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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벽을 그린 남자 ― 디에고 리베라》

《벽을 그린 남자 ― 디에고 리베라》, 마이크 곤잘레스, 책갈피

나는 미술대학에서 ‘거대 담론’은 무너지고 마르크스주의처럼 인류 역사 전체를 단일한 유형으로 엮으려는 시도는 반드시 실패한다는 주장을 들으며 보냈다. 예술은 현실에 초연할 수 있다는 말을 들으며 말이다.

최근에 출판된 《벽을 그린 남자 ― 디에고 리베라》는 예술가와 그의 작품을 역사적 맥락 속에서 비평한 보기 드문 책이다. 이 책은 영국의 출판사 레드워즈의 ‘혁명적 예술가’ 시리즈 제1차분 제1권으로서 예술과 혁명이라는 ‘거대 담론’을 설명한다.

사회가 중대한 변화를 겪을 때마다 이에 응답하는 예술이 탄생했다. 1936년 스페인, 1970년 칠레, 1975년 포르투갈, 1917년 러시아, 그 중 특히 러시아 혁명은 예술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세계 미술사에 유명한 사건 중 하나인 대중 예술 운동은 호세 클레멘테 오로스코, 다비드 알파로 시케이로스, 디에고 리베라 이 세명이 주도하고 확립한 멕시코 벽화 운동일 것이다.

멕시코의 ‘해외 자본 현지 대리인’(주로 중간계급)들은 유럽 부르주아지와 문화적으로 통합되길 열망했고 멕시코는 파리의 문화를 흉내내며 자라났다. 이런 멕시코에서 벽화 운동이 벌어질 수 있은 것은 멕시코 혁명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1911년 디아스의 30년 독재가 무너지고 사회 변화의 소용돌이가 시작된다. 1920년 4월 오브레곤이 옛 지배계급의 잔해를 짓밟고 새로운 민중 연합의 지도자로 등장했다. 그러나 오브레곤 정부는 민중의 필요와 요구를 무시하고 잔혹한 탄압을 민중주의적 수사 속에 은폐했다. 멕시코 혁명은 ‘동결된 혁명’으로 끝났다.

대동 단결이라는 수사와 함께 오브레곤이 권좌에 올랐지만 갈등과 분쟁은 여전히 지속했다. 사회 통합이 긴급한 과제였다. 이러한 단결을 도모하기 위해 정부는 멕시코 민중에게 국가라는 제단에 안치된 신념, 공통의 가치 체계, 공유된 이데올로기를 주입했다. 이 새로운 정부는 민족 문화 재창조를 위해 예술가들을 끌어들였다.

그러나 멕시코 벽화 운동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예술가들은 정부가 바라고 기대한 포퓰리즘적 민족주의를 더 급진적인 전망과 연결한 것이다. 1922년 오로스코, 시케이로스, 리베라 등은 선언문에서 ‘거드름 피우는 지식인 사회가 선호한 모든 형태의 예술을 귀족적’이라며 거부하고 ‘민중의 이익을 옹호하는 이데올로기적 예술 작품을 창작하기 위해’ 일치 협력하겠다고 선언했다. 1923년 정부는 노골적 선전으로 나아가고 있던 오로스코와 시케이로스의 벽화를 거부했다. 리베라만이 독점적 제작자로 남았다.

리베라는 인디오, 고통, 억압, 민족에 대한 이상화한 표현을 통해 그 자신만의 멕시코 미술을 완성해 갔다. “그의 작품은 여전히 혁명의 제분소를 가동시키는 원료로 남을 것이다.”

그의 위대한 벽화들은 여전히 우리들을 열광시키고 유쾌하게 한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그의 작품에 매료당한다. 그렇지만 바로 그 힘이 변조돼 왔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리베라의 그림은 우리를 갈등의 세계에서 조화를 이루게 한다. 그의 벽화에 등장하는 대중은 언제나 방관자로 남아 역사의 과정을 기다리는 수동적 인물이다. 영웅이 등장하기도 하지만 기독교의 순교자처럼 그들은 기다리는 대중을 대신해 행동하며 분열된 민족을 통합하기 위해 헌신한다.

망명한 트로츠키에게 은신처를 제공한 일화로 리베라(공산당원이기도 했다.)는 예술가이자 공산주의자로 높이 평가받기도 한다. 그러나 리베라의 대리주의를 보면 리베라는 노동자 계급의 자기 해방이라는 트로츠키의 확고한 신념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한편에서 리베라에 대한 지독한 무관심과 ― 이 나라에서 거의 소개된 적이 없다 ― 다른 한편에서 공산주의자로 과장된 평가가 존재한다. 이 두 가지 종류의 평가를 벗어난 곤잘레스의 비평은 이 책이 돋보이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다.

“리베라의 작품들은 보편적 진리의 상징들을 이용해 부르주아 민족 국가의 일시적 지배를 또 다른 영원한 진리로 바꾸어 버렸다. 그의 그림에는 모순이나 역설이 빠져 있다. 그러나 그것은 자본가 계급과 대면하는 모든 노동자가 겪게 되는 중요한 경험이다. … 멕시코에선 아직도 혁명을 완수하기 위해 싸우고 있는 투사들을 박해하고 살해하는 지배계급이 혁명의 상징과 혁명가 사파타의 얼굴을 이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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