 1850년대에 마르크스는 정치 활동에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1860년대에 급진적인 정치가 부활하자 그는 다시 활동으로 복귀했다.
1864년 국제노동자협의회(제1인터내셔널)의 결성은 열정적인 활동기의 도래를 알리는 것이었다. 1871년 파리코뮌이 패배한 뒤 제1인터내셔널이 해체될 때까지 마르크스는 제1인터내셔널의 핵심 인물이었다.
마르크스는 ‘위선, 무지, 천박한 독단’과 ‘아첨과 아부’를 혐오했다. 그는 “몽둥이가 아니라 바늘을 들고 싸워야 하는” 것에 좌절했다. 마르크스는 자녀들과 응답 게임을 하면서, 자신이 생각하는 행복이란 싸우는 것이고 불행이란 굴복하는 것이며 가장 혐오하는 악덕은 노예 근성이라고 대답했다.
프랜시스 윈은 〈가디언〉의 칼럼니스트로 유명하다. 그는 이 칼럼들에서 자주 보수당과 노동당 정부의 지도적 인물들을 비판하곤 했다. 불행히도 1999년에 그는 발칸 전쟁을 지지하고 전쟁 반대자들을 비난하는 칼럼을 썼다.
그럼에도 윈이 쓴 마르크스 전기에는 공감할 수 있는 부분도 많고 재미도 있다. 이 책에서 윈은 《공산당 선언》의 선견지명을 칭찬한다. 그는 마르크스의 《프랑스 내전》 ― 파리 코뮌을 다룬 팜플렛 ― 을 “마르크스의 가장 매혹적인 저작 중 하나”로 묘사하기도 했다.
또, 그는 지금도 마르크스가 옳다고 인정한다. “마르크스를 공부하면 공부할수록, 그는 나에게 놀라울 만큼 현대적인 화두로 다가왔다. 오늘날 자신이 현대적 사상가라고 생각하는 학자나 정치가들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세계화’라는 유행어를 입에 올리고 싶어한다. 그러나 그들은 마르크스가 이미 1848년에 세계화를 논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마르크스의 경제 분석을 거부하는 이들에게 윈은 “20세기 서구 경제의 호황-불황 주기들”과 “빌 게이츠와 마이크로소프트가 세계를 지배하는 현상”으로 응수한다. 그리고 토니 블레어와 마르크스 비판가들에게 “끊임없이 탐구해 들어가는, 섬세하고 비교적인 정신이 드러나는” 《파리 원고》를 읽어보라고 촉구한다.
그러나 마르크스의 사상에 대한 윈의 설명은 별로다. 윈은 마르크스의 사상을 진지하게 검토하기보다는 너무 자주 평범한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마르크스가 헤겔에게서 발전시킨 변증법을 장황하게 설명한 부분을 읽는 독자들은 대부분 혼란에 빠질 것이다.
“발가벗겨진 하나의 관념(正)은 자신과 반대되는 관념(反)을 열정적으로 끌어안고, 거기에서 종합(合)이 이루어진다. 이것은 다시 새로운 명제가 되어, 새로운 악마-연인의 유혹을 받는다. 두 개의 그릇된 것이 합쳐져 하나의 올바른 것이 생길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올바른 것은 태어난 직후 다시 그릇된 것이 되고, 이것은 자신의 선조들과 마찬가지로 내밀한 조사를 받을 수밖에 없다. 이런 식으로 우리는 앞으로 나아간다.”
이렇게 우스꽝스런 설명 방식은 윈이 소외를 다룬 마르크스의 저작을 설명할 때도 비슷하게 나타난다. 그 책에서 마르크스는 노동자들이 자기 노동의 생산물을 박탈당하는 과정을 탁월하게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윈의 손에서는 이렇게 바뀐다. “똑똑한 닭(이런 생물이 존재할 가능성은 없지만)이 수십 개의 알을 낳은 뒤 온기가 식기도 전에 탈취당하는 것을 보면서, 자신의 생산력이 가장 풍부할 때 자신의 무능을 가장 크게 의식하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윈은 《자본》을 비판하는 일부 사람들에 맞서 《자본》을 방어하지만, 마르크스가 자본주의의 동학을 과학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해 주었다는 생각은 거부한다. 오히려 그는 《자본》을 “주인공이 자신이 창조한 괴물의 노예가 돼 결국 그 괴물에게 잡아먹히는 빅토리아 여왕 시대의 멜로 드라마나 방대한 고딕 소설”로 묘사한다.
따라서 윈이 묘사하는 마르크스의 생애와 그의 사상 발전은 서로 분리된다. 윈은 마르크스가 정치에 개입한 사례를 비아냥대거나, 정치적 주장들을 진지하고 세밀하게 검토하지도 않은 채 마르크스와 연관된 조직과 개인들을 조롱하고 비웃는다.
심지어 그는 마르크스를 “자신이 지배할 수 없는 조직이나 기구를 싫어하던”, “변태적인 지식인 무리 중 하나”로 비난하기조차 한다.
그러나 윈은 늙은 무어인(마르크스의 별명)을 좋아하고 존경할 수밖에 없었다. 윈이 묘사한 마르크스의 모습은 대부분 다른 전기들에 나오는 모습과 일치한다. 예컨대, 마르크스의 막내 딸 엘레아노르를 다룬 이본 캅(Yvonne Kapp)의 책 제1권이 그렇다.
윈은 토텐햄 코트 거리를 따라 진행된 마르크스의 유명한 술잔치를 존경스럽게 묘사한다. 마르크스는 “옥스포드 거리에서 햄스테드 거리까지 모든 술집에서 적어도 한 잔씩 맥주를 마시려고” 했다. 한 번은 마르크스가 길거리의 수많은 가로등을 돌로 깨뜨렸다. 화가 난 젊은 순경이 쫓아오자 마르크스는 잽싸게 도망쳤다. 이것은 많은 동지들에게 의심할 여지 없이 익숙한 장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